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가면무도회 - 베르디

정준극 2007. 10. 24. 13:57

가면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 The Masked Ball)

Giuseppe Verdi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북구의 베니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이다. 발트해에 면하여 있는 스톡홀름은 내륙 쪽으로 섬과 호수와 운하가 조화를 이루며 펼쳐있어서 수상도시로서의 정취를 한껏 더해 주는 도시이다. 스톡홀름의 중심가에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왕립공원(Kungsgartan)이 자립잡고 있다. 한여름 밤에 이 공원에서 열리는 야외음악회는 저 멀리 발트해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백야의 운치를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고 있다. 왕립공원의 한쪽 코너에는 왕립오페라극장(Kungliga Operan이라고 함)이 주변 교회의 첨탑들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서 있다. 북구의 전통적인 단아한 건물이다. 비엔나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이나 파리의 갸르니에 오페라극장에 비하면 훨씬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시즌에 따라 유명 오페라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 그런 오페라극장이다. 이 오페라극장의 후문쪽으로 스톡홀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인 왕립공원(쿵스가르탄)이 지척이다. 이 광장의 한 쪽에 구스타프 3세(Gustav III)의 기념상이 건너편에 있는 왕궁을 응시하듯 외롭게 서 있다. 구스타프왕은 지금으로부터 약 2백년전, 바로 이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가면무도회에 참석하고 있을 때 신임하던 측근에게 암살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그래서 극장의 인근에 그의 기념상을 세워 놓았던 것이다.

 

'가면무도회'의 무대. 가면무도회 장면

   
구스타프 3세를 암살한 사람은 안카르스트로엠(Ankarstroem)이라고 했다. 왕궁 근위대 중위 출신으로 구스타프왕과는 일찍부터 친구 사이여서 근위대를 마친후부터는 왕의 개인비서로서 활동했다. 귀족 출신의 안카르스트로엠은 넓은 영지를 가지고 있는 쟁쟁한 신분이었다. 영주이므로 보수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다. 개혁이 되어 영지를 빼앗겨 농부들에게 나누어주게 된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안카르스트로엠은 스웨덴을 위해서 지나치게 개혁적인 왕은 필요없다고 생각하고 은근히 뜻을 같이 하는 귀족들을 규합하고 있었다. 안카르스트로엠에게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아멜리아(Amelia)이다. 예술을 사랑하며 감성이 풍부한 젊은 국왕 구스타프는 오래전부터 아멜리아를 사모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남편보다는 진취적이고 활달한 구스타프왕에 대하여 사랑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가면무도회에서 리카르도와 아멜리아. 호주오페라.

 

구스타프왕과 아멜리아 사이의 예사롭지 않은 감정을 눈치챈 안카르스트로엠은 마음속으로부터 질투심이 피어올라 왕을 제거해야 겠다는 생각을 더욱 다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구스타프왕은 스톡홀름의 왕립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는 도중(어떤 자료에는 가면무도회에 참석중) 비서인 안카르스트로엠이 쏜 총탄에 맞아 절명하였다. 1792년의 일이었다. 왕이 피살된후 당국은 범인 색출을 위해 노력했지만 범인이 누구라는 것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실제로 안카르스트로엠이 구스타프왕을 살해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다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렇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더구나 당시 안카르스트로엠을 중심으로한 보수지지 세력이 그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다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소문만 무성했을 뿐이었다.

 

스톡홀름 왕립 오페라 하우스(Kungliga Operan)의 인근에 구스타프 3세 기념상이 있다.

                                           
구스타프왕이 암살된지 40여년이 지난 때에 프랑스의 유명한 극작가인 외진 스크리브(Eugene Scribe)가 구스타프왕의 로맨스와 비극적인 종말을 줄거리로 삼아 ‘가면무도회’(La Bal Masque)라는 극본을 펴냈다. 극본은 구스타프왕이 오페라극장에서 피살되었다는 내용을 감추고 좀 더 극적인 효과를 주기위해 왕궁의 가면무도회에서 살해되었다는 내용으로 엮었다. 프랑스의 다니엘 오버(Daniel Auber)라는 작곡가가 이 극본을 보고 흥미를 느껴 ‘구스타프 3세’(Gustave III)라는 타이틀로 오페라를 작곡했다. 당대의 오버는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품을 여러 편 내놓은 작곡가로서 '구스타프 3세'도 규모가 큰 그랜드 오페라였다. 그러나 이 오페라는 유럽의 격변하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리고 무대만 화려했을 뿐 음악적으로는 뛰어난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이어서 빛을 보지 못했다. 베르디가 이 극본을 읽게 되었다.

