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남몰래 읽는 366편

25. Bizet, Georges (비제) [1838-1875]-카르멘

정준극 2007. 7. 3. 17:00

 조르주 비제 (25세)

 

[카르멘] 


타이틀: Carmen. 전 4막의 오페라 코믹. 프랑스 현대 작가인 프로스퍼 메리메(Prosper Merimee)의 동명소설을 앙리 메일락(Henri Meilhac)과 루도비크 알레비(Ludovic Halevy)가 합작하여 대본을 썼다.

초연: 1875년 파리 오페라 코믹극장

주요배역: 카르멘(집시여인), 돈 호세(용기병대의 상병), 에스카미요(투우사), 미카엘라(호세의 고향 마을 아가씨), 주니가(중위), 모랄레스(하사), 프라스키타(집시), 메르세데스(집시)

음악적 하이라이트: 카르멘의 운명을 암시하는 모티프, 카르멘을 음악적으로 묘사한 곡, 프라스키타-메르세데스-카르멘의 3중창, 돈 호세의 꽃노래, 카르멘의 세귀디야(seguidilla), 2막에서의 카르멘과 돈 호세의 듀엣, 4막에서의 카르멘과 돈 호세의 듀엣, 미카엘라의 아리아, 에스카미요의 쿠플릿, 집시 노래, 하바네라, 1막에서의 카르멘이 부르는 민속적 노래

베스트 아리아: L'amour est un oiseau rebelle[사랑은 반항하는 새와 같은 것](MS), Habanera, Seguidilla(MS), Toreador en garde!(Bar), La fleur que tu m'avais jette[당신이 던져준 그 꽃](T), Je dis que rien ne m'epouvante(S)

 

가장 이상적인 카르멘이었다는 엘제 브림스(Else Breams)

 

사전 지식: 탐욕적인 사랑이 부른 비극. 비제의 대표작으로 이국적인 스페인이 세팅이다. 극중 대사의 일부는 원래 대화체로 되어 있으나 어떤 공연에서는 대화를 음악에 맞추어 놓은 경우도 있다. 카르멘이 돈 호세의 칼에 찔려 비참하게 죽는데 무대 밖의 투우장에서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리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도 아이러니컬한 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에피소드: 사실주의를 오페라에 도입한 카르멘이 초연되었을 때 관중들은 이 오페라의 내용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여서 비난을 퍼붓고 무대에 토마토를 던지기까지 하였다. 자기 작품 중에서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생각한 비제는 카르멘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초연 3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초연의 비난은 공연이 거듭될수록 찬사로 바뀌었다. 오늘날 카르멘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가장 이상적인 카르멘으로 각광을 받았던 앨토 레이나 키아나카스(Layna Chianakas)


줄거리: 무대는 1830년 세빌리아와 그 주변. 이야기는 세빌리아의 담배공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군인들이 하릴없이 서성이는데 순진하고 아름다운 미카엘라(Micaela)가 고향에서 어릴때부터의 남자친구인 호세(Jose)상병을 만나러 온다. 담배공장에서 5분간 휴식 종소리가 나자 상당히 괜찮게 생긴 아가씨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은 마침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던 군인들과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웃고 떠들고 유혹하면서 잘 들 논다. 그때나 이제나 군인들은 그저 할 일 없이 짓궂은 짓이나 하는가 보다. 여인중의 여인은 가무잡잡한 모습의 집시 카르멘(Carmen)이다. 가장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은 반항하는 새와 같은 것’을 역시 상당히 괜찮게 생긴 호세를 목표로 부른다. 하지만 호세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미카엘라가 있지 않은가? ‘휴식 끝!’ 신호와 함께 여공들이 우르르 담배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일해야 돈 받지, 놀면 돈 받나?’ 때문이다. 갑자기 공장 안에서 여인들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웬 일일까? 대형 산재 사고? 아니면 전국적인 금연운동 소식이 들어 왔나? 하지만 이유는 카르멘이다. 다른 여인과 싸움박질 했기 때문이었다. 폭력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 카르멘을 호세가 감방까지 연행하는 책임을 맡는다. 좀 머리가 모자란 호세는 카르멘의 매력에 빠져 들어가고 급기야 감방에서 도망치도록 해 준다. 이 정도 줄거리면 ‘빤한 결론’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 더 두고 보자.

 

 돈 호세 역의 호레 카레라스 (Jose Carreras)


제2막. 그로부터 한 달 후, 마을의 어느 주막집. 담배공장을 명예퇴직한 카르멘은 집시친구들과 카드 점이나 보면서 그럭저럭 노닥거리며 지내고 있다. 그 자리에는 호세도 있다. 호세는 카르멘이 자기에게 깊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카르멘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때에 인기 한창인 투우사 에스카미요(Escamillo)가 환호하는 팬들과 함께 주막집으로 들어선다. 에스카미요는 유명한 ‘투우사의 노래’(Toreador en garde! - Toreador, be careful!)를 부른다. 카르멘의 마음은 이미 멋쟁이 에스카미요에게 향해 있다. 한 패의 집시 밀수꾼들이 등장한다. 카르멘은 군인인 호세가 밀수팀에 가담하면 잡히더라고 유리할 것으로 생각해서 호세에게 밀수에 가담해 달라고 부추긴다. 카르멘에게 목 매달린 호세는 이윽고 밀수팀에 합세한다.

