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2일 투어

5. 그륀앙거가쎄 (Grünangergasse)

정준극 2007. 4. 11. 14:52

그륀앙거가쎄 (Grünangergasse)

 

블루트가쎄에서 한 블록 평행으로 떨어져 있는 길이 그륀앙거가쎄이다. 그륀앙거라고 하니까 질투 또는 분노라는 뜻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런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륀앙거는 푸른 초원이란 의미이다. 옛날에는 이 곳이 풀밭이었다. 사람들이 닭이나 오리를 내놓고 기르던 곳이었다. 그런 풀밭에 건물들이 들어섰다. 왼편으로 첫번째 서 있는 건물은 팔레 휘르스텐버그(Palais Fürstenberg-Hatzenberg)이다. 그륀앙거가쎄 4번지이며 돔가쎄 10번지이다. 현관 위에 우아한 두 마리의 그레이하운드 개의 조각이 서로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다. 현관을 밀치고 들어가 보면 넓직한 홀에 상당히 큰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오래전 어떤 마음 좋은 집 주인이 추운 겨울에 마차를 몰고 왔던 마부들이 몸을 녹이며 기다릴수 있도록 벽난로를 만들어 놓았다는 설명이다. 이 건물은 현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중에는 항상 문이 열려있다. 그러므로 멋있게 장식된 계단과 천정, 그리고 벽면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어 잠시 집안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팔레 휘르스텐버그. 돔가쎄 10번지이기도 하다.


 팔레 휘르스텐버그 포탈 상단의 그레이하운드 조각


팔레 휘르스텐베르크를 나와 길 건너 8번지를 감상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원래 이 집은 수세기동안 빵집이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빵장수의 집(Brotbäckenhaus)이라고 부른다. 건물의 현관문 윗쪽으로는 당시에 만들어 팔았던 여러 가지 형태의 빵들을 부조로 만들어 놓아 재미있다. 그중에는 지금도 비엔나의 빵집들에서 만들어 내는 모양의 것들도 있다. 비엔나에서는 크루아상(Croissant)을 키펠(Kipfel)이라고 부른다. 반달 모양의 이 빵은 비엔나를 공성했던 터키가 1683년 철수한 이후 나온 것으로 터키인을 상징하는 초승달 모양의 빵의 만들어 먹음으로서 터키 사람들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키펠빵은 그보다 훨씬 이전인 13세기부터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반달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건물의 현관 위에 조각되어 있는 빵들은 왼쪽으로부터 보스니아케를(Bosniakerl), 슈스터라베를(Schusterlaberl, 구두장이의 빵), 반달 모양의 키펠, 막대같이 생긴 브레첼(Bretzel), 호두 또는 양귀비 씨를 넣은 보이글(Beugl), 그리고 작은 기린과 같은 모양의 기라페를(Girafferl)이다.

 

그륀앙거가쎄 8번지 벽에 만들어져 있는 각종 빵의 모양. 왼쪽에 반달처럼 생긴 빵은 크루아상이다. 크루아상은 비엔나가 원조이다.

그륀앙거가쎄 8번지

 


이 건물의 안뜰 역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이른바 바쎄나(Bassena)의 정다운 모습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바쎄나는 중세로부터 비엔나의 아파트에서 사용되었던 대야 모양의 수반(水盤)을 말한다. 수도꼭지처럼 물빠지는 주둥이가 달려 있는 수반이다. 매번 우물물을 길어서 사용하기가 귀찮기 때문에 그런 장비를 만들어 썼다. 이런 용도의 바쎄나는 대부분 아파트에 각 층마다 설치되어있어서 손도 씻고 먹는 물을 받아 먹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수반을 사용하는 아파트는 없지만 옛날 지은 아파트에는 아직도 모습이 남아있다. 그 바쎄나의 전형을 이 안뜰에서 볼수 있음은 흥미있는 일이다.


 

바쎄나

 

10번지에는 현재 팬케이크 상점이 들어서 있지만 한때 비엔나에서 유명했던 이탈리아 알 안코라 베르데(All Ancora Verde) 제과점이 있었다. 알 안코라 베르데라는 이름은 순전히 집주인인 이탈리아 사람의 부주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그륀앙거를 초록 닻(Green Anchor: Ancora Verde)라고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2백년 이상이나 유지되었던 이 빵집이 문을 닫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지난날 이 빵집에는 슈베르트, 브람스, 클림트, 에곤 쉴레와 같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10번지는 유명한 극작가인 프란츠 그릴파르처(Franz Grillparzer: 1791-1872)가 1844년부터 1849년까지 5년 동안 살면서 '리부사'(Libussa)와 '합스부르크 형제간의 골육상쟁'(Bruderzwist in Habsburg)을 집필한 집이다. 건물들이 새로 들어섰기 때문에 혹자는 12번지가 그릴파르처 하우스라고 내세웠다. 아무튼 징거슈트라쎄와 만나는 모퉁이집에 그릴파르처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현재는 약국(아포테케)이다.


그륀앙거가쎄 12번지. 징거슈트라쎄 모퉁이집이다.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프란츠 그릴파르처 기념명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