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식당, 카페, 커피

비엔나와 멜란즈

정준극 2007. 4. 11. 14:45

 [비엔나와 멜란즈]

 비엔나에서 비엔나 커피를 주문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비엔나의 전통 커피하우스

 

비엔나의 맛과 멋을 대표하는 것중의 하나가 커피이다. 커피중에서도 쉽게 마실수 있는 것이 멜란즈이다. 프랑스어인 멜란즈(Melange)는 혼합하다는 뜻이다. 비엔나 사람들은 멜랑게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그러나 프랑스 원어대로 멜랑즈라고 발음한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엔나의 멜란즈는 뜨거운 커피에 휘핑 크림(Whipping cream)과 설탕을 넣은 것이다. 거품은 화려하고 설탕은 감미롭다. 비엔나의 기질과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커피이다. 비엔나는 오래전부터 이민자들의 도시였다. 비엔나의 모든 조건이 외국으로부터 사람들을 모여들게 만들었다. 원래 합스부르크가 거느린 신성로마제국은 여러 나라로 구성된 다국적 제국이었다. 전성기의 합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하여 헝가리, 체코, 폴란드, 이탈리아 북부, 유고슬라비아 등의 일부 지역, 그리고 독일의 일부까지도 영토로 하였다. 이들 지역의 사람들이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로 일자리나 공부, 또는 경력을 위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엔나는 일자리, 교육, 사교, 그리고 음악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인 장소였다

 

멜란즈

                        

16-17세기의 바로크 시대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몰려왔었다. 비엔나의 음악, 조각, 건축, 회화, 그리고 말할 나위도 없이 종교(로마 가톨릭)는 모두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19세기에는 주로 동구의 사람들이 비엔나로 일자리를 찾아왔다. 특히 오늘날의 체코공화국, 즉 보헤미아 왕국에서 많이왔다. 이른바 보헤미안들이었다. 이들은 일에 대한 전문적인 경험이 없어서 저임금을 받고도 일자리만 있으면 비엔나에서 살았다. 이들은 주로 벽돌공장에서 일했다. 이들을 치겔뵘(Ziegelböhm)이라고 불렀다. 치겔(Ziegel)은 벽돌이란 뜻이며 뵘(Böhm)은 보헤미아 사람들을 말한다. 헝가리에서 온사람들은 주로 요리사로 일했다. 귀족집의 요리사와 유명식당의 주방장은 대체로 헝가리 사람들이었다. 오스트로-헝가리제국의 동북쪽 변방인 부코비나(Bukowina)에서 온 여자들은 대부분 부유한 집의 하녀로 일했다. 이처럼 비엔나는 인종과 문화가 혼합된 도시였다. 물론, 세기말에 이르러 이들이 비엔나의 경제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요즘은 어떠한가? 밤중에 도로공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중동사람들이다. 거리에서 신문과 잡지를 파는 사람들도 거의 모두 중동 출신이다. 비엔나에는 아시아에서 온 음악유학생들이 콩나물처럼 많다. 비엔나는 로마 보다도 한국식당이 많은 곳이 되었다.

 

아인슈패너 

 

비엔나는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체코인과 유태인의 도시였다. 비엔나는 파리 다음으로 유태인이 많이 사는 도시이다.  비엔나는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유태인이 많이 사는 도시였고 지금도 많이 살고 있다. 어째서 유태인들이 많은 것인가? 비엔나는 중세 이후로부터 성문을 개방하여 누구나 비엔나에 와서 살도록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국과 스페인, 그리고 심지어는 동구의 나라들로부터 천대를 받았던 유태인들은 자유가 보장된 비엔나로 몰려와서 살게 되었다. 특히 동서교통의 요지로서 상업이 발달했고 또한학문과 예술이 발달했던 비엔나야 말로 유태인들의 취향과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핍박받는 도시에서 생존하려면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뛰어난 학자 또는 예술가가 되어무시당하지 않도록 되어야 했다. 어쟀든 비엔나의 여러 곳이 유태인과 관계가 있다. 중세로부터의 유태인 게토와 관련이 있는 거리도 아직 남아있다. 유덴플라츠(Judenplatz)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곳에 살던 유태인들은 한때 추방을 당하여 상당수가 지금의 2구 레오폴드슈타트(Leopoldstadt)로 이전하였으나 2차대전이 끝나자 다시 옛동네로 옮겨와 살기 시작했다. 자이텐슈테텐가쎄(Seitenstettengasse)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유태인들이 사는 지역을 마쩨스의 섬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이름으로 불렀다. 마쩨스는 유태인들이 유월절에 먹는 누룩넣지 않은 무교병(無酵餠)을 말한다. 유태인들은 주로 장사를 하거나 금융업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술계에서 활동했다.

