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나비부인 - 푸치니

정준극 2007. 10. 24. 13:59

나비부인

(Madama Butterfly)

G. Puccini

 

자코모 푸치니


오페라 ‘마다마 버터플라이’(나비부인)는 푸치니가 46세 때인 1904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나비부인은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들기 전부터 미국과 영국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어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 작품이었다. 때문에 푸치니가 나비부인을 오페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자 사람들의 관심은 더 컸다. 더구나 애절한 듯한 동양풍의 멜로디는 당시 동양에 대하여 깊은 호기심을 갖고 있던 유럽과 미국인들에게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나비부인은 원래 미국의 작가 존 루터 롱(John Luther Long)의 단편소설이다. 그는 누이인 제니 코렐(Jennie Correll)이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남편 어빈 코렐과 함께 선교활동을 위해 일본에 체류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누이로부터 초초상(Cio-cio san: 蝶蝶樣)이라고 하는 가련한 여인의 얘기를 듣고는 그 내용을 이것 저것 덧 붙여서 소설로 만들었다. '마담 버터플라이'(Madame Butterfly)라는 타이틀로 1898년 발표된 이 단편소설은 동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편승하여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극본으로 각색되어 연극무대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다. 연극 ‘나비부인’은 1900년 단막으로 뉴욕에서 초연되었지만 몇달후에 런던에서 3막으로 재구성되어 공연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영국과 일본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무대로 한 ‘나비부인’이 런던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침 토스카의 공연을 위해 런던에 갔던 푸치니는 이 연극을 보고 감명을 받아 오페라로 작곡키로 마음 먹었다. 오페라 대본은 당대의 대본가인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와 주세페 지아코사(Giuseppe Giacosa)가 공동으로 맡았다. 그리하여 세계 오페라 역사를 찬란하게 빛낸 오페라 '나비부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나비부인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중의 하나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주인공이 미해군 장교였기 때문에 더구나 관심이 많아졌던 것 같다. (참고로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에 의한 일본 개항은 나비부인 소설이 나온 때로부터 40여년 전인 1854년이었다.)

 

초초상과 핑커튼의 결혼식 무대

 

'나비부인'은 1900년경 일본에서 개항이 한창이던 시기의 나가사키가 무대이다. 당시 나가사키는 일본이 서양문물을 도입하는 관문이었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네덜란드(오란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상당히 체류하고 있었다. 각국은 이들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해군까지 파견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가사키는 외국과의 문호를 개방하는 중심지였기 때문에 산업이 상당히 발전했고 나중에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일으킬 당시에는 일본 군수산업의 제일가는 본거지였다. 그래서 나가사키는 일본군벌의 핵심지인 히로시마와 함께 2차대전중에 미국의 원자폭탄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주인공 초초상(초라는 단어는 나비를 뜻함: Sop)은 원래 명문 집안의 여식이었으나 아버지가 군국주의를 반대하다가 천황의 미움을 사서 할복자살하자 가세가 기울어져 호구지책으로 게이샤(藝者)가 되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근근이 가계를 꾸려가고 있는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도 않은 귀엽고 청순한 아가씨였다. 상대역인 핀커튼(Pinkerton: Ten)은 나가사키에 주둔하고 있는 미해군 대위로서(혹은 함장) 외국기지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게이샤인 초초상과 일단 결혼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초초상을 현지처쯤으로 생각했던 사람이다. 샤플레스(Sharpless: Bar)는 핀커튼의 오랜 친구로서 나가사키 주재 미국영사이다. 샤플레스라는 이름처럼 무딘 사람이다. 처음에는 초초상과 핀커튼의 결혼을 축하하지만 핀커튼이 기약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자 초초상을 측은하게 여겨 여러모로 신경 써주기도 했던 사람이다. 스즈키(鈴木: Suzuki: MS)는 초초상을 충실히 돌보는 하녀이다. 중매장이 고로(Goro: 五郞: Ten)는 아마 어느 집의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던 모양인데 중매장이로서 초초상과 핀커튼의 결혼을 성사시키며 호들갑을 떨지만 미국에 간 핀커튼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초초상을 부유한 야마도리(Yamadori: Bar) 공자츼 첩실로 재혼시키려고 하는 치사하고 간드러진 인물이다.

