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타노 도니제티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 스튜어드)
타이틀: Maria Stuarda (Mary Stewart: 메리 스튜어트). 16세기 스코틀랜드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비운의 삶을 그린 전2막의 서정적 비극(Tragedia lirico).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쉴러의 희곡을 주세페 바르다리(Giuseppe Bardari)가 오페라 대본으로 각색하였다.
초연: 1835년 밀라노 스칼라극장
주요배역: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여왕), 안나(한나 케네: 메리여왕의 시녀), 엘리사베타(엘리자베스: 영국여왕), 레이체스터(로버트 더들리: 레이체스터 영주), 탈보트(슈르스버리 영주), 세실(벌리경)
베스트 아리아: Da tutti abbandonata[우리 모두는 버려진 여인들](S+T), Deh! l'accogli...Morta al mondo, e morta al trono(Sextet), Un'altra colpa a piangere (S+T), Figlia impura di Bolena[앤 볼레인의 더렵혀진 딸](S), Ah! rimiro il bel sembiante[아, 다시 보는 아름다운 모습](T)
도니체티 페스티발에서 마리아 스투아르다
사전지식: 17-18세기에 영국을 통치했던 스튜어트왕조의 인물중에 헨리8세가 있다. 헨리8세는 6명의 왕비가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두 번째 왕비가 앤 볼레인(Ann Boleyn)이다. 앤왕비의 딸이 나중에 영국의 위대한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이다. 엘리자베스여왕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한때는 프랑스왕과 결혼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레이체스터경인 로버트 더들리를 사랑하여 결혼상대자로 생각하기도 했다. 레이체스터경 로버트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인 메리 스튜어트와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다. 메리 스튜어트는 반역죄로 영국여왕 엘리자베스에 의해 영국에 붙잡혀와 구금되었고 그후 엘리자베스의 질투심으로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Mary, Queen of Scots)과 블라디 메리(Bloody Mary)라고 불리는 영국여왕 메리를 혼돈하는 경우가 있다. 두 사람은 사촌간으로서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을 뿐이다. 마리아 스투아르다 역할은 벨칸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전형이다. 지금까지 나온 음반중 가장 완벽하게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는 에디타 그루베로바였다. 상대역인 엘리사베타는 아그네스 발차가 맡은 것이었다.
마리아 스투아르다에 조이스 디도나토
줄거리: 영국의 귀족들과 귀부인들이 프랑스 대사가 주선한 무술시합을 관람한후 웨스트민스터 궁전으로 돌아온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가 들어오자 귀족들과 귀부인들이 박수로서 환영한다. 엘리자베스는 프랑스왕이 청혼해 왔다고 하면서 자못 흥분된 모습이다. 여왕의 기분이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슈르스버리(Shrewsbury)경 탈보트(Talbot)가 여왕에게 반역죄 명목으로 훠더링게(Fotheringhay)성에 갇혀있는 메리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메리여왕을 제거해야 한다고 보고있는 벌리(Burleigh)경 세실(Cecil)과 일당들은 엘리자베스여왕에게 자비를 베풀면 절대로 안된다고 주장한다. 여왕은 최종 결정을 내릴 때까지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엘리자베스는 메리가 정치적으로 라이벌일 뿐만 아니라 레이체스터(Leichester)경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를 두고서도 서로 라이벌인 점을 생각하여 메리를 두려워한다.
마리아 스투아르다와 레이체스터. 메트로폴리탄
탈보트가 로버트(Robert)를 은밀히 만난다. 탈보트는 훠더링게성에 다녀왔다고 하면서 감금되어 있는 메리가 로버트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 한장과 증표로서 메리의 초상화가 들어있는 작은 펜단트 한 개를 전한다. 메리에 대한 레이체스터경 로버트의 사랑의 마음은 초상화를 보는 순간 되살아난다. 이러한 마음은 로버트가 부르는 Ah, rimiro il bel sembiante(아, 다시 보는 아름다운 모습)라는 아리아로 표현된다. 로버트는 메리가 엘리자베스를 섬기고 있는 자기를 아직도 신뢰하고 있는데 대하여 감동하여 힘이 닿는데 까지 사랑하는 메리를 돕겠다고 약속한다. 탈보트가 자리를 뜨자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자베스여왕이 나타난다. 엘리자베스여왕은 탈보트와 로버트가 분명히 메리에 대한 비밀 얘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하여 의심한다. 로버트는 처음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여왕의 집요한 질문에 신하로서 계속 속일수가 없어 메리가 편지를 보냈다고 밝힌다. 엘리자베스가 편지를 읽는다. 피를 나눈 사촌간인 것을 생각하여 제발 만나서 얘기를 나누자는 내용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로버트의 마음속에 아직도 메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고 매우 위협적이고 거친 소리로 메리를 만나겠다고 말한다.
