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돈 조반니 - 모차르트

정준극 2007. 10. 25. 09:21

돈 조반니

(Don Giovanni)

W. A. Mozart 

 

중세 스페인에 돈 후안 테노리오(Don Juan Tenorio)라는 희대의 난봉꾼이 있었다. 우리가 보통 ‘돈 판’이라고 부르는 인물이다. 젊은 귀족인 돈 후안은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기록적인 걸 헌팅 행각을 펼쳤다. 2천명에 65명을 더한 2천65명! 돈 후안이 농락했던 여자들이 그만큼이나 됐다. 돈 후안의 하인인 레포렐로가 돈 후안을 따라 다니면서 일일히 수첩에 기록한 것을 보면,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에서 231·명, 프랑스에서 100명, 터키에서 91명, 그리고 모국인 스페인에서 무려 1,003명의 여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누구도 돈 후안만한 여성편력은 기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후안 자신은 ‘완전한 사랑의 여성을 찾아 헤맸으나 모두 헛된 노력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을 찾기는 찾았는데....사람들이 나의 진정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그 여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찾았다는 것일까?

 

돈 오타비오, 돈 조반니, 돈나 안나, 돈나엘비라. 베를린 코미셰 오퍼.

 

돈 후안이 실제 인물인지 또는 전설적인 인물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던중 스페인의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 1579-1648)라는 수도승이 '세빌리아의 사기꾼'(El Burlador de Sevilla)이라는 소설을 쓴 것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 돈 후안의 행적을 소개하므로서 돈 후안이라는 인물을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조차 일약 유명인사로 데뷔시켜 주었다. 그러나 돈 후안에 대한 얘기가 정작 유명해진 것은 모차르트 때문이었다. 모차르트는 돈 후안 스토리를 듣고 흥미를 느낀 나머지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돈 후안의 성격과 행동이 자기 자신의 성격이나 행동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열이면 열 모두 돈 후안처럼 방탕하기만 한 귀족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본은 로렌조 다 폰테(Lorenzo da Ponte)가 맡았다. 모차르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대본가였다. 다 폰테 역시 연애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유명인사였으므로 모차르트와 감정이 합동하였을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다 폰테가 대본을 맡았으니 제목도 돈 후안의 이탈리아어인 돈 조반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오페라라고 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이탈리아어로 만들어야 품위유지가 되었다. 로렌조 다 폰테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의 대본을 썼다.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와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원래 티르소 데 몰리나의 소설에서는 돈 후안을 일종의 인생 순례자로 그려 놓았다. 즉, 돈 후안을 단순히 여성편력이나 일삼는 호색한으로 그려 놓은 것은 아니라  인생의 참 목적을 찾기 위해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어쩔수 없이 방황하는 인물로 그려 놓았다. 대본가인 다 폰테는 이런 순례자적 요소는 거의 모두 빼버리고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엎치락뒤치락하는 연애행각과 그런 못된 탕아는 결국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 및 인생경종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었다. 이런 대본에 천재 모차르트가 완벽한 음악을 창조하여 살을 붙여 놓았으니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한 상황의 연속이 아닐수 없었다. 다만, 모차르트 특유의 ‘우울한 아름다움’이 간혹 부분마다 등장하기 때문에 혹시 이 작품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혼동할 경우가 있을 뿐이다. 오페라 ‘돈 조반니’는 희극도 비극도 아닌 그야말로 ‘모차르트의 오페라’일 뿐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는 다른 오페라에 비하여 공연시간이 길다. 그래서 혹시 하품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수 있지만 '만일 돈 조반니라는 인물이 나 자신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가 있을 것이다.

