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urich Opera House
취리히 오페른하우스(Opernhaus)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는 1891년부터 스위스를 대표하는 오페라극장으로 명성을 떨쳐왔다. 좌석수 1,100의 비교적 아담한 극장이다. 건물 외양은 신고전 양식이지만 내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되어 있다. 현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의 전신은 1834년에 문을 연 Aktientheater(악티엔극장)이다. 바그너가 스위스에서 추방생활을 할 때에 악티엔극장은 바그너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악티엔극장은 1890년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다. 악티엔극장을 본부로 삼고 있던 취리히오페라단은 인근의 Stadttheater Zurich(취리히 시립극장)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을수 없었다. 취리히 시립극장은 1925년까지 취리히의 오페라, 연극, 뮤지컬의 중심으로서 존재하여 왔다. 1925년 취리히시는 시립극장에서 연극팀을 극장을 따로 지어 분가시키고 시립극장은 오로지 오페라 전용으로만 삼았다. 이와 함께 이름도 시립극장(슈타트테아터)에서 Opernhaus Zurich(취리히 오페라하우스)로 바꾸었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의 오디토리엄
1970년대에 이르러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의 시설이 여러모로 취약하므로 대대적인 보수를 해야 한다는 소리가 놓았다. 유럽의 다른 오페라 극장들은 이미 현대화를 이룩하였는데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만이 구태의연하다는 지적이었다. 곧이어 대대적인 보수를 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이참에 아예 새로운 극장을 건축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결국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반대 여론은 끊이지 않았다. 거의 매일 같이 거리에서 데모가 있었다. 심한 날에는 폭동과 같은 데모로 확산되기까지 했다. 점잖은 취리히 사람들이 왜 그렇게 격렬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할 정도였다. 어쨌든 1982년부터 신축공사가 시작되어 2년만에 완공되었다. 세계의 유명 성악가들과 지휘자들이 초빙되었다. 개관 기념으로는 2편의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졌다. 바그너의 Die Meistersinger von Nurnberg(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루돌프 켈터보른(Rudolf Kelterborn)의 Der Kirschgarten(벗지 정원: 안톤 체호프 원작)이었다. 새로 건축된 건물의 정면은 백색과 회색 화강암을 사용한 네오-클래식 양식이다. 베버, 바그너, 모차르트의 흉상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뒤편으로는 쉴러, 셰익스피어, 괴테의 흉상이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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