 

결혼식의 밤

 

나비부인은 전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무대배경은 바뀌지 않고 거의 똑같다. 그런 점에서 무대장치 비용은 덜 들겠지만 일본이 아닌 곳에서 공연하자면 출연진의 의상과 분장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는 어려움이 있다. 초초상과 핀커튼이 신혼살림을 차린 집은 나가사키 항구에 지척으로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에 있다. 나가사키에 가면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미나미야마테 언덕에 아직도 ‘나비부인의 집’이라는 관광명소가 있다. 원래 이 저택의 명칭은 글로버 가든(Glover Garden: 구로바엔)으로서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우버(Thomas Blake Glover)라는 부유한 영국 상인의 저택이었다. 그래서 오페라에 나오는 초초상이 살던 집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그러나 이 집이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배경 설정과 비슷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위치에 있기 때문에 상술이 빠른 일본인들은 이 집을 '나비부인의 집'이라고 선전하고 관광객들을 불러 들이고 있는 것이다.

 

나가사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나비부인의 집'(글로우버 가든)  


짧은 서곡에 이어 막이 오르면 중매장이 고로와 물색모르고 좋아서 들떠 있는 핀커튼이 등장한다. 고로는 핀커튼에게 오늘 식을 올리는 신부가 얼마나 참한지 모르겠다는 등 입에 침을 바르며 얘기한다. 핀커튼과 초초상의 결혼식이 곧 치루어질 예정이다. 하인들이 나와서 새로운 주인인 핀커튼에게 인사를 올린다. 두 명의 하인들은 허수아비 첫째, 허수아비 둘째라고 불러달라고 인사를 올린다. 어찌 보면 미국인들은 당당한 인물로만 설정되어 있고 일본인들은 대체로 비천한 인물뿐이다. 하기야 미국인은 전막을 통하여 세명밖에 나오지 않는다. 핀커튼과 샤플레스, 그리고 나중에 잠시 나와서 한두마디만 건네는 핀커튼이 미국에서 다시 결혼한 케이트(Kate: MS)이다. 잠시후 나가사키 주재 미국 영사인 샤플레스가 이마의 땀을 씻으며 들어선다. 샤플레스는 핀커튼이 이번 결혼을 너무 가볍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핀커튼은 이 일본식 집과 아름답고 귀여운 아가씨를 부인으로 하여 199년동안 조차(租借) 했노라고 농담 삼아 노래한다. 영국이 홍콩을 199년동안 조차한 것을 연상케 하는 대국의 건방진 발언이다. 이어사 핀커튼은 미국 해군은 세상 어디든지 가고 싶으면 간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이 때 핀커튼이 부르는 아리아가 Dovunque al mondo(온 세상을 돌아  다니며)이다. 핀커튼은 게이샤 아가씨와의 결혼 계약이 형식적인 것일뿐이며 언제든지 그냥 말만하면 파기할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이 얘기를 들은 샤플레스는 ‘하지만 저 자그마한 일본 아가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걱정 어린 충고를 해 준다. 핀커튼은 친구의 충고를 한 귀로 흘리면서 미국을 위해 건배하자고 제안한다. 오케스트라가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테마를 힘차게 연주하자 핀커튼과 샤플레스는 기분이 고조되어 ‘아메리카를 위하여’라면서 축배를 든다.