 

마을 파티에서 결혼을 앞둔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돈 조반니


고향 잘츠부르크를 박차고 나와 비엔나로 온 청년 모차르트는 오페라에 대한 그의 실력을 비엔나의 한다하는 인사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어 콧대 높은 비엔나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하여 나온 것이 징슈필 형태인 ‘후궁에서의 도주’와 불후의 명작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후궁에서의 도주’는 터키풍의 세팅과 재미난 스토리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지만 ‘피가로의 결혼’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귀족에 대한 지나친 풍자 때문이었다. 어찌 감히 하인이 영주인 백작나리를 골탕 먹일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피가로의 결혼’은 경직된 합스부르크의 비엔나에서 환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프라하에서는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당시의 프라하는 부다페스트를 능가하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제2의 도시였다. 프라하에는 듀세크(Duschek)라는 귀족이 살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우연한 기회에 듀세크 집안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하기야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 음악가를 싫어하는 사람은 극소수의 라이벌밖에 없었다. ‘피가로의 결혼’이 프라하에서 대성황을 이루었지만 모차르트는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듀세크의 가족들은 프라하에서 ‘피가로의 결혼’과 ‘후궁에서의 도주’가 대환영을 받자 모차르트에게 서한을 보내어 '아니 우린 정말 당신의 오페라를 좋아하는데 제발 한번 오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제안하였다. 모차르트는 비엔나에서 이런 저런 일로 골치가 아프던 차에 잘 되었다고 싶어서 프라하를 방문했다. 지금은 비엔나에서 프라하까지 자동차로 서너 시간이면 가지만 당시에는 하루 종일이 걸리는 먼 거리여서 평상시 나들이 하듯 갔다고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라하에 온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음은 물론이었다.

 

환락의 돈 조반니(바리톤 마리우츠 크비치엔). 메트로폴리탄 무대.
                                      

프라하에서의 ‘피가로의 결혼’ 은 이탈리아의 순회 오페라단이 공연했다. ‘피가로의 결혼’의 대본도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이탈리아 오페라단의 공연이 제격이었다. 이탈리아 오페라단은 ‘피가로의 결혼’에 홀딱 반했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재미있고 그리고 너무 순수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오페라단은 프라하를 방문하여 직접 지휘까지 해준 모차르트에게 고마워하며 어쩔줄 몰라 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오페라단의 단장이 결심이나 한듯 모차르트에게 '선생님! 정말 외람되게 부탁드립니다마는 저희들을 위해 다른 오페라를 한편만 꼭 작곡해 주실수 없는지요?'라며 간청했다. 마침 그 당시 모차르트는 스페인의 데 몰리나가 쓴 돈 후안 얘기에 집착하고 있었다. 한편 프라하 국립극장도 모차르트에게 레오폴드 2세 신성로마제국황제의 조카딸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오페라를 한편 부탁하려 했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비엔나에 돌아오자마자 로렌초 다 폰테의 대본에 의한 '돈 조반니'의 작곡에 착수하였고 그해 9월에는 다시 프라하로 가서 마지막 오케스트레이션을 마무리하였다. 이렇게 하여 1787년 10월, 모차르트가 31세 때에 프라하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돈 조반니'의 역사적인 초연이 있었다. 프라하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했던 이탈리아 오페라단이 공연을 맡았음은 물론이다. '돈 조반니'의 프라하 초연은 모차르트가 직접 지휘하였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Leopold)는 '돈 조반니'의 프라하 초연이 있은지 두어달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의 작곡에 열중하느라고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극중에서는 아버지 레오폴드를 묘사한 부분이 많이 있어서 그것으로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대신했다는 후문이다.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1719-1787).


'돈 조반니'의 비엔나 초연은 프라하 초연으로부터 거의 1년 후에나 이루어졌다. 프라하에서 '돈 조반니'가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은 이미 비엔나를 휩쓸고 있었다. 비엔나 사람들은 '돈 조반니'가 비엔나를 제치고 합스부르크의 시골도시인 프라하에서 먼저 공연된 것에 대하여 은근히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그러므로 '돈 조반니'의 비엔나 초연은 더욱 관심꺼리였다. 비엔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두었던 또 하나의 사항은 누가 주인공으로 발탁되느냐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주역들은 모차르트가 거의 전적으로 선발했다. 가장 중심되는 프리마 돈나인 돈나 안나(Donna Anna: Sop)는 모차르트의 처형인 알로이지아(Aloysia)가 맡게 되었다.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를 독일의 만하임에 갔을 때부터 알고 지냈다.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를 좋아해서 결혼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버지 레오폴드가 '아니, 지금 나이가 몇인데 결혼이나 생각하고 있단 말이냐?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어서 음악가로서 성공할 생각이나 하거라'라며 꾸짖는 통에 알로이지아를 포기해야만했다. 그나저나 알로이지아도 모차르트를 인생의 반려자로 별로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사정이 있는데 모차르트가 비엔나에 와서 처음으로 구한 하숙집이 바로 알로이지아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하숙집이었다. 그런데 알로이지아에게는 언니 한 사람과 여동생 두 명이 더 있었다. 결국 이리저리하다가 모차르트는 알로이지다의 바로 아래 동생인 콘스탄체와 결혼하였다. 속이 상한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허락도 받지 않은채 하숙집의 셋째 딸 콘스탄체(Constance)와 결혼했다. 어쨋든 모차르트로서는 알로이지아에 대한 미련이 약간 남아 있었던지 돈 조반니의 주역 돈나 안나를 알로이지아가 맡도록 했다.

