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라 보엠 - 푸치니

정준극 2007. 10. 28. 06:17

라 보엠

(La Bohème)

G. Puccini

 

크리스마스 이브. 카페 모무스에 모인 로돌포와 미미, 마르첼로, 쇼나르, 콜리에르

   

크리스마스 이브. 파리의 거리는 즐거움에 한껏 들떠 있다. 하지만 라틴구(꺄르티에 라땡)의 뒷골목, 어느 허름한 아파트 건물의 다락방은 썰렁하기만 하다. 어두컴컴한 방안에는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 벽난로는 언제 불을 지폈는지 모르겠다는 듯 커다란 입을 볼품없이 벌리고 있다 (어떤 연출에는 벽난로 대신 무대 한 가운데에 나무를 때는 난로를 두는 경우가 있다.) 이 방안에서 그나마 따듯함을 느낄수 있는 것은 자그마한 촛불 하나. 이 촛불 하나만이 방안을 짓누르고 있는 썰렁한 냉기에 맞서고 있다. 시인 로돌포(Rodolfo: Ten)와 화가 마르첼로(Marcello: Bar)가 손을 비비면서 추운 날씨에 대하여 불평을 털어 놓고 있다. 날씨조차 예술가들을 알아 주지 않는다는 불평이다. 마침내 로돌포가 용단을 내린다. 추위를 잠시나마 쫓아 버리기 위해 그동안 힘들게 써 놓았던 3막짜리 비극 원고를 벽난로에 태우기로 한다. 이것이 푸치니의 걸작 라 보엠의 제1막 첫 장면이다. 파리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가난한 예술가들... 그들은 스스로를 보헤미안(집시)이라고 불렀다. 가난하지만 예술과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 집도 고향도 없이 방랑하는 집시의 기질은 그들의 생활방식이었다. 오페라 라 보엠은 이들의 분방한 삶과 그 삶에 드리워져 있는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이탈리아 베리스모(Verismo: 사실주의) 오페라의 전형이다. 오페라 '라 보엠'에 나오는 사람들은 진짜 집시 출신이 아니라 집시처럼 생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카페 모무스(모뮈)를 배경으로 삼은 무대
                             

가난한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오로지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살아온 푸치니는 ‘마농 레스코’로 이름을 떨치기까지 줄곧 보헤미안과 같은 생활을 해왔다. 라 보엠은 푸치니의 보헤미안 생활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푸치니는 베르디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오페라를 완성한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마스카니, 또는 레온카발로와 함께 이탈리아 베리스모의 기치를 높이 들어올린 사람이다. 그의 오페라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가장 빈번하게 공연되는 작품들이 되었다. 나비부인, 토스카, 라 보엠, 투란도트 등...푸치니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준 가장 본질적인 작곡가이다. 감미로운 멜로디,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 드라마틱한 연출, 따듯함과 순수함, 사랑과 희생,...이런 것들이 바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본질이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이 모든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하여 푸치니의 오페라는 우리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라 보엠'은 그런 본질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카페 모무스 앞 광장


오페라 '라 보엠'의 대본은 프랑스의 시인 앙리 뮈르제(Henri Murger: 1822-1861)의 소설을 바탕으로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와 주세페 지아코사(Giuseppe Giacosa)가 완성했다. 앙리 뮈르제의 소설은 ‘보헤미안 생활의 장면들’(Scenes de la Vie de Boheme)이라는 제목의 것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대부분 픽션이지만 기둥 줄거리는 뮈르제가 젊은 시절, 자기 자신, 그리고 함께 지냈던 가난한 무명 예술가들의 실제 이야기에 바탕을 둔 것이다. 원래 소설에서의 여주인공은 그리세트(grisette)라고 불리는 파리의 아가씨였다. 그리세트는 의상실이나 양품점에서 일하는 여공 또는 여점원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런 아가씨들은 통상 제대로의 임금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눈은 높고 사치는 하고 싶으니 어쩌랴? 그래서 간혹 자기 편리한대로의 정조관념을 가지고 있기가 십상이다. 소설 속의 뮤제타가 바로 그런 여자이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뮤제타가 주인공으로 되어 있지만 작곡가인 푸치니와 대본을 맡은 일리카 및 지아코사는 미미라는 별명의 아가씨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러다보니 푸치니는 뮤제타에 대하여 미안한 감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래서 뮤제타에게 훌륭한 아리아를 마련해 주었으니 그것이 La Chanson de Musette(뮤제트의 노래) 또는 ‘뮤제타 왈츠’라고 불리는 Quando me'n vo soletta(내가 거리를 오갈 때)이다.

