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남몰래 읽는 366편

334. Wagner, Richard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 라인의 황금

정준극 2007. 7. 5. 11:36

리하르트 바그너

[링 사이클 (니벨룽의 반지)]


타이틀: Der Ring der Nibelungen (The Ring of the Nibelungs). 링 사이클에 포함되는 4작품을 모두 바그너가 대본을 썼다.

초연: ‘라인의 황금’이 1869년 뮌헨에서, 발퀴레가 그 다음해인 1879년 역시 뮌헨에서, 지그프리트는 1876년 바이로이트에서, ‘신들의 황혼’ 역시 같은 해에 바이로이트에서 초연되었다.

사전 지식: 바그너의 링 사이클(Ring Cycle)은 무궁한 파워를 지닌 니벨룽의 반지에 대한 네 가지 에피소드를 한데 묶은 것이다. 링 사이클 이야기를 읽다보면 왜 그런지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이란 영화가 연상된다. 링 사이클의 네 편의 오페라 스토리를 읽어 본 후 ‘반지의 제왕’과 어떤 내용이 흡사한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니벨룽의 반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버전에 따라 줄거리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 최근까지 가장 유리한 버전은 간단히 말하여 다음과 같다.


전설에 의하면 니벨룽은 독일 북부에 살았다는 소수 난장이 족속들을 말한다. 이 키작은 족속들은 막대한 황금보물을 모아놓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지키고 있었다. 그런 황금을 불을 뿜는 용인 파프너가 빼앗아 자기의 동굴에 숨겼다. 이후 니벨룽 사람들은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어 황금을 되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괴물 파프너를 물리칠수 없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황금보물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반지였다. 이 반지는 니벨룽들이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니벨룽의 반지라고 불렀다. 니벨룽의 반지를 차지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권세와 모든 황금을 갖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반지를 낀 사람은 저주받은 운명을 맞이하게도 된다는 것이다. 반지와 황금을 빼앗긴 니벨룽 족속들은 안개와 황혼의 존재들이 되어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런 때에 지그프리트가 등장한다. 어릴때 색슨족에게 부모를 잃고 대장장이의 손에 자란 지그프리트는 어느날 밤,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재료로 하여 자기가 직접 무적의 칼을 만들어 무서운 용을 물리치고 반지를 비롯한 모든 보물을 차지한다. 이때 아이슬란드의 여왕 브륀힐데와 지그프리트가 우연히 만나 운명적인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브륀힐데는 죽은 영웅들을 천상의 발할라로 안내하는 발퀴레들의 첫번째 여인이다. 그러나 지그프리트는 색슨왕인 군터와 그의 간악한 신하 알베리히의 간계에 빠져 죽임을 당한다. 지그프리트를 영원히 사랑하는 브륀힐데는 지그프리트의 죽음을 슬퍼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지그프리트는 바이킹 식으로 롱쉽(바이킹의 배: Long Ship)에서 화장된다. 롱쉽에는 지그프리트가 파프니아에게서 찾아온 황금 보물도 함께 실렸다. 그리하여 지그프리트가 끼고 있던 니벨룽의 반지와 황금 보물은 깊은 강에 가라앉게 된다. 독일 버전에서는 반지와 황금이 라인강에 가라앉았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라인의 황금’이 나오며 이 황금을 지키기 위해 라인의 처녀들(님프)이 등장한다. 이같은 얘기는 13세기 아이슬란드의 볼숭(Volsung)가문에서 적은 볼숭 사가(Volsung Sage)에 적혀있다. 사가(Saga)는 아이슬란드 전래의 영웅담을 말한다.

 

 브륀힐데 역의 요한나 가드스키(Johanna Gadski)


링 사이클이라는 오페라의 거대한 카후나(Kahuna)에 입문해 보도록 하자. 우선 링 사이클은 공연 시간에 있어서 기록적이다. 4편의 오페라를 모두 감상하려면 총 18시간이 걸린다. 거창한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링 사이클만의 위대한 특징이다. 아이슬랜드/노르웨이 신화와 상징주의에 기본을 둔 ‘링 사이클’은 기존 오페라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 초연으로부터 1백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아직까지 사람들의 논란의 대상의 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링 사이클이 얼마나 획기적인 작품인지 알수있다. 링 사이클을 애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증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악보의 한 파트 한 파트를 죽을 때 까지 분석하는 열성파도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를 더욱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사실은 그가 지독한 반유태주의자였다는 것, 상당히 부도덕한 인물로 평가 받았다는 것,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자였다는 것 등이다.