 

알로이지아 베버 랑게(Aloysia Weber Lange: 1760-1839)의 초상화. 모차르트가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로서 알로이지아의 동생이 모차르트와 결혼한 콘스탄체이다.


돈 조반니의 또 다른 주역인 돈나 엘비라(Donna Elvira: Sop)는 당시 비엔나에서 알아주는 미모의 소프라노 인 카타리나 카발리에리(Catarina Cavalieri: 1760-1801)가 맡았다. 카타리나는 실은  여러 모로 모차르트와 라이벌 관계인 궁정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애인이었다. 비엔나에 온 모차르트는 무엇보다도 궁정작곡가가 되고 싶어 했다. 생활이 안정될수 있고 왕족이나 귀족들과 가깝게 지낼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살리에리가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모차르트로서는 속이 상할 일이었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픽션이긴 하지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불편한 관계를 실감할수 있다. 영화에서 보면 ‘후궁에서의 도주’에 살리에리의 애인인 카타리나를 주역으로 출연토록 함으로서 카타리나와 모차르트가 특별히 은밀한 관계에 있었던 것도 살리에리에 대한 라이벌 의식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모차르트는 그런저런 이유로 카타리나를 돈나 엘비라로 추천했다는 얘기이다. 돈나 엘비라의 아리아 Mi tradi(나의 슬픔)은 모차르트가 카타리나를 위해 특별히 작곡했다는 얘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는 돈나 엘비라의 약혼자로 나오는 돈 오타비오(Don Ottavio: Ten)를 위해서도 특별한 아리아를 마련해 주었다. 유명한 테너 아리아인 Il mio tesoro intanto(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테너 아리아는 너무나 힘든 곡이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돈나 엘비라의 파트너인 돈 오타비오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힘든 아리아를 안겨주었다는 후일담도 있다.

 

돈 조반니(Ildar Abdarzekov)가 콤멘다토레를 피해서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지만 혼백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2012년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 무대.

 

돈나 안나의 아리아 Non mi dir, bell'idol mio(말하지 마세요, 나의 사랑스런 우상이여) 역시 매우 어려운 곡이다. 생각건대 모차르트가 자기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리고 알로이지아가 그동안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그런 어려운 아리아를 만들지 않았느냐는 후문이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프라하로부터 1년후의 비엔나 공연을 염두에 두고 미리 그렇게 작곡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돈 조반니에는 이같은 테스트와 전혀 연관이 되는 않는 성격의 아리아들도 있다. 시골처녀 체를리나(Zerlina: Sop)의 아리아 Batti, batti, o bel Masetto(때려 주세요, 사랑하는 마세토여)는 팔딱팔딱하는 싱싱함과 간드러진 애교가 철철 넘치는 곡이다. 그러나 돈나 안나의 Or sai chi l'onore(누가 나의 명예를 훔쳤는가)라는 아리아는 정의를 부르짖는 준엄함이 가슴을 파고드는 훌륭한 곡이다. 그러나 저러나 이런 아리아들은 돈 조반니가 안고 있는 몇가지 문제점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돈 조반니'에 나오는 아리아들은 어렵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많다. 하기야 소프라노 주역만 세명이나 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리아가 많다는 것은 극의 흐름을 막히게 하거나 지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조반니'에 나오는 아리아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들이 되었다. 모차르트 특유의 우아함과 감미로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체를리나로 유명한 브라질 출신의 비두 사야오(Bidu Sayao)와 역시 체를리나 역으로 사랑을 받았던 함부르크 출신의 모이카 에르드만(Mojca Erdmann).