 

다락방에서의 네 보헤미안들. 시인, 화가, 음악가, 철학자

 

미미(Mimi: Sop)는 허술한 다락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아마 시골집에서 살기가 어려워서 파리로 올라왔고 다행히 바느질에 솜씨가 있어서 드레스에 수를 놓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생활이 어렵더라도 착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예쁜 아가씨이다. 프랑스에서는 귀엽고 착한 아가씨를 미미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발랄하고 명랑한 아가씨를 룰루(Lulu)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오페라 '라 보엠'의 주인공 미미는 별명일 뿐이며 진짜 이름은 아니다. 진짜 이름은 루치아(Lucia: 원작에는 Lucile)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미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아름다운 처녀. 로돌포의 창작과 시에 대한 이해가 어느 누구보다도 깊은 여자. 그만큼 지성적인 여자이다. 몸집은 자그마한 편. 성격은 청순하고 상냥하다. 얼굴에는 고상한 품위가 엿보이며 평소의 처신은 바르고 곱다. 혈관을 달리는 뜨거운 피는 투명한 피부를 장미 빛으로 물들이고 있지만 가녀린 모습은 병약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어서 소설은 “그와 같은 애틋한 아름다움이 로돌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를 더욱 매혹시킨 것은 바로 미미의 작은 손... 동백꽃처럼 깨끗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손이다. 언제나 방안에서 수를 놓는 일을 하면서도 손끝에 물 한방울을 적시지 않은 그 손... 여신의 손보다 희다.”라고 적어 놓았다.     

                             

로돌포(롤란드 빌라존)과 미미(안나 네트렙코)


미미를 사랑했던 로돌포는 어떤 사람인가? 소설에서는 재능있는 시인이지만 질투가 심하고 격정적이며 괴팍한 성격의 기분파로서 심지어 광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물론 오페라에서는 어느 정도 순박하고 쾌활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어서 호감을 주고 있다. 착하고 예쁜 미미와 다락방의 시인 로돌포는 결국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몇 번이나 헤어지려고 한다. 이들의 생활은 마치 지옥과 같은 것이었다. 돈을 떨어지고 몸은 병에 걸리고....이들은 이별을 순간을 위해 며칠은 행복하게 지내고 또 며칠은 보잘것 없이 지낸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 우리는 그 차이를 미미와 로돌포의 사랑을 통하여 인식할수 있다. 결국 원래부터 몸이 허약했던 미미는 헤어날 수 없는 가난, 그리고 약으로는 치유될수 없는 마음의 상처 때문에 몸을 돌보지 못하여 세상을 떠나게 된다. 죽음에 임박하여 미미는 그래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로돌포임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그런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둔채 미미는 숨을 거둔다. 이렇게 보면 라 보엠의 줄거리가 라 트라비아타(베르디)의 줄거리와 어딘가 흡사한 것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경우 모두 여주인공들(비올레타와 미미)이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 놓은채 폐결핵으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어차피 사람들은 희극보다는 비극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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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크리스마스 이브의 카페 모무스 앞 광장 모습

 

