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소피아 국립오페라(Sofia National Opera)

정준극 2007. 9. 9. 07:52

소피아 국립오페라(Sofia National Opera)

Sofiyska Narodna Opera

 

 소피아국립극장 오디토리엄  

 

발칸반도의 불가리아는 이스탄불에서 중앙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소피아는 그 길목의 중심에 있다. 그러므로 수세기동안 동서문화의 교차점으로서 문화예술이 융성하였다. 특히 역사적으로는 터키의 지배아래 있었기 때문에 동양적 문화의 영향이 컸으며 지역적으로는 이탈리아에서 가까워서 이탈리아 문화의 영향이 컸다. 물론 2차대전 이후에는 러시아의 문화가 지배적이기도 했다. 불가리아는 1878년 터키로부터 해방되었다. 이후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여러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1891년 블가리아와 체코 성악가들로 구성된 Dramatichesko-operan Trupa(연극-오페라그룹)이 생긴 것은 그같은 변화의 여파였다. 이 협회는 콘서트 형태로 오페라 아리아의 밤을 개최하여 국산 오페라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질적인 구성의 협회였기에 연극 우선이냐 오페라 우선이냐라는 문제로 서로 다투다가 얼마후 해산하였다. 대신 극단 Salza i Smyah(눈물과 웃음)과 오페라단 Stolichna Operna Trupa(소피아오페라그룹)이 각각 발족하였다. 얼마후 소피아오페라그룹은 불가리아 음악원, 불가리아 음악가연맹, 그리고 러시아 유명 성악가들의 후원을 받아 Bulgarska Operna Druzhba(불가리아오페라협회)로 재출범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국제적으로 유명한 소피아오페라단의 모체였다. 불가리아오페라협회는 1908년 소피아국립극장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소피아국립극장의 외관

 

불가리아에는 수도 소피아, 바르나(Varna)등지에 모두 8개의 국립극장이 있다. 그중에서 소피아국립극장이 가장 먼저 세워졌다. 그러나 1923년 2월 화재로 전소되어 그 자리에 건물을 재건하여 이름을 유지하였다. 1929년에 완공된 신국립극장은 전통적인 말편자 모양으로 건축하였다. 한편 불가리아오페라협회는 1차대전중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가 전후인 1922년 오늘날의  Sofiyska Narodna Opera(소피아국립오페라단)으로 재출범하였다. 신축 국립극장으로 자리를 옮긴 소피아국립오페라단은 표준 레퍼토리에 추가하여 불가리아 작곡가들의 작품 공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한편 유능한 청년 성악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솔리스트 미하일로브-스토얀(Michailov-Stojan), 피터 라이체프(Peter Raichev), 토도르 마자로프(Todor Mazarov)등은 이 당시에 활동했던 전설적인 성악가들이다.

 

 바르나국립극장의 오디토리엄

 

1944년 2차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소피아국립극장은 폭격으로 파손되었다. 그로부터 소피아국립오페라단은 마땅한 공연장이 없이 이곳 저곳에서 약소하나마 오페라 공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국립오페라단은 어려운 형편속에서도 새로운 성악가들의 발굴과 불가리아 오페라의 중흥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니콜라이 기아우로프(Nicolai Ghiaurov), 디미터 우주노프(Dimiter Uzunov)등 오늘날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성악가들은 그 당시 국립오페라에서 처음 활동하기 시작했던 인물들이다. 1953년 불가리아 정부는 자부노프(Zabunov)가에 1,400석의 새 건물을 지었다. 내부는 역시 전통적인 말편자 모양이었다. 한편 오페레타와 뮤지컬 코미디를 주로 공연하는 스테판 마케돈스키(Stefan Makedonski)극장은 1948년에 문을 열었다. 불가리아국립오페란단은 수많은 레터토리를 음반으로 남셨다. 주로 Balkanton 레코드가 취입했다. 보리스 고두노프, 코반슈치나, 전쟁과 평화 등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