이제 나머지 출연진의 면모를 살펴보자. 주연급 조연들이다. 돈 조반니의 하인 레포렐로(Leporello: Bass)는 대개의 하인들이 그렇듯 주인을 위해 별별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지만 그런 중에도 자기 몫만은 단단히 챙기는 인물이다. 주인의 신분과 재력을 믿고 저돌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풍자적인 유머 감각이 풍부하기 때문에 가끔은 밉지 않게 생각되는 인물이다. 기사장인 돈 페드로는 딸인 안나를 농락한 돈 조반니에게 칼을 빼어 들지만 오히려 죽임을 당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돈 페드로였다. 마지막 장면에 건방지고 못된 돈 조반니를 응징함으로서 바람둥이 탕아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실 이 오페라에서 기사장 돈 페드로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묘지의 석상으로 모습을 보인 기사장의 환영은 간혹 볼프강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를 연상케 해준다. 아버지 레오폴드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들 볼프강 모차르트에게 평소 준엄한 책망을 아끼지 않았으며 특히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대단히 완고하였다. 그러고 보면 오페라 돈 조반니는 자유분방스러운 생활을 했던 모차르트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돈 조반니의 마리우츠 크비치엔, 체를리나의 모이카 에르드만. 메트로폴리탄 무대

                                          

앞서도 설명했지만 이 오페라에는 세명의 여주인공들이 나온다. 돈나 안나는 기사장(콤멘다토레)의 예쁜 딸로서 돈 오타비오와 약혼한 사이이다. 돈 조반니의 유혹에 넘어 갈뻔 하다가 겨우 위급한 사정은 모면했지만 대신 그 때문에 아버지가 돈 조반니의 칼에 쓰러지는 비운을 겪은 여인이다. 돈나 엘비라는 한때 돈 조반니와 깊은 관계에 있었으나 결국 천하의 바람둥이 돈 조반니에게 버림받은 여인이다. 아무튼 이 두 여인은 돈 조반니를 증오하고 있기 때문에 복수의 일념에 넘쳐 있다. 세 번째 여인은 체를리나이다. 체를리나는 예쁘고 발랄한 시골 아가씨이다. 곧 결혼을 앞둔 입장이지만 돈 조반니의 달콤한 유혹에는 분별 없이 약하여 하마터면 돈 조반니의 침대까지 들어갈뻔 했던 여인이다. 이 오페라에서 체를리나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몰리나의 원작에 의하면 완전한 여성을 찾아 방황하던 돈 조반니가 마침내 찾은 이상적인 여인이 바로 체를리나라는 것이다. 바로 모차르트가 마음에 그리고 있던 그런 여인이다. 예쁘고 순진하며 명랑한 체를리나! 그러나 체를리나는 돈 조반니의 품을 빠져나가 마치 한 마리의 새처럼 푸르른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체를리나 역의 안나 네트렙코

                                              

제1막 제1장은 기사장(Commendatore) 돈 페드로의 저택의 정원이다. 돈 조반니가 갑자기 집안으로부터 도당치듯 뛰쳐나온다. 기사장의 예쁜 딸인 돈나 안나에게 흑심을 품고 집안으로 스며들었다가 놀란 돈나 안나가 소리치는 바람에 집안사람들을 깨웠던 것이다. 기사장의 딸 돈나 안나가 도망치는 돈 조반니의 뒤를 쫓아 나와 돈 조반니의 팔을 움켜잡는다. 늙은 기사장이 도둑이 들어 온줄 알고 나타난다. 정원에서는 자기 딸 돈나 안나가 도망치려는 어떤 놈의 팔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사장은 순간적으로 그 놈이 불한당인 것으로 알고 칼을 뽑아 든다. 그러나 기사장은 혈기왕성한 젊은 돈 조반니의 상대가 될수 없었다. 기사장은 돈 조반니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둔다. 그 틈에 돈 조반니는 담을 넘어 도망친다. 돈나 안나와 약혼자 돈 오타비오는 알지 못하는 살인자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돈 조반니, 돈나 안나, 돈나 엘비라

