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남몰래 읽는 366편

38. Britten, Benjamin (브리튼) [1913-1976]-루크레티아의 능욕

정준극 2007. 7. 3. 17:20

벤자민 브리튼

 

[루크레티아의 능욕]


타이틀: The Rape of Lucretia. 전2막. 앙드레 오베이(André Obey)의 희곡 Le viol de Lucrtèce를 기본으로 로날드 던캉(Ronald Duncan)이 대본을 썼다.

초연: 1946년 영국 글린드본극장 

주요배역: 루크레티아(정절높은 부인), 남녀 코러스, 콜라티누스(로마군 장교, 루크레티아의 남편), 유니우스(로마군 장교), 타르퀴니우스 섹스투스(로마군 사령관), 비안카, 루치아

베스트 아리아: Tarquinius does not dare... I remember when her hair fell(S), She sleeps as a rose(S), Bring him this orchid...Flowers bring to every year the same perfection(Cont)

사전지식: 1945년, 2차대전이 끝나던 해에 브리튼이 내놓은 피터 그라임스가 성공을 거두자 다음해애 내놓은 작품이다. 브리튼이 실내오페라에 관심을 보인 첫 작품이다. 그 이후에 내놓은 알버트 헤링은 완전 실내오페라용이었다. 루크레티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인으로 정절 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고귀한 부인이다. 그 신화의 무대를 기독교 시대의 로마로 옮겨 놓은 것이다. 드믈게 콘트랄토(루크레티아)가 주역이다.

 

 정절부인 루크레티아의 초상화. 베니스 바르톨로메오의 작품.

 

줄거리: 제1막. 남성 코러스와 여성 코러스가 어떻게 하여 로마인이 아닌 에트루리아의 타르퀴니우스(Tarquinius)가 로마의 지배자가 된 배경을 설명한다. 음모와 살인으로 권력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그의 아들인 타르퀴니우스 섹스투스(Tarquinius Sextus)왕자는 로마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그리스와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타르퀴니우스왕자의 병영이다. 지휘관들인 콜라티누스(Collatinus)와 유니우스(Junius)가 타르퀴니우스 왕자와 술을 마시고 있다. 이들은 전날 밤의 내기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다. 로마에 두고온 자기들의 부인들이 얼마나 정절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내기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몇몇 지휘관들이 말을 달려 로마에 갔다 왔다는 것이다. 결과 모든 부인들이 밤중에 자리에 없었으나 다만 콜라티누스의 부인인 루크레티아(Lucretia)만이 정숙하게 집에 있었다는 것이다. 모두들 콜라티누스에게 찬사를 보낸다. 약간의 질투를 느낀 동료 지휘관 유니우스가 타르퀴니우스 왕자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 왕자가 직접 루크레티아의 정절을 시험해 보고 그때 가서 최고의 정절부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타르퀴니우스 왕자는 그날 밤 로마로 말을 달린다. 루크레티아는 두 하녀와 함께 집에서 조순하게 지내고 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타르퀴니우스 왕자가 나그네라고 하며 하룻밤 유숙하기를 청한다. 정숙하고 교양 있는 루크레티아는 집에 온 손님을 박정하게 대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남편의 방을 치우고 그를 유하도록 한다.

 

 1946년 글린드본 음악제에서의 초연 장면. 당대의 콘트랄토 캐슬린 페리어(Kathleen Ferrier: 가운데)가 루크레티아 역을 맡았다. 루크레티아가 남편과 동료들을 영접하고 있다.


