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나는 뭐 였나?

정준극 2007. 6. 6. 09:22
 

보덕봉 메아리



나는 뭐였나?


하나뿐인 아들이 결혼해서 새살림을 차린지도 몇 달이나 지났다. 아들과 며느리는 용하게도 용인에 새로 지은 어떤 아파트를 구해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멀리 덕소에 있는 조그마한 집에서 2년전에 정년퇴직한 남편과 함께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아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차제에 얼마 나가지도 않지만 덕소 집을 처분해서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주위에서도 모두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만 밤낮 없이 바쁘게 직장 다니는 며느리 때문에 그런 얘기는 감히 건네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에 얼마 전부터 시아버지가 몸이 불편한 입장이다. 그래도 직장 다니는 며느리에게 함께 살자고 주장하기가 민망스러워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새로 살림을 차린 아들 내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찾아가 보고 싶지만 둘 다 직장 다니는데 공연히 찾아가면 쉬지도 못하고 번거로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참았다. 하지만 새로 이사간 집에 시어머니라는 사람이 한번도 찾아가 보지 않았다면 사돈집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이 들자 날을 잡아 만사 제쳐 놓고 한번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광복절이었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아침상을 치우고 집을 나섰다. 빈손으로 갈수 없어서 엊그제부터 준비한 밑반찬 몇 가지를 무겁다는 생각도 없이 들고 나섰다.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다시 마을버스 타고 한참이나 빙빙 돈 후에 겨우 아들과 며느리가 살고 있다는 아파트를 찾을수 있었다. 요즘엔 아파트 이름들이 어찌나 복잡하던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찾지 못할 지경이다. 몽 셰르빌, 프리미엄 그랑빌, 노블리세, 유트란드 하이빌 등등....잠시 다른 얘기지만 아파트 이름들이 이렇게 복잡한 것은 시골에 있는 늙은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어렵게 하기 위해서라는 소리가 있다. 원 세상에.... 그건 그렇고 노상 바빠서 정신없다고 하는 며느리였는데 그날은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지 마침 집에 있었다. 아들은 새벽처럼 골프 치러 나갔다고 한다. 결혼후 처음 찾아간 아들 집이었는데 아들이 없어서 그런지 서먹했다. 하지만 며느리가 상냥스럽게 대해주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며느리의 옷차림이 핫팬티에 아주 간단한 티셔츠 차림이어서 아무리 집에서 입는 옷이라고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신식 며느리에게 무어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리고 밖에서 보았던 며느리 얼굴과 이날 아침의 얼굴이 영 딴 판으로 보여서 약간 정신이 산만해 졌을 뿐이었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별로 크지 않은 집이었지만 손색없이 잘 꾸며 놓았음을 알 수 있었다. 벽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걸려 있었다. 방에는 컴퓨터가 두 대나 설치되어 있었다. 제자리에서 뜀박질 하는 운동기구도 있었다. 부엌에도 있을 것은 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며느리가 살림을 잘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아들 내외의 신접살이에 흡족한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힘들게 가지고 온 반찬들을 커다란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 냉장고에는 빵, 과일, 주스들이 상당히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김치는 베란다에 두고 먹는가보다!’라고 생각하여 베란다를 둘러보았지만 세탁기만 있었다. 부엌을 둘러보던 어머니는 불현듯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밥을 해 먹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설거지했던 흔적도 없다. ‘얘야! 밥은 도무지 해먹지 않는 모양이구나. 어쩐 일이냐?’ ‘아, 어머니, 걱정 마세요. 아침엔 오빠와 함께 우유한잔 마시구 나가구요, 점심은 회사에서 먹구요, 저녁은 일 때문에 서로 회식이 많아요. 야근하는 날도 있구요. 회식이 없는 날엔 오빠와 집에 들어오기 전에 만나서 저녁 먹구 들어와요. 어머니!’ 그래서 현재로서는 밥을 해 먹을 기회가 통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나저나 오빠는 누굴 말하는 것이란 말인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나? 어머니는 오빠라는 말이 마땅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대체로 그렇게들 부른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아서 잠자코 있자고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문득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며느리에게 조용히 물어 보았다. ‘얘야, 너 혹시 밥 어떻게 짓는지 모르는거 아니냐? 된장찌개 끓일 줄은 아냐? 김치 담글 줄 모르면 내가 오늘 담아 주마!’ 어머니는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얘야, 난 이날 이때까지 네 시아버님한테 매일 아침 따뜻한 진지를 한번도 해 드리지 않은 적이 없단다. 안사람이 되어서 그것도 안해 드린다면 말이나 되냐?’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아이구,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결혼하고 나서 따뜻한 밥 한끼를 얻어 먹지 못하는가 보다’라는 생각에 며느리를 약간은 나무라는 기색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는 ‘요새 젊은 사람들이란 에그 그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랬더니 이 똘똘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보고 ‘어머님, 저 좀 잠깐 보실래요?’라며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책상위의 노트북을 부팅한 후 ‘어머님, 컴퓨터 할줄 아세요? 인터넷 할줄 아세요? 파워 포인트 만들줄 아세요? 인터넷 쇼핑할줄 아세요? 인터넷 공과금 낼줄 아세요? 핸드폰 은행거래 하실줄 아세요?’라고 묻더란다. 시어머니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며느리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어머님, 운전할줄 아세요? 영어 할줄 아세요? 주식 아세요? 테니스 칠줄 아세요?’라고 계속 묻더란다. 말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그것 보세요! 어머님은 겨우 밥하나 하실줄 아는 것 밖에 없으시잖아요? 김치 담그는게 뭐 그리 큰일인가요? 백화점에 가면 온갖 김치 다 만들어서 파는데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가 생각해 보니 며느리가 얘기하는 것 중에 정말 단 한가지도 할줄 아는게 없더란다. 시어머니는 할 말이 없어서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하긴 그렇구나! 세상의 바뀌는데...나는 뭐였나?’라는 생각을 했다. (2003년 12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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