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3일 투어

8. 그리헨가쎄 (Griechengasse)

정준극 2007. 4. 11. 15:00

 그리헨가쎄 (Griechengasse)

            

그리헨가쎄

 

그리헨가쎄는 대단히 오랜 역사를 지닌 거리이다. 그리헨가쎄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곳에 그리스정교회가 있기 때문인듯 싶다. 그리헨가쎄에 들어서면 중세의 지붕들이 밀집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그중에 고틱 양식의 탑이 하나 서있다. 이곳에 올라가면 비엔나에서도 가장 오래된 주택들을 내려다 볼수 있다. 원래 이 탑은 성곽을 따라 세워진 망루 중의 하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곳도 집이라고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그리헨가쎄가 황량한 거리였다. 집들도 별다른 특징이 없는 초라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서서 사정은 달라졌다. 가장 매력적인 옛 거리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4번지가 그렇다. 한때 이 건물은 더 이상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철거될 운명이었다. 그래서 현관의 양회벽부터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벽을 한 꺼풀 벗겨내자 아름다운 디자인의 벽이 들어났다. 그러니 다시 보존토록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게 하여 슈타이어호프(Steyerhof)가 들어나 보이게 되었다. 지금은 세개의 하얀색 아치형 모습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 건물은 울리히 폰 슈타이어(Ulrich von Styer)라는 사람이 1412년 사들였던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슈타이어호프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중에 이 건물은 여관으로 사용되었다.

 

 

플라이슈마르크트

 

슈타이어호프의 이 같은 벽면 장식만 보아도 비엔나의 거리가 과거에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웠는지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그리헨가쎄에는 13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각종 건축 양식이 마치 건축전시장처럼 진열되어 있다. 슈타이어호프 바로 옆으로 로텐투름슈트라쎄와 접하여 있는 건물(그리헨가쎄 2번지)은 망루 스타일의 중세 탑이다. 창문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건물이다. 16세기를 대표하는 화려한 건물이다. 슈타이어호프는 멋진 외관 때문에 여관으로서 인기가 높았다. 유명인사들이 자주 숙박했던 여관이었다. 그러나 다른 목적으로도 장소를 빌려준 경우가 자주 있었다. 어떤 때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595년의 일을 들수 있다. 어느해에 일단의 장교들이 자기가 속해 있던 연대가 해산된 것을 기념하여 파티를 열었다. 장교들은 1층에서 진탕 마시고 떠들어 대며 파티를 열었으나 용병이 대부분인 사병들은 길거리에서 겨우 목을 추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병들은 자기들이 죽을 힘을 다해 벌어들인 돈으로 장교들이 진탕 먹고 마신다고 생각했다. 사병들 사이에서 불평들이 터져나왔다. 여관 주인은 이 같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그러자 거리에 있던 사병들의 불만은 더 고조되었고 일부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 장교들과 한바탕 하려고 했다. 1(우리로 치면 2)에 있던 장교들이 이 모습을 보고 술취한 김에 사병들을 향해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터져 나오고 사태가 위급해 지자 인근 교회는 위급상황을 알릴 목적으로 종을 쳤다. 곧이어 군대가 동원되었고 그 때문에 흥분해 있던 사병들은 겨우 해산되었다. 물론 그 때에는 이미 여러명의 사병들이 총상을 입고 난 후였다. 아무튼 그런 일도 이 슈타이어호프에서 있었다.

 

그리헨바이젤

 

3번지에는 퀴쓰덴페니히 하우스(Kuessdenphennig-Haus)는 건물이 있었다. 글자 그대로 '동전 한 닢에 입맞추기 집이란 뜻이다. 여기에는 그럴듯한 전설이 있다. 원래 그 자리에는 검은 독수리 여관이 있었다. 여관주인은 세상 무엇보다도 돈을 좋아하는 욕심장였다. 어느 날 야심한 시간에 어떤 낯선 사람이 여관 문을 두드렸다. 여관주인은 문을 열어주기는 커녕 그 사람을 쫓아 버리려고 했다. 그 사람이 가난한 학생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돈을 후하게 쳐 줄 테니 제발 하루 밤만 묵어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여관주인은 돈을 넉넉히 낸다는 말에 솔깃하여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하룻밤만 지내겠다던 그 사람은 다음날이 되어도, 또 다음날이 되어도 떠날 줄을 몰랐다. 여관주인은 혹시 돈을 받지 못할까 라는 걱정끝에 그 사람이 묵고 있는 방문을 두드리고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 사람은 빙긋이 웃으며 동전 한 닢을 건네 주었다. 여관주인은 화가 나서 동전을 바닥에 내 던졌다. 그러자 그 낯선 사람은 나 같으면 동전을 던져 버리지 않겠는데!라고 말하면서 허리를 굽혀 바닥의 동전을 주어 들었다. 그건 한 푼짜리 동전이 아니라 금화였다. 놀란 여관주인은 여관비의 몇배나 되는 금화를 얼른 받아서 , 내가 이 금화에 입을 맞추려고 했는데 손에서 놓쳤네!라며 얼른 금화에 키스를 하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사람의 이름은 파라첼수스라고 했다.