바그너는 링 사이클을 통상적인 방법으로 작곡하지 않았다. 일반 오페라에서는 아리아와 레시타티브 또는 대화 파트가 분리되는 것이 통상이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하나의 노래가 시작되는 부분과 또 다른 노래가 시작되는 부분을 분간하기 어렵다. 모두 연결되어있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뒤죽박죽이 되어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성악부분 보다도 오케스트라 부분이 강조되어있다. 오케스트라가 끊임없이 연주를 계속하는 가운데 성악가들은 자기 역할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흥미를 끌게 해주는 것은 ‘작은 멜로디’라고 할수 있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f)에 있다. 주인공에 따라, 또는 중심되는 스토리나 특별한 상황에 따라 적어도 150개의 각각 다른 작은 멜로디가 변화하면서 전개된다. 바그너의 링 사이클을 들으면서 라이트모티프가 어떻게 전개되고 변화되는지 분석해보는 일도 바그너 입문에 큰 보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단히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음악을 창조해 낸 바그너의 우수함과 기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링 사이클에는 지루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일부러 엿가락 늘이듯 길게 늘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바그너 시대를 들여다보면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오페라 공연이 보통 오후 적당한 시간에 시작된다. 막이 바뀔 때 무대 장치를 새로 꾸미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사람들은 그 중간 시간에 간단한 식사를 하던지, 회랑을 열을 지어 빙빙 돌던지, 또는 독일적인 쓸데없는 철학적 토론을 벌이기가 일수이다. 이렇듯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객석으로 다시 돌아오므로 지루한 것쯤은 충분히 견디어 낼수 있다.

에피소드: 바그너는 이 석기시대 스타일의 신화 이야기를 스위스 은거 중에 완성했다. 바그너는 독일에서 정치체제에 대한 혁신적인 반대 주장을 했기 때문에 당국으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지명되어 어쩔 수 없이 외국 도피 생활을 하지 않을수 없었기 때문에 스위스로 도피중이었다. 바그너는 노르웨이 신화에 기본을 둔 이 독일 신화를 읽고  오페라로 만들어야 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무엇보다도 스토리가 그의 구미에 완벽하게 맞았다. 우선 대본부터 착수했다. 대본을 완성해 놓고 여기에 음악을 입히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바그너는 4편의 링 사이클 작품의 대본을 역순으로 완성해 나갔다. 무슨 얘기냐 하면 원래 순서대로 보면 ‘라인의 황금’의 대본부터 쓰고 마지막으로 ‘신들의 황혼’을 써야 하는데 거꾸로 ‘신들의 황혼’ 대본부터 쓴 것이다.

 


처음에 바그너는 아마 ‘신들의 황혼’의 대본을  완성하고 난후 생각해 보니 스토리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그 이전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그프리트를 썼고 다시 발퀴레를 썼으며 기왕 손을 댄 김에 서막이라고 할수 있는 ‘라인의 황금’까지 완성한 것이다. 대본은 역순으로 완성했지만 음악은 원래 순서대로 완성했다. 바그너는 대본과 음악을 완전히 구상한 후에 작곡에 들어갔다. 대본에서부터 음악의 완성까지에는 무려 27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물론 그 기간 중 두 편의 다른 오페라를 작곡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작품의 완성 시간 면에 있어서는 세계적 기록을 세운 셈이다. 당일치기 전문가인 로시니나 도니제티가 알면 놀랄 일이었다.