 

피날레 장면

 

베르디는 마침 나폴리의 산 카를로(San Carlo)극장으로부터 나폴리 카니발 때 공연할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던 터였다. 베르디는 처음에 셰익스피어의 King Lear(리어 왕)을 마음에 두었었다. 그러나 구스타프왕의 스토리를 읽고 나자 그 극적인 내용에 크게 감명을 받아 즉각 오페라로 작곡키로 결심했다. 대본은 엠마누엘 솜머(Emmanuel Sommer)가 맡았다. ‘가면무도회’의 작곡은 순조로웠으나 워낙 작곡을 늦게 시작하였기 때문에 연습시간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산 카를로극장은 완성된 파트부터 스코어를 가져와 연습에 들어갔다. 모두들 존경하는 베르디 선생의 새로운 작품이기 때문에 영광으로 알고 열심을 다해 준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1858년 1월에 이탈리아의 독립주의자 청년들 몇명이 파리에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를 암살하려다가 실패로 돌아간 사건이 터졌다. 당시는 프랑스와 동맹관계에 있는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 북부의 상당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폴레옹 3세에 대한 암살기도 이후 이탈리아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언론은 물론, 연극이나 오페라의 내용까지 검열하고 만일 왕정에 대한(특히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있으면 가차 없이 제재를 가하였다. 베르디의 ‘가면무도회’가 칼도마에 오른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당국은 국왕을 암살하는 내용의 오페라를 공연할 것 같으면 민중들을 선동하게 되고 결국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왕정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확산될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베르디 선생에게 작곡을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분개한 베르디는 스스로 작곡을 취소했다.

 

아멜리아 역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리니아(Maria Calignia)


당황한 것은 산 카를로극장이었다. 대대적인 선전까지 해 놓았는데 작곡이 중지되었으니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었다. 산 카를로극장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베르디 선생을 약속불이행으로 법원에 고소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나폴리의 시민들은 베르디를 격려하기 위해 거리를 행진하면서 ‘베르디 만세’(Viva VERDI)를 외쳤으며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실상 나폴리 시민들이 ‘비바 베르디’를 외쳐댔던 이면에는 당시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이끌고 있었던 국민적 영웅 빗토리오 엠마누엘(Vittorio Emmanuele)을 지지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탈리아의 빗토리오 엠마누엘 왕’(Vittorio Emmanuele Re d'Italia)라는 말의 머리글자를 따면 VERDI가 되기 때문이었다.

 

'비바 베르디'를 외치며 벽에도 Viva Verdi라고 쓰고 있는 밀라노의 시민들

 

법원에 냈던 소송은 판결이 났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판결이었다. 단, 오페라의 시대배경과 주인공 설정은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는 무대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영국의 식민지 치하였던 미국의 보스턴으로 옮겨졌고 주인공인 구스타프왕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보스턴 총독이 된 리카르도(Riccardo: T)백작으로 바뀌었다. 다른 출연진도 이름이 바뀌었다. 구스타프왕의 친구이자 비서로서 왕을 살해한 안카르스트로엠은 레나토(Renato: Bar)라고 했고 구스타프왕의 암살음모에 가담했던 리빙백작과 호른백작은 각각 사무엘(Samuel: Bass)과 토마소(Tomaso: Bar)라고 했다. 또 구스타프왕이 암살당한 운명이라고 예언한 점장이 여인 아르빗슨은 울리카(Ulrica: Cont)라는 이름을 갖도록 했다. 그러나 안카르스트로엠의 부인으로 구스타프국왕이 사랑한 아멜리아(Sop), 그리고 구스타프왕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시종 오스카르(Oscar: Sop)는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리하여 베르디의 작품중에서 가장 풍파가 많았던 ‘가면무도회’는 1859년, 베르디가 45세 때에 산 카를로극장이 아닌 로마의 아폴로극장에서 초연될수 있었다.   

