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바르셀로나 리세우 대극장(Grand Teatre del Liceu)

정준극 2007. 9. 7. 12:24

바르셀로나 리세우 대극장(Grand Teatre del Liceu)

Liceu Grand Theater: Liceu

 

리세우 대극장 오디토리엄

 

바르셀로나 라 람블라(Lal Rambla)에 있는 리세우대극장은 간단이 리세우가로 부른다. 1847년 4월 4일 오픈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세계 유수의 대규모극장으로서 음향 또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리세우는 스페인 제1의 오페라 극장이다. 유럽의 대부분 오페라극장들은 군주나 귀족의 주관아래 건설되었다. 그러나 리세우는 순전히 민간에 의해 건설되었다. 몇몇 무역업자들이 힘을 합했다. 이같은 민간주도 건설은 극장의 건축에도 영향을 끼쳤다. 리세우극장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로열 박스가 없다. 리세우는 3,500석으로 당시 유럽 최대였다. 개관 기념 연은 갈라 연주회였다. 호세 고미스(Jose Gomis)의 서곡, 역사 연극으로서 Don Fernando de Antequere, 발레로서 La rondena(론데나 아가씨), 마리아 오비올스(Maria Obilos)의 칸타타 Il region himene(천국의 왕) 등이 프로그램을 장식했다. 정작 오페를 공연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후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Anna Bolena)였다.

 

리세우 대극장의 정

 

10여년후 갑자기 불이 났다. 첫번째 시련이었다. 현관, 입구 홀, 거울의 방이라고 불리는 회랑등만 온전하고 나머지는 파손되었다. 이듬해의 재개관 때에는 벨리니의 청교도(I puritani)가 공연되었다. 두번째 시련은 1893년 시즌 첫 공연의 밤에 일어났다. 로시니의 윌리엄 텔 2막 공연중 반정부주의자 산티아고 살보도르(Santiago Salvador)의 무리들이 객석에 두개의 폭탄을 던졌다. 다행히 폭탄은 한개만 터졌다. 20여명이 그라지에서 사망했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정정은 대단히 혼돈했었다. 리세우는 당분간 문을 닿기로 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보수작업을 앞당기지 않을수 없었다. 1년후에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그러나 폭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앉았던 좌석은 그로부터 몇년동안 사용하지 않고 보존하였다. 그로부터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리세우는 마치 황금기를 맞이한 것처럼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세계의 유명 성악인들을 초빙하여 수준 높은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이 선포되자 리세우는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입었다.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재정 지원을 하여 겨우 연명할수 있었다. 몇년후 경기가 안정되자 리세우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리세우의 포이어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리세우의 전성기였다. 세계의 유명 성악가들이 거의 모두 리세우를 방문하였다. 1955년에는 바이로이트 축제오페라단이 리세우를 방문하였다. 바이로이트 축제오페라단이 바이로이트 이외의 지역에서 공연을 갖기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1994년 1월 또 다시 화마가 리세우를 찾아 왔다. 전날에 이어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를 공연키로 한 날이었다. 커튼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불길이 무대를 휩쌌다. 다음 공연은 푸치니의 투란도트였다. 두 공연 모두 취소 될수 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새로운 극장을 원했다. 안전하고 현대적인 극장을 원했다. 불이 난 극장을 정리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극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형태는 그대로이지만 내부는 대폭 개축해야 했다. 그리하여 1999년 마침내 새로운 극장이 완성되었다. 재개관 기념 공연은 투란도트였다. 5년전 계획되었다가 화재로 연기된 공연이었다.

 

파울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무대. 현대적 연출.

 

리세우에서는 수많은 스페인 작곡가들의 오페라가 초연되었다. 그러나 비르셀로나 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오페라는 역시 베르디였다. 리세우가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가장 많이 공연된 오페라는 베르디의 아이다(1877년 스페인 초연이래 2007까지 426회)였으며 다음이 베르디의 리골레토(1853년 스페인 초연이래 2005년까지 359회) , 다음이 구노의 파우스트(1864-1998, 297회), 도니제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1849-2007, 274회), 도니제티의 라 화보리타(1850-2002, 263회)였다.지금까지 리세우의 무대를 빛낸성악가들의 수는 별처럼 많다. 몽세라 카바예, 호세 카레라스, 플라치도 도밍고, 알프레도 크라우스등 이 지역 출신의 성악가들이 리세우의 무대를 빛냈음은 물론이다.

 

리세우의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