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사랑의 묘약 - 도니체티

정준극 2007. 11. 7. 17:32

사랑의 묘약

(L'Elisir d'Amore)

G. Donizetti


19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3인의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 작곡가라고 하면 로시니, 벨리니, 그리고 도니체티를 꼽게 된다. 그 중에서 도니체티(Domenico Gaetano Maria Donizetti: 1797. 11. 29-1848. 4. 8)는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오페라 작곡가였다. 도니체티의 작품은 비록 벨리니의 투명한 아름다움에는 견주기 어렵지만 스타일 면에서는 다른 어느 작곡가의 작품보다도 폭넓은 유연성을 보여준 것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도니체티는 로시니와 벨리니 사이를 연결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797년 알프스 산자락에 걸쳐 있는 롬바르디의 베르가모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도니체티는 일찍부터 오페라 작곡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25세의 약관에 첫 오페라 La Zingara(집시 여인)를 내놓아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그후 30년동안 70편이나 되는(정확하게는 67편) 많은 오페라를 작곡했다. 1년에 두편 이상의 오페라를 작곡한 셈이다. 도니체티의 작품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오페라 무대를 장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미로움 때문이다. 그의 오페라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찬란한 하모니가 전편을 누빈다. 슬픈 내용의 아리아라고 해도 도니체티의 아리아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19세기 전반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벨칸토라고 하여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는 바로 이러한 오페라를 작곡하여 우리에게 한없이 감미로운 아리아의 세계를 음미할수 있도록 해 주었다.

 

베르가모의 도니체티극장 오디토리움

 

도니체티 오페라의 또 하나 특징은 스토리가 흥미롭다는 것이다. 전편에 흐르는 명랑하고 감미로운 멜로디, 화려한 하모니, 그리고 마음에 와 닿는 스토리는 도니체티의 오페라가 사랑 받을수 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원래 도니제티는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오페라의 작곡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작곡가였다. ‘람메무어의 루치아’가 그렇고 ‘라 화보리타’가 그러하며 ‘안나 볼레나’와 ‘마리아 스투아르드’가 그렇다. 그런 그가 코믹하면서도 정감에 넘쳐있는 오페라도 작곡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수 없다. 열정과 비운의 주인공을 창조했던 도니체티! 정신질환으로 프랑스 정신병원에서 17개월동안 지내다가 겨우 고향으로 돌아와서 51세라는 나이로 삶을 마감한 그가 따듯하고 재치에 넘치는 오페라 부파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과연 천부적인 재능을 찬양하지 않을수 없다.

 

아디나 역의 안나 네트레브코(Anna Netrebko)와 네모리노 역의 롤란도 빌라존(Rolando Villazon). 메트로폴리탄


‘사랑의 묘약’에 대한 스토리는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기원을 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스토리를 처음 오페라로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의 실비오 말라페르타(Silvio Malaperta)였다. 그는 Il filtro(묘약: 미약)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작곡하여 사람들에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묘약에 대하여 소개했다. 말라페르타의 대본을 토대로 프랑스의 다니엘 오버(Daniel Auber: 1782-1871)가 1831년에 Le philtre(묘약)이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그랜드 오페라를 만들었다. 유명한 대본가 Eugene Scribe(유진 스크리브)가 말라페르타의 이탈리아어 대본을 프랑스어 대본으로 손질하여 바꾸었다. 이번에는 도니체티가 오버의 대본을 가져와 L'Elisir d'Amore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당대의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가 단 1주일 만에 오버의 프랑스어 대본을 이탈리아어로 다시 각색했다. 로마니는 벨리니의 ‘몽유병자’와 '노르마'의 대본을 썼으며 로시니의 오페라로는 ‘이탈리아의 터키인’등의 대본을 썼고 도니제티의 경우에는 ‘사랑의 묘약’ 이외에도 안나 볼레나(Anna Bolena)등의 대본을 썼다. 베르디 초기의 오페라인 Un giorno di regno(왕궁의 하루)의 대본도 로마니가 썼다.