'라 보엠'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커플은 마르첼로와 뮤제타이다. 마르첼로는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화가이며 뮤제타는 그리세트로서 파리의 분방한 아가씨이다. 뮤제타는 영리하고 예쁘며 관능적이다. 그리고 기분파이다. 누구에게 지지 않는 그런 성격이다. 아름답게 치장하는데에는 천부적인 소질을 지니고 있으며 사치는 생활의 필수조건이다. 뮤제타는 마르첼로를 사랑하여 한때 열렬했지만 가난한 사랑이 밥먹여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늙었지만 돈이 많은 고위 공무원 알친도로(Alcindoro: Bass)를 파트너로 삼아 기분 나는 대로 생활을 하고 있다. 알친도로는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Sugar Daddy(슈가 대디)이다. 그러한 뮤제타도 나중에는 돈과 사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옛 애인인 마르첼로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수함을 보여준다. 뮤제타는 현실과 이상을 조화롭게 이용하는 멋있고 쾌활한, 그리면서도 의리가 있는 여인이다. 마르첼로는 로돌포에 비하여 과격하거나 괴상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리고 대체로 이상쪽 보다는 현실에 순응하는 편이다. 그래서 뮈르제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을 미미와 로돌포 대신에 뮤제타와 마르첼로를 부각해 놓았다. 라 보엠의 원작자인 앙리 뮈르제(1822-1961)는 40세도 안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뛰어난 시인 겸 작가이다. 파리의 서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다른 젊은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사실주의 문학에 대한 토론을 즐겨 했다. 뮈르제는 라틴 쿼터에 있는 카페 모뮈스(Cafe Momus)에서 친구들과 자리를 함께 하기를 즐겨했다.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부연하자면 모뮈, 또는 모무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풍자의 신으로 작가와 시인을 대변한다. 뮈르제와 주로 어울린 사람들은 시인인 귀스타브 꾸르베(Gustave Courbet), 작가인 엘렉산더 프리바 당글몽(Alexander Privat d'Anglemont)이다. 이밖에 음악가, 화가, 철학자도 뮈르제의 모임에 더러 합류하였다.

 

 꺄르티에 라땡에 있는 카페 모뮈 앞의 광장.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복잡하다.

 

실제로 카페 모뮈스(모뮈)는 라틴 쿼터의 좁은 길목에 있었으며 건물의 1, 2층은 커피점과 식당으로 사용했었다. 뮈르제의 친구인 보이스라는 화가가 스케치한 카페 모무스의 모습을 보면 오페라에서의 설정과는 차이가 난다. 오페라에서는 카페 앞에 광장이 있어서 행상들과 아이들이 북적대지만 실제 라틴 쿼터의 카페 모무스 앞은 좁은 골목길일 뿐이었다. 소설에는 카페 모무스가 세이느강 우안(右岸)의 캬르띠에 라땡(La Quartier Latin)에 있는 생-제르맹 로세루아(Saint-Germaine-l'Auxerrois) 교회 부근에 있다고 적혀 있다. 이 지역을 캬르띠에 라땡(라틴구역)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중세부터 이곳에 라틴어를 말하는 대학생들이 많아 살았기 때문이다. 소르본느 대학교 때문이었다. 라틴어를 말하는 대학생들과 함께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 예술가들은 보헤미아 스타일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라틴구역은 예술가들의 구역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라틴구역에서 살던 예술가들이 대부분 몽마르트 언덕으로 옮겨 갔다. 화가 반 고흐도 라틴구역에서 자주 지냈다. 

 

    

무명 화가가 스케치한 꺄르티에 라땡의 카페 모뮈(오른쪽 건물에 CAFE MOMUS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 사진은 현재의 라틴 구역 거리.

               

라 보엠의 초연은 지금부터 1백여년전인 1896년 이탈리아의 고도 토리노(Torino: Turin)에서였다. 사람들은 공연 전부터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이미 '마농 레스꼬'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푸치니의 또 한편 걸작이 선보이게 되기 때문이며 더구나 이날의 오케스트라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가 지휘를 맡기 때문이었다. 라 보엠 초연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극장 안은 감격의 물결로 넘쳐흘렀다. 사람들은 브라비(Bravi)를 한없이 외쳐댔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세기 이상을 지내는 동안 라 보엠은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오페라로서 그 위치를 굳게 다지게 되었다. 오페라 라 보엠의 시대적 배경은 1830년대이다. 장소는 파리 시내와 파리 시내와 교외로 되어 있다. 제1막은 앞에서 잠시 설명한대로 꺄르티에 라땡에 있는 어느 낡은 아파트의 다락방이다. 가난한 예술가 3명과 철학자가 함께 지내고 있다. 시인 로돌포, 화가 마르첼로, 음악가 쇼나르(Chaunard: Schaunard: Bar), 그리고 철학자 콜리네(Colline: Bass)이다. 이들은 돈이 없어서 집세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기분만은 낙천적이다. 집주인 베누아(M. Beboit: Bass)가 집세를 받으러 왔다가 얼렁뚱땅하는 이 젊은이들 때문에 빈손으로 내려간다. 마침 음악가 쇼나르가 들어와 돈이 조금 생겼다고 말한다. 모두들 가만히 있을수 없다. 내친김에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러 카메 모무스로 몰려간다. 오페라에서의 카페 모무스는 세느강의 퐁 뇌프 건너편, 사마르땡 가게와 붙어 있는 오래된 카페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다. 오페라 라 보엠에 카페 모무스가 등장하자 실제로  퐁 뇌프 건너편에 카페 모무스가 생겨서 오늘날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헤어지기로 결심한 로돌포와 미미. 당페르 문에서.

