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1

20. 부에노스아리에스 콜론 극장(Teatro Colon)

정준극 2007. 9. 3. 11:14
20. 부에노스아리에스 콜론 극장(Teatro Colon)

    Theater Columbus(콜럼버스극장): Colon Theatre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 극장 전경

 

콜론 극장은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남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지만 세계 5대 오페라극장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유명 오페라 하우스이다. 현재의 건물은 20년 공사 끝에 1908년 완성되었으며 2,367개의 좌석을 포함하여 최대 3천5백여 명을 수용할수 있다. 콜론 극장의 무대는 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대규모이다. 20미터 넓이에 20 미터 깊이의 무대이다. 시내 중심지역인 Julio Avenue(훌리오가)에 위치한 콜론 극장은 유럽의 오페라단이 남미 순회공연을 할 때에 첫 기착지였다. 콜론 극장에서 공연을 가진 유럽의 오페라단은 계속하여 리오 데 자네이로, 산 파울로, 몬테비데오, 산티아고 등지에서 공연을 가졌다. 콜론이란 단어는 스페인어로 콜럼버스를 말한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기념하기 위한 명칭이다.

 

콜론 극장

 

1850년에 이르러 유럽 오페라단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공연은 하나의 패션이었다. 1854년 한해만 보더라도 무려 53편의 오페라가 유럽 오페라단에 의해 공연되었다. 다행히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여러 오페라극장이 있어서 공연장소를 확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 도시의 극장들은 대부분 소규모의 무대였다. 좀 더 넓은 무대를 위해 현재의 콜론 극장의 전신인 Teatro Colon을 Place de Mayo(5월 광장)에 건설했다. 1857년의 오프닝에서는 라 트라비아타가 공연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초연된지 4년후였다. 극장의 설계, 건설은 나중에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된 Carlos Pellegrini(카를로스 펠레그리니)의 아버지인 Enrique Pellegrini(엔리크 펠레그리니)가 맡아했다. 2,500석의 대규모 (구)콜론 극장은 특이하게도 여성만을 위한 갤러리가 별도로 있었다. 30여년이 지나자 현대식 시설의 극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구)콜론 극장 건물은 아르헨티나 국립은행에 팔렸다. 새로운 오페라극장의 건설비를 전액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콜론 극장의 무대와 오디토리엄

 

현 콜론 극장의 기공식은 1889년에 있었다. 설계와 건축은 Francesco Tamburini(프란체스코 탐부리니)와 그의 제자 Vittorio Meano(비토리오 메아노)에게 의뢰했다. 그러나 공사는 자꾸 지연되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난관들이 계속 생겼다. 부지를 확정하는 데에만 1년이 넘게 걸렸다. 기공식으로부터 2년후에는 주설계자인 탐부리니가 세상을 떠났다. 3년 후에는 주설계자 역할을 맡은 메아노가 피살되었다. 이어서 콜론 극장의 신축에 자금을 대던 이탈리아의 사업가 Angelo Ferrari(안젤로 페라리)가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벨기에 건축가인 Julio Dormal(훌리오 도르말)에 의해 진척되어 드디어 1908년 대망의 문을 열게 되었다. 이탈리아 스타일의 건축은 프랑스 바로크 스타일로 바뀌었다. 개관기념 공연은 베르디의 아이다였다. 오페라 제목은 아르헨티나 스타일로 Dia de la Patria라고 번역했다. 젊은 토스카니니가 첼리스트로 지휘자로서 데뷔한 것도 이때의 아이다 공연이었다. 이후로 콜론 극장은 세계 최고 성악가들의 초청공연으로 라 스칼라, 메트로폴리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 오페라극장으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콜론 극장을 거친 세계적 음악가들은 Titta Ruffo(티타 루포), Amelita Galli-Curci(아멜리타 갈리-쿠르치), Arturo Toscanini(아르투로 토스카니니), Jane Bathori(제인 바토리), Enrico Caruso(엔리코 카루소), Claudia Muzio(클라우디아 무치오), Maria Callas(마리아 칼라스), 욘 빅커스(Jon Vickers), 비벌리 실스(Beverly Sills),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 Alfredo Kraus(알프레도 크라우스), Placido Domingo(플라치도 도밍고), Luciano Pavatotti(루치아노 파바로티)등 헤아릴수 없다.

 

콜론극장의 살롱

 

근자에 콜론 극장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 때문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 예산을 당장 시급한 곳에 사용해도 부족한 판에 먹고 사는데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 콜론 극장을 위해 정부 예산을 집행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몇 년에 걸친 논쟁은 2006년에 가서야 겨우 수그러들었다. 콜론 극장은 정부 예산의 지원을 받아 2006년 10월부터 보수작업에 들어갔다. 2008년 5월 25일이 마무리되었다. 콜론 극장 설립 1백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콜론극장의 조각장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