 
제2장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어느 길거리이다. 향수를 적당히 풍기는 여인들이 나타난다. 보아하니 귀족 여인들이다. 그중 한명은 돈나 엘비라이다. 그럴듯한 여인들을 보고 돈 조반니가 가만 있을리 없다. 여인들에게 다가와 수작을 건다. 특히 얼굴을 부채로 살짝 가린 돈나 엘비라에게 집요하게 접근한다. 돈 조반니는 처음에 누군지 모르고 접근 했지만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보니 돈나 엘비라가 아닌가? 얼마 전에 돈 조반니가 농락하고 나서 헌신짝 처럼 차버린 여인이었다. 자기에게 접근한 남자가 돈 조반니인 것을 안 돈나 엘비라는 돈 조반니를 붙잡고 이번에는 절대로 놓아 주지 않을 요량이다. 돈 조반니는 ‘어이쿠 뜨거워!’하면서 재빨리 도망친다. 뒤에 쳐진 돈 조반니의 하인 레폴렐로는 ‘제 버릇 개 못주는 못된 인간’이라며 주인을 비난하더니 한쪽에 닭쫓던 개 모양으로 서 있는 돈나 엘비라를 진정시킨답시고 저 유명한 '카탈로그의 노래‘를 부른다. “우리 주인 나리로 말씀 드리자면 이탈리아에서 몇 명, 독일과 프랑스에서 몇 명,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몇 명, 키 작은 여자, 키 큰 여자, 금발머리 여자, 갈색 머리 여자, 오동통한 여자, 날씬한 여자 등등을 가리지 않고 치마만 둘렀다하면 참지 못하고 건드리는 인물인바 아가씨는 그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 고작 한명에 불과한데 무얼 그러느냐'는 내용이다.

 

 레포렐로의 카탈로그의 아리아 - 돈나 엘비라의 바바라 프리톨리

 

제3장은 돈 조반니의 별장이 있는 시골마을이다. 마침 그 날은 예쁘고 발랄한 체를리나와 순박한 농부 마세토(Masetto)가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다. 돈 조반니가 지나가다가 예쁜 체를리나를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돈 조반니가 체를리나에게 접근하여 달콤한 말로 유혹하자 똘똘한 것 같으면서도 뭐가 뭔지 모르는 체를리나는 잘 생긴 귀족 나리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결국 체를리나는 돈 조반니의 유혹의 말에 저항하지 못하고 La ci darem la mano(손에 손을 잡고서)라는 노래를 부르며 돈 조반니를 따라 그의 침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때  돈 조반니를 잡기 위해 시골에 있는 돈 조반니의 별장까지 쫓아온 돈나 엘비라가 돈 조반니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가는 체를리나를 돈 조반니의 손에서 떼어 놓으며 ‘아니, 오늘 결혼식을 올릴 아가씨가 저런 팔난봉에게 속아 장래를 망치려 한다!’고 소리 지른다. 마침 돈나 안나와 돈 오타비오도 기사장의 원수를 찾아 이곳 돈 조반니의 별장까지 찾아 왔다. 이들은 돈 조반니가 살인자인줄을 아직 확실히 모르고 있다. 다만 어렴풋이 돈 조반니가 살인범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돈나 안나는 ‘누가 나의 명예를 훔쳤는가?’라는 장엄한 아리아를 부르며 약혼자인 돈 오타비오에게 복수해 달라고 간청한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중의 하나이다.

 

돈 조반니 저택에서 열린 마을 사람들을 위한 파티. 가운데의 가면쓴 사람들은 돈 조반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돈나 안나, 돈나 엘비라, 돈 오타비오.