제2막. 남성 코러스와 여성 코러스가 로마의 통치자인 에트루리아 출신의 왕이 얼마나 가혹하게 통치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들은 로마에 반란의 기미가 있음을 전한다. 밤중에 타르퀴니우스 왕자가 자고 있는 루크레티아를 깨워 갖은 방법으로 유혹하지만 정숙한 루크레티아는 타르퀴니우스 왕자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타르퀴니우스 왕자는 루크레티아를 강제로 욕보이고 병영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아침, 치욕으로 낙담한 루크레티아가 하녀를 시켜 남편 콜라티누스를 집에 오도록 한다. 남편 콜라티누스가 동료 유니우스와 함께 집으로 온다. 루크레티아가 지난밤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얘기하자 남편 콜라티누스는 자기도 이일에 무관하지가 않으므로 루크레티아의 결백을 믿는다고 말하며 안심시킨다. 하지만 정절을 최고의 미덕으로 믿는 루크레티아는 더 이상 치욕 속에서 살수 없다고 생각하여 칼을 들어 자결한다. 이 순간 유니우스가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높이 쳐들고 ‘로마인이여! 에트루리아인인 타르퀴니우스가 이 정숙한 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라고 소리치며 타르퀴니우스에게 항거할 것을 선동한다. 유니우스는 자기가 권력을 쥐기 위해 교묘한 계책을 꾸민 것이었다. 남성 코러스와 여성 코러스는 이 비극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본다.

 

루크레티아(Laureen Livingston)과 하녀 비안카(Judith Pierce)와 함께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구하고 있다.

 

[오페라 '루크레티아의 능욕'과 로마의 역사]

 

오페라 ‘루크레티아 능욕’을 설명하기 전에 로마의 역사에 대하여 아주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는 트로이의 왕족인 이니아스(Aeneas)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왕국에 잠시 체류하다가 부하들을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세운 왕국이라고 한다. 이니아스는 영국의 헨리 퍼셀이 작곡한 오페라 ‘디도와 이니아스’에 등장하는 바로 그 이니아스이다. 이니아스는 그리스의 침공을 받아 트로이가 함락되자 부하들을 거느리고 로마로 가던중 카르타고에 들려 디도 여왕의 환대를 받았으나 새로운 왕국 건설이라는 신탁을 외면할수 없어서 카르타고를 떠나 이탈리아로 건너와 로마왕국을 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로스 형제들이 세웠다고도 되어 있다. 고대 로마왕국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가장 충실한 자료가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 Livy)라는 역사학자가 쓴 Ab urbe condita libri(왕국설립서: Books from the City's Founding: History of Rome)이다. 기원전 27-25년 사이에 써졌다고 한다. 그 이전에도 기록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프랑스에 있던 골 족이 동진하여 이탈리아 반도의 거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을 때 모두 손실되었다고 한다.

  

아르디아의 옛 성문

 

리비우스(리바이)가 쓴 ‘왕국설립서’는 로마가 이니아스에 의해 도시국가로 세워진 때로부터 공화국으로 발전하고 다시 줄리어스 시저의 뒤를 이어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을 건립하고 통치하던 시기까지의 역사를 담았다. 돌이켜보면 줄리어스 시저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로마제국의 기틀을 마련하기 전까지 로마는 집정관들이 통치하는 공화국이었고 그 이전에는 로마왕국이었다. 로마왕국을 처음 세우고 왕이 된 사람은 루시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이다. 기원전 509년의 일이다. 루시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로마공화국 최초의 집정관(Consul)이었다. 줄리어스 시저를 암살하여 ‘브루투스! 너 까지도!’(E tu Brutus)라는 유명한 말이 나오게 만든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는 로루시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후손이다.

 

로마의 하수도 뚜껑에 적혀 있는 SPQR. 루크레티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서 잠시 옛 로마공화국을 SPQR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로마에 가서 보면 하수도 맨홀 뚜껑으로부터 건축물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SPQR이라는 글자가 수없이 많이 새겨져 있다. SPQR은 Senatus Populus-Que Romanus, 즉 The Senate and the People of Rome(로마의 원로원과 시민회의)이라는 뜻이다. SPQR은 옛 로마공화국의 명칭이다. 로마가 국민에 의한 공화국임을 상징하는 문구이다. 그런데 로마공화국을 건립한 키 멤버들이 ‘루크레티아 능욕’에 등장하는 루크레티아라는 여인과 깊은 관계에 있다. 루크레티는 로마공화국이 생기기 전에 있었던 로마왕국의 마지막 왕의 아들로부터 강간을 당하였다. 이에 분노한 루크레티아의 남편인 루시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Lucius Tarquinius Collatinus)와 친척인 루시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리고 남편의 동료들이 쿠테타를 일으켜 로마왕국을 폐지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세웠다. 루크레티아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우선 로마공화국의 첫 집정관인 루시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친척이라는 것만 언급코자 한다.