 

뷔르거하우스 2에 있는 성모조각. 예전에 퀴스 덴 페니히 하우스였다.

 

곧이어 금화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적의 동전 한 닢과 파라첼수스(Paracelsus)라는 이름의 그 낯선 사람을 보기 위해 여관으로 몰려왔다. 여관은 언제나 만원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파라첼수스라고 하지만 실은 1493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1541년 잘츠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난 의사 겸 화학자 겸 연금술사인 유명한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헨하임(Theophrasus Bonbastus von Hehenheim)이라고 믿었다. 기초물질을 이용하여 금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한 것으로 명성을 떨쳤던 연금술사였다. 아무튼 이후부터 여관의 벽면에는 여관주인이 금화에 키스하는 모습의 부조가 걸리게 되었고 여관의 이름도 퀴쓰덴페니히-하우스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퀴쓰덴페니히라는 명칭에 대하여 또 다른 얘기도 있다. 쿠쎈페닌히(Chussenphenninch)라는 이름의 푸줏간 가족에 대한 것이다. 이 푸줏간 가족은 1360년부터 로텐투름(붉은 탑) 바로 옆에 붙은 3번지에 살았었다. 당시 그 집에 붙어 있던 간판은 자기 이름에서 따온 Zum Kueschenphennig였다. 쓰덴페니히-하우스의 왼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그리스정교회가 있다. 그러다가 좁은 골목길이 넓어지며 무슨 플랫폼 같은 곳에 나오게된다. 계단을 내려가면 도나우운하에 이를수 있다. 하프너슈타이그(Hafnersteig)라고 불리는 곳이다. 도공의 계단이란 뜻이다. 실제로 이 곳은 한때 도자기 거래가 활발했던 시장이었다. 7번지 집앞의 길은 비엔나시 민병대가 긴급상황 때에 집합하던 곳이었다. 오늘날 이곳에는 작은 정원이 있는 마롤트(Mahrold)식당이 있어서 여름철에는 사람들이 이곳에 탁자를 놓고 여유 있게 맥주를 즐긴다 

 

성게오르그 그리스정교회의 내부

  

7번지의 현관문 위에는 아름다운 마돈나상이 설치되어 있다. 때문에 그 조각상만 보아도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다. 하지만 문앞에 바로 서 있으면 고틱 양식의 첨탑을 볼수 없으므로 좀 멀찍이 떨어져서 보아야한다. 홀 안으로 들어가면 더 좋은 볼거리가 있다. 문 오른쪽에 있는 펌프식 우물이다. 현재 이 우물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인 1976년까지도 동리 사람들이 이 우물에서 퍼 올린 물을 사용했다. 그 옆의 벽에는 아랍 글씨로 적은 두 소절의 글귀가 있다. 어째서 아랍 글씨가 이곳 그리스 탑의 안쪽 벽에 적혀있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이 건물에 사는 어떤 노파는 터키인들이 남긴 글귀라고 말했다. 코란의 한 구절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의견도 있다. 음란한 글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아랍 글씨를 별다른 의미 없이 장식용으로 이리저리 써놓았다는 설명이다.

 

그리헨가쎄 26번지, 그리스 정교회 회랑

                                  

이 집에서 나와 계속하여 그리헨가쎄를 걸어가면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칠 정도로 좁은 길에 들어선다. 너무 좁기 때문에 길바닥에 수레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지나갔던 흔적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1912년에는 이런 표지판이 길에 붙어 있었다. 도보 통행자는 혼잡함에 주의를 기울일 것! 마차는 천천히 몰 것! 큰 마차를 끄는 마부들은 미리 마차 앞에 걸어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어야 함. 마부들이 마차에 붙어 있어야 한다면 다른 어른이 마차보다 앞에 걸아가면서 통행인들에게 주의를 주어야 함. 길 모퉁이에 있는 9번지는 유명한 그리스식당(Griechenbeisl)에 연결된 건물이다. 그리스식당이라고해서 그리스 음식을 서브하는 곳은 아니다. 비엔나의 전통음식을 서브한다. 비엔나에는 그리스 사람들도 살았지만 그리헨가쎄라고 해서 이 거리에 그리스 사람들이 북적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리스정교회의 건물이 있기 때문에  그리헨가쎄라는 이름이 붙은 것같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다. 이제 그리헨가쎄가 라우벤슈타이크와 만나는 곳에서 슈테판성당 방향으로 꺾어 들어가 진짜 중세의 모습이 남아 있는 플라이슈마르크트로 들어가보자.


그리헨가쎄 올라가는 골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