  

다니엘 오버(Daniel-Francois-Esprit Auber)와 '사랑의 묘약'의 대본가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사랑의 묘약’의 음악은 도니체티가 31세 때에 단 2주만에 완성한 것으로 그의 41번째 작품이다. 초연은 1832년 5월 12일 밀라노의 카노비아나(Canobbiana)극장에서였다. 5월의 훈풍이 사람들의 마음을 공연히 로맨틱하게 만드는 그런 밤이었다. 그러나 정작 초연은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도니체티는 ‘네모리노는 겨우 들어줄만 했다. 그러나 아디나와 벨코레는 완벽하지 못했다. 그리고 둘까마라는 마치 자기가 멜로드라마의 주역인 것처럼 과장된 연기로 일관 했다.’라고 말했다. 대본가 로마니의 부인은 한술 더 떴다. ‘테너(네모리노)가 말더듬이인줄 알았어요. 베이스(둘까마라)의 소리는 염소와 같았구요.’라고 평했다. 당시 프랑스의 저명한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밀라노에서 우연히 그 다음번 공연을 보고 도니체티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도대체 관객들은 공연중인데도 지나치게 떠들어 대기만 했다. 심지어 무대에 등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과 마구 떠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소란하다보니 무대의 성악가들은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댔다. 마치 누구 목소리가 더 큰지 어디 한번 내기해보자라는 심정  같았다. 그런데도 성악가들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무대 쪽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겨우 프랑스의 베이스뿐이었다. 박스의 객석에서는 저녁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도박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나로서는 정말 생소한 광경이었다. 아무튼 노래 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코믹 오페라를 공연하는 극장의 형편이 어떠했는지 짐작할수 있는 코멘트였다.


아디나는 즐겁지만 네모리노는 시큰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묘약’은 회를 거듭할수록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계속 박수를 치며 아예 집에 돌아갈 생각을 포기할 정도였다. ‘사랑의 묘약’은 초연 이후 같은 극장에서 33회 연속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사랑의 묘약’은 단순한 오페라 코미카(Opera comiqca)가 아니다. 코믹에 리릭이 가미되어 전원 오페라(Pastorale Opera)라는 새로운 장르를 주도한 작품이다. ‘사랑의 묘약’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따듯한 사랑 이야기가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다. 마음을 파고드는 포근한 휴매니티가 담겨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오페라의 주인공 모두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 순박한 시골 청년 네모리노(Nemorino: Ten)와 아름답고 재치있는 아가씨 아디나(Adina: Sop)의 숨바꼭질 하는 듯한 사랑이야기에 마음을 졸이다가도 엉터리 약장수 둘까마라(Dulcamara: Bass)와 허풍이 세면서도 의리에 넘친 벨코레(Belcore: Bar) 상사의 유머스러한 제스처에는 한없는 친밀감과 함께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수 없게 한다.

                       

아디나(안젤라 게오르기우)와 네모리노와 벨코레


‘사랑의 묘약’에는 여러 아리아가 나오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은 네모리노가 부르는 Una furtiva lagrima(흐르는 눈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라고 번역했지만 ‘흐르다’와 ‘흘리다’는 성격이 다르다. 그건 그렇고 이 아리아는 무릇 테너라고 하면 한번쯤 꼭 부르고 싶어하는 아리아이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라고 해서 ‘혹시 슬픈 사연의 노래가 아닐까?’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눈물이란 것은 네모리노가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아디나가 흘리는 눈물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네모리노는 그토록 사모했던 아디나가 비로소 자기의 진심을 알아주며 눈물을 흘리자 기쁨에 넘쳐서 이 아리아를 부른다. 또 하나 빼 놓을수 없는 노래가 있다. Udite, udite, o rustici(들으시오, 들어요, 마을 사람들이여)이다. 엉터리 약장수 둘까마라의 코믹한 약 선전 노래이다. 그 내용이 무척 재미있어서 소개해 본다.

 