                        

다락방에는 로돌포 혼자만이 남아서 계속 시를 쓰고 있다. 이 때 노크소리가 조그맣게 들인다. 어떤 아가씨의 음성이 들린다. 촛불이 꺼졌다고 하면서 불을 빌리러 왔다는 것이다. 바로 옆방에 산다고 했다. 비록 옆방에 살고 있지만 두 사람이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다. 로돌포가 탁자 위의 촛불을 들고 불을 빌려 주려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진다. 어둠 속에서 아가씨가 자기 방의 열쇠를 바닥에 떨어 트렸다고 하면서 찾으려 한다. 로돌포는 열쇠를 함께 찾는 척 하면서 어느덧 아가씨의 손을 꼬옥 잡는다. 열쇠는 로돌포가 이미 찾아서 가지고 있었으며 아가씨의 손을 잡고 싶어서 계속 찾는 척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가슴 속에는 어느덧 외로운 사람들만이 느끼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싹터 오른다. 아가씨의 손은 차갑다. 로돌포는 아가씨의 건강을 걱정해 주면서 자기를 소개한다. ‘그대의 찬손. 잠시 기다리면 달이 뜹니다. 그 때까지 얘기나 나누다가 가세요. 나는 가난한 시인이랍니다. 가난하지만 가슴에는 항상 꿈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눈동자는 꿈을 불러오는군요. 이제 들려주세요. 당신에 대한 얘기를..’ 이것이 유명한 로돌포의 아리아 Che gelida mania(그대의 찬손)이다.

 

미미(안나 네트레브코)와 로돌포(빌라존 롤란도)
                                           

이어서 아가씨가 Si, mi chiamano Mimi(내 이름은 미미라고 합니다)라는 아름답고 애틋한 아리아를 부른다. 로돌포는 그제서야 아가씨의 이름이 미미인 것을 안다. ‘저는 미미라고 부른답니다. 하지만 원래 이름은 루실(Lucile)이지요. 수를 놓으면서 살아갑니다. 예쁜 백합이나 장미를 수놓는 것이 즐거움이지요. 가슴에는 언제나 꽃들이 속삭여 주어서 파란 사랑의 꿈을 키우고 있답니다’라는 내용의 아리아이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다짐한후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카페 모뮈로 가서 크리스마스를 즐겁고 뜻깊게 보내기로 한다. 두 사람이 어두운 다락방을 나오면서 부르는 듀엣 O soave fanciulla(오 귀여운 아가씨)는 이 오페라의 백미이다. 두 사람이 퇴장하며 무대 뒤에서까지 부르는 듀엣은 앞날의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듯한 예감을 던져주는 곡이다.

 

'내가 거리를 거닐 때는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노래하는 뮤제타

                                 