 

루크레티아의 죽음. 렘브란트 작품

 

 

다시 오페라 ‘루크레티아 능욕’으로 돌아가 보자. 영어 제목은 Rape of Lucretia 이다. Ra

pe는 강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강간’이라고 하면 너무 노골적이어서 능욕이라고 번역하였다. 때는 로마왕국의 마지막 왕인 타르퀴니우스 수퍼르부스(Tarquinius Superbus)의 시대이다. 참고로 설명하자면 타르퀴니우스 수퍼르부스는 로마왕국의 마지막 왕으로 기원전 535년에 왕이 되어 509년 민중봉기가 일어나서 로마왕국이 막을 내릴 때까지 통치했던 인물이다. 그때 로마왕국은 영토를 넓히기 위해 주변의 지역들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었다. 마침 아르디아(Ardea)도 공성하고 있었다. 아르디아는 로마 남쪽 35km에 있는 도시로서 당시에는 루툴리(Rutuli) 지방의 수도였다. 아르디아는 지중해로부터 불과 4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어느날, 로마왕국의 젊은 지휘관들은 별로 할 일도 없어서 모여서 자기들의 부인들이 얼마나 정절이 높은지에 대하여 서로 자랑하고 있었다. 지휘관 중의 한 사람은 왕의 아들이었고 또 두세 사람은 왕의 사위였으며 루크레티아의 남편은 왕의 조카였다. 이들은 각자 자기의 부인이 가장 정절이 높아 오로지 남편 한 사람만을 생각하고 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논쟁이 끝이 보이지 않자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직접 로마로 가서 부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아 우열을 가리자고 결정하였다. 짐작컨대 이들은 누구의 부인이 가장 정숙한지를 놓고 내기를 했을 것이다. 로마의 귀족 장교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내기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밤이 늦었지만 이들은 잠시 부대를 떠나서 말을 타고 로마로 향하였다. 왕의 딸들의 집을 지켜보았더니 이들은 밤 늦게까지 사치스런 파티를 열며 즐기고 있었다. 전선에 나가 있는 남편들은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콜라티아(Collatia)에 있는 루시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의 부인인 루크레티아는 밤이 늦었지만 하녀들과 함께 양모를 짜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녀들에게 전선에 나가 있는 남편의 고생에 비하면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콜라티아는 로마 시내가 아니라 인근에 있는 마을이다. 루시우스 타르퀴니우스에게 콜라티누스라는 이름이 추가된 것은 콜라티아 마을의 출신이라는 뜻이다. 루크레티아의 남편과 동료 지휘관들은 ‘아, 과연 루크레티아는 다르다. 마음까지 아름답기가 이를데 없도다!’라고 감동하며 기왕 찾아온 김에 밤이 늦었지만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중에는 왕의 아들, 즉 왕자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Sextus Tarquinius)도 포함되어 있었다. 루크레티아는 갑자기 찾아온 남편과 섹스투스 왕자와 다른 지휘관들을 맞이하여 환영을 하고 이들을 정성껏 대접하였다.