기구를 타고 등장한 둘까마라


“들으시오, 들으시오, 마을 사람들이여! 모두 주목! 잡담 금지! 에- 우선 본인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명한 과학자 겸 탁월한 의사로 알려진 둘까마라올시다. 본인의 위대한 능력, 무궁한 잠재력, 이런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 게다가 본인은 인류에 대한 봉사자, 만병의 통치자올시다. 그래서 본인은 세상 모든 분들의 건강을 위해 특별약을 세일하러 방방곡곡, 이 나라 저 나라 다니고 있습니다. 장담하지만 본인은 단 하루 이틀이면 모든 병원을 텅텅 비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사시오. 특별히 여러분에게만 싸게 팝니다. 에헴! 자, 이 약으로 말씀드리자면 치통 완치에 쥐, 벼룩, 바퀴벌레 강력 박멸! 보증서 첨부올시다. 당국이 서명했고 도장도 찍혀 있습니다. 이 처방약을 복용하시면 기쁨에 넘치고 기분이 좋아지는데...일흔 잡수신 노인 양반,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이 약으로 청춘을 되찾아서 자녀를 열명이 뭡니까? 열다섯 명이나 보았지요. 뿐만 아닙니다. 이 약만 쓴다면 매일 최소한 한명 이상의 불쌍한 과부가 눈물을 씻고 새 시집을 가게 된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할머니, 이 약만 먹으면 그 보기 싫은 주름살 싹 없어집니다. 여기 계신 아가씨들, 고운 피부를 원하지요? 또 젊은 총각들, 애인이 많으면 좋겠지요? 바로 이 약이올시다. 세계 최고의 피부 미용제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올시다. 이 약으로 말씀드리자면 소아마비를 당장 고칠수 있고 간질, 아이들 경끼, 천식, 뇌졸중, 신경통, 당뇨병, 중이염, 연주창, 구루병까지 싹 고쳐 줍니다. 본인은 여러분을 위해 저 멀리 수천리 밖에서 왔습니다. 자 값이 얼마냐구요? 1백 리라? 아니죠! 30리라? 아니죠! 놀라지 마시라! 단돈 10리라. 그건 구라파 전체가 다 알고 있는 값이올시다. 하지만 그걸 다 받느냐? 아니지요. 본인으로 말씀드리자면 실은 이 마을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을이 나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고향사람인 여러분들에게만 특별 봉사코자 합니다. 그래서 단돈 3리라! 그러면 그걸 다 받느냐? 아니올시다. 그중에서 1리라는 여러분의 주머니에 돌려 드리고 본인은 딱 2리라만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본인을 열렬하게 환영해 주었기 때문에 보상하는 심정으로 염가봉사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다.

 

사랑의 묘약을 간절히 원하는 네모리노(루치아노 파바로티) 


2막으로 구성된 ‘사랑의 묘약’의 무대는 이탈리아의 어느 조그만 시골 마을이다. 어떤 자료에는 바스크(Basque)국가가 무대라고 되어 있지만 바스크는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지대에 있는 지방이므로 이탈리아와 연관짓기가 어렵다. 시대는 1830년대이다. 추수가 거의 끝난 어느 가을날이다. 가난하지만 순박한 마을청년 네모리노는 농장의 지주 아가씨인 아디나를 짝사랑한다. 그러나 아디나는 네모리노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입장이다. 원래 대본에는 아디나를 아름답고 매력적인(Coquettish라는 단어는 매혹적이며 간드러지다는 뜻이 있음) 아가씨라고 되어 있다. 네모리노가 아디나를 사모하여서 부르는 Quanto e bella, quanto e cara(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그녀인가)는 참으로 감미롭고 서정적인 아리아이다. 그런 네모리노를 마을 사람들이 헛물켜지 말라고 하면서 놀린다.

 

아디나의 디아나 담라우와 네모리노의 후안 디에고 페르난데스. 1991. 메트로폴리탄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아디나는 책의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인지 웃음을 터트린다. 마을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묻자 아디나는 책의 얘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Come Paride vezzoso(매력적인 파리스 왕자와 마찬가지로)는 아디나가 책에 적혀 있는 스토리를 얘기해 주면서 부르는 아리아이다. 이 제목의 아리아는 나중에 벨코레 상사가 부르는 아리아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디나가 읽고 있던 책의 내용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이야기인지 또는 트로이의 헬렌을 사랑한 파리스 왕자의 이야기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아디나는 내용이 재미있어서 웃음을 참지 못했으니 비운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확실히 모르겠다. 아무튼 ‘사랑의 묘약’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 그리스에 트리스탄이라고 하는 멋쟁이 청년과 이졸데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다. 트리스탄은 이졸데의 사랑을 얻기 위해 괴로워 하지만 방법이 없다. 트리스탄은 마침내 현명한 마법사를 만나 ‘사랑의 묘약’을 얻게 되는데....이 약을 마시면 아무리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단번에 사랑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트리스탄은 이졸데의 사랑을 얻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다. 아디나는 그 얘기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싱겁기는... 얘기를 마친 아디나는 Della crudelo Issotta(무정한 이졸데)라는 아리아를 부르면서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트리스탄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은 이졸데를 탓한다.

 

둘까마라와 네모리노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사랑의 묘약’ 때문에 행복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한쪽에서 들은 네모리노는 자기도 제발 그 약을 구해서 마셨으면 원이 없겠다고 독백한다. 아디나 역시 어떤 백마를 탄 멋있는 기사가 나타나 자기와 결혼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약을 구하게 되면 한이 없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부르는 듀엣이 정말 절묘하다. 그 때 화려한 군복을 입고 긴 칼을 찬 벨코레 상사가 부하들을 이끌고 마을로 들어선다. 병사를 모집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잔뜩 잘난체를 하는 벨코레는 모병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유니폼을 거절하는 여자는 아직 만나본적이 없다’고 하면서 마을 여자들을 둘러본다. 아디나를 발견한 벨코레는 ‘아니, 이런 시골구석에 저런 여자가 있다니?’라면서 관심을 갖는다. 벨코레는 아디나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우리 어서 결혼합시다!’라고 용감하게 나선다. 아디나는 ‘어머, 멋쟁이!’라면서 솔깃해 한다.