 


브라우너

 

체코사람들은 지금의 10구인 화보리텐(Favoriten)에 몰려 살았다. 처음에는 노이바우와 같은 지역에서 많이 살았으나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벽돌공장들이 화보리텐 지역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 19세기에 비엔나의 시가지를 링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건물들을 지을 때에 비엔나의 벽돌공들은 거의 모두 체코사람들이었다. 체코 사람들은 비엔나에 온 '손님 노동자'들의 대표였다. 이 손님노동자들 때문에 비엔나의 생활습관과 언어풍습이 변화되기도 했다. 예컨대 체코사람들이란 단어를 동사로 만든 체커른(tschechern)은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신다'는 뜻의 단어가 되었다. 체커를(Tschecherl)이라는 새로운 단어는 고주망태와는 관련이 없이 '작은 찻집'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체코인들은 고향으로부터 아주 맛있는 음식을 비엔나로 가져왔다. 크뇌들(Knoedel)이라는 음식이다. 감자나 고기 따위로 동그랗게 만든 경단인데 솜씨에 따라 크기와 맛이 달랐다. 독일에서는 주로 감자로 만든 주먹만한 크뇌들을 먹는데 체코에서는 계란을 넉넉하게 넣어 만든 밤톨만한 크기의 크뇌들이 유명하다.

 

카페 알트 빈 내부 

                             

이처럼 각종 민족의 혼합은 비엔나의 경제, 학문,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뿐아니라 비엔나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비엔나 특유의 방언(사투리)에는 독일어와 히브리어의 혼합언어인 이디쉬, 체코어, 헝가리어, 이탈리아어가 많이 가미되어있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상류사회를 통한 프랑스어도 한몫하였다. 음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비엔나의 음식은 보헤미나의 디저트, 헝가리의 굴라쉬,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젤라토), 세르비아의 쌀고기다짐등 다뉴브왕국들의 풍미를 복합적으로 지니게 되었다. 비엔나의 대표적 명물인 비너슈니첼(Wiener Schinitzel: 슈니첼은 얇게 저민 커트레트를 말함)도 오리지널 비엔나 스타일이 아니다. 원래 비잔틴에서 유래했으며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유행하던 것을 라데츠키 장군이 비엔나로 개선할 때에 데려온 밀라노 출신의 어떤 요리사가 마리아 테레제 궁정에 소개했다는 것이다. 비엔나의 전통적인 음식점을 바이즐(Beisl)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그리헨바이즐이다. 일반적으로 바이즐은 슈니첼로 유명하다. 그러나 바이즐이란 단어도 실은 히브리어로 집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굴라쉬, 또는 구야쉬는 헝가리의 넓은 초원에서목동들이 주로 먹는 매운 맛의 음식으로 원래는 방랑자, 목동이란 뜻이다.

 

비엔나의 명물 비너슈니첼

 


비엔나의 또다른 명물인 커피하우스도(카페) 비엔나 출신이 아니다. 비엔나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생긴 것은 1683년이다. 터키군대의 비엔나 포위 당시 게오르그 프란츠 콜쉬츠키(Georg Franz Kolschitzky: 또는 쿨치키)라는 사람이 터키진영에 잠입하여 유리한 정보를 스파이해 온 보상으로 왕으로부터 커피하우스를 개업할 권리를 얻은 것이 유래였다. 그는 군사령관이 무엇을 보상받고 싶은지 말하라고 하자 터키군이 퇴각할 때 남기고 간 자루에 커피원두가 들어 있음을 보고 그 커피자루를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엔나 사람들은 커피가 무엇인지 몰랐었다. 쿨치키는 슈테판성당 뒤편의 골목길에(돔가쎄) 비엔나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문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비엔나에 커피가 전파되었고 이후 비엔나 사람들이 기호품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얘기는 소문에 불과하다. 실은 1685년에 아르메니아 출신의 요한네스 데오다토(Johannes Deodato)라는 사람이 비엔나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열어 만남의 장소로 제공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커피하우스는 비엔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만일 비엔나에 커피하우스가 없었다면 정치인들이 정책을 기획하거나 문인, 예술가들이 창작 아이디어를 가질수 없었다는 얘기이다. 멜란즈는 비엔나의 혼합된 인종과 문화, 예술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최근에 비엔나 커피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는 멜란즈(Melange)는 원래 프랑스어이지만 정작 프랑스의 카페에서는 멜란즈를 찾아보기 힘들고 오로지 비엔나에서만 가능하다.

 

세기말의 비엔나 커피하우스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