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1

13. 베니스 라 페니체극장(Teatro La Fenice) - 피닉스극장

정준극 2007. 9. 3. 11:10
13. 베니스 라 페니체극장(Teatro La Fenice) - 피닉스극장

    The Phoenix Theater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 

 

베니스의 라 페니체극장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극장중의 하나이다. 라 페니체에서 여러 편의 오페라가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라 페니체는 ‘불사조’(phoenix)라는 의미이다. 불사조는 잿더미 속에서도 다시 살아났다는 새를 말한다. 라 페니체는 여러번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다시 건축되어 더욱 발전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라 페니체의 연혁은 3기로 나눌수 있다. 제1기는 1774년부터 1836년까지이다. 베니스에는 Teatro San Benedetto(산 베네데토극장)이라는 오페라 전용극장이 1730년대부터 운영되고 있었다. 이 극장이 현 라 페니체극장의 전신이다. 산 베네데토극장은 177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재건이 시작되었지만 뜻하지 아니하게 법적인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산 베네데토극장의 소유주인 베니어(Venier)가문과 극장을 운영하는 단체간에 소송이 벌어졌다. 누구에게 실질적인 극장운영권이 있느냐에 대한 분쟁이었다. 베니어 가문이 유리한 판결을 받았다. 극장운영단체는 치사해서 별도로 새로운 극장을 건축키로 결심했다. 현재의 라 페니체 위치가 결정되었다. 정작 재건이 착수된 것인 1790년이었다. 2년만에 완공되었다. 라 페니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극장이 화재로부터 소생했으며 베니어가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극장으로 출범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라 페니체는 1792년 5월 16일 오픈되었다. 개관 기념공연은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의 I Giuochi D' Agrigento(아그리젠토 경기)라는 오페라였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라 페니체는 유럽의 유수한 오페라극장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로시니가 그의 작품을 라 페니체에서 공연토록 했으며 벨리니도 그의 2개 오페라를 라 페니체의 무대에 올리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밀라노와 나폴리에서 명성을 떨치던 도니제티도 1836년에는 라 페니체로 돌아왔다.


라 페니체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진 파이시엘로의 '아그리젠토 경기' 음반 


라 페니체 연혁의 제2기는 1836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836년 라 페니체는 또 다시 화마의 엄습을 받아 소실되었다. 모두들 힘을 합쳐 조속히 복구할수 있었다. 건축가인 메두나(Meduna) 형제의 기여는 특히 두드러졌다. 라 페니체는 다시 한번 잿더미에서 부활하였다. 그리하여 화재 이듬해인 1837년 12월 26일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베르디와 라 페니체의 인연은 1844년부터 시작되었다. 1844년의 베니스 카니발 시즌에 Ernani(에르나니)가 초연되었다. 그후 13년동안 베르디의 Attila(아틸라), Rigoletto(리골레토), La Traviata(라 트라비아타), Simon Beccanegra(시몬 보카네그라)의 역사적인 초연이 라 페니체에서 있었다.

 

라 페니체의 오라토리엄

 

1차대전중 라 페니체는 잠시 문을 닿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라 페니체는 마치 새롭게 부활한 것처럼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세계적인 유명 성악가들과 지휘자들을 초빙하기  시작했다. 라 페니체의 오페라는 고품격으로 정평나게 되었다. 1930년에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렸으며 그 기간중에 라 페니체에서 제1차 국제현대음악제가 열리게 되었다. 스트라빈스키, 브리튼, 베이로(Beiro), 노노(Nono), 부소티(Bussotti)와 같은 당대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라 페니체에서의 공연을 위해 작품들을 제공하였다. 라 페니체(불사조)와 화마는 피할수 없는 인연이 있었던 같았다. 1996년 1월 라 페니체는 또 다시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다. 방화였다. 범인을 잡고 보니 극장의 보수용역을 맡은 어떤 회사의 책임자들이었다. 보수공사를 기간내에 마치지 못하여 벌금을 내지 못하게 되자 불을 질렀던 것이다.

 

베니스의 명소 테아트로 라 페니체의 복스

 

1996년의 화재로 인한 복구공사는 2001년에야 착수되었다. 수백명의 작업자들이 합심한 결과 2년도 못되어서 완전히 복구했다. 오히려 종전의 건물보다 더 섬세하고 화려하게 복구했다. 그리하여 2003년 12월 다시 오픈되었다. 베토벤, 바그너,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복구후 첫 오페라 공연은 이듬해인 2004년 La Traviata였다. 라 페니체가 새롭게 태어나자 베니스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일대 논란을 펼치기 시작했다. 마치 당파싸움 같았다. 좌익지인 Il Tempo를 중심으로한 좌익진영은 새로운 건물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고 만족해 했다. 전체적인 색조는 종전에 비하여 좀 밝았지만 반면 음향은 더 좋아졌다고 평했다. 반면 우익지인 La Repubblica를 중심으로한 우익진영은 라 페니체의 음향 공명이 종전에 비하여 현저하게 떨어졌으며 건물 내부의 색조 역시 고통스러울만치 밝았다고 논평했다. 우익진영은 과거를 정확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저속한 모조품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라 페니체는 과거를 무시하는 개축을 했으므로 베니스는 새로운 극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 베니스 시민들은 바다에 면하여 웅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라 페니체에 대하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의 라 페니체 오디토리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