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1

14. 로마 아르젠티나극장(Teatro Argentina)

정준극 2007. 9. 3. 11:11
14. 로마 아르젠티나극장(Teatro Argentina)

    Argentina Theater in Rome

 

아르젠티나극장

 

로마의 아르젠티나극장은 로마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오페라극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오페라중의 하나인 로시니의 Il Barbiere di Siviglia(세빌리라의 이발사)가 1816년 이 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베르디의 I due Foscari(두사람의 포스카리: 1844)와 La battaglia di Legnano(레냐노 전투: 1849)도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내용의 베르디 오페라들은 결과적으로 이탈리아의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아르젠티나극장은 연극공연의 무대로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연극배우로서 아르젠티나의 무대에서 공연을 갖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었다. 때문에 이탈리아의 유명 극단이라면 모두 아르젠티나극장에서 공연하고 싶어 했다. 아르젠티나극장은 이탈리아 연극예술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아르젠티나극장에서 인정을 받은 연극이면 전국 순회공연에서도 성공을 거둘수 있었다. Pirnadello(피란델로), D'Annunzio(다눈치오), Ibsen(입센), Gorki(고르키), De Filippo(데 필리포)등의 연극은 이곳에서 이탈리아 초연을 가졌다.

 

아르젠티나극장 앞의 토레 아르젠티나 폐허


아르젠티나극장은 로마 중심지역의 Largo Di Torre Argentina라는 광장공원의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로마제국 시대의 유적지이다. 아르젠티나라는 명칭은 원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의 Argentoratum(아르젠토라툼)이라는 지역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로마시대에는 스트라스부르그도 제국의 영토였다. 일설에 의하면 로마의 이 지역에 스트라스부르그의 아르젠토라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르젠티나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아르젠티나극장은 일찍이 1732년 처음 문을 열었다. 아마 로마에서 가장 오랜 연륜의 극장일 것이다. Domenico Sarro(도메니코 사로)의 오페라 Berenice(베레니체)가 개관 기념으로 공연되었다. 아르젠티나극장은 외벽과 계단을 제외하고는 완전 목재로 만든 건물이었다. 어느 위치에서나 무대를 볼수 있는 시계를 확보할수 있고 또한 음향효과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오디토리엄은 말편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6층 높이의 오디토리엄에는 각 층마다 31개의 박스(칸 막은 관람석)이 있다. 그러므로 도합 186개의 박스가 있다. 특이하게도 처음의 건물에는 다른 극장과는 달리 현관부분이 없었다. 현관이 만들어진 것은 개관이후 거의 1백년이 지난 때였다. 로마의 명문 귀족으로 음악애호가인 Sforza Cesarini(스포르자 세사리니)공작이 건축가 Pietro Cartoni(피에트로 카르토니)에게 현관부분을 만들도록 했다. 이때 정문 현관 이외에도 내부 회랑이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이로서 아르젠티나극장은 로마 최고의 극장으로 손색이 없게 되었다.

 

아르젠티나극장의 오디토리엄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룩한 후 정부는 로마의 몇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재건사업을 추진하였다. 옛 로마시대의 유적들을 정리하고 새로 건물들을 짓거나 도로를 넓히는 사업이었다. 거의 폐허와 같은 아르젠티나극장 지역도 이 계획에 포함되었다. 1927년 이 지역에서 인부들이 지반 정리작업을 하던중 지하에서 거대한 두상과 팔과 같은 석제 유물들을 발견했다. 로마시대에 만들었던 신상들의 잔해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아르젠티나극장의 위치는 로마제국 당시 신전들이 있었던 신성한 지역으로 생각되었다. 그로부터 아르젠티나극장는 로마 시민들로부터 더욱 존경을 받았다. 2차대전시 로마는 1944년 가을에 연합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아르젠티나극장은 1944년 겨울부터 1945년 겨울까지 미군과 영국군 장병들을 위문하기 위한 오페라를 공연했다.

 

18세기 아르젠티나극장의 오디토리엄과 무대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