 

나가사키의 '나비부인의 집'(글로우버 가든)에 있는 초초상(소프라노 미우라 타마키)과 아들 조이의 기념상

 

이윽고 이날의 주인공인 신부가 입장한다. 일순간 무대는 화려한 기모노의 물결로 덮힌다. 초초상의 동료 게이샤들과 친척들이 간드러지면서도 애조를 띤 축하 노래를 부르며 뒤따라 들어온다. 초초상은 꽃송이를 한묶음 들고 있다. 젊음과 행복의 상징이다. 너무 행복해 하는 초초상을 바라보며 샤플레스의 걱정은 한결 무거워진다. 일본식 결혼식이 진행된다. 해군 장교의 정장을 입은 핀커튼은 일본식 결혼식이 흥미 있는 듯 또는 신기하다는 듯 무척 기쁜 얼굴이다. 초초상의 동료들과 친척들도 이날의 분위기를 위해 모두 재잘거리며 즐거운 표정이다. 하얀색의 전통 혼례복을 입은 초초상은 핀커튼에게 자기의 내력을 조그마한 소리로 설명해 준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는 내용이다. 초초상은 신랑 핀커튼에게 자기의 나이를 한번 알아 맞추어 보라고 짐짓 묻는다. 핀커튼이 머뭇거리자 초초상은 이제 열다섯살이라고 말하면서 함빡 웃음을 띤다. 핀커튼은 신부인 초초상이 고작 15세라는데에 약간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이다. 우리나라의 춘향이는 그래도 열여섯살이었는데...

 

초초상 역으로 인기를 끌었던 소프라노 겸 배우 캐스린 그레이슨(Kathryn Grayson)

                    

초초상은 시집올때 가지고 온 몇가지 조그마한 물건들을 소매 속에서 꺼내어 핀커튼에게 보여준다. 그 중에는 짧은 칼 한자루가 있다. 오래전에 일왕(천황)이 초초상의 아버지에게 내린 검이라고 한다. 초초상의 아버지는 그 칼로 하라기리(割腹)를 했지만 초초상은 그런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갑자기 어떤 승려가 화가 몹시 나서 나타난다. 초초상의 삼촌이다. 일찍이 불교에 출가한 승려이다. 집안 어른인 삼촌은 초초상이 일본의 신을 버리고 예수교 선교사의 집에 드나들더니 이제는 아예 양귀(서양 귀신)와 결혼까지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결혼식장을 찾아 온것이다. 삼촌은 초초상에게 가문을 더럽힌 여자라고 비난하며 저주를 퍼 붓는다. 결혼식은 한 순간 방해를 받는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초초상의 친척들은 집안 어른인 삼촌이 초초상의 결혼을 저주하자 모두 두려워하며 자리를 뜬다. 흐느껴 울고 있는 어린 초초상을 핀커튼이 위로한다. 어쨌든 결혼식은 끝났다. 핀커튼을 남편으로 섬기게 된 초초상은 이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제부터는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기원한다. 어느덧 어둠이 깔리자 두 사람은 정원에서 행복한 기분에 젖어 Viene la sera(저녁의 장막이 내리는데)라는 듀엣을 부른다. 행복을 노래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는 듯한 노래이다. 초초상은 사실 외국인과의 결혼이 두려워서 주저했음을 털어 놓는다. 그러나 지금은 무척 행복하고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이 때의 듀엣이 Notte serena(고요한 이 밤)이다.

 

핑커튼을 기다리고 있는 초초상과 스즈키. 샌프란시스코오페라

                            
제2막은 핀커튼이 빌려 놓아서 초초상이 살고 있는 집의 거실이다. 별빛 아래에서 초초상과 핀커튼이 사랑과 행복의 노래를 불렀던 때로부터 3년이 지났다. 이제 이 집에는 초초상과 하녀 스즈키, 그리고 어린아이가 하나 살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인 어린아이이다. 이름은 트러블(Trouble)이라고 했다. 초초상은 남편 핀커튼이 언젠가는 돌아 올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3년을 보냈다. 이제는 가지고 있던 얼마만큼의 돈도 다 떨어져 생활이 곤궁하다. 남편을 기다리는 초초상의 애타는 노래가 가슴을 저민다. 유명한 아리아 Un bel di vedremo(어떤 갠 날)이다. 애절하면서도 격정적인 아리아이다.


