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남몰래 읽는 366편

119. Janáĉek, Leoš (야나체크) [1854-1928]-운명

정준극 2007. 7. 4. 13:44

 레오시 야나체크

 

운명


타이틀: Osud (Fate). 전3막. 작곡자 자신과 훼도라 바르토소바(Fedora Bartosoca)가 공동으로 대본을 썼다.

초연: 1958년 오스트리아 브르노 국립극장. 야나체크가 세상 떠난지 꼭 30년후이다. 1904년 브르노라디오방송으로 첫 공연되기도 했다.

주요배역: 치브니(작곡가), 밀라 발코바(작곡가의 부인), 밀라의 어머니, 두베크(치브니와 밀라의 아들)

사전지식: 이 오페라는 야나체크의 생전에 공연되지 못했지만 오페라에 소개되는 여러 사건들은 50대에 이른 야나체크 자신이 경험한 삶과 비교하여 여러 가지 시사하는바가 크다. 야나체크는 50세 생일을 기점으로 상당한 정신적 위기를 겪어야 했다. 창작활동이 생각만큼 활발치 못하여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데에도 이유는 있었지만 가정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해에 야나체크는 21세의 딸 올가(Olga)을 잃었다. 야나체크는 자신의 번뇌에 대한 어떤 해답을 듣고자 작곡에 더 몰두하였다. 그러나 작품활동은 생각처럼 순탄치 못했다. 창작에 대한 의지가 박약해지기 시작했다. 야나체크는 딸 올가가 세상을 떠난지 6개월후 모처럼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모라비아의 유명한 온천 휴양지인 루하코비체(Luhačovice)에 갔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장래 뮤즈인 카밀라 우르발코바(Kamila Urvalkova)를 만났다. 그때 카밀라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하지만 당시 27세의 매력적인 여인 카밀라는 야나체크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후 그의 창작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카밀라는 원래 배우지망생이었다. 그러나 재산이 부유했기 때문에 굳이 배우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카르밀라는 음악을 사랑했다. 그래서 1890년대에 상당히 인기가 높았던 지휘자 겸 작곡가인 루드비크 셀란스키(Ludvik Celansky)와 결혼하려 했으나 이 역시 가족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첼란스키는 카밀라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어 1897년 프라하 국립극장의 무대에 올렸다. 오페라의 제목은 카밀라(Kamila)였다. 이 오페라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야나체크는 몇 년후 우연히도 온천장에서 카밀라를 만났던 것이다. 야나체크는 카밀라 우르발코바의 아름다움과 젊음에 매혹되어 카밀라를 만난 자기의 운명적 삶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이 오페라이다. 야나체크의 카밀라에 대한 애틋한 사모의 마음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야나체크가 가정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다른 길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러므로 오페라의 내용은 마치 실화와 같다.

 

야나체크가 가장 이상적인 여인으로 사모했던 카밀라 우르발코바(Kamila Urvalkova). 1903.

 

줄거리: 무대는 20세기가 시작되던 때의 모라비아이다. 유명한 온천 마을인 루하코비치의 아침이다. 온천장에 휴양차 온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 사교 모임의 주인공은 단연 밀라 발코바(Mila Valkhova: Kamila Urvalkohva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함)이다. 젊고 아름다우며 교양 있는 여인이다. 밀라의 말에는 폭넓은 교양과 함께 재치와 유머가 담겨 있다. 그래서 누구나 즐겁게 해준다. 작곡가 치브니(Zivny)가 우연히 이곳에 왔다가 밀라를 만난다. 치브니는 밀라의 옛사랑이다. 작곡가 치브니는 밀라의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의 결실로 아들까지 두게 되었다는 말이다. 잠시후 사람들이 모두 산책하러 나가고 방에는 밀라와 치브니만 남는다. 두 사람은 아직까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분명히 깨닫는다. 사실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하지 못한 것은 밀라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밀라의 어머니는 ‘작곡가 나부랭이가 감히 우리 귀한 딸을? 츳츳!’이라면서 치브니를 신뢰하지 않았다. 제2막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때이다. 이제 밀라와 치브니와 밀라의 아들 두베크(Doubek)가 함께 산다. 굳이 밀라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밀라가 두베크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직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란 아들에게 갑자기 치브니가 아버지라고 밝히면 충격을 받을 것같다는 생각도 지배적이었다. 밀라의 어머니는 사위 치브니가 계속 못마땅해서 죽을 지경이다. 밀라의 어머니는 작곡가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치브니의 능력을 의심하여 걸핏하면 비난을 퍼붓는다.

 

치브니는 옛사랑을 잊지 못한다. 뷔르츠부르크 무대


치브니는 장모인 밀라 어머니의 잔소리를 잊기 위해 오페라 작곡을 시작했다. 밀라는 오페라의 첫 부분을 보고 그 내용이 치브니와 자기가 그 옛날 연애하던 시절을 그린 것이므로 옛날을 회상하여 눈에 안개가 서린다. 밀라는 오페라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 한다. 자기의 꿈과 욕망이 성취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밀라는 남편에게 어서 오페라를 완성하라고 격려한다. 밀라의 어머니가 들어온다. 밀라의 어머니는 밀라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고 사위 치브니에게 밀라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심하게 비난한다. 치브니가 뭐라고 변명하려하자 밀라의 어머니는 갑자기 침을수 없었던지 순식간에 발코니로 달려가 아래로 뛰어 내려 죽으려한다. 놀란 밀라가 급히 어머니를 붙잡지만 끝까지 붙들지 못하고 함께 아래로 떨어져 결국 두 모녀가 함께 죽는다. 그때 치브니가 왜 달려가서 밀라의 어머니를 말리지 못했는지, 그리고 밀라를 구하지 못했는지는 누구도 그 속마음을 모른다.


음악원에서의 오페라 리허설. 오페라 노우스


제3막은 그로부터 또 11년이 지난 때이다. 더운 여름 날씨이다. 음악원의 강당에서 학생들이 치브니의 오페라 초연을 위한 리허설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음악에 담겨있는 애처로운 사연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장난처럼 연습하고 있다. 치브니가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자 학생들은 오페라의 배경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다. 치브니는 조용조용 오페라의 배경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동요하기 시작한다. 치브니는 오페라의 남자 주인공이 자기와 같은 인물이기 때문에 완전히 스토리 속으로 동화되어 이제는 자기가 작곡가인지, 오페라의 주인공인지, 또는 실생활의 치브니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것잡을수 없게 된다. 그러면서도 설명은 계속된다. 마침내 오페라의 여주인공이 죽자 학생들 틈에 있던 작곡가의 아들이 ‘이건 우리 어머니 얘기야! 아, 어머니!’라고 외치며 눈물을 흘린다. 오페라가 치브니의 실생활을 그린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음이 심히 혼란해진 작곡자는 그 자리에 더 있을수 없어서 자리를 뜬다. 오페라는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오페라의 여주인공이 죽자 치브니의 마음은 혼란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