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1

15. 함부르크 슈타츠오퍼(Hamburgische Staatsoper)

정준극 2007. 9. 3. 11:11
15. 함부르크 슈타츠오퍼(Hamburgische Staatsoper)

    Hamburg State Opera(함부르크 국립극장)

 

 2003. 1 오픈한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노이바우(신극장)

                  

함부르크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는 독일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오페라극장중의 하나이다. 함부르크의 오페라 연혁은 16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오페라극장이 몇 개 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모두 제국 소유의 것이었다. 그러한 때에 함부르크의 한자동맹 멤버인 어떤 부유한 상인이 민간오페라극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단독으로 오페라극장을 건립했다. 오페라 애호가였던 그 상인이 건설한 극장은 오페른 테아트룸(Opern Theatrum)이었다. 개관 기념공연은 요한 타일레(Johann Theile)가 작곡한 성서 이야기 '아담과 이브' 징슈필이었다. 오페른 테아트룸은 당시 독일 오페라계를 독점하고 있었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하여 저항하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독일 바로크 오페라의 공연에 집중했다. 오페른 테아트룸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명성을 더해 나갔다. 조지 프레데릭 헨델도 이 오페라극장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겸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활동했었다. 1705년 헨델의 오페라인 네로(Nero)가 초연된 곳도 오페른 테아트룸이었다. 1721년에는 독일 바로크 오페라의 중심인물인 게오르그 텔레만(Georg Telemann)이 이 오페라극장에 합류했다. 오페른 테아트룸은 다른 저명 작곡가들도 초빙하여 그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요한 아돌프 하쎄(Johann Adolph Hasse)등도 포함되었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구극장과 요한 타일레

 

1721년 오페른 테아트룸은 화재의 위험 때문에 석조건물로 재건축되었으며 명칭도 Stadt-Theater(슈타트-테아터: 시립극장)이라고 바꾸었다. 1879년, 슈타츠오퍼는 바그너의 링 사이클 전편을 공연했다. 바그너의 생존시에 링 사이클이 완전 공연된 것은 함부르크 슈타츠오퍼가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4년후인 1883년 바그너가 세상을 떠났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바그너를 추모하여 그의 오페라 9편을 연속하여 무대에 올렸다. 구스타브 말러는 1891년부터 6년동안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을 맡아 슈타츠오퍼의 명성을 한층 높이 올려놓았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오디토리엄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현대 오페라의 소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파울 힌데미트의 Sancta Susanna(성 수잔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The Soldier's Tale(병사의 이야기), 에른스트 크레네크의 Jonny Spielt auf(요니가 노래를 불렀다), 레오스 야나체크의 Jenufa(예누파), 페루치오 부소니의 Die Brautwahl(신부의 절규), 에리히 코른골트의 Die tote Stadt(죽은 도시)등이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에서 세계 초연을 가졌다. 1930년대 초반,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후 함부르크 슈타트-테아터는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로 명칭을 바꾸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8월,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건물이 거의 모두 파손되었다. 어떤 비행기는 낮게 나르면서 석유드럼을 오페라 건물의 지붕에 떨어트려 불바다를 만들었다. 전쟁이 끝난후 재건이 시작되어 1955년 10월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마적’이 공연되었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현대작품의 공연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한스 베르너 헨체의 The Prince of Homburg(홈부르크의 왕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The Flood(홍수), 마우리치오 카겔의 Staatstheater(국립극장)가 무대에 올려졌다. 이러한 노력은 계속되어서 최근에는 볼프강 림(Wolfgang Rhim)의 The Conquest of Mexico(멕시코 정복: 1992)과 헬무트 라헨만(Helmut Lachenmann)의 The Little Match Girl(성냥팔이 소녀: 1997)이 세계 초연되었다.

 

'난봉꾼의 행로'(Rake's Progress)의 한 장면.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