“그 분은 떠나기 전에 말씀했어요.

‘오, 버터플라이, 귀엽고 자그마한 아가씨!

예쁜 저 새가 보금자리를 트는 계절에 돌아오겠소!’라고.

그 분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울기는 왜 울어? 의심하지 말아야지!

어떤 갠 날, 바다 저 멀리서 연기 피어오르고 배가 나타나요.

하얗고 큰 배는 항구로 들어오며 예포를 쏘고.

보이지? 아, 그 분이 왔어요.


나는 만나러 가지 않을테야. 언덕에서 기다리는 거야.

얼마든지 기다릴수 있어요. 그런 기다림은 괴롭지 않아요.

그 분은 언덕을 올라오며 뭐라고 말씀 하실까?

멀리서부터 ‘나비야!’라고 부를걸.

하지만 난 대답하지 않고 숨을 테야.

그렇지 않으면 반가워서 죽고 말테니까.

그러면 그 분이 다가와서 나를 부를테지.

‘오렌지 꽃 같은 나의 아가씨’라고...

                

이러한 때에 중매쟁이 고로가 나타나 초초상에게 야마도리(Yamatori: Bar)공자와 재혼하라고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돈 많은 중년 귀족으로 초초상을 무척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초상은 ‘결혼한 사람이 어떻게 또 결혼하란 말입니까?’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조소를 보낼 뿐이다. 그러자 고로는 ‘남자가 아내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이혼 사유가 된다.’고 하면서 계속 설득하지만 초초상은 ‘나의 나라,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아요’라면서 단호하게 뿌리친다.

 

'나비부인' 포스터

 

나가사키 주재 미국 영사 샤플레스가 초초상을 만나러 왔다. 샤플레스도 초초상에게 현실을 생각하여 살길을 찾으라고 하면서 부유한 야마토리공자와 재혼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고 은근히 권유한다. 샤플레스는 미국으로 돌아간 핀커튼이 케이트라는 여자와 결혼하여 재미있게 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 사실을 차마 초초상에게 말하지는 못한다. 초초상은 샤플레스가 슬며시 재혼을 권유하는 것 같자 방으로 뛰어 들어가 어린아이를 안고 나온다. 초초상은 마치 항변이라도 하듯 ‘일본 아이들 중에 머리가 노랗고 눈이 파란 아이가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이 아이의 이름은 지금은 트러블(Trouble: 괴로움: 원어로는 Dolores 슬픔)이지만 얼마 안 있으면 조이(Joy: 기쁨)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듯 말한다. 이러한 초초상의 태도에 샤플레스는 핀커튼이 미국에서 결혼했다는 얘기를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하고 그대로 초초상의 집에서 나온다.

 

시카고 뉴시티극장 무대. 초초상의 결혼식 준비.

                          

잠시후 저 멀리 항구로부터 대포소리가 들린다. 초초상은 무슨 예감이 들어서인지 몹시 들떠있다. 과연 핀커튼의 함선이었다. 초초상은 기쁨에 넘쳐서 어쩔줄 모른다. 제발 꿈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스즈키와 함께 집안을 치우고 꽃을 꺾어 장식하는 듯 부산을 떤다. 초초상과 스즈키가 마당에 벛꽃의 꽃잎을 흩날리듯 뿌리며 핀커튼이 찾아 올 것에 대비한다. 초초상과 스즈키가 부르는 ‘꽃의 이중창’ Gettiamo a mani(손안에 가득히)이 가슴을 저민다. 아름다운 곡이다. 어느덧 땅거미가 방안으로 쓰며든다. 그래도 핀커튼은 나타나지 않는다. 엄마와 아기, 그리고 스즈키가 소리없이 마루에 고즈넉이 앉아 기다린다. 초초상의 모습이 창호지 문으로 투영되어 한 없는 적막함을 한 없는 안타까움과 긴장으로 몰고 간다. 초초상의 애타는 기다림을 대신 표현하듯 부드러운 멜로디가 무대 뒤로부터 들린다. ‘허밍 코러스’이다. 이토록 애절한 합창도 없을 것이다. [관중석에서는 손수건이나 티슈를 꺼내어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들을 볼수 있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무대. 결혼식 장면

