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총정리/8월의 성인과 축일

8월 12일: 성 클라라(St Clara)

정준극 2007. 8. 9. 13:01
 

클레어(Clare, Claire)라도고 부름. 가난한 자의 수호성인. '가난한 클레어'(Poor Clares) 수도회의 창시자. 상징: 성체현시대 또는 성함.

 

 아씨시의 성 클라라 기념 교회


이탈리아 아씨시에서 태어난 클라라는 18세에 성 프란체스코의 설교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아 자기의 모든 소유와 가족을 부인하고 주님의 길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의 부모는 클라라가 집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현관문 앞에 짐승들의 시체를 쌓아 놓았으나 클라라는 개의치 않고 빠져 나가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문을 두드렸다. 클라라는 아름다운 머리칼을 모두 자르고 수녀로서 주님께 헌신하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후에 클라라는 아씨시의 성 다미아노(St Damiano)교회 부근에 있는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로부터 그는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같은 형태로 수녀원 운영을 하였다. 즉 낮에는 땀 흘려 노동하고 밤에는 성경을 중심으로한 묵상과 기도의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클라라는 금식과 절제의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므로 수녀원의 여인들은  사람들의 자선에 의존해 겨우 생활했으며 그나마도 여의치 않아 굶주림을 밥먹듯 했다. 이처럼 빈곤한 생활을 했지만 클라라의 '가난한 클라라 수도원'에 대한 얘기가 널리 퍼져 유럽의 각지에서 클라라 수녀원을 찾아오는 여인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성 프란체스코가 세상을 떠날 때 성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의 시신을 고향 아씨시로 돌려보내되 반드시 성 클라라의 수도원을 거쳐 가도록 부탁했다. 클라라는 성 프란체스코의 시신을 정중하게 영접하고 그의 발을 씻어 주었다.

 

 성 클라라의 임종


자연을 극히 사랑했던 클라라는 수녀원에 종묘장을 만들어 놓고 다른 수녀들과 함께 꽃나무들을 돌보며 기쁜 생활을 했다. 클라라는 수녀원의 운영을 위해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기부를 받았으나 나중에는 자력갱생의 의지로 일관했다. 그는 모든 수녀들에게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을 적극 권면하였다. 클라라는 생애의 마지막 25년을 병마와 싸우며 지냈다. 그러는 중에도 1244년 프레데릭2세의 군대가 아씨시를 침공했을 때 성체(빵과 포도주)를 들고 성문에 나가 프레데릭2세를 설득하여 퇴각토록 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아름답고 기품이 있는 성 클라라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