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라 트라비아타 - 베르디

정준극 2007. 10. 28. 06:34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G. Verdi

 

실존인물인 마리 뒤플레씨스의 초상화 

                          

비올레타! 아직도 쌀쌀한 봄바람을 갸녀린 몸으로 받으며 황량한 들판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한 송이 바이올렛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비올레타! 어딘지 가련하고 애수에 젖어 있는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하지만 비올레타라는 이름은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제일 먼저 피어 기쁨을 안겨주는 들꽃을 생각케도 한다. 비올레타(Violetta)는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인 비올레타 발레리(Violetta Valery)의 이름이다. 트라비아타(Traviata)라는 단어에는 The Woman Who Strayed(방황하는 여인) 또는 The Fallen one(버림받은 여인)이란 뜻이 있다. 비올레타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여인이었다. 비올레타는 현실과 이상 사이를 방황하는 여인이었다. 비올레타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애절한 심정으로 배신함으로서 자신을 희생한 여인이었다. 라 트라비아타의 스토리는 알렉산더 뒤마 휘스(Alexander Dumas Fils: 휘스는 아들이란 뜻: 1824-1895)의 소설 La Dame aux Camelias(동백꽃 여인)을 원작으로 하여 각색한 것이다. 카멜리아(Camelias: 영어로는 Camellia)는 동백꽃나무를 말한다. 마치 카네이션처럼 흰색과 붉은 색의 꽃이 있다. 파리의 고급 창녀인 비올레타가 자기를 추종하는 뭇 남성들에게 여인으로서 자기의 생리 상황을 과감하게 알라는 방법으로 동백꽃을 사용했다고 한다. 즉, 생리중이면 빨간색의 동백꽃을 달았으며 그렇지 않으면 하얀색의 동백꽃을 달았다는 것이다. 외국어의 번역에 능란한 일본사람들은 라 트라비아타를 동백아가씨, 즉 춘희(椿姬)라고 번역했다. ‘동백꽃 여인’이라는 소설을 쓴 알렉산더 뒤마 휘스는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산더 뒤마의 아들이다.

 

알렉산더 뒤마 휘스(Alexander Dumas, Fils) 


아들 뒤마는 20대의 청년시절, 마리 뒤플르씨스(Marie Duplessis: 1824-1847)라는 매력적인 젊은 여인을 만나 열렬하게 사랑한 일이 있다. 마리의 원래 이름은 알폰시느 플레씨(Alphonsine Plessis)였으나 파리로 올라와서 마리 뒤플르씨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마리는 파리 서쪽 노르망디 지방의 노낭-르-팽(Nomant-le-Pin)에서 태어난 가난하고 비천한 소녀였으나 환락에 물든 파리로 올라와 자기의 육체 하나를 밑천으로  호색적인 귀족들과 부유한 한량들을 상대로 부나비 같은 생활을 하여 이름을 날리던 여인이었다. 말하자면 고급 창녀였다. 마리에게 있어서 남자들은 늙거나 젊거나 그저 똑같이 여자의 뒤를 쫓는 군상에 불과했다. 마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진정한 사랑이란 없으며 모두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달려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리에게 있어서 그들은 다만 환락을 제공해주는 동물적인 존재로만 보였으며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있어서도 마리는 한낱 노리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눈부시게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그리고 귀족들과 부유층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들의 수준에 맞도록 교양을 높였다. 마리를 한번 본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과 빛나는 지성, 그리고 부드럽고 재치 있는 말솜씨를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츠(Franz Listz)는 마리가 세상을 떠난 후 ‘롤라 몽트는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마리 뒤플르씨스는 적을 만들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롤라 몽트는 당시 파리의 사교계를 주름잡던 또 다른 여인이었다. 아무튼 그러한 마리를 뒤마(아들)가 무척 사랑했다. 두 사람은 같은 나이였다. 그러나 애초부터 뒤마(아들)와 마리는 사랑을 완성할수 없었다. 이에 상심한 뒤마(아들)는 멀리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나 할까?