에피소드: 링 사이클에서 생존하기

오페라를 보러 간다는 것은 보통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바그너의 링 사이클을 보러 간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전 4편을 모두 본다면 더구나 그렇다. 도합 18시간이 걸리는 공연이다. 한 작품에 평균 4시간이 넘는 대공연이다. 우리의 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북구의 신화가 스토리이다. 그리스 신화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들은풍월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한 북구신화가 스토리이다. 이 스토리를 위대한 아리안 민족이라고 자칭하는 독일인들의 신화로 만들었다. 신화라는 것은 실생활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선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푸치니의 베리스모 오페라라면 마치 우리들의 얘기 같아서 이해하기가 쉽다. 관중들로서는 바그너의 오페라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괴로움이 있지만 정작 공연당사자들로서도 괴로움이 많기는 마찬가지이다. 우선 수많은 바그너 오페라 성악가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성악가들이 준비되었다고 해도 무대 장치와 소도구(실은 대도구)에서도 어려운 점이 많다. 링 사이클에는 여자가 바이킹이나 고구려 군인들처럼 뿔달린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를 들며 가슴받이가 당당하게 보이는 갑옷을 입고 등장한다. 그러한 의상 및 소도구는 무게가 상당히 나간다. 그러므로 연약한 여성 출연자로서 무거운 갑옷과 창과 방패를 들고 무대 위의 이곳저곳을 왕래하며 노래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 아닐수 없다. 신들의 황혼이나 지그프리트의 무대에서는 말도 등장한다. 브륀힐데가 탄 말이 무대를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은 과연 장관이다. 발키리라고 하는 토탈 9명의 여신들이 모두 말을 타고 나오는 대장관의 장면도 구상할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오페라 무대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튼 바그너의 링 사이클은 스토리도 이해하기 어렵고 무대 연출도 어려우며 음악마저 어렵다. 베르디나 푸치니의 오페라에서처럼 감동적인 아리아를 기대한다면 곤란하다. 그래도 역시 링 사이클이다. 그만한 작품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브리히와 보탄(브린 터플)


바그너의 링 사이클을 본다는 것은 일생의 기회이다. 전4편의 연속공연 이벤트는 세계적으로 1년에 겨우 한번 있을까 말까이기 때문이다. 링 사이클을 그나마 충분히 이해하려면 전4편을 연속으로 관람해야 한다. 그러나 극장측으로서는 전4편을 연속으로 무대에 올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선 바그너리안 싱어(Wagnerian Singer)라고 하는 바그너오페라 전담 성악가를 구하기가 어렵다. 바그너리안 소프라노들은 몇시간을 그 무거운 갑옷과 창과 방패를 든채, 또는 말을 타고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 요즘의 소프라노, 테너들은 햄버거만 먹어서인지 옛날 영웅 소프라노나 영웅 테너에 비하여 체력이 떨어진다. 때문에 바그너의 공연에 기여할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적어지고 있다. 공연 시간이 긴 것도 문제이다. 극장 측으로서는 경제적이 아니기 때문에 무대에 올리는 것을 주저한다. 링 사이클의 경우에는 입장료를 조금 더 받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두시간 짜리 푸치니의 오페라를 공연하면 수입이 더 많을 것이라는 계산을 할것이다. 얼마나 많은 관객이 오느냐는 것도 문제이다. 세상이 달라져서 오페라 애호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1주일에 걸쳐 링 사이클 전편을 공연하는 무대가 있다면 일생일대의 일이므로 만사 제쳐 놓고 가 볼 일이다. 바그너 오페라 팬으로서 후회가 없을 것이다. 다만,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염두에 둔다면 링 사이클 관람에 상당히 유익할 것이다. 


☑ 보기 전에 볼일부터 보자. 어떤 오페라의 제1막은 유난히 길다. ‘라인의 황금’은 중간 휴식시간(인터미션)조차 없다. 그러므로 시작 전에 화장실부터 갔다 오는 것이 좋다. 설사기운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곤란하므로 치료후에 와야 할 것이다.


☑ 정장을 입지 말라. 평상복을 입고 왔다고 해서 무어라고 할 사람은 오페라 상류층 아니라 무슨 층이라고 해도 없다. 링 사이클을 보려면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진 기분으로 몇 시간을 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팔다리가 쑤실지도 모른다. 편한 옷을 입고 편한 신발을 신는 것이 제일이다. 몸이 피곤하거나 눈이 아프다든지 하면 가지 말것을 권고한다.


