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2일 투어

2. 징거슈트라쎄 (Singerstrasse)

정준극 2007. 4. 11. 14:51

징거슈트라쎄 (Singerstrasse)


징거슈트라쎄는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중의 하나이다. 징거슈트라쎄에 대한 기록이 일찍이 1314년부터 있었던 것을 보면 알수있다. 당시에는 주닝거슈트라쎄(Suningerstrasse)라는 명칭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이 거리에 독일 바바리아 지방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인근의 쥔힝(Sűnching)으로부터 온 직조공과 염색공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550년경부터 쥔힝거슈트라쎄라는 어려운 발음대신에 쉬운 발음의 주닝거슈트라쎄로, 또 얼마후에는 더 쉬운 발음의 징거슈트라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징거슈트라쎄를 가수들의 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음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징거슈트라쎄의 장크트 엘리자베트 교회의 중앙제단. 독일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교회이다. 

 

징거슈트라쎄의 초점은 7번지에 있는 독일(튜톤)기사단 보물박물관이다. 박물관에 연계하여서는 독일기사단채플이있다. 독일기사단채플로부터 왼쪽으로 돌아가면 아취로 연결되어 있는 블루트가쎄로 접어든다. 이 모퉁이야말로 그 옛날 처참하고 끔찍한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합스부르크의 루돌프대공 시절, 레닝겐백작과 크라니히경이라는 두 귀족이 블루트가쎄의 어떤 주막에서 술 몇잔을 걸친후 집으로 가던중 오토카르(Ottokar)를 존경한다느니 하고 떠들어 대는 시민 몇 명을 길거리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오토카르는 루돌프대공과 견원지간이었다. 두 명의 귀족들은 제딴에는 루돌프대공을 위한답시고 마주친 시민들을 칼을 휘들러 공격하였다. 졸지에 습격을 받은 시민들은 살려달라고 경찰을 부르려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이 악당 귀족들은 시민들의 목을 잘라버렸다. 거리는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귀족들은 머리와 몸을 맞추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굴러다니는 머리를 집어와서 몸통에 되는대로 붙여 놓았다. 바로 블루트가쎄 모퉁이에서 일이난 일이었다. 거리 사람들은 한밤중에 그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줄도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야 나와보고 놀래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민들은 두 귀족을 경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레닝겐백작과 크라니히경은 루돌프대공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무고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나중에 레닝겐백작이 현장에서 크라니히경의 귀에 속삭인 얘기가 알려지게 되었다. 여보게, 자네 잘못을 저질렀네! 머리와 몸통을 서로 다른 것으로 붙여 놓았단 말일세! 그러니 그 사람을 살해한 것이 아니지!라는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독일기사단의 집 보물전시실


이 거리의 다른 쪽, 16번지는 팔레 노이파우어-브로이너(Palais Neupauer-Breuner)이다. 아름다운 바로크양식의 저택으로 비엔나 도심의 찬란한 격조를 더 한층 높여주는 건물이다. 길건너 9번지와 11번지의 매력적인 귀족 저택 역시 눈여겨 볼만한 역사적 유산이다. 주변의 재건축 건물들과 독특한 조화를 이루는 건물이다. 이제 블루트가쎄로 건너가보자.

 

팔레 노이파우어 브로이너 현관의 조각 

 

[독일 튜톤 기사단] (German Teutonic Knights)

주후 1세기경 지금의 덴마크 유틀란드 반도에서부터 출발란 독일(게르만)민족의 기사단을 말하며 이들은 유럽 전역을 침공하여 세력을 넓혔으나 지금의 프랑스 액상 프로방스에서 로마군과 접전하여 대패한후 소멸되었다.  이때 포로가 된 튜톤족의 여인들은 로마로 끌려가 노예가 되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집단자결하였다. 후에 독일은 이 사건을 독일 영웅주의의 효시라고 하며 치하하였다. 중세에 이르러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자 이들의 후예들이 기사단을 설립하고 모슬렘과 전투를 하였다. 기사단에는 독일 귀족들만 입단토록 했으나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도 포용하였다. 명맥을 유지해 오던 독일 튜톤 기사단은 1800년 나폴레옹에 의해 완전 해체되었다. 비엔나에 있는 독일 튜톤기사단의 보물(유물)들은 십자군 전쟁 당시에 비엔나를 거점으로 활동했던 부산물이다.


징거슈트라쎄의 독일기사단교회과 독일기사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