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2일 투어

1. 도이체 하우스 (Das Deutsche Haus)

정준극 2007. 4. 11. 14:50

 도이체 하우스 (Das Deutsche Haus) - Deutschordenshaus und Deutschordenskirche

                 

모차르트는 독일기사단 건물에서 1781년 3월 16일부터 5월 2일까지 살았다. 그것을 기념하는 명판이 붙어 있다.

 

슈테판성당의 뒤편, 치통의 그리스도상 바로 길건너편 징거슈트라쎄로 들어가면 7번지에 도이체 하우스가 있다. 글자그대로 번역하면 독일 집이다. 그렇지만 독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중세 십자군 시대에 북유럽으로부터 온 어떤 신앙심 깊은 기사의 얘기로부터 도이체 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마 사람들은 이 기사가 독일에서 온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 기사는 십자군 전쟁중에 설립된 병원수도회(Order of Hospitalers: 부상당한 병사들이나 순례자를 돌보아주기 위한 모임)의 멤버였다. 1205년 교회는 이 건물을 병원수도회에 기증하였다. 건물은 환자 치료를 위한 병실을 비롯하여 병원수도회회원들의 숙소, 마구간, 사무실, 부속 예배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일기사단교회 건물. 징거슈트라쎄 7번지


건물의 오른쪽에 이 건물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다. 슈테판스플라츠 4번지이다. 간혹 이 문은 닫혀 있다. 그럴 경우에는 징거슈트라쎄 7번지를 통하여 건물의 안뜰로 들어갈수 있다. 안뜰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아치로 되어 있는 낭하가 있다. 낭하를 지나면 또 하나의 작은 정원으로 들어갈수 있다. 낭하의 벽면에는 수많은 음악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모차르트협회의 회원들이거나 모차르트메달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이다. 실상 이 집은 모차르트와 관계가 깊다. 모차르트는 이 집에서 1781 3 16일부터 5 2일까지 기거했었다. 그 때 모차르트는 대주교인 콜로레도(Colloredo)백작에게 봉사하고 있었다. 실상 이 집은 콜로레도대주교의 소유였다.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인 콜로레도 백작은 비엔나에 여러 수행원들과 함께 왔다. 그 중에는 모차르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주교는 모차르트를 다른 시종이나 하인들과 함께 이 집의 한 구석에서 지내도록 했다. 아무리 뛰어난 음악가라고 해도 하인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모차르트도 어쩔수 없이 이곳에서 하인들과 함께 지낼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대주교는 비록 25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이지만 그런대로 대단한 명성을 얻고 있던 모차르트를 무례할 정도로 마구 대했던 것이다. 참을수 없었던 모차르트는 자기를 하인처럼 대하는 대주교와 한바탕 다툰후 대주교에게 봉사하는 것을 집어치우고 떠났다.

 

독일기사단 보물전시실. 1683년 터키의 제2차 비엔나공성때에 독일기사단이 사용했던 갑옷과 무기들

 

매력적인 안뜰에는 뜻밖에도 성캐서린 기념상이 있어서 찾는 이를 반겨준다. 알렉산드리아의 캐서린이다. 안뜰에 면한 건물의 벽에는 장엄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모차르트를 해고한 콜로레도대주교에 명에 의해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안뜰을 나서기 전에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라. 놀랍게도 슈테판성당의 높은 첨탑이 신기할 정도로 눈 앞에서 가까이 보인다. 혼잡하기 이를데 없는 슈테판성당 주변에 이렇듯 한적한 곳이 있다는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다른 쪽에 있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으로 통한다. 현관 왼쪽 벽에는 모차르트가 이 집에 잠시 살았었다는 명판이 붙어있다. 그 옆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튜톤(게르만)종단(Teutonic Order)의 유물실로 갈수 있다. 볼만한 곳이다. 튜톤종단은 비교적 부유한 모임이었다. 튜톤종단의 회원은 평생동안 자선, 금욕(독신), 그리고 빈곤한 생활을 맹세해야 했다. 그런데 회원들은 대개 부유한 귀족 출신들이었으므로 튜톤종단에 서약한 후 세상적인 재산을 헌신짝처럼 보아야하기 때문에 자기들의 재산을 종단에 헌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종단이 이들의 재산을 흡수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튜톤종단은 상당한 재산을 보유할수 있었다.

 

안뜰에 있는 성캐서린 기념상 

 

큰 출입문 왼쪽으로 채플이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채플이다. 천정은 고틱양식으로 높이 치솟아 있다. 채플의 양 벽면에는 과거 이곳을 지나쳤던 기사들의 문장(紋章)이 찬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제단의 성화조각은 저 말리 말리네스(Malines: 지금은 벨기에 영토)로부터 가져온 아름다운 목재로 만들었다. 한때 말리네스가 합스부르크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제단이다. 제단 성화는 성가족의 모습이다. 아마 이집트로 피난을 가면서 잠시 쉬는 장면을 그린것 같다. 제단 부근에는 여러 개의 대리석관들이 있다. 이 대리석관들을 보면 관속에 안치되어 있는 사람들이 빈곤을 모토로 삼고 있는 튜톤종단과는 거리가 먼것처럼 생각된다. 생각외로 화려한 석관들이기 때문이다. 튜톤(게르만)기사들은 백색의 유니폼에 검은 장화, 검은색 십자가를 그려 넣은 하얀 만토를 걸치고 다녔다. 그런 기사들에 대한 상상은 잠시 접어두고 문밖으로 나오면 징거슈트라쎄가 마중한다.

 

독일기사단 교회 중앙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