 

'가면무도회'가 초연된 로마 아폴로 극장의 당시 모습

 

‘가면무도회’는 베르디의 여러 작품중에서 가장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오페라에서는 음모, 질투, 운명, 저주, 살인의 어두운 그림자가 전편을 누비며 긴박감을 고조시켜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사랑, 쾌락, 희생, 용서, 화려함도 찬란히 빛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 오페라의 줄거리가 결국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치졸한 3각관계에 불과하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이 오페라의 전편에 흐르는 주옥과 같은 아리아와 합창, 긴박하게 돌아가는 사건들, 화려한 무도회와 감미로운 로맨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과 희생과 용서라는 메시지 때문에 평범한 치정극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는 작품이 불후의 명작으로 승화되었음을 알수 있다.

 

점장이 울리카의 장면


19세기 낭만주의 오페라의 전형인 ‘가면무도회’는 전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막은 리카르도백작(보스턴 총독)의 응접실.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날의 전날 아침이다. 백작은 초청자의 명단에서 아멜리아의 이름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여인이었던가? 이때 리카르도가 부르는 아리아가 La rivedra nell'estasi(기쁨에 넘쳐 만나리)이다. 사모하는 여인에 대한 연민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는 감미로운 아리아이다. 사랑하지만 사랑할수 없는 여인! 백작의 가슴은 아멜리아에 대한 생각으로 꽉차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카르도백작으로 설정된 구스타프왕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개방적이고 활달한 인물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주의여서 스웨덴 외교적 역량을 본궤도에 오르게 한 유능한 군주였다. 그러나 진보적인 정치성향 때문에 보수적인 정적도 은근히 많았다. 구스타프왕은 예술을 사랑하고 로맨스를 추구하는 그런 인물이기도 했다. 무도회와 오페라를 애호했고 모험과 충동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자기에게 정적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천성적으로 로맨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친구이자 개인비서인 레나토의 젊은 부인을 사랑할수 있었던 것이다.

 

구스타프 왕이 가면무도회 초청자 리스트에서 아멜리아의 이름을 보고 감회에 젖어 있다. 구스타프 왕 역에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리카르도백작이 가면무도회 참석자 리스트를 살펴보고 있을 때에 측근 중 한 사람이 들어와서 요즘 마을에 마법의 주술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여인이 있다고 보고하면서 잡아들여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작의 시종인 오스카르는 그 점장이가 과연 어떤 여인인지 알아 보고 나서 처벌해도 좋을 것이라고 진언한다. 오스카르는 여자처럼 예쁘게 생겼고 언제나 맵시 있게 옷을 입는 멋쟁이이다. 원래의 극본에서는 오스카르가 왕과 동성연애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오페라에서는 그저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착하고 재치 있는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스웨덴의 오스카르라고 하면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만화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마리 앙뚜아네트가 사랑했던 스웨덴의 멋장이 청년 장교가 오스카르였다. 혹자는 오스카르가 구스타프왕을 사모했다는 추측도 한다. 말하자면 게이? 오페라에서는 남자역인 오스카르를 소프라노가 맡는다.

 

파르마극장
             

제2막은 점쟁이 여인 울리카의 집이다. 리카르도백작은 오스카르의 제안에 따라 점장의 여인의 진실(bona fides)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뱃사람으로 변장한후 울리카의 집에 들어선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틈에 아멜리아의 모습도 보인다. 아멜리아는 백각과의 죄스러운 사랑을 떨쳐버리기 위해 번민하던중 울리카라는 점쟁이 여인이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울리카에게 가면 어떤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찾아 왔던 것이다. 울리카는 아멜리아의 호소를 들은후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중에 교수대가 있는 곳에서 약초를 캐어 먹으면 사악한 사랑을 잊게 된다고 말해준다. 아멜리아는 그렇게라도 해야 겠다고 다짐하며 자리를 뜬다. 이 얘기를 백작이 우연히 엿듣는다. 다음은 백작이 운명을 점칠 차례이다. 울리카는 뱃사람으로 변장한 백작의 손을 보고 일순 놀란 듯이 말한다. 오늘 밤 첫 번째로 만나 악수하는 사람에게 살해 당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백작은 반신반의하며 자리를 뜬다.