제2막은 캬르띠에 라땡에 있는 카페 모무스 앞의 광장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분이 거리에 넘쳐 있다. 보헤미안 친구들이 카페 앞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모두들 며칠 동안이나 굶은 듯 푸짐한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다. 함께 자리한 로돌포와 미미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화가 마르첼로만이 기분이 우울하다. 카페의 저쪽 자리에 앉아 있는 어떤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 때문이다. 젊은 여자는 마르첼로가 한때 사랑했던 뮤제타(Musetta: MS)이다. 뮤제타도 이쪽 테이블에 마르첼로가 앉아 있는 것을 본다. 뮤제타는 마르첼로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약간 소란을 부린후 유명한 ‘뮤제타의 왈츠’를 부른다. Don't you know라는 팝송으로 편곡되어 더욱 유명해진 아리아이다. Quando me'n vo soletta(내가 거리를 오갈 때)이다. ‘길을 걷노라면 남자들이 발길을 멈추고 나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모두 쳐다본다.’는 내용이다. 뮤제타는 마르첼로와 다시 만나기 위해 선물 꾸러미를 들고 뒤를 따라온 알친도로를 심부름 보낸다. 구두 굽이 부러졌으니 어서 새로 사오라는 심부름이다. 실은 뮤제타가 일부러 구두 굽을 망가트렸던 것이다. 알친도로 영감을 교묘히 따돌린 뮤제타는 마르첼로에게 돌아온다. 마르첼로도 뮤제타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심부름을 갔다고 돌아온 알친도로에게 주어진 것은 보헤미안들이 먹은 엄청난 저녁값 청구서뿐이었다.

 

카페 모뮈에서의 크리스마스 이브 자축 파티


일반적으로 보면 오페라에는 무도회가 자주 등장하지만 저녁을 먹는다든지 하는 식사장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 만찬 장면이 나오지만 주인공인 돈 조반니가 혼자 식사할 뿐이다. 다구나 석상의 저주를 받아 식사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지옥의 불길로 떨어진다. 라 보엠에서의 식사 장면은 모든 오페라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장면이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원작 소설에 적혀 있는 카페 모무스에서의 식사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본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있어서 식사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 아니던가! 한편, 소설에 따르면 음악가 쇼나르에게도 여자 친구가 있어서 카페 모뮈에 합류하였다. 훼미(Phemie)이다. 훼미는 오페라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로돌포-미미, 마르첼로-뮤제타, 쇼나르-훼미의 커플이 구성된다. 다만 철학자 콜리네만이 파트너가 없다.

 

헤어지기로 결심한 미미(카르멘 자나타시오)와 로돌프

 

우선 마시는 것. 뮤제타는 샴페인을 시켜 마셨다. 로돌포는 어차피 알친도로에게 계산서를 넘기려고 생각했으므로 비싸던 말던 샴페인을 시켰다. 샴펜은 화려하지만 소란하기도 하다. 샴페인은 뮤제타의 성격을 닮았다. 미미는 보위느(Beaune)라고 하는 프랑스 적포도주 한병을 바스켓에 담아 달라고 주문했으며 햄도 주문하여 먹었다. 아마 옛날 고향에서 마시던 포도주가 생각나서 시켰던 것 같다. 훼미는 파르페 아무르(Parfait amour)라는 칵테일을 시켰다. 소화에 좋다는 칵테일이다. 실질적이다. 이어 뮤제타는 정어리 요리와 버터를 바른 빵을 먹었고 훼미는 소고기 다진 것을 얹은 무를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테이블 와인(또는 하우스 와인)과 라인 와인을 마셨다. 메인 코스로서는 구운 벤송(Vension), 칠면조 고기, 소스를 얹은 가재요리를 시켰다. 가난한 예술가들로서는 대단한 성찬이다. 그것도 모자라 마르첼로는 고기 스튜를 시켰으며 미미는 크림 캬라멜을 후식으로 주문했다. 이것이 소설에 적혀있는 카페 모뮈에서의 메뉴였다. 그리고 미미는 몇가지 종류의 와인을 각각 다른 잔에 담아 조금씩 마시며 좋아 했다고 하며 뮤제타는 음식 접시가 새로 나올 때마다 영국 스타일로 새로운 포크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식사대는 전부 25프랑! 요즘 돈으로 25프랑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짐작건대 우리 돈으로 25만원은 더 될 것이다. 카페 모뮈스를 자주 드나들었던 작가 뮈르제로서는 평소에 주문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소설에서나마 실천했다. 실제로 뮈르제와 친구들은 ‘맹물마시는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와인을 마실 여유가 없어서 냉수만 달라고해서 마셨기 때문이었다.  