 

파티가 끝난 후의 고독함이 비올레타의 마음을 누르고 있다. 라 스칼라 무대.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마리는 23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병인 폐렴이 악화되어서였다. 아프리카 여행을 떠났다가 파리로 돌아온 뒤마(아들)는 마리의 죽음 소식을 듣고 말할수 없는 상심에 빠졌다. 그는 상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거의 1년동안 두문불출하면서 마리와의 애틋했던 사랑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동백꽃 여인’이 그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뒤마(아들)는 실제로 마리와 결혼하고 한동안 살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리를 마담 뒤마(Mrs Dumas)라고 적어 놓은 기록도 있다. 뒤마(아들)의 소설은 가련한 여인 마리가 세상을 떠난지 6년후에 베르디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버림받은 여인)는 1853년 3월 6일 베니스의 라 훼니체극장(Teatro la Fenice)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이로서 마리는 마치 불사조(La Fenice)처럼 되살아나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베니스 초연에서 비올레타 역을 창조한 소프라노는 홰니 살비니-도나텔리(Fanny Salvini-Donatelli)였고 알프레도 역은 루도비코 그라치아니(Ludovico Graziani)였다

                                       

장크트 마르가레텐 로마시대 야외극장에서의 라 트라비아타의 화려한 무대


베르디는 베니스시로부터 베니스 카니발 때 공연할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베니스는 오래전부터 카니발(사육제)행사를 대대적으로 해 왔으며 그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새로운 오페라의 공연이었다. 베르디는 무려 열달동안 어떤 오페라를 작곡할지 망설이며 이 작품 저 작품을 뒤져보았으나 마땅한 소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알렉산더 뒤마(아들)이 1848년에 내놓은 ‘동백꽃 여인’을 읽고 무척 감명을 받았다. 베르디는 이 소설을 소재로 오페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베르디와 콤비인 프란ㅊ스코 마리아 피아베가 대본을 맡았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뒤마(아들)의 소설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당국은 이 소설의 내용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연극공연을 허가하지 않고 있었다. 베르디는 비올레타라고 하는 여인의 애달프면서도 짧은 생애에 인간적인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베르디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과 예수 그리스도의 얘기를 머리에 떠 올렸는지도 모른다. ‘누구든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을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쩌면 비올레타를 두고 한 말씀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3개월만에 오페라는 완성되었다. 제목은 La Dame aux Camelias(동백꽃 여인)에서 La Traviata(버림받은 여인)으로 고쳤다. 비올레타는 소설에서 사치스럽고 분방하기만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오페라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상당히 순화되었다. 소설에서는 변덕스러우며 남성들을 오히려 조롱하는 여인으로 그려졌으나 오페라에서는 언젠가는 진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꿈 많은 여인으로 표현되었다. 소설에서는 현실만을 중요시하는 여인이었지만 오페라에서는 자기를 희생함으로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고귀한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라트비아 국립오페라의 공연. 소프라노 마리나 레베카(Marina Rebeka).

                                    

베니스 라 훼니체극장에서의 1853년 5월 6일 초연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출연진에 문제가 있어서였다. 테너는 고음을 소화하지 못했고 바리톤은 호흡에 어려움이 있었다. 더구나 비올레타를 맡은 소프라노는 생각보다 둔둔한 체구여서 애틋하고 가녀린 여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크게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걱정은 했었지만 오페라의 내용 때문이었다. 비올레타에 대한 얘기가 소설로는 양해될수 있다고 해도 점잖은 신사숙녀들이 보는 오페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도덕한 창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데 대하여 거부감을 보였던 것이다. 또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당시의 오페라로서는 드물게 스토리가 그 시대의 것이었다. 그러면 그 시대의 의상을 입었어야 했다. 그런데 극장측은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대에 등장하면 누가 호감을 갖겠느냐고 하면서 굳이 1백년전의 화려한 의상들을 입도록 했던 것이다. 베르디는 초연의 미진함을 커버하기 위해 몇군데 음악을 손질했다. 다음해에 베니스의 산 베네데토극장(Teatro San Benedetto)의 무대에 올린 라 트라비아타는 대성공이었다. 베르디는 산 베네데토에서의 수정본 공연을 의도적으로 라 훼니체극장에서 초연된지 꼭 1년후인 1854년 5월 6일로 잡았다. 비올레타 역은 젊고 예쁘며 아름다운 음색을 가진 마리아 스페찌아(Maria Spezia)가 맡았다. 베르디가 찾고 있었던 최적의 소프라노였다. 테너 프란치스코 란디(Francisco Landi)도 알프레도 역을 훌륭히 소화하였다. 그러므로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 년도를 1854년으로 간주하여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듯싶다.

