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2일 투어

9. 힘멜포르트가쎄 (Himmelpfortgasse)

정준극 2007. 4. 11. 14:53

힘멜포르트가쎄 (Himmelpfortgasse)

 

라우엔슈타인가쎄의 끝머리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지쳐 내려가면 힘멜포르트가쎄를 만난다. 천국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이 거리의 이름은 7번지-11번지에 있었던 수녀원의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다. 천국문수녀원에는 상당히 유명한 성모상이 있었다. 이 성모상은 나중에 슈테판성당의 성엘리기우스채플에 기숙사 여사감이란 별명으로 안주하게 되었다. 이 성모상은 1783년 요제프 2세가 수녀원의 해체를 명령한 이후 곧바로 슈테판성당으로 옮겨졌다. 성모상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담겨있다.

 

수녀원의 규율에 따르면 수녀중 한 사람을 문지기수녀로 임명토록 되어 있다. 이렇게 임명된 문지기 수녀는 수녀원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외부와 연락할수 있는 입장이었다. 어느때 수녀중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수녀가 문지기로 임명되었다. 유혹이라는 이름의 악마는 젊고 멋지게 생긴 기사의 모습으로 그 아름다운 수녀에게 다가왔다. 젊은 기사는 아름다운 수녀에게 성모에 대한 서약은 잠시 잊어버리고 자기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자고 유혹했다. 처음에 그 수녀는 그런 유혹을 완강히 거부했으나 나중에는 기사의 너무나 끈질긴 설득에 못이겨 그만 굴복하고 말았다. 수녀는 수녀원의 유일한 문 열쇠를 성모상의 발밑에 넣어두고 성모님, 우리 수녀원을 지켜주세요. 저는 더 이상 문을 지킬수가 없습니다라고 기도한후 기사를 따라 수녀원을 떠났다.

 

힘멜포르트가쎄의 빠꾸기(쿡쿡) 간판

 

처음 얼마동안 젊은 수녀는 행복했다. 사치스럽고 평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몇 년후 사랑하던 그 기사가 수녀를 버리고 떠나자 수녀는 가난하고 병들게 되었다. 오랫동안 죄책감으로 마음의 갈등을 빚던 그 수녀는 마침내 수녀원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말할수 없는 죄인이었던 수녀는 참회와 속죄의 심정으로 수녀원의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너무나 놀라운 일은 문을 열어준 사람의 모습이 오래전 수녀원에 있었을 때의 자기 모습과 똑 같았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성모 자신이었다. 성모는 그 젊은 수녀가 수녀원을 떠난 그 날부터 젊은 수녀의 모습으로 문지기 노릇을 착실하게 대신해주었다. 그래서 아무도 젊은 수녀가 몇해 동안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수녀는 성모님의 크나큰 은혜에 감격하여 평생을 성모님을 위해 살았다.

 

힘멜포르트가쎄-자일러슈태테의 로나허극장

 

힘멜포르트가쎄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 아랫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8번지를 볼수있다. 오이겐공자의 겨울궁전이었으나 지금은 재무성이 들어서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아마 비엔나 시내에서 가장 화려하게 공들여 만든 궁전저택일 것이다. 오스트리아 귀족의 저택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볼수있는 건물이다. 이 궁전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주중의 일과시간에는 웅장한 현관을 통해 슬쩍 들어가 현관 로비를 둘러 볼수있다. 로비의 왼쪽에는 해신 넵튠이 큰 조개껍질에 담겨있는 물을 비우고 있는 섬세한 조각이있다. 한때 로비의 분수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안뜰에도 벽쪽으로 작은 분수가 하나 더 있다. 그보다도 오른쪽 계단의 양쪽에 기둥을 받치고 있는 조각상은 웅장함 그 자체이다. 계단 중간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은 헤라큘레스가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 뒤에는 오이겐공자의 초상화가 있다. 모든 것이 화려하다. 그 화려함 중에 안뜰은 매우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오이겐공자는 2층의 자기방에서 평화스러운 안뜰을 내려다보며 지냈을 것이다. 원래 오이겐공자는 단순하고 검소한 것을 좋아했다. 아랫층의 화려한 방은 아마 손님들을 접대했던 방일 것이다.

 

힘멜포르트가쎄 8번지 과거 오이겐공자 겨울궁전 

                                  

거리의 더 아래쪽에 있는 13번지는 에르되디-휘르스텐베르크(Erdoedy Fuerstenberg) 가문에 속하여 있는 궁전저택이다. 벽면에 걸려 있는 부조판에서 볼수있듯이 헝가리의 라코스치(Rakoczi)공작이 비엔나를 방문했을 때 머물던 저택이었다. 라코스치공작은 1703년부터 3년동안 합스부르크에 대항하여 투쟁한 인물이었다. 헝가리 국민들은 그를 무척 존경하여 헝가리의 공자라고 불렀다. 합스부르크가 그를 추방하자 그는 폴란드, 프랑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터키에서 살다가 1735년 세상을 떠났다. 15번지는 아기자기한 르네상스 양식의 저택이다. 주중에는 건물안으로 들어가 매력적인 안뜰을 구경할수 있다. 안뜰의 한 쪽 벽은 골동품 상점과 연결되어있다. 힘멜포르트가쎄의 끝까지 걸어가면 자일러슈태테를 만난다.

 

오이겐공자 겨울궁전 화려한 내부

 

힘멜포르트가쎄 6번지는 유명한 Cafe Frauenhuber이다. 아주 고풍스러운 식당으로 비엔나의 10대 유명식당 중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이 식당은 원래 Jan's Restaurant 이라는 곳이었다. 베토벤의 동생인 카를(Carl)과 그의 부인 요한나(Johanna)가 비엔나에 와서 오픈한 식당이다. 얀스 레스토랑은 아랫층은 식당이지만 2층은 작은 연주회장이었다. 이곳에서 베토벤의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5중주'가 역사적인 초연을 가지기도 했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도 이곳에 와서 그들의 작품을 연주했다.

 

카페 프라우엔후버 (구 얀스 레스토랑). 베토벤의 동생인 카를과 그의 부인 요한나가 비엔나에 와서 오픈한 식당 겸 카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