 

울리카(라르빗슨)의 마리안 앤더슨


제3막은 캄캄한 밤중, 백작의 저택에서 멀지 않은 공터이다. 간혹 사형이 집행되는 으스스한 곳으로 묘지들도 있는 곳이다. 얼굴을 베일로 가린 아멜리아가 사형대 밑에서 약초를 캐기 위해 나타난다. 원작에는 눈덮힌 들판으로 묘사되어 있다. 캄캄한 밤중에 하얀 들판....백작과 아멜리아가 마주친다. 아무리 어둡고 얼굴을 베일로 가렸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단번에 서로를 알아본다. 백작에 아멜리아에게 사모의 심정을 털어 놓는다. 이 말에 마음이 움직인 아멜리아도 실은 백작을 사모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사랑의 듀엣이 공허한 밤하늘을 충반하게 만든다. 이때 아멜리아의 남편 레나토가 나타난다. 실은 혼자 밖으로 나간 백작이 걱정되어서 이곳까지 찾아나선 것이다. 당황하는 백작과 아멜리아! 그러나 레나토는 베일로 얼굴을 가린 이 여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충성된 비서이자 친구인 레나토는 이곳에서 백작에 대한 암살 음모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백작은 문득 친구의 한없는 우정을 느끼면서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는 죄책감으로 번민한다. 백작은 레나토에게 암살자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이 어두운 곳으로부터 이 여인을 무사히 도피시켜 달라고 부탁하고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춘다. 레나토는 베일로 얼굴을 가린 아멜리아를 데리고 빠져 나가는중에 백작을 암살하려는 음모자들과 마주친다. 사무엘과 토마소이다. 평소 백작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던 사무엘과 토마소는 이 여인이 백작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고 그 여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베일을 벗긴다. 자기의 부인임을 보고 놀람과 분노에 떠는 레나토! 그는 백작과 아멜리아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날 음모자들과 다시 만나 구체적으로 상의키로 한다. 레나토는 아멜리아를 집으로 데려가 나오지 못하게 한다.

 

아멜리아의 비올레타 우르마나

 

제4막은 백작 저택에서의 무도회 장면이다. 레나토는 그가 충성을 다바쳤던 백작에 대하여 심한 배신감에 빠져 있다. 그는 결국 백작을 암살하는 음모에 가담한다. 그는 암살 음모자들인 사무엘과 토마소가 있는 장소에 아멜리아를 데리고 간다. 사람들은 누가 백작에게 총을 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항아리 속에 이름을 써넣고 아멜리아로 하여금 뽑도록 한다. 레나토가 뽑힌다. 한편 백작은 사랑과 후회의 마음으로 번민하다가 결국 레나토를 외국에 사절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리하면 아멜리아도 함께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백작이 부르는 아리아 Ma se m'e forza perderti(아, 다른 방법은 없는가?)가 심금을 울린다. 드디어 가면무도회. 모두들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누가 누군이지 모른다. 암삼 책임을 맡은 레나토는 오스카르에게 백작이 누구인지 가르쳐 달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오스카르는 울리카 여인의 말이 생각나서 백작에 대한 암살음모를 느끼고 가르쳐주지 않는다. 순간, 레나토는 아멜리아와 함께 있는 가면을 쓴 남자를 보고 그가 백작인 것을 짐작한다. 순간 레나토의 권총에서 불이 번쩍인다. 쓰러지는 백작! 놀라는 사람들! 백작은 숨을 거두면서 자기를 죽인 레나토를 용서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멜리아는 순결하며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한다. 아멜리아가 절규한다. T'amo, t'amo(당신을 사랑합니다)가 무대를 울리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사족: 요즘엔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것 보다는 스톡홀름을 배경으로 한 공연이 더 정석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다.

 

가면무도회에서 구스타브왕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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