 

안나 네트렙코(아디나)와 네모리노(롤란도 빌라손)가 주역을 맡은 실황 DVD


이 모습을 본 네모리노는 ‘큐피드가 나를 벨코레처럼 뻔뻔스럽게 만들었다면...나도 아디나에게 적극적으로 청혼할 텐데..’라면서 은근히 벨코레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아디나가 벨코레의 온갖 듣기 좋은 소리에도 불구하고 선듯 ‘오, 예!’라고 대답하지 않자 내심 ‘혹시 아디나가 나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네모리노는 아디나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려 하지만 눈치 빠른 아디나는 ‘네모리노! 당신은 좋은 사람이지만 벨코레 상사처럼 용기도 없고 돈도 없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이어 ‘이제 그만 나를 생각하고 어서 읍내로 가서 병든 삼촌이나 돌보시지요!’라고 말한다. 
 

벨코레와 아디나. 리에즈 무대

 

잠시후 엉터리 약장수 둘까마라가 위풍도 당당하게 등장한다. 어떤 무대에서는 커다란 기구(氣球)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며 어떤 무대에서는 마차를 타고 등장하기도 한다. 또 현대적인 연출에서는 트럭이나 기차를 타고 등장하기도 한다. 둘까마라의 코믹한 약 선전은 이 오페라에서 감초와 같은 것이다. Udite, utite, o rustici(들으시오, 들으시오, 마을 사람들이여)는 둘까마라의 아리아로서 이미 앞에서 설명한바 있다. 돌까마라의 선전에 혹한 마을 사람들이 만병통치약을 사자 네모리노는 둘까마라에게 ‘선상님, 혹시 옛날 그리스 시대에 트리스탄이 마셨다는 사랑의 묘약이 있으면 좀 파시지요!’라고 간청한다. 처음 듣는 약의 이름이라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눈치로 평생을 지내온 둘까마라는 대충 사정을 알고는 ‘그런 약이라면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 바로 이 손안에 있소이다!’라면서 가지고 있던 커다란 병을 건넨다. 귀가 번쩍 뜨인 네모리노는 있는 돈을 다 털어서 둘까마라의 약을 산다. 둘까마라가 판 ‘사랑의 묘약’이란 것은 실은 싸구려 포도주이다. 둘가마라의 포도주를 마신 네모리노는 아디나가 ‘아이고, 사랑하는 네모리노! 나는 당신의 영원한 포로랍니다!’라면서 외치면서 달려 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지만 아디나는 보이지도 않는다. 마을 처녀들은 대낮부터 술기운에 얼얼해진 네모리노를 놀리기에 바쁘다. 한편, 벨코레와 아디나의 결혼 얘기는 점점 무르익어간다. 이미 사흘 후에 식을 올리기로 약속까지 해 놓은 처지이다.


둘까마라(매튜 폴렌차니)의 사랑의 묘약 선전장면. 1968년 신시나티 오페라단 공연

 

아디나가 벨코레와 결혼한다는 얘기를 들은 네모리노는 둘까마라를 찾아가 ‘아니, 도대체 왜 약효가 나타나지 않지요?’라면서 따진다. 음흉한 둘까마라는 네모리노에게 ‘한병 가지고 되는줄 알았냐? 한병 더 사서 마셔야 한다’면서 이번에는 값을 호되게 부른다. 약값을 마련할 길 없는 네모리노는 ‘아디나의 사랑만 얻는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라는 심정으로 은화 20개를 받고 벨코레의 군대에 입대키로 한다. 그리하여 용감하게 입대 계약서에 서명한 네모리노는 받은 돈을 몽땅 둘까마라에게 주고 포도주를 한병 더 사서 마신다. 마침 아디나가 나타난다. 하지만 네모리노는 이제는 어쩔수 없이 아디나가 자기에게 달려 올 것으로 믿고 오히려 딴청을 핀다. 이 모습을 본 아디나는 ‘어머! 별 사람이 다 있네! 나를 본체만체 하네! 술에 취했나?’라면서 가버린다. 갑자기 마을 처녀들이 나타나서 네모리노를 둘러싸고 사로 환심을 사려는 듯 난리도 아니다. 평소에는 네모리노를 무시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던 마을 처녀들이 아니던가?  마을 처녀들은 네모리노가 마음씨도 곱고 듬직하게 생겼다고 하면서 칭송한다. 읍내에 사는 네모리노의 삼촌이 세상을 떠나면서 네모리노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네모리노는 어리둥절한채 ‘아하, 약효과가 이제야 나타나는구나!’라면서 ‘좀 있으면 아디나가 달려 올꺼야!’라는 생각에 부풀어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무대. 현대적 연출

