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푸른 하늘 푸른 마음

정준극 2007. 6. 6. 09:29

과학자 칼럼


푸른 하늘 푸른 마음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라는 동요가 있다. 은하수는 밤하늘에서만 볼 수 있다. 환한 대낮의 하늘에서는 볼 수 없다. 캄캄한 밤하늘을 푸르다고 표현한 것은 동요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이 '푸르다'라는 말이 진짜 청색을 말하는 것인지 또는 녹색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을 경우가 많다. ‘푸른 신호등’이라고 하면 그건 당연히 녹색을 말한다. 신호등에 청색은 없다. ‘저 푸른 언덕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래에서 ‘푸른 언덕’이란 말은 녹색의 나무가 우거지고 녹색의 잔디가 깔린 그런 언덕을 말한다. 그러나 ‘푸른 바다 헤치고 저 멀리 대양을 향하여’라는 노래에서의 ‘푸른 바다’는 청색의 바다를 말한다. ‘창공에 빛난 별 물위에 어리어’라는 노래에서의 ‘창공’ 역시 ‘청색의 하늘’을 말한다. 녹색의 하늘이란 있을 수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색깔이 있다. 현대적 첨단 분광 방법으로는 1000종류 이상의 서로 다른 색깔을 분류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색깔의 종류는 그저 30가지 정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색깔들을 분류하는 기본도 경우에 따라 흥미롭다. 가장 기본이 되는 색깔만을 말할 때는 3원색이라는 말을 내세운다. 컬러 TV의 기본 색상은 3원색이다. 천연색 영화의 경우에도 3원색만 있으면 된다. 컴퓨터 화면에서도 색깔의 배합은 3원색에 기본을 두고 있다. 무엇이든지 빛깔이 유난히 아름다울 때에는 오색이 영롱하다는 말을 쓴다. 오색약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세상 색깔의 기본은 후하게 쳐주어서 다섯가지라고 해도 무난하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빨주노초파남보...또는 보남파초노주빨...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가하면 학생들이 쓰는 크레용의 색깔은 보통 열두 가지이다. 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스믈 네 가지 색깔을 쓰기도 한다. 그 이상의 색깔을 가지고 무얼 한다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다.


파란색은 3원색이든 오색이든 무지개색이든 어디에나 기본 메뉴로 들어가는 색깔이다. 파란색은 맑은 마음과 희망을 뜻한다. 파란색은 꿈의 색깔이다. 꿈의 색깔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마음으로 그릴 수 있어도 실체를 느낄 수는 없는 색깔이다. 눈에 보일 수는 있어도 손에 잡을 수는 없는 색깔이다. 멀리서는 볼 수 있어도 가까운 데서는 볼 수 없는 색깔이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색깔이다. '푸흔 하늘 은하수...'에 나오는 푸른 하늘을 보자. 하늘은 과연 푸른색일까? 그렇지 않다. 멀리서 바라보면 파랗게 보이지만 정작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 기대와는 달리 파란색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투명할 뿐이다. 푸른 바다를 보자. 멀리서 보면 푸른 바다이지만 그 푸른색을 보기위해 손으로 바다 물을 떠 보면 그건 단순히 투명한 색깔일 뿐이다. 볼 수는 있어도 볼 수 없는 이상속의 색깔이 파란색이다. 마치 희망이란 것이 그렇듯이.


이 파란색을 우리 원자력연구소의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에서도 볼수 있다. 원자로 중심부의 풀(Pool) 속을 들여다보면 우라늄 핵연료가 있는 부근에 정말 아름다운 빛깔의 파란색을 볼 수 있다. 핵분열 할 때에 튀어나오는 수많은 전자들이 물 분자와 부딪혀서 생겨나는 충격 전자파 때문이다. 일종의 방사선이다. 물속에서 거의 빛의 속도로 진행하는 전자들이 만들어 내는 신비의 빛이다. 이 방사선을 ‘체렌코프 방사선’이라고 부른다. 일찍이 구소련의 과학자인 체렌코프라는 사람이 이 현상을 처음 발견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체렌코프 방사선’ 또는‘체렌코프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아름다운 파란 빛이지만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파란 물을 떠 보면 그건 그냥 투명한 물일 뿐이다. 실체가 있으면서도 실체가 없는 색깔이라고나 할까?


‘5월은 푸르구나, 우린들은 자란다’라는 동요는 맑은 마음을 가진 어린이들의 밝은 희망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라건대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파란 마음의 우리 어른들이었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색깔이 파랗다느니 빨갛다느니, 앞으로 나가느니 또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느니 하면서 다투지나 말고. (중도일보 2000년 5월. 정준극 한국원자력연구소 책임기술원)


연구용 원자로 로심에서의 체렌코브 반응(Tscherenkow-Strahl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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