☑ 먹을 것을 준비하라. 다른 일반 오페라는 공연이 끝난후 저녁을 먹어도 큰 탈이 아니다. 하지만 링 사이클은 다르다. 보통 오후 5시나 6시에 시작해서 자정이 다 되어서야 겨우 끝난다. 금식기도하는 중이라면 몰라도 배고파서 견디기가 힘들 것이다. 중간 휴식 시간에 매점에 가면 샴페인, 샌드위치, 케익등을 사먹을 수 있다. 하지만 서민에게는 너무 비싼 가격이므로 차라리 굶는 편이 마음 편하다. 따라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슬쩍 준비해 오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휴식 시간에 로비 한 구석에서 샌드위치를 꼭꼭 씹어 먹고 있다고 해서 무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혼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음악이 완전히 끝나면 박수를 쳐라. 막이 내려 질때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완전히 끝났을 때 박수를 쳐야 바람직하다. 박수치는 타이밍을 잡기 어려우면 가만히 있다가 남들이 박수를 칠 때에 따라서 치면 된다. 함부로 시도 때도 없이 박수를 친다면 정신병원에서 데리러 올지도 모른다.


☑ 초보가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라. 아무리 링 사이클을 여러 번 보고 많이 공부한 사람이라고 해도 다른 바그너 팬과의 대화에서 좀 아는체 하는 것은 큰코 다칠 일일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바그너의 링 사이클에 온 사람이라고 하면 나름대로 전문가들이다. 세상에는 자기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아는 사람들이 항상 많은 법이다. 처음으로 링 사이클을 경험하는 경우에는 옆의 사람이 어떤 비평의 말을 하더라도 그저 미소로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옆 자리의 사람은 아마 당신보다 서너번이나 더 보았을지도 모른다. 간혹 ‘암요! 그렇지요!’ 또는 ‘글쎄요, 그럴까요?’ 정도만 언급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이 대단한 ‘바그너광’ 인줄 알고서 제 풀에 논쟁을 중단할 것이다.

 

 발할라를 건설한 두명의 거인에게 둘러싸인 프라이아

             

[1. 라인의 황금]


타이틀: Das Rheingold (The Rhine Gold). 전4편으로 된 ‘니벨룽의 반지’의 프롤로그

초연: 1869년 뮌헨 왕립국립극장

주요배역: 보탄왕(하늘과 땅의 지배자), 프리카(보탄의 부인: 결혼축복의 여신), 프라이아(프레이아: 프리카의 여동생: 청춘의 여신), 돈너(프라키의 남동생: 천둥의 신), 프로(프리카의 또 다른 남동생), 에르다(운명의 여신), 로게(반신반인의 불의 신), 파솔트(거인), 파프너(거인의 동생), 알베리히(니벨룽), 미메(알브리히의 동생), 보글리데(라인의 처녀), 벨군데(라인의 처녀), 플로쓰힐데(라인의 처녀)

음악 하이라이트: 라인강 모티프, 물결 모티프, 라인처녀들의 노래, 라인황금 모티프, 황금 사과 모티프, 천둥 모티프, 무지개 모티프, 반지 모티프, 발할라 모티프, 니벨룽 모티프, 에르다 모티프, 화염 모티프, 칼 모티프(Nothung)

베스트 아리아: Abendlich strahlt der Sonne Auge[황혼에 태양의 눈이 빛나리](T), Weiche, Wotan, Weiche[양보하라, 보탄, 양보하라](MS)

 

미메

                        

