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페스티벌/세계의 오페라 축제

푸치니 페스티벌(Festival Puccini)

정준극 2007. 9. 21. 07:42

푸치니 페스티벌(Festival Puccini)

Puccini Festival: Torre del Lago Festival: Festival Pucciniano


 

루카 마을의 푸치니 기념상

 

푸치니 페스티벌은 자코모 푸치니를 기념하여 매년 여름(7-8월) 푸치니의 고향 루카(Lucca)에서 가까운 토레 델 라고(Torre del Lago) 호수가에서 열린다. 토데 델 라고는 휴양지인 투스카니 리비에라에 있는 비아레지오(Viareggio)에서 고작 4km 떨어져 있으며 푸치니가 태어난 루카에서 18km 떨어진 마사치우콜리(Massaciuccoli)호수와 티레니아바다(Tyrrhenian Sea) 중간쯤에 있는 마을이다.

 

푸치니 페스티벌의 메인 무대인 호수극장(Teatro del Lago)

세상에 이렇듯 아름다운 야외 오페라 극장이 있을까? 브레겐츠라면 몰라도...


푸치니 페스티벌에서는 매 시즌마다 최대 4편의 푸치니 오페라를 각각 4-5회씩 공연한다. 토레 델 라고는 호수에 면하여 있는 야외극장이다. 극장의 이름은 Teatro dei Quattromila이다. 번역하면 ‘4천명 극장’이다. 4천명의 관객을 수용할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극장은 ‘푸치니기념관’(Villa Museum Puccini)과 이웃하고 있다. 푸치니기념관은 1900년 푸치니가 지은 빌라로 1921년까지 살았었다. 그러다가 호수의 오염이 심각해 져서 비아레지오로 이사갔다. 얼마후 푸치니는 후두염이 재발되어 벨기에의 브뤼셀로 가서 수술을 받았으나 너무 늦어서 1924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푸치니는 이 빌라에 속하여 있는 방을 작은 교회로 만들었는데 푸치니의 유해는 바로 이 작은 교회에 안장되어 있다. 이 작은 교회는 나중에 사람들이 영묘로 만들었다.

 

푸치니의 생가-기념관

 

푸치니 페스티벌은 1930년부터 시작하였다. 푸치니의 친구로서 푸치니 오페라의 대본을 여러 편 맡았던 조바키노 포르자노(Giovacchino Forzano)가 솔선하여 설립했다. 브뤼셀의 병원에 누워 있던 푸치니는 찾아간 포르자노에게 ‘나는 예전에 고향마을에 가면 호수에 나가서 보트를 타고 도요새가 하늘을 날라 다니는 소리를 듣곤 했었지. 즐거운 시간이었다네. 그런데 말이야, 여보게 친구! 만일 내 오페라가 언젠가는 이 호수의 하늘에 울려 퍼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말했다. 푸치니는 마사치우콜리 호수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그의 오페라가 공연되기를 희망하였던 것이다. 포르자노는 호수에 인공섬을 만들고 무대를 세워 푸치니의 오페라를 공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푸치니 기념관의 내부

 

포르자노는 푸치니와 동문수학한 피에트로 마스카니를 만나 서로 힘을 합쳐 푸치니의 꿈을 실현하자고 다짐했다. 1930년 8월 24일 푸치니가 살던 빌라 앞 호수에 파일을 박아 임시무대를 설치하고 어떤 순회오페라단을 초청하여 라 보엠을 공연했다. 임시극장은 Carro di Tespi Lirico라고 불렀다. 라 보엠은 포르자노가 감독하고 마스카니가 지휘했다. 이듬해에도 그 순회오페라단이 또 다시 찾아 왔다. 이번에는 라 보엠과 나비부인을 공연했다. 라 보엠에는 당대의 테너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와 역시 당대의 소프라노 아델라이데 사라체니(Adelaide Saracenbi)가, 나비부인에는 소프라노 로세타 팜파니니(Rosetta Pampanini)와 테너 안젤로 미케티(Angelo Michetti)가 주역으로 출연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푸치니 페스티벌의 전신이었다.

 

 호수극장에서의 라 보엠 무대


그러나 그후 2차대전을 거치면서 정치적, 그리고 재정적 문제가 야기되어 1949년까지 단 한번의 공연밖에 없었다. 1937년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 공연이었다. 1949년에 들어서서 푸치니 서거 25주년을 기념하여 푸치니 페스티벌을 다시 문을 열었다. ‘황금서부의 아가씨’가 공연되었다. 이후 매년 임시극장에서 푸치니 페스티벌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66년 임시극장의 부근에 호수를 메운 땅이 생겨서 그곳에 새로운 극장을 짓게 되었다. 현재의 Teatro dei Quattromila(4천명극장)이다. 아름다운 호수를 배경으로 했음은 물론이다. 호수 건너편에는 작은 마을이 있다. 한밤에 이 작은 마을에서 반짝이는 불빛은 환상적인 무대 배경으로 잊지 못할 감동을 던져 주는 것이었다. 

 

 호수극장에서의 나비부인의 한 장면


이제 푸치니 페스티벌은 70년 이상의 연륜을 쌓게 되었다. 그 동안 수많은 거장들이 이 무대를 통해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놓았다. 티토 고비(Tito Gobbi)는 이곳에서 토스카를 감독하여 연출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마리오 델 모나코(Mario del Monao)가 ‘외투’(Il Tabarro)로서 고별무대를 삼았던 것도 이곳이었다. 포르자노와 마스카니가 푸치니 추모음악회를 주도한지 70년을 기념하는 2000년에는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의 나비부인과 토스카가 무대에 올려졌다. 이와 함께 카티아 리키아렐리(Katia Riciarelli)와 호세 쿠라(Jose Cura)가 푸치니의 첫 오페라인 ‘처녀 귀신’(Le Villi)를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했다. 2000년은 포르자노와 마스카니가 푸치니 추모음악회를 주도한지 70년이 되는 해였지만 푸치니 페스티벌의 회수로는 46회가 된다. 2004년 푸치니 페스티벌 50회 기념으로는 1904년 5월 28일 라 스칼라(또는 브레스키아)에서 나비부인이 초연된지 1백주년을 기념하여 나비부인이 무대에 올려졌다. 플라치도 도밍고가 지휘했으며 소프라노 다니엘라 데씨(Daniela Dessi)와 테너 파비오 아르밀리아토(Fabio Armiliato)가 나비부인과 핀커튼을 맡았다. 50주년 기념음악회의 또 다른 프로그램은 플라치도 도밍고가 푸치니로서 등장하여 그의 오페라에 나오는 여주인공(미미, 토스카, 나비부인, 미니, 투란도트 등)들이 부르는 아리아를 해설하는 뜻깊은 것이었다.


 루카 마을의 빌라 푸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