 

라틴 쿼터 다락방에서의 가난한 예술가들

 

제3막은 파리 교외의 당페르 문(La Barriera d'Enfer)이 있는 곳이다. ‘지옥문’이라고 불리는 문이다. 시골에서 파리로 들어오려면 이 관문을 거쳐야 하며 이때 턱없이 많은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지옥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로돌포와 미미, 마르첼로와 뮤제타는 이 지역에서 방을 얻어 살고 있지만 낭만은 한때일뿐 생활은 구차하기만하다. 파리의 라틴구역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낸 때로부터 두달도 훨씬 지난 어느 날이다. 2월의 바람은 아직도 쌀쌀하기만 한데 냉랭한 방의 가난한 시인과 병약한 미미는 앞으로 어떻게 살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려고 하지만 뜨거웠던 사랑의 꿈은 쓸쓸하게 사라지려 한다. 밖에 나와 있던 미미와 로돌포는 봄이 오고 장미꽃이 필 때, 그 때가 헤어져야 하는 때라고 말하면서 쓸쓸히 집안으로 들어간다. 미미는 자기의 병이 돌이킬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로돌포에게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한편, 뮤제타와 마르첼로의 경우도 만만치 않다. 이들도 서로 헤어지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페라에서는 조역인 화가 마르첼로. 그러나 원작 소설에서는 뮤제타와 함께 주인공으로 묘사되어 있다.

                                     

제4막은 다시 라틴구역에 있는 다락방이다. 로돌포는 시를 쓰고 있고 마르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도무지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로돌포와 마르첼로는 지난날의 즐거웠던 모든 추억을 떨쳐 버리려는 듯 ‘여자란 변덕스러운 존재’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유명한 2중창 Ah, Mimi, tu piu non torni(아, 미미, 거짓되고 변덕스러운 마음)을 부른다. 마침 옛친구 쇼나르와 콜리네가 찾아오는 바람에 다락방은 지난날 함께 지내던 그때의 생활로 되돌아 간듯하다. 모처럼 유쾌한 분위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뮤제타가 미미를 부축하여 들어옴으로서 당혹함과 놀라움으로 돌변한다. 미미는 몸이 몹시 쇠약해져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이다. 미미는 사랑하는 사람의 팔에 안겨 죽음을 마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뮤제타에게 간청하여 이곳으로 온 것이다. 로돌포의 팔에 안긴 미미의 얼굴에 잠시 행복의 그림자가 스쳐간다. ‘아, 나의 차가운 손! 마프(털토시)가 있으면 녹으련만! 내 손은 이대로 식어버리겠지요?’라고 말하는 미미의 목소리는 점점 흐려진다. 미미의 마음은 어느덧 몇 달전 크리스마스이브에 로돌포가 자기의 손을 잡으면서 ‘그대의 찬손’을 속삭이던 그 순간으로 달려간다.

 

지치고 병든 미미(카르멘 아나타시오)

 

뮤제타는 가장 아끼던 귀걸이를 떼어내어 마르첼로에게 주면서 어서 의사를 불러 오라고 재촉한다. 철학자 콜리네는 자기의 외투를 저당 잡혀서 마프를 구해오겠다고 나선다. 콜리네의 아리아 Vecchia Zimara(잘 있거라! 낡은 외투여)는 슬픈 분위기 중에서도 유머가 담겨 있는 곡이다. ‘넝마처럼 낡은 외투여, 그대와 내가 이별한 순간이 다가 왔도다. 부귀와 권력에 굽히지 않았던 그대! 철학자의 손이 쉬어가던 깊숙한 주머니! 충실한 벗이여, 안녕!’이라는 내용이다. 따듯한 마프와 우정의 약병...미미의 창백한 뺨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고마워요! 이젠 손이 녹네요. 로돌포! 왜 눈물을 흘리세요? 우리에겐 사랑이 남아 있어요!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겠어요. 아 손이 녹았어요! 아, 잠이 오네요...’미미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린다. 그리고 숨을 거둔다. 로돌포는 미미의 차가워진 손을 붙잡고 흐느껴 운다. ‘미미, 미미...’ 로돌포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가련한 여인의 이름을 목이 메어 부르는 중에 막이 내린다. 나비부인 때와 마찬가지로 객석 여기저기에서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미역의 안나 두카흐. 메트로폴리탄

