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1

18. 브뤼셀 라 모네극장(La Monnaie)

정준극 2007. 9. 3. 11:13
18. 브뤼셀 라 모네극장(La Monnaie)

     La Theatre Royal de la Monnaie: Koninklijke Muntschouwburg

     De Mund/La Monnaie(드 문드/라 모네극장)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

 

브뤼셀의 La Theatre Royal de la Monnaie(라모네왕립극장)은 간단히 줄여서 La Monnaie라고 부른다. 프랑스어이다. 더치어로는 De Mund(드 문드)라고 부른다. Koninklijke Muntschouwburg(코닌클리이케 문트쇼우부르그)를 줄여서 그렇게 부른다. De Mund는 조폐국이란 뜻이다. 처음 오페라극장을 세울 때 조폐국 건물 자리에 건축했기 때문이다. De Munt라고 부르던 La Monnaie라고 부르던 이 오페라극장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하우스의 하나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19세기의 라 모네

                

드 문트/라 모네의 전신은 1700년에 건설된 Gio-Paolo Bombarda(지오-파올로 봄바르다)극장이다. 브뤼셀에 처음 등장한 일반 오페라극장이다. 조폐국(De Mund) 건물이 있던 La Monnaie에 건물을 지었다. 당시 합스부르크 치하의 네덜랜드 총독인 바바리아 선제후 막시밀리안 2세의 지시에 의해 건설되었다. 막시밀리안 2세는 오페라극장 건설사업의 총책임을 재무관인 Gio-Paolo Bombarda에게 맡겼다. 그래서 드 문드/라 모네는 ‘지오-파올로 봄바르다’극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1700년의 개관에서는 장-밥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의 Atys(아티)가 공연되었다. 이후 거의 100년 동안 프랑스 오페라가 합스부르크 치하의 네덜랜드(현재의 벨기에 포함)에서 전매특허처럼 공연되었다. 드 문드/라 모네는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프랑스 오페라극장으로 인정되었다. 물론 베니스 오페라와 독일-오스트리아 오페라도 가끔씩은 공연되기는 했다. 드 문드/라 모네가 오페라 전용이기는 했지만 연극과 발레도 공연되었다. 드 문드/라 모네는 합스부르크의 Prince Charles Alexander of Lorraine(로레인의 샤를르 알렌산더대공)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샤를르 대공은 합스부르크제국 마리아 테레자 여제의 부군으로 음악예술에 대하여 남다른 조예가 있었다. 그러나 드 문드/라 모네의 영광은 합스부르크 말기인 오스트리아의 요셉 2세 황제 때에 침체국면을 맞이하였다. 합스부르크 치하 변방 국가들에 대한 압박 정책 때문이었다.

 

라 모네의 화려한 오디토리엄

                            

1795년 프랑스 혁명군이 벨기에 지방을 점령하자 드 문드/라 모네는 프랑스에 속한 기구가 되었다. 드 문드/라 모네는 예산 절감을 위한 방안으로 발레단을 해산하였다. 어느때 나폴레옹이 브뤼셀을 방문하였다. 그는 드 문드/라 모네가 대단히 황폐해진 것을 보고 이는 프랑스 제국의 명예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새로운 극장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당장 무슨 조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818년 드디어 드 문드/라 모네를 허물고 새로운 극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로서 지오-파올로 롬바르다극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네덜랜드연합왕국 시절이었다.


새로운 극장은 신고전 양식의 건물로 프랑스 건축가 Louis Damesme(루이 담메스메)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 건설한 극장은 ‘루이 담메스메극장’이라고도 불렀다. 지오-파올로 봄바르다는 복잡한 도심의 여러 건물들 가운데 있었다. 새로 짓는 극장은 넓은 곳에 자리 잡도록 했다. 여러 건물들 가운데 있으면 불이 났을 때 시급히 진화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새로운 극장은 1819년에 완성되었다. 벨기에 작곡가인 Andre Ernest Modeste(앙드레 에르네스트 모데스트)의 오페라 La Caravane du Caire(카이로의 캬라반)가 개관 기념으로 공연되었다. 드 문드/라 모네는 벨기에왕국의 독립에도 기여한바가 컸다. 당시 브뤼셀을 중심으로한 지금의 벨기에는 네덜랜드연방왕극에 속하여 있었다. 벨기에 시민들은 네덜랜드연방왕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갈망하고 있었다. 마침 그러한 때에 드 문드/라 모네에서 Daniel Auber(다니엘 오버)의 그랜드 오페라 La Muette de Portici(포르티치의 벙어리 소녀)가 공연될 예정이었다. 1830년의 일이었다. 오페라의 내용 중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는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당시 윌리엄 2세왕은 이 오페라가 불순한 세력들을 선동한다고 하여 공연을 금지했다. 그러나 드 문드/라 모네는 예정된 날인 8월 25일에 오페라 공연은 강행했다. 곧 이어 벨기에 독립을 염원하는 군중들의 폭동이 일어났으며 이어 벨기에 혁명으로 연결되었고 결국 벨기에는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로부터 25년후인 1855년 드 문드/라 모네는 뜻하지 아니한 화재로 건물의 외벽과 현관 부분만이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라 모네 거리의 밤

