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총정리/10월의 성인과 축일

10월 8일: 성 브리제트(St Bridget)

정준극 2007. 8. 9. 13:48
 

브리기트(Brigit), 비르기타(Birgitta)라고도 부름. 스웨덴의 수호성인. 브리기트 성회의 창시자. 상징: 브리기트 성회의 수녀복. 순례자의 지팡이, 간혹 촛불 또는 성서.


스웨덴의 부유한 지주의 딸로 태어난 브리제트는 어려서부터 하늘의 환상과 신앙적인 꿈을 꾸었다. 브리제트는 주님과 혼인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부모의 주선에 의해 14세 때에 어떤 부유한 사람과 결혼하였고 살면서 여덟명의 자녀를 두었다. 브리제트는 남편의 장원을 관리하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브리제트의 부지런함과 신실함은 온 동리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날 ‘네무르의 블랑셰’(Blanche of Nemur) 여왕이 브리제트를 만나보고 마음에 몹시 흡족하여 궁전에 들어와 여왕의 수석시녀로 봉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브리제트가 궁전에 들어와 생활하고부터 그에게 어릴때 나타나고 보이지 않던 하늘의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브리제트는 여왕의 허락을 얻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주변의 성당들을 순례하며 신앙생활을 굳건히 하였다. 얼마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후 브리제트는 참회와 속죄의 은둔생활을 하면서 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주님께 간구하였다.

 

 성 브리제트


그로부터 2년후, 브리제트는 새로운 성회를 창설키로 결심했다. 1346년 브리제트는 바즈세나(Vadstena)로 거처를 옮기고 재산을 털어 이곳에 수도원과 수녀원을 지었다. 브리제트의 내핍생활을 전설적이었다. 브리제트는 매트리스도 없는 보잘것 없는 널빤지에서 잠을 잤다. 덮는 이불도 그저 몸만 덮는 단순한 것이었다. 먹는 것도 아주 조금이었다. 하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3년후 브리제트는 그가 세운 성회를 인정받기 위해 로마 교황청을 찾아 갔다. 그 이후로 브리제트는 스웨덴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탈리아에 유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주로 여러 교회들을 방문했으며 그가 본 환상과 예언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또한 성경을 스웨덴어로 처음으로 번역하였다. 브리제트는 병든자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에도 몸을 돌보지 않았다. 그는 71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구제에 힘쓰는 성 브리제트와 수녀원의 동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