 

잠시 등장인물에 대하여 다시한번 간단히 고찰해보자. 등장인물들은 이름만 달랐을뿐 실제 인물들을 표현하였다. 로돌포가 원작자인 뮈르제 자신을 그린 것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뮈르제는 오래전부터 사촌여동생인 안젤르(Angele)를 사랑하여 결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병약한 안젤르는 얼마후 세상을 떠났다. 안젤르는 미미였다. 화가 마르첼로(마르셀)는 뮈르제의 친구인 화가 라자레(Lazare)를 표현했다. 라자레는 당페르가(Rue d'Enfer)에 살았다. 소설에서 로돌포와 마르첼로가 미미와 뮤제타와 함게 당페르구역에 살았다고 되어 있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마르셀에게는 마리에트(Mariette)라는 애인이 있었다. 그러므로 뮤제타는 마리에트를 그린 것이다. 쇼나르는 알렉산더 샨느(Alexander Channe)라는 작곡가를 그린 것이다. 오페라에서는 애인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훼미(Phemie)도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뮈르제와 절친한 친구였다. 

 

미미에 아냐 하르테로스
                                  

푸치니는 멜로디에 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무대에 대한 재능이 탁월한 작곡가였다. 푸치니는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무대 위에서의 세세한 면까지 소홀히 하지 않고 세심하게 배려했다. 푸치니에게 있어서는 무대 위의 소품 하나하나도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도구였다. 푸치니는 무대에서의 극적인 효과가 완벽해야 이를 뒷받침하는 음악적 효과도 완벽해 진다고 믿었다. 오페라 라 보엠의 예를 들어 보면 제1막에서 로돌포가 당장의 추위를 쫓아 버리기 위해 애써서 써놓은 원고뭉치를 난로 속에 집어넣는 장면이 있다.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교차시키는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의 탁월한 전형이라고 할수 있다. 로돌포가 미미와 함께 마루바닥에서 열쇠를 찾는 척하는 장면, 뮤제타가 구두의 굽을 일부러 부러트리고 알친도로에게 새 구두를 사오라고 하면서 쫓아 버리는 장면, 그런 후에 나타난 알친도로가 카페의 청구서를 받아 들고 놀라는 장면, 미미가 중병으로 점점 쇠약해지는데도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로돌포의 태도,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 철학자 콜리네의 사회저항적 기질...이런 것들이야말로 푸치니의 드라마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숨을 거둔 미미, 절망으로 허탈해진 로돌포

                                   

[한마디] 앙리 뮈르제의 소설 ‘보헤미안 생활의 장면들’은 여러 사람이 오페라/오페레타로 만들었다.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은 훌륭한 작품이지만 뒤이어 나온 푸치니의 라 보엠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헝가리의 엠메리히 칼만(Emmerich Kalman)은 Das Veilchen vom Montmarte(몽마르트의 오랑캐꽃)이라는 제목으로 오페레타를 작곡했다. 미미를 오랑캐꽃에 비유했으며 무대를 라틴 구역에서 몽마르트로 옮겼다. 스페인의 아마데우 비베스(Amadeu Vives)는 Bohemios(집시들)이란 타이틀로 차르추엘라(스페인 스타일의 코믹 오페라)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뮈르제의 소설을 바탕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RENT)가 제작되어 대단한 갈채를 받았다.


[한마디 더] 미미역으로 가장 유명했던 성악가로는 전설적인 소프라노 넬리 멜바를 꼽지 않을수 없다. 멜바는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의 라 보엠 영국초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미국 초연에서 미미역을 맡아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멜바는 무엇이 라 보엠을 감동으로 이끌어 가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최근의 가장 훌륭한 미미-로돌포 콤비는 이탈리아의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우연의 일치인지 같은 해(1935년)에 같은 마을(모데나)에서 태어났다. 더구나 파바로티와 프레니의 어머니들은 서로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생활이 어려웠던 두 사람의 어머니들은 공장에 여공으로 다녔으며 그 때 서로 알고 지냈다고 한다.

 

꺄르띠에 라땡의 어느 허룸한 다락방에서 지내고 있는 네명의 예술가들. 이들은 스스로를 보헤미안(집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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