 

라 스칼라에서의 파티 장면


라 트라비아타는 베르디의 다른 오페라에 비하여 색다른 영역에 속하여 있는 것이다. 서곡부터가 그렇다. 서곡은 세파트로 나눌수 있다. 첫부분은 비올레타의 비극적인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비올레타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회상하는 선율이 가슴을 파고든다. 베르디는 이 부분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음악이 3분이나 지속되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두 번째 파트는 열정과 그 열정의 끝인 절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1막 마지막 장면에서 강조되고 있는 환희(Delizia)와 고통(Croce)이라는 두 명제(命題)와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 두 명제야 말로 이 오페라의 에센스이다. 세 번째 파트는 비올레타가 안타까움 속에 이미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즐거워야 할 인생이 어두움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라 트라비아타의 서곡은 비올레타의 비극적인 종말을 예견하듯 애수에 넘쳐 있으며 그런중에도 사랑의 환영을 쫓는 애틋함이 담겨 있다. 결론적으로 라 트라비아타는 분별없는 열정의 마지막은 파멸이라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비극적 종말을 예견하는 비올레타 (마리아 칼라스: 1955년 라 스칼라) 


제1막. 막이 오르면 무대는 파리에 있는 비올레타의 살롱이다. 이 날도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있다. 손님들이 Dell'invito trascorsa e gia l'ora(우리는 파티에 늦었네)라는 합창을 부르며 들어온다. 비올레타가 손님들을 접대한다. 즐거운 음악과 유쾌한 대화가 무대 위에 넘쳐 있다. 만찬이 시작되기 직전, 갸스통 자작(Gaston: Visconte de Letorieres: Ten)의 안네로 알프레도(Alfredo Germont: Ten)가 들어온다. 남불 프로방스에서 올라온 알프레도는 파리생활에 익숙하고자 얼마전부터 사교계에 출입하고 있다. 사실 알프레도는 이번에 처음으로 비올레타의 파티에 참석한 것은 아니다. 그 전에도 몇번 왔었으며 그 때마다 비올레타에 대하여 남다른 사모의 정을 키워왔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갸스통 자작이 알프레도를 소개하자 식사를 하기 전에 축배의 노래(Brindisi)를 불러 달라고 청한다. 알프레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Libiamo ne'lieti(자, 건배합시다)를 부른다. 비올레타가 흥겨운 듯 알프레도의 노래에 합세한다. 옆방에서 왈츠가 흘러나오자 일부는 춤을 추러 가고 비올레타만 남는다. 비올레타는 갑자기 빈혈을 일으켜 어지러워하며 의자에 주저앉는다. 비올레타는 절제를 모르는 환락의 생활 때문인지 벌써 오래전부터 결핵에 걸려 있지만 그런 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한순간이라도 더 인생을 즐기려고 해왔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무대.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파티에서 작별을 하지만...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의 건강을 염려하여서 다시 들어온다.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의 지나친 분방한 생활을 충고하면서 1년전부터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애정을 고백한다. 알프레도의 Un di felice(당신을 만나 그날)은 아직도 시골청년으로서 사랑을 고백하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듯 주저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일단 사랑을 선언하자 Di quell'amor(이 사랑은 나의 것)이라면서 비올레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밀물처럼 표현한다. 알프레도의 사랑의 고백은 Croce e delizia al cor(내 마음속의 고통과 환희)라는 두 단어로 마무리 된다. 이 부분에서 나오는 멜로디는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변함없는 사랑을 상징하듯 전편을 통하여 간간히 반복된다.

  

화려한 파티장면. 라트비아국립오페라 무대. 마리나 레베카.

 

이러한 알프레도의 애정고백에도 불구하고 비올레타는 세상물정 모르는 순박한 이 시골청년의 사랑을 조소라도 하듯 떨쳐버린다. 그리고는 알프레도를 자기를 숭배하는 여느 남자와 마찬가지로 취급하여 가슴에 달았던 하얀 동백꽃을 건네준다. 알프레도는 비올레타가 자기의 사랑을 받아들인 것으로 믿어 기쁨으로 자리를 뜨며 곧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한다. 그럴 즈음에 파티도 끝나고 손님들이 모두 떠난다. 쾌락의 뒤에 엄습하는 외로움이 비올레타의 가슴을 적신다. 언뜻 알프레도의 그림자가 비올레타의 허전한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비올레타는 E strano, e strano(이상하네, 참으로 알수 없네)라면서 어느덧 ‘알프레도의 사랑이 진실한 것임을 느낀다. Ah, fors' e lui(아, 그대였던가)는 이때에 부르는 아름다운 아리아이다. 하지만 비올레타는 자신의 처지와  환락의 사슬에서 헤어날 수 없는 자신을 돌아보며 알프레도를 단념키로 한다. 그리고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자신을 비웃는다.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알프레도의 음성. ‘사랑은 신비롭고 숭고한 우주의 맥박’이라는 내용이다.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음성에 그만 항거할 힘을 잃은 듯 Sempre libera(나에게 자유를 주세요)라고 독백한다.