 

제4장은 돈 조반니 저택에 있는 어느 방. 돈 조반니는 곧 있을 파티를 위해 멋진 옷을 입고 축배의 노래를 부른다. Finch han dal vino(포도주는 흘러넘치고)라는 유쾌한 아리아이다. 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여 파티를 열고자 했던 것은 그 중에 체를리나가 있으므로 파티를 기회로 집에 끌여들어 아예 정복할 속셈에서이다. 제5장은 다시 돈 조반니의 저택에 있는 정원이다. 체를리나는 여전히 가벼운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남자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다. 이 꼴을 본 약혼자 마세토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와서 체를리나를 붙잡고 ‘나와 곧 결혼할 사람이 왜 다른 남자들과 웃고 떠들며 주책을 부리냐?’라고 추궁한다. 이에 체를리나는 딴에는 자기 분수를 알았는지 Batti, batti, o bel Masetto(때려 주세요, 사랑하는 마세토)라는 귀여운 아리아를 부른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나를 때리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지 못할 바엔 우리 정답게 지냅시다!’라는 내용이다. 잠시후 가면을 쓴 세사람 - 돈나 안나, 돈나 엘비라, 돈 오타비오 - 가 정원에 나타난다. 이어서 파티를 주선한 돈 조반니가 등장하여 가면을 쓴 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그럴듯한 신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여 파티에 초청한다. 저택안의 홀에서는 아름다운 메뉴엣이 흘러나온다. 초청을 받은 세 사람은 이제야 복수할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마스크의 트리오(3중창)’인 Protegga, il giusto cielo(도우소서, 은혜가 풍성한 하늘이여)를 부른다. 아름다운 곡이다. 

 

콤멘다토레가 돈 조반니의 만찬에 참석해서 그를 준열히 꾸짖는다. Kyle Ketelsen, Maurisz Kwicien

 

제6장은 파티가 열리는 저택안의 홀이다. 호색한 돈 조반니의 눈에는 풋풋한 사과와 같은 체를리나의 귀여운 모습만 눈에 어른거린다. 가면을 쓴 돈 조반니는 체를리나에게 다시 접근하여 온갖 달콤한 소리로 유혹한다. 가벼운 체를리나는 이번에도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돈 조반니의 유혹의 소리에 솔깃해 한다. 돈 조반니는 끝내 체를리나를 별실로 데리고 가서 농락하려고 한다. 사태가 이쯤되자 체를리나는 무슨 일인지 단번에 눈치 채고 비명을 지르며 돈 조반니의 마수에서 겨우 빠져 나온다. 체를리나의 비명으로 무도회는 중지된다. 세 사람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돈 조반니가 별실에 있다고 믿어 돈 조반니를 잡으로 별실로 돌진한다. 다급해진 돈 조반니는 레포렐로를 가르키며 ‘이 놈이 체를리나를 범하려 했던 놈’이라고 둘러 대지만 그런 연극에 속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13년 스코티쉬 오페라의 무대. 파티장면. 가면을 쓴 세사람은 돈 조반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

 

제2막 제1장은 돈나 엘비라의 저택 앞이다. 돈 조반니가 이번에는 돈나 엘비라의 예쁜 하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돈 조반니는 하녀를 유혹하기 위해 만돌린을 들고 달콤한 세레나데를 부른다. Deh vieni alla finertra(창문 쪽으로 나오라)라는 곡이다. 그 때 마세토를 비롯한 농부들이 곡괭이 같은 것으로 무장을 하고 돈 조반니를 잡아 족치려고 몰려온다. 돈 조반니는 마세토를 주먹으로 힘껏 쳐 쓰러트리고 도망간다. 마세토의 비명소리를 듣고 체를리나가 달려와 쓰러져 있는 마세토에게 ‘그러니까 질투하지 마세요!’라면서 위로한다. 이때 체를리나가 부르는 아리아가 Vedrai, carino(보세요, 사랑하는 당신)이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약이나 바르세요!’라는 내용이다. 보통 ‘약방의 노래’로 알려져 있는 이 아리아는 매우 밝고 귀여운 곡이다.