  

브루투스와 동료들이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공회당에 가져가서 사람들에게 보이며 복수를 주장하고 있다. 보티첼리 작품

 

며칠후, 섹스투스는 은밀하게 루크레티아의 집을 방문하였다. 섹스투스는 지나가던 길에 들렸다고 말하고 하룻밤을 유숙하게 해 달라고 청탁했다. 루크레티아는 섹스투스가 왕의 아들이고 남편과 함께 군대의 지휘관이므로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극진히 식사를 대접하고 유할 방을 준비해 주었다. 그런데 밤중에 섹스투스가 갑자기 루크레티아의 방을 침범하여 강압적으로 범하려고 했다. 섹스투스는 루크레티아를 정복함으로서 루크레티아가 정숙치 못한 여인이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섹스투스는 자기가 왕의 아들인데 설마 루크레티아가 자기를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크레티아는 섹스투스의 생각지도 못했던 행동에 무척 놀라고 당황하여 목숨을 다하여 거부했다. 그러자 섹스투스는 만일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하녀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하녀들은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주인이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하녀들을 가족처럼 여겨주고 있던 루크레티아는 하녀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섹스투스에게 몸을 허락하였다.

 

섹스투스가 떠나자마자 루크레티아는 친정 아버지와 아드리아 전선에 나가있는 남편에게 사람을 보내어 급하게 불렀다. 집안에 중대한 일이 생겼으므로 속히 오기를 청한 것이다. 친정 아버지는 원로원의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와 함께 달려 왔다. 남편 루시우스 타르퀴니우스는 친척이 되는 루시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함께 달려 왔다. 루크레티아는 눈물을 흘리면서 섹스투스가 와서 자기를 협박하여 몸을 범하였음을 얘기했다. 그리고 방약무도하고 파렴치한 섹스투스에게 자기를 대신하여 복수를 해 달라고 간청했다. 사정을 듣고난 친정아버지와 남편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이 어이가 없었지만 협박에 못이겨 몸을 허락한 루크레티아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위로하였다. 그러나 루크레티아는 왕의 아들이라는 권력을 앞세워 약한 백성들을 위협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운 인간은 인간이라고 할수 없으므로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하며 자기는 명예를 잃었으므로 식구들을 볼 면목이 없으므로 죽음으로서 불명예를 씻겠다고 말하였다. 루크레티아는 그런 말을 마치자마자 단검을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루크레티아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사람들

 

 

이 비통한 모습을 본 브루투스는 루크레티아의 몸에서 피묻은 단검을 빼내어 복수를 다짐하였다. 브루투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타르퀴니우스 왕의 측근들까지도 모두 제거하겠다고 다짐했다. 루크레티아의 남편인 콜라티누스, 친정아버지인 루크레티우스, 동료인 발레리우스도 모두 복수를 다짐하였다. 이들은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메고 공회당으로 향하였다. 여기에서 이들은 피 끓는 연설로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타르퀴니우스 왕에 대한 반감을 조성하였다. 브루투스의 연설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로마로 행진키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브루투스와 콜라티누스는 아드레아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단을 동원하여 로마로 진격토록 했다. 이들이 로마에 도착하자 평소 타르퀴니우스의 전횡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이들의 대열에 참여하였다. 또 다시 브루투스는 타르퀴니우스 왕과 그의 아들 섹스투스의 학정에 대하여 봉기를 재촉하는 피 끓는 연설을 하였다. 더 많은 시민들이 합세하였다. 시민들은 왕을 쫓아내고 그의 가족들을 모두 몰아내자고 소리쳤다. 마침 지방에 나가있던 타르퀴니우스 왕은 브루투스 등에 의한 반란 소식을 듣자 곧 로마로 향하였다. 하지만 로마의 성문은 타르퀴니우스 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굳게 닫혀 있었다. 이어 반란군이 나와 타르퀴니우스 왕을 체포하였다. 타르퀴니우스 왕은 가족 몇 명과 함께 에트루리아(Etruria)의 캐레(Caere)라는 곳으로 유배되었다. 루크레티아를 능욕한 섹스투스는 그의 동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로써 로마왕국을 막을 내리고 시민에 의한 공화국이 발을 내딛게 되었다. 루크레티아의 죽음은 결국 로마왕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로마공화국의 막을 올리게 해주었다.

 

로마에 있는 브루투스와 루크레티아의 기념상. 브루투스가 루크레티아의 몸에서 단검을 빼어 들고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