줄거리: 라인강의 물속에서 '라인의 처녀들'이라고 불리는 세 명의 물의 요정(님프)들이 즐겁게 놀면서 ‘베이아! 봐가!’(Weia! Waga!)라는 노래를 부른다. ‘무슨 님프들이 저런 어색한 표현의 노래를 부르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를 들어 미국 노래에서도 끝 부분에 ‘두다, 두다’ (Doo-dah, doo-dah)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볼 때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들 세명의 라인의 처녀들은 보글린데(Woglinde), 벨군데(Wellgunde), 플로쓰힐데(Flosshilde)이다. 모두 항열자가 데(de)자로 끝난다. 님프들의 즐거운 시간은 못생기고 늙었으며 게다가 난쟁이인 알베리히(Alberich)의 등장으로 중단된다. 알베리히는 니벨룽(Nibelung) 족속의 일원이다. 원래 이 난쟁이들은 땅의 신령으로서 땅속의 보물을 지킨다는 전설이 있지만 늙고 쭈글쭈글한 알베리히가 보물을 지키고 있다는 바로 그 니벨룽 난쟁이들 중의 하나인지 아닌지는 정확한 설명이 없다. 아무튼 그런 주제에 꼴에 남자라고 님프들과 섹스를 하고 싶어 한다. 수영으로 다진 늘씬한 몸짱들인 님프들은 웃기지 말라고 하면서 거절한다. 바그너의 링 사이클이 섹스 얘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이상하겠지만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계속 이상한 남녀 관계가 나오기 때문이다. 장면은 바뀌어 해가 지고 있다. 찬란한 황혼의 햇빛이 라인 강위에 머문다. 그 빛이 늙은 난쟁이 알베리히의 눈동자에 반사되어 강속에 있는 찬란한 황금을 발견하게 한다. 님프들은 ‘라인의 황금, 라인의 황금’이라는 단순한 두 음정의 노래를 부르면서 왜 자기들이 그 황금을 지키고 있는지 설명해 준다. (잠깐! 님프의 노래를 들으면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가 어떤 것인지 약간의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님프들은 그 황금을 녹여 반지를 만들어 끼면 무한한 권력과 능력을 가질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그 반지를 끼고 있으면 영원히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님프들은 ‘세상에 어떤 바보가 권력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겠느냐?’면서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므로 걱정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계속 춤추며 뛰놀기만 한다. 그러나 늙은 난쟁이 알베리히는 ‘난 사랑이란 것이 뭐 말라 죽은 것인지 모른다. 사랑이 밥 먹여 주나? 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라면서 황금을 훔친다. 님프들이 황금을 되찾으려고 알베리히를 뒤쫓아 간다. 오케스트라는 님프들의 추격을 기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난쟁이 알베리히를 잡지 못한다.

 

거인들과 함께

                          

장면이 바뀌어 여기는 독일어로 발할라(Valhalla: 북구신화에서는 Valhall)라고 부르는 올림퍼스 산이다. 원래 북구에서는 발할라를 영웅들의 영혼이 영원히 쉬는 곳, 말하자면 낙원이라고 말한다. 발할라의 최고 대장은 보탄(Wotan)이다. 보탄은 발할라에 거주하는 신들의 신이다. 로마식으로 보면 제우스이다. 아무튼 보탄왕이라고 부르는 애꾸눈을 비롯하여 여러 신들이 막 잠에서 깨어난다. 왜 보탄왕이 애꾸눈인가를 알려면 앞으로 15시간이 지나면 된다. 보탄왕의 궁전은 숨이 막힐 정도로 기가 막히게 멋있고 화려하다. 두 명의 거인들이 이 궁전을 건설했다. 보탄왕은 건설비 대신에 청춘과 사랑의 여신 프라이아(Freia)를 이들에게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이 장면에서 바그너 팬들은 아마 ‘바그너! 왜 그러는가? 역시 여기서도 여성을 물건 취급을 하니 말이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아무튼 이윽고 두 명의 거인은 보탄왕의 궁전 문 앞에서 어서 예쁜 프라이아여신을 내 놓으라고 조른다. 보탄왕은 그 약속을 깜빡하고 있었다. 프라이아가 갖고 있는 사과는 신들이 영원한 젊음을 유지할수 있도록 해주는 신비의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들은 사과를 먹기 위해 프라이에게 잘 보여야 하는 입장이다. 프라이아가 없으면 애플도 없다. 그런 프라이아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생각은 원래부터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것이었다.