                 

제3막. 같은 장소이다. 초초상이 미닫이 문에 기대어 석상처럼 앉아 있는 모습이 전날 저녁과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철모르는 아이는 초초상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다. 핀커튼이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할 때는 어둠이 스며들던 때였지만 지금은 미닫이문 밖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아침이다. 초초상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침이 밝아오자 초초상은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방에 누이기 위해 일어서면서 애처로운듯 조용조용 노래를 부른다. Dormi, amor mio(자거라! 내 사랑아)이다. 한없는 연민의 정이 스며있는 노래이다. 얼마후 드디어 핀커튼인 나타난다. 그러나 낯선 미국 여인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핀커튼과 케이트는 샤플레스로부터 편지를 받고 초초상이 낳은 아이를 양자로 데려가기 위해 일본에 다시 온 것이다. 스즈키가 이들을 처음 마중한다. 잠시후 방에서 나온 초초상은 스즈키가 아무 말도 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모든 사실을 깨달은듯 얼굴이 창백해진다. 이때 부르는 초초상의 아리아가 Tutto e finito(이제 모든 것이 끝났어요)이다. 버림받은 여인, 아이의 장래...이런 생각들이 초초상을 번민의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초초상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남편 핀커튼을 만나 그저 울고만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자신과 아이를 위해 울어야 함을 깨닫는다. 초초상은 핀커튼 부부에게 자기가 아들을 포기하겠노라고 약속한다. 다만 마지막 부탁이 있으니 모두 반시간쯤 후에 다시 와 달라고 말한다. 핀커튼과 케이트, 샤플레스가 자리를 떠난다. 초초상은 초연한 자세로 그동안 고히 간직하였던 아버지의 유품인 단검을 꺼낸다. 칼에는 ‘명예롭게 살지 못할 때에는 명예롭게 죽음을 택하라’는 글귀가 새겨 있다. 초초상은 아들의 눈을 가려주고 혼자 놀도록 한다. 엄마의 죽음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초초상은 가슴이 메어지는 듯 Piccolo Iddio(귀여운 나의 우상)이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사랑하는 아들과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작별을 한다. 그리고 칼을 들어 스스로를 찌른다.


“귀여운 나의 우상, 나의 백합, 나의 장미.

너의 깨끗한 눈에 나비가 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네가 바다 건너로 가서 컸을 때 이 엄마가 너를 버렸다고 슬퍼하지 말아야 해요.

오, 하늘이 내게 주신 것. 나를 봐요. 이 엄마의 얼굴을 똑똑히 봐 두어요.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도록...내 사랑, 안녕, 안녕, 자 어서 놀러 나가렴...” (목소리가 약해진다.)

 

초초상의 자결의 장면

                           

철모르는 아이는 한 손에 조그마한 미국 국기(성조기)를 들고 재미난듯 이리저리 뛰어 놀고 있다. 밖에서 핀커튼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버터플라이, 버터플라이...’ 그러나 때는이미 늦었다. 단검이 마루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3년전 결혼식에서 입었던 그 하얀 옷에 빨간 무늬가 번진다. 초초상은 손을 뻗쳐 아들의 손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핀커튼이 방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핀커튼은 점점 차가워지는 초초상의 몸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핀커튼이 수치스러운 자기의 행동 때문에 비탄의 심정으로 흐느껴 울때 막이 내린다. 관중들의 눈시울에도 안개가 자욱히 서린다.