                      

재건에는 14개월이 소요되었다. 오늘날의 드 문드/라 모네 모습은 이때 확정된 것이다. 루이 14세의 복구양식의 건물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도금한 벽토장식과 수많은 조각들이 첨가된 화려한 극장이 되었다. 중앙 천정에는 대형 샹들리에가 걸려 웅장함을 더해주었다. 새로운 극장은 건축가인 Joseph Poelaert(요셉 �래르트)의 이름을 빌려 ‘요셉 �래르트극장’이라고 불리다가 얼마후 Teatre Royale de la Monnaie라는 공식이름을 갖게 되었다. 화재가 난 이듬해인 1856년 완성된 ‘라모네왕립극장’의 개관 기념 공연은 Halevy(알레비)의 Jaguarita I'Indienne(인도의 표범)이었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이 극장은 프랑스 작곡가들인 알레비, 오버, 마이에르베르의 작품과 이탈리아의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그리고 베르디의 작품으로 무대를 수놓았다.

  

라 모네 내부의 조명과 장식


그로부터 드 문드/라 모네는 보수와 개축을 계속하였다. 1985년 벨기에 정부는 조금조금씩 보수하지 말고 아예 대대적인 개축을 하기로 결정했다. 2년 프로젝트의 결과, 드 문드/라 모네는 웅장미와 화려함을 더한 훌륭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개축극장은 1986년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으로 화려한 오프닝을 치루었다. 총 좌석은 1,700 석이다.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드 문드/라 모네는 명실공히 브뤼셀 최고의 오페라극장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이곳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진 오페라 작품은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다.

 

- 쥘르 마스네의 Herodiate(에로디아드: 1881) - 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보다는 피냄새가 덜 난다.

- 에르네스트 라이어의 Sigurd(시구르드: 1884)

- 엠마뉘엘 샤브리에의 Gwendoline(그웬돌린: 1886) - 바그너 스타일의 순수 오페라를 만들고 싶은 샤브리에의 욕구를 표현한 작품. 8세기 영국 색슨족과 덴마크 해적간의 투쟁중에 피어나는 사랑의 이야기.

- 벤자민 고다르의 Jocelyn(조슬린: 1888) - 18세기 그레노블의 성체축일(코르푸스 크리스티)의 날에 일어난 일. 조슬린의 자장가(Angels guard thee: Oh! ne t'eveille pas encore)로 유명한 작품.

- 에르네스트 라이어의 Salammbo(살람보: 1890),

- 뱅생 댕디의 Fervaal(훼르발: 1897) - action musical 또는 lyric drama 라고 함. 바그너의 작품, 특히 파르지팔에 깊은 영향을 준 작품. 골족의 청년기사 훼르발을 사랑하는 사라센의 공주 귈랭의 이야기.

- 뱅생 댕다의 L'Etranger(이방인: 1903)

- 어네스트 쇼송의 Le Roi Arthus(아서왕: 1903)

- 피에르 드 브레비유의 Eros vainqueur(1910) - conte lyrique 라고 함. 작곡가 뱅생 댕디에게 헌전한 작품.

- 다리우스 미요의 Les Malheurs d'Orphee(오르페의 불운: 1926)

- 아서 오네거의 Antigone(안티고네: 1927)

-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Igrok(The Gambler: 갬블러: 1929) - 도스토예프스키 원작. 1860년대 유럽의 온천장인 룰레텐부르크(Roulettenburg)에서 있었던 가벼운 드라마.

- 필립 뵈스만의 La Passion de Gilles(기예의 수난: 1983)

- 마크 모리스의 L'Allegro, il Penseroso ed il Moderato(1988)

- 존 애덤스의 The Death of Klinghoffer(클링호퍼의 죽음: 1991) - 1985년 팔레스타인해방전선이 아킬르 라우로 여객선을 납차한 사건을 다룬 내용

- 필립 뵈스만의 Reigen(1993)

- 필립 뵈스만의 Wintermarchen(겨울동화: 1999)

- 필립 뵈스만의 Julie(줄리: 2005) - 오거스트 스트린베리의 1888년도 소설인 Miss Julie를 바탕으로 만든 단막의 실내오페라.

 

라 모네 앞의 조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