 

리비아모

                                   

제2막은 파리 교외의 시골 별장.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세상을 피하여 살고 있는 사랑의 보금자리이다. Lunge da lei per me non v'ha diletto(그대 없이는 살수 없다)라는 알프레도의 아리아는 두 사람만의 행복한 생활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행복한 생활도 돈이 없으면 궁색해지는 법. 하녀 아니나(Annina: MS)로부터 생활비가 바닥이 나서 비올레타가 가지고 있던 패물을 팔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알프레도는 돈을 마련하러 파리로 간다. 잠시후 비올레타가 홀로 있는데 알프레도의 아버지 조르지오 제르몽(Giorgio Germont: Bar)이 찾아온다. 그는 자기 아들에 대한 비올레타의 사랑이 순수한 것임을 알고 감동하지만 프로방스 시골집에 있는 딸의 혼담이 아들의 스캔들 때문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비올레타에게 헤어져 주기를 간청한다. 비올레타는 올것이 왔다는 느낌이지만 자기에게 닥쳐온 또 다른 비운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그렇지만 알프레도와 그의 가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키로 결심한다. 베르디는 라 트라비아타에서 듀엣을 감정표현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기를 즐겨했다. 제르몽과 비올레타의 듀엣은 ‘사랑과 희생’이라는 고귀한 감정을 순수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 오페라의 가장 심도 있는 장면이라고 할수 있다.

 

불안한 심정의 비올레타를 위로하는 알프레도. 뷰카레스티 오페라.

                                

비올레타는 제르몽에게 Ah, dite alla Giovine(따님에게 가서 말하세요)라는 아리아로 알프레도와 헤어질 것이니 안심하시라고 말한다. 제르몽은 비올레타의 말을 믿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떠난다. 파리에 갔던 알프레도는 어쩐지 이상한 예감이 들어 교외별장으로 급히 돌아온다. 알프레도는 비올레타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려고 하자 절망과 배신감 때문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다. 두 사람이 부르는 Dammi tu forza,l o cielo!(오 하늘이여, 나에게 힘을 주소서)는 서로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각각 다른 생각으로 부르는 듀엣이다. 마침내 비올레타는 하녀 아니나와 함께 마차를 타고 떠난다. 알프레도가 크게 허탈하여 있을때 아버지 제르몽이 다시 나타나 알프레도에게 눈물을 씻고 가문의 명예를 지켜 달라고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간청한다. 이때 제르몽이 부르는 Di Provenza il mar, il suol(프로방스의 바다와 땅)은 가슴을 울리는 훌륭한 아리아로서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과 연민의 정이 물씬 담겨있는 곡이다. 그러나 알프레도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고 일순간의 복수심에 사로잡혀 비올레타를 찾아 파리로 떠난다. 탁자위에 비올레타의 친구 플로라(Flora Bervoix: MS)로부터 온 파티 초청장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무대 천정에 거울을 이용한 피렌체 무대

              

무대는 바뀌어 제3막은 파리에 있는 플로라의 호화로운 저택이다. 흥겨운 무도회가 한창이다. 손님들을 위해 집시들과 무용수들이 스페인의 투우 춤을 멋지게 춘다. 손님들 사이에서 알프레도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후 예전처럼 화려하게 차려입은 비올레타가 두뽈 남작(Baron Douphol: Bar)과 함께 등장한다. 두뽈 남작은 비올레타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부유한 귀족이다. 알프레도는 모른척하며 카드 게임에 참여한다. 알프레도는 카드 게임에서 연정연승하여 돈을 딴다. 알프레도는 두뽈 남작에게 카드 게임을 하자고 요청한다. 두뽈 남작과 대결한 알프레도는 한판에 승리를 거둔다. 알프레도는 ‘사랑에는 패배했지만 도박에는 이긴다. 돈을 따면 아무 여자나 골라잡아서 시골로 돌아가련다!’라며 비올레타가 들으라는 듯 일부러 크게 지껄인다. 이 소리를 들은 비올레타의 가슴을 찢어질것 같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비올레타와 알프레도만 남는다.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에게 아무말 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 달라고 애원한다.