 

아디나는 마을 처녀들이 갑자기 네모리노를 둘러싸고 서로 환심을 사려고 하는 모습을 보자 아무래도 네모리노에게 무언가 멋있는 점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여 네모리노를 다시한번 눈여겨 본다. 아디나는 친구 쟈네트(Gianette: MS)로부터 네모리노가 부자가 되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아! 부자가 되었는데도 얼마나 겸손한 네모리노인가? 마을 아가씨들에게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네모리노가 아니던가? 더구나 자기의 사랑을 얻기 위해 군대에 까지 가기로 결심했다고 하지 않던가? 드디어 아디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는 자기의 한심했던 행동을 뉘우치며 한숨을 짓는다. 이 모습을 바라본 네모리노는 드디어 약효가 발생한 것으로 믿어 감격해 하며 Una frutiva lagrima(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부른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그대의 뺨에서 흘러 내리네/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그대/무엇을 의심할수 있겠는가/바로 내가 찾던 진실한 사랑/그대에게 있었음을/그대가 간직했던 사랑의 언어/남 몰래 새어나오는 그대의 한숨/나만이 듣네 오늘의 그 한숨/그대의 한숨과 나의 한숨이 마주칠때에/나의 가슴을 기쁨에 부풀어 오른다오/주님이시여! 이제 죽어도 좋습니다/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라는 내용이다.

 

피날레


이렇게 하여 네모리노와 아디나의 사랑은 풍성한 가을 수확처럼 결실을 맺는다. 둘까마라는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사랑의 묘약’때문이라고 자랑이 한창이다. 사람들은 ‘용하신 의사 선생님 둘까마라 만세!’를 외친다. 벨코레 상사는 아디나와 했던 결혼 약속을 기분좋게 없던 것으로 하며 네모리노의 입대 계약서도 찢어 버린다. 둘까마라는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또 다른 마을로 약을 팔러 떠난다. 벨코레 상사 역시 다른 마을로 병사를 모집하러 떠난다. 모두들 해피하다.


아디나의 안나 네트렙코. 메트로폴리탄 현대적 연출

 

[한마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내용과 아디나가 읽어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스토리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아일랜드 공주인 이졸데와 영국 콘월의 기사 트리스탄과의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내용이다. 도니제티의 오페라에서 아디나가 읽은 책에는 어느 마법사가 ‘사랑의 묘약’을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원래 무면허 약사 출신인 이졸데가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한마디 더]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이 다니엘 오버의 Le philtre(묘약)의 대본을 이탈리아어로 바꾼 것이지만 주인공의 이름은 사뭇 다르다. 오버의 오페라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은 귀욤(네모리노), 테레친(아디나), 줄리쾨르(벨코레), 닥터 퐁티라로스(둘까마라)이다.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은 밀라노에서 성공을 거둔후 파리로 진출하였다.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오버의 ‘묘약’과 공개 경쟁을 펼친 이후 오버의 오페라는 더 이상 공연되지 않았다.

  

라스 팔마스의 무대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들]

Quanto è bella, quanto è cara (How beautiful she is: 얼마나 아름다운 그녀인가) — 1막 1장 네모리노의 아리아

Della crudele Isotta (Of the cruel Isolda: 잔인한 이솔다) — 1막 1장 아디나의 아리아

- Come Paride vezzoso (Just as the charming Paris: 매력적인 파리스 왕자처럼) — 1막 1장의 벨코레 아리아

- Udite, udite, o rustici (Listen, listen, o peasants: 들으시오, 들으시오, 마을 사람들이여) — 1막 2장의 둘까마라의 아리아

- Barcarolle for Two Voices: Io son ricco e tu sei bella (I'm rich, and you are beautiful: 나는 부자이고 그대는 아름답다) — Dulcamara, Adina 2막 2장

- Una Furtiva lagrima( A furtive tear: 남몰래 흘리는 눈물)- 2막 2장의 네모리오 아리아

- Venti scudi- 네모리노와 벨코레의 듀엣

- Prendi, per me sei libero (Take it, I have freed you: 가지세요, 이제 자유입니다) — 2막 2장 아디나의 아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