 

 집시들의 플라멘코 춤 장면


제3막. 밀수 루트인 산골짜기. 주점으로 에스카미요가 카르멘을 만나러 왔다. 사랑에 눈 먼 호세는 라이벌 에스카미요에게 시비를 걸어 칼싸움을 벌이지만 이 미련한 짓에 카르멘의 마음은 완전히 호세로부터 떠난다. 마침 고향의 여자 친구 미카엘라가 호세를 찾으러 산골짜기로 올라온다. 미카엘라는 호세에게 고향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어서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한다. 호세는 아직도 카르멘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지만 어머니 등등을 생각해서 마지못해 고향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제4막. 투우장 밖. 안에서는 투우 경기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에스카미요가 카르멘과 팔짱을 끼고 나타난다. 그 뒤를따라 호세가 한심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카르멘에게 ‘제발 나를 사랑해 주어요!’라고 외치지만 카르멘의 대답은 차갑다. ‘우리 사이는 이미 끝난지 오래올시다’라는 대답이었다. 투우장 안에서 ‘에스카미요!’를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카르멘은 빨리 들어가서 에스카미요의 멋진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에 호세를 밀치고 투우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카르멘과 에스카미요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호세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확 돌아버린다. 그리하여 미친 듯 칼을 꺼내어 카르멘을 찌른다. 사람들이 투우장 밖으로 쏟아져 나오다가 새하얀 햇빛 아래에 장미꽃처럼 빨간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카르멘의 모습을 본다. 호세는 ‘오, 내 사랑하는 카르멘!’을 외치며 카르멘의 몸 위로 쓰러진다. 아마 요즘 청년들 같으면 호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미친 놈! 남자 망신 다 시키고 있네!’라고 말했을 것이다.

 

 집시 밀수꾼들에게 둘러쌓인 카르멘(발트라우트 마이어)


☺카르멘 뒷얘기

카르멘은 세계에서 인기 톱 랭크에 들어 있는 오페라이다. 그러나 이 오페라가 처음 나왔을 때는 사람들로부터 부도덕하고 추잡하며 천박한 내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수십년 전부터 프랑스 사회를 지탱해 오던 사회 도덕적 기준에 반하기 때문이었다. 비제도 카르멘이 공연되면 사회로부터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용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명 대본가들에게 카르멘의 대본을 부탁함으로서 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켜 보자고 생각했다. 비제는 작곡가이며 대본가로서 이름이 높은 알레비(Halévy)에게 대본을 의뢰했다. 처음에는 거절당했었다고 한다. 알레비는 한마디로 ‘저질!’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실제로 알레비 자신도 카르멘의 오페라화에 은근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오래전에 자기가 한번 오페라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알레비는 비제에게 스토리의 내용을 좀 변경해도 좋다면 대본을 맡아보겠다고 제안했다. 이번에는 비제가 ‘웃기는 말씀!’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대본을 바꾼다면 주인공들의 강한 성격 설정이 약해진다는 판단에서였다.

 

 가장 완벽하게 카르멘과 돈 호세 역할을 소화했던 아그네스 발차와 호세 카레라스


비제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들이 한번 보고는 잊지 못해서 자꾸 생각이 나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실, 카르멘 스토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것이었다. 비제가 오페라로 만들어 공연하던 때로부터 꼭 30년 전에 메리메가 소설로 써서 발표했기 때문이다. 메리메는 카르멘에 대한 이야기를 스페인 여행중 어떤 백작부인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메리메가 원고지에 쓴 소설은 그가 백작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와 상당히 달랐다. 메리메의 소설에서는 집시 여인인 카르멘이 주인공이지만 백작부인의 얘기 속에서는 호세가 주인공이었다. 카르멘은 어떤 여인인가? 메리메의 소설에 비춰진 카르멘의 모습은 ‘검은 윤기가 나는 긴 머리칼에 빨간색 자스민 꽃 한 송이를 꽂고 있는 여인, 사팔뜨기처럼 보이는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으며 육감적인 도톰한 입술 속으로는 하얀 치아가 빛난다. 살결은 구리빛, 몸은 아담한 편, 한번 보면 잊을수 없는 야성미의 여인’이었다. 메리메는 카르멘을 묘사하면서 끝으로 ‘자기의 미모와 춤으로 모든 남성들을 파멸로 이끄는 여인’이라고 적었다.  

 

전설적인 카르멘 역의 레지나 레스니크

 

카르멘은 초연을 위한 리허설 때부터 상당한 저항에 부딪쳤다. 출연진들이 연출자의 말을 도무지 듣지 않았다. 여성합창단원들은 ‘나? 싸우는 사람 아닙니다!’라면서 담배공장 앞에서의 집단 싸움장면을 거부하였다. 몇 사람들은 ‘죽으면 죽었지 출연하지 않겠다!’라는 비장한 각오로 사표를 제출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음악이 왜 스페인 스타일이냐? 여기가 파리이지 스페인이냐?’라면서 카르멘공연저지를 위한 단식투쟁을 했다. 먹기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에게 있어서 단식투쟁은 대단한 일이므로 카르멘에 대한 저항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비평가들은 너도나도 손잡고 혹평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평론에서 부도덕, 저질, 비교육적 등등의 단어를 나열했다. 하지만 공연은 대 성공이었다. 비제(거꾸로 읽으면 제비)는 단연 파리 사교계의 저명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카르멘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 카르멘이었던 것도 상기해 볼 일이다. 카르멘의 매력은 도덕적인 메시지에 있지 않다. 주인공들의 성격적 특성이 서로 융합되어 표출되는데 있다. 카르멘의 정열, 돈 호세의 무모함, 미카엘라의 순진성, 에스키미요의 남성다움이 뒤섞여서 숨막히는 이야기를 창조한 매력이 있다.

 

 매혹적인 카르멘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