마리아 스투아르다와 세실
메리가 훠더링게성에서 유모 안나(Anna)와 함께 옛날 프랑스에서 즐겁게 지내던 때를 회상하며 감상에 젖어있다. 메리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아리아는 콜로라투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다. 멀리서 왕실의 사냥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린다. 로버트가 나타나 사냥 나팔소리는 명분이며 실은 엘리자베스가 메리를 만나기 위해 오고 있다고 전한다. 로버트는 메리에게 제발 엘리자베스를 보면 그저 머리를 숙이고 순종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메리는 엘리자베스에 대한 감정이 북받쳐 로버트의 당부를 거절한다. 로버트는 메리를 위해 죽을 각오까지 되어있다고 하며 다시한번 간청하자 그제서야 메리는 로버트가 죽는다는데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엘리자베스가 도착하자 메리는 마지못해 엘리자베스 발아래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메리의 지난 일을 꾸짖으면서 자기의 안위만을 위해 로버트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로버트와 탈보트는 너무나 돌변한 상황에 대하여 두려움을 지나 공포심을 갖는다.
베로나 무대
제2막은 웨스트민스터 궁의 엘리자베스 거실이다. 엘리자베스는 비록 메리에게 심한 말을 했지만 메리를 사형에 처한다는 서류에 서명하는 것만은 주저하고 있다. 로버트가 들어와서 다시한번 여왕의 관대함을 보이라고 간청하자 엘리자베스의 결심은 돌연히 확실해 진다. 여왕은 즉시 사형장에 서명을 하고 로버트로 하여금 직접 처형장면을 지켜보도록 명령한다. 세실과 탈보트가 사형집행의 명령서를 가지고 훠더링게 성을 찾아온다. 메리에 대한 사형집행이 준비된다. 세실이 개신교 목사님을 불러 마지막 기도를 하자고 제안하자 메리는 자기의 종교(가톨릭)로서 마지막 의식을 치루겠다고하며 거절한다. 메리는 탈보트와 둘이서만 있게 되자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탈보트가 숨겨가지고 온 신부복으로 갈아입고 메리의 고해를 받는다. 메리가 처형장에 들어선다. 검은 옷에 왕관을 썼다. 메리는 가족들과 유모 안나에게 자기를 대신하여 기도문을 외우도록 한다. 세실이 들어오고 이어 탈보트가 들어온후 마지막으로 로버트가 들어온다. 로버트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있다. 메리는 로버트를 용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처형장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메리가 중얼거리듯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장면은 가장 깊은 감동을 준다. 메리는 고귀한 적막중에 죽음을 마지한다.
베르가모 극장
[역사 속의 메리 스튜어는 어떤 사람인가?]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마리아)는 1542년에 태어나서 1587년에 45세로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메리 스튜어트 또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로 알려진 그는 1548년부터 1567년까지 스코틀랜드의 군주였으며 1559년부터 1560년까지 1년 동안은 프랑스의 왕비였다. 메리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 국왕의 유일한 적자로서 여섯 살때에 부왕이 승하하자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메리는 어린 시절을 거의 모두 프랑스에서 지냈으며 스코틀랜드는 섭정이 다스렸다. 메리는 1558년, 16세 때에 프랑스의 왕세자와 결혼하였고 왕세자가 1559년에 프란시스 2세로서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프란시스 2세가 1년 후인 1560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왕비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미망인이 된 메리는 이듬해인 1561년에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4년후 메리는 사촌인 단리 경 헨리 스튜어트와 재혼하였다. 그러다가 1567년 2월에 메리의 저택이 반대파에 의한 폭탄으로 파괴되었고 남편인 단리는 정원에서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보스웰 경인 제임스 헵번이 단리의 죽음과 관계되었다고 믿어졌으나 증거가 부족했다. 보스웰 경은 무죄방면되었고 1567년 4월에는 메리와 결혼하였다. 두 사람을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났고 메리는 로흐 레븐성에 감금되었다. 1567년 7월, 한살 짜리 아들인 제임스에게 양위하도록 강요되었다. 제임스는 메리와 단리경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아들 제임스에게 양위한 메리는 그후 다시 왕좌를 차지하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역의 누명을 쓰게 되었다. 이에 메리는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찾아가 피난처를 구하였다. 앤 볼레인과 헨리 8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메리의 질녀가 되는 사이였다. 그런데 메리는 지난날 성공회가 아닌 가톨릭교회의 지지를 받아 자기야 말로 영국의 적법한 왕위 계승자라고 주장한바 있었다. 메리는 심지어 엘리자베스 1세를 왕좌에서 쫓아내려는 이른바 '북부의 봉기'(The Rising of the North)에 가담한 일도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의 존재를 위협으로 간주하여 메리를 가까이 두지 않고 영국에 있는 여러 성에 돌아가면서 감금하였다. 메리는 영국에서 엘리자베스에 의해 18년 이상이나 감금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엘리자베트 1세는 마침내 메리에게 자기를 암살하려 앴다는 죄목을 씌어서 처형하였다.
그림으로 남아 있는 마리아 스투아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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