 

뷰카레스티 2014 무대. 여흥의 시간


하지만 알프레도의 귀에는 비올레타의 애원이 들리지 않는다.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의 배신을 추궁한다. 비올레타는 제르몽과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알프레도에게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두뽈 남작을 사랑합니다.’라며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로 알프레도를 단념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알프레도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극도로 흥분하여 큰 소리로 옆방의 손님들을 오도록 하여 모두의 앞에서 비올레타를 가르키며 ‘이 여자는 사랑을 배반한 여자’라고 소리치며 모욕한다. 이어 알프레도는 ‘돈만 아는 천한 여자’라고 말하면서 도박에서 딴 돈을 비올레타의 얼굴에 던진다. 비올레타는 격한 감정을 어찌할줄 몰라 그 자리에 쓰러진다. 두뽈 남작이 알프로도에게 결투를 요청하지만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사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알프레도를 동정하여서 결투를 말린다. 마침 이때 파리의 파티장까지 따라온 아버지 제르몽은 아들의 경솔한 행동을 보고 몹시 책망하여 비올레타의 진심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해 준다. 비올레타는 자신의 저주스러운 처지를 비참해 하며 한없이 흐느낀다. Di sprezzo degno, se stesso rende(모욕을 받을 사람은 그 사람)은 제르몽과 알프레도의 노래이며 이에 비올레타와 합창이 합류하는 훌륭한 곡이다.

 

집시 여인의 점

 

제4막은 어느 허술한 아파트의 침실이다. 때마침 거리에는 카니발로 들썩이고 있지만 이 방에는 어두운 장막만이 드리워져 쓸쓸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는 비올레타. 그의 가느다란 생명을 꺼져가는 촛불과 같다. 비올레타는 제르몽이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를 읽는다. 알프레도가 진실을 알고 모든 오해를 풀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비올레타에게는 지나간 일이 모두 허망하기만 하고 어떠한 장래의 희망도 없다. 그러면서도 비올레타는 ‘알프레도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나? 이런 모습으로 만나기는 싫다’면서 거울을 들고 모처럼 얼굴을 들여다본다. 수척한 모습만이 비친다. 지난날의 행복에 겨워 밝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비올레타는 모든 것을 포기한듯 Addio del passato(지난날이여 안녕)이라는 애달픈 아리아를 부른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아리아이다. 이때 알프레도가 뛰쳐 들어온다. 비올레타를 감싸 안은 알프레도는 ‘비올레타! 나는 죄 많은 사람!’이라면서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비올레타의 눈에서는 기쁨과 행복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두 사람은 이제부터 새로운 행복을 엮어 보자고 하면서 Parigo, o cara, noi lasceremo(사랑하는 그대여, 파리를 떠나서)라는 유명한 2중창을 부른다. 현실과 이상을 연결코자 하는 듀엣이다. 알프레도는 Gran Doi, morir si giovane(아, 잔인한 운명이여, 이렇게도 젊음으로 죽어야 하나)라고 울부짖는다. 제르몽이 뛰어 들어와 Ah, Violetta(아, 비올레타)를 외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비올레타는 꺼져가는 소리로 알프레도를 부른다. Vieni appresso, ascolta, Alfredo(알프레도, 이리 가까이 와서 들어보세요)는 비올레타의 마지막 소리이다. 그러나 때는 죽음의 그림자는 비올레타를 감싸고 있다.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팔에 안겨 힘없이 머리를 떨군다.

 

비올레타의 죽음. 애통해 하는 알프레도와 조르즈 제르몽. 뷰카레스티 무대.


인간애의 작곡가 베르디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비참하고 가련한 한 여인의 짧은 생애를 애절하게 다룸으로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선하다. 사회와 환경이 죄악에 물들도록 할 뿐이다. 이들이 진실된 삶을 살수있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한마디] 우리나라 오페라단에 의한 최초의 오페라 작품은 1948년 1월, 당시 명동 시공관의 무대에 올려진 라 트라비아타였다. 비올레타는 소프라노 김자경과 마금희, 알프레도는 테너 이인선과 옥인걸, 제르몽은 베이스 오현명과 황병덕씨가 맡아 했다. 이로부터 20년후인 1969년 김자경 오페라단이 창단되어 시민회관에서 역시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하였다.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주요 아리아-앙상블- (괄혼 안은 영어 제목)

- Libiamo, libiamo(Drinking Song) -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노래와 합창

- Un di felice(The day I met you) - 알프레도의 아리아

- Ah, fors' e lui(Ah, Can it be) - 비올레타의 아리아

- Sempre libera(Ever free) - 비올레타의 아리아

- Pura siccome(I have a daughter) - 조르즈 제르몽의 아리아

- Di Provenza(In Provence) - 조르즈 제르몽의 아리아

- Addio del passato(So closes my sad story) -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아리아

- Pargi, o cara(We'll find a heaven) -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아리아

 

베니스 라 페니체의 화려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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