 

나비부인 영화(테너 마리오 란자, 소프라노 캐스린 그레이슨) 

                    

[한마디] 나비부인은 한때 일본에서 공연을 꺼려 했던 일이 있다. 내용이 너무 비참해서였다. 어째서 미국 사람은 제멋대로 해도 되고 가련한 일본 여인만 비참하게 목숨을 끊어야 하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나비부인의 칼에 새겨진 대로 ‘명예롭게 살지 못할 때에는 명예롭게 죽음을 택하라’는 말이 한줄기 빛나는 메시지가 되어 살아남으로서 이 오페라는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한마디 더] ‘나비를 잡아 자루 속에 넣자!’ 이것은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초연된 후 일부 비평가들이 잡지에 게재한 글의 제목이다. ‘나비부인’의 초연은 일대 실패였다. 당시 오페라 관객들은 그 날의 공연에 대하여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이었다. 재미있게 감상했으면 환호를 보내며 난리였고 재미없게 보았으면 유감없이 야유를 보냈다. 어떤 경우에는 야유꾼들을 사서 투입하는 경우가 있었다. 자기 작품이면 환호를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싫어하는 사람의 작품이면 야유를 보내기 위해서이다. 이런 사람들을 클레이크(Claque)라고 불렀다. 박수부대 겸 야유부대였다. ‘나비부인’의 초연에도 누가 동원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나비부인’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기모노를 입은 나비부인이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하자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아리아였지만 야유 소리에 파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누군가 ‘라 보엠 멜로디와 같네...별거 아니잖아!’라고 소리쳤다. 사랑의 듀엣이 펼쳐질 때에도 ‘미미와 로돌포의 듀엣과 다른게 뭐가 있는가?’라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클레이크: Claque. 프랑스어로 극장에 고용된 박수부대 또는 아첨 떠는 무리를 말함)

 

초초상의 마리 윌렴스

           

2막에서의 사정은 더 나빴다. 어느 장면에서 갑자기 무대의 한쪽으로부터 세찬 바람이 불었다. 아마 누가 무대 뒤편 문을 열어 놓았던 것 같다. 아무튼 이 바람 때문에 여주인공 나비부인의 기모노 자락이 휘날려 위로 올라갔다. 기모노 아랫자락이 바람 때문에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임신복을 입은 것 같이 보였다. 누군가 ‘나비부인이 애를 뱄네! 하하하’라고 소리쳤다. 다른 누가 ‘지휘자 아이야!’라고 소리쳤다. 지휘자와 그 소프라노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사실은 당시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2막과 3막 사이에는 짧은 간주곡이 있다. 새소리가 울리는 장면이다. 새소리가 나자마자 일부 관객을 포함한 야유꾼들이 새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당나귀 소리, 송아지 소리, 양 소리, 염소 소리까지 흉내 냈다. 난장판이었다. 3막도 소음과 동물 소리 야유로 정신을 치리지 못할 정도였다. 이렇게 하여 ‘나비부인’의 초연은 야유와 비판으로 끝났다. 오늘날 ‘나비부인’은 그 아름다운 멜로디와 슬픈 사랑의 이야기로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비부인’을 테마로 하여 얼마 전 새로운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선보인 일이 있다. ‘미스 사이공’이었다. 1900년대의 나가사키가 1970년대의 사이공으로 무대만 바뀌었지 스토리는 거의 같다. 가련한 나비부인과 미스 사이공을 울린 남자는 둘 다 미군 장교였다. 나가시키에서는 2005년부터 매년 '나비부인국제성악콩쿠르'가 열린다. 재능있는 성악인의 발굴을 위해서이다. Nagasaki Madama Butterfly International Concours라고 부른다.

 

뮤지컬 '미스 사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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