 

돈 조반니의 세레나데 장면

 

제2장은 돈나 안나의 집 앞이다. 돈나 엘비라는 아직도 레포렐로를 돈 조반니로 착각하고 있다. 주위가 너무 어두워서 얼굴을 확실히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레포렐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곤경에서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돈나 안나와 돈 오타비오, 그리고 마세토와 체를리나까지 들이 닥친다. 레포렐로는 할수 없이 자기야 말로 돈 조반니의 하인이라고 밝히고 용서를 빈다. 모두들 기가 막혀 말을 못하고 있다. 돈 오타비오는 기사장이 살해당했을 때 괴한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돈 조반니가 확실히 범인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부르는 돈 오타비오의 아리아가 유명한 Il mio tesoro intanto(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이다. 사랑하는 돈나 안나를 위해 돈나 안나의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내용이다. 제3장은 교회의 묘지이다. 어스름한 달밤이다. 묘지에는 기사장이 말을 타고 있는 석상이 하나 있다. 돈 조반니와 레포렐로가 사람들의 손을 피해 교회의 묘지까지 도망쳐 왔다. 두 사람은 사람들의 손에 잡혀 곤욕을 치룰뻔 했는데 요행으로 달아나게 되었다면서 한바탕 웃는다. 갑자기 지하로부터 엄숙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네 이놈, 네 놈의 웃음도 오늘밤이 마지막이다’라는 소리이다. 죽은 기사장의 모습을 한 석상에는 ‘나를 저 세상으로 보낸 악한에게 반드시 복수를 하련다.’는 글이 적혀 있다. 이 글을 읽은 돈 조반니는 호기를 부리며 ‘이봐! 레포렐로! 오늘밤 만찬에 저 석상도 초대하지 그래!’라고 장난기 있게 말한다.

 

돈 조반니 저택에서의 파티에서 춤을 추는 여인들


제4장은 돈나 안나의 방이다. 돈 오타비오가 들어와 돈나 안나에게 이제는 결혼하자고 조른다. 돈나 안나는 ‘아버지를 죽인 그 놈은 곧 발견되어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니 그때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라고 말한다. 이 때 부르는 돈나 안나의 아리아가 Non mi dir, bell'idol mio(더는 말하지 마세요, 내 사랑하는 사람이여)이다. 제5장은 돈 조반니의 저택에 있는 식당이다. 돈 조반니가 악사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있다. 그때 묘지의 석상이 뚜벅뚜벅 들어온다. 석상은 돈 조반니에게 마지막으로 회개하라고 권한다. 돈 조반니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면서 거절하며 버틴다. 그러자 석상은 ‘이제는 어쩔수 없다’면서 사라진다. 곧이어 천지가 진동하며 불길이 치솟는다. 지옥의 사자와 같은 형상들이 나타나 춤을 추며 마치 돈 조반니를 어서 속히 지옥으로 데려갈 듯한 기세이다. 마침내 돈 조반니는 비명을 지르며 지옥의 불길 속으로 떨어진다. 돈나 안나, 돈 오타비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등장한다. 식탁 아래에 숨어 있던 레포렐로가 나타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한다. 모두들 ‘나쁜 짓을 거듭하는 인간의 말로는 이런 것’이라는 교훈을 얘기하는 중에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돈 조반니의 만찬에 참석한 콤멘다토레 석상.

                             

[한마디] 오페라 돈 조반니에는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아리아 ‘더 이상 날지 못하리’기 상징적으로 나온다. [한마디 더]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와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로이지아는 예쁘고 마음씨가 고울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음악성을 가지고 있는 성악가’라고 소개하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혼은 파파 모차르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대신,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의 둘째 여동생인 콘스탄체와 결혼하였다.

 

[돈 조반니에 나오는 아리아-앙상블](괄호 한은 영어로 번역된 제목)

- La ci darem la mano(Give me your hand, Zerlina)

- Dalla sua pace(She is the Measure)

- Finch' hand al vino(Let's have a Party)

- Batti, batti(Beat me, Beat me)

- Deh vieni alla finestra(Serenade)

- Vedrai, carino(I have a cure for you)

- Il mio tesoro(Take my Beloved)

- Non mi dir bell'idol mio(Ah, My Dear Heart)

 

'악인은 지옥으로...' 지옥의 불길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돈 조반니. 시애틀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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