 

'라인의 처녀들'

                            

보탄왕은 잔꾀가 많은 반인반신의 불의 신 로게(Loge)에게 지상으로 내려가 프라이아 대신 거인들에게 줄 마땅한 물건이 있는지를 찾아보라고 지시한다. 로게는 늙은 난쟁이 알베리히가 갖고 있는 황금의 반지라면 괜찮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알베리히는 그 황금의 반지를 이용하여 막대한 부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런 반지이기 때문에 보탄왕이 거인들에게 공사대금으로 반지를 받으면 무한정으로 세계를 지배할수 있는 권력을 손에 쥘수 있다고 말하자 솔깃해 한다. 하지만 거인들도 완전 바보들은 아니다. 보탄왕이 그 반지를 찾아 줄때까지 프라이아를 인질로 잡고 있겠다고 주장한다. 보탄왕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보탄왕과 로게는 반지를 찾기 위해 알베리히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살핀다. 알베리히는 지하의 유황 동굴에서 절대 권력을 쥐고 다른 모든 난쟁이들, 즉 니벨룽(Nibelung)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재산을 축적하고 있다. 여기에서 비로소 니벨룽이란 단어가 무슨 뜻이지 알려진다. 지하 동굴에 살고 있는 난쟁이들을 말한다. 알베리히는 마법의 투구까지 쓰고 있다. 이 투구를 쓰고 있으면 어떤 동물로든지 변할수 있으며 심지어 투명인간까지 될 수 있다. 꾀가 많은 로게가 알베리히를 만나 ‘존경하옵는 알베리히님이시여! 당신은 무슨 동물로든지 변할수 있다고 하니 한번 시범을 보여 주시변 더욱 존경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투구의 마법을 믿을수 없사옵니다.’라고 말한다. 자만심에 빠진 알베리히는 처음엔 용으로 변했다가 다음엔 두꺼비로 변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보탄왕이 두꺼비를 잡아 당장 잡아 먹겠다고 협박하여 반지와 투구를 내놓게 한다. 보탄왕은 그 동안 알베리하가 축적한 금덩이들도 모두 가져간다. 알베리히는 죽을 지경으로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수 없게 되자 ‘에라! 못 먹는 떡에 뭐나 뿌리자!’라는 심정으로 자기의 온갖 능력을 다 하여 반지에게 저주를 불어 넣는다. 반지를 지니는 사람은 모두 망하라는 저주이다.

 

라인의 처녀들. 메트로폴리탄 무대
                            

이로써 보탄왕은 거인들에게 궁전 건설비 대가로 반지를 주고 인질 상태인 프라이아를 데려 올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왕이 달리 왕인가? 보탄왕은 반지가 욕심이 나서 거인들에게 주지 않으려는 생각이다. 이런 상황을 전해들은 땅의 여신 에르다(Erda)는 한때 낭군이었던 보탄을 생각하여서 반지를 가지고 있으면 재앙이 오므로 어서 거인들에게 주라고 권면한다. 보탄왕은 마지못해 권력의 반지를 거인들에게 준다. 반지의 저주는 즉각 효력을 발생하여 거인 형제는 누가 반지를 차지하느냐를 놓고 서로 싸우다가 그 중 하나가 죽는다. 살아남은 거인은 자기의 행동을 후회하며 멀리 사라진다. 거인이 사라지자 발할라(올림퍼스)에는 오랜만에 찬란한 햇살과 함께 평온함이 감돈다. 보탄왕과 그의 부인들이 그때야 비로소 안심하고 새로 지은 궁전으로 들어간다. 한편, 라인의 처녀들(님프)은 자기들이 라인의 황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계속 슬피 울고 있다. 보탄왕은 이들 라인의 처녀들에게 위엄있는 목소리를 이제 그만 울라고 말한다. 여기까지가 ‘라인의 황금’의 스토리이다.

 

이런 연출도 있다. 알브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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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 사이클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편을 차분하게 음반(CD)으로 감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종류의 CD가 나와 있지만 1980년대 초, 데카(Decca)가 게오르그 솔티경의 지휘로 내놓은 것이 가장 탁월하다는 평이다. 레코딩에 참가한 성악가들도 최정상급이었다. 각 파트에 누가 참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 역시 좋은 참고가 될것이다.


[라인의 황금 CD 레코딩]

Wotan: 죠지 런던(George London)

Fricka: 키르스텐 플라그스타드(Kirsten Flagstad)

Freia: 클레어 왓슨(Claire Watson)

Woglinde(라인의 처녀): 루치아 폽(Lucia Popp)

Wellgunde(라인의 처녀): 귀네스 존스(Gwyneth Jones)

Flosshilde(라인의 처녀): 모린 기(Maureen Guy)

 

 보탄(브린 터플)과 프리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