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세빌리아의 이발사 - 로시니

정준극 2007. 11. 10. 02:06

세빌리아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igvilia) - The Barber of Seville

또는 L'inutile precauzione(공연한 걱정)

G. Rossini

 

세빌리아의 골목길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빌리아(스페인어로는 Sevilla, 이탈리아어로는 Siviglia, 영어로는 Seville)는 예로부터 문화와 예술, 학문과 산업의 중심지였다. 세빌리아는 문호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1547-1616)가 위대한 문학적 향기를 드높였던 도시이며 화가 무리요(Bartolome Esteban Murillo: 1617-1682)와 벨라스케스(Diego Belazquez: 1599-1660)가 거장의 예술혼을 키웠던 곳이다. 세빌리아는 자유분방한 정열의 여인 카르멘을 탄생시킨 도시이다. 세빌리아는 중세 무어(Moor)의 찬란한 문화와 기독교문화가 유연하게 융합하여 곳곳에 이국적 향취가 넘쳐 있는 도시가 되었다. 때문에 세빌리아를 무대로 한 예술작품들은 그 특유의 소재와 낭만성으로 인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음악에 있어서 세빌리아의 이름을 한결 높여준 작품은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다. 첨언하자면 베토벤의 오페라 '휘델리오'도 세빌리아가 무대이다.

                     

행복한 로지나(조이스 디도나토)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스토리는 프랑스의 피에르 오귀스탱 캬롱 드 보마르셰(Pierre 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1732-1799)의 3부작(Trilogy)중 1, 2 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1부이고 ‘피가로의 결혼’이 2부이며 3부는 '죄많은 어머니'라는 타이틀이다. 그런데 잘 아는대로 오페라로 작곡되기는 모차르트가 2부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이 1부 '세빌리아의 이발사'보다 먼저이다. 1부보다 30년 전인 1786년 작곡되었다. 그러므로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나오자 ‘피가로의 결혼’의 스토리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아하, '피가로의 결혼' 이전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며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마치 옛 친구를 만난듯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놀라운 사랑을 받게 된 근본 이유는 실은 아름다운 음악과 웃으믈 터뜨리게 하는 스토리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악고 재미있고 스토리도 재미있다. 재미 있다는 것은 마음에 와 닿는 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한편, 보마르셰의 3부작 중 제3부인 '죄많은 어머니'(La mere coupable)는 어떻게 되었는가? 별로 각광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의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등 한두 사람이 오페라로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내용이 점잖치 못하게 황당하여 곤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피에르 보마르셰


보마르셰는 당대의 특이한 인물이었다. 시계 만드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계 만드는 기술을 익혀 전문가가 되었다. 그는 발명가였고 음악가였으며 정치가였고 작가였다. 그는 당국의 검거를 피해 다닌 도망자였고 전투에서 부상당한 상이군인이었으며 간첩으로 기소된 일도 있다. 그는 무기상이었으며 출판인이었고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에 관여한 혁명가였다. 작가로서 보마르셰는 Le Barbiere de Seville 라는 타이틀의 희곡을 써서 1775년 파리 코메디 프랑세극장의 무대에 올렸다. 3부작의 첫 번째 스토리였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시민들로부터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당시는 프랑스 혁명의 기운이 움트던 때였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파리 시민들에게 혁명의 사상을 심어주었다. 잘 아는대로 프랑스 혁명은 1789년부터 시작되었다. 연극의 주인공인 피가로는 하찮은 이발사이다. 하지만 이발사란 어떤 사람인가? 아무리 돈 많고 지체 높은 귀족이라고 해도 그의 앞에서는 모자를 벗고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통쾌한가! 귀족들이 권력을 쥐고 제멋대로 횡포를 부르는 그런 시대에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서민들의 눈에는 이발사의 역할이 더 할수 없이 유쾌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적어도 이러한 내용의 드라마를 보는 일반 서민들은 ‘우리도 인간이다’라는 자각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러한 자각심은 인본주의 사상과 접목되어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을 싹트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프랑스 혁명이 불붙으려던 때에 보마르셰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파리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1막의 피날레. 시카고 리릭 앙상블.


보마르셰의 3부작중 제1부인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소설과 연극이 인기를 끌자 이탈리아의 조반니 파이시엘로(Giovanni Paisiello: 1740-1816)가 1796년에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이어 프랑스의 니콜라스 이수아르(Nicholas Isouard)도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니콜라스 이수아르는 18세기에 인기를 끌었던 이른바 동화오페라(Opera ferrie)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동화오페라(오페라-발레 포함)는 주로 마법이 등장하는 전설과 동화에 기본을 둔 오페라의 한 장르로서 장-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를 기점으로하여 이후 미셀 캬라파(Michele Carafa)의 La belle au bois dormant(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니콜라스 이수아르의 Cendrillon(센드리용: 신데렐라)으로서 절정을 이루었었다. 그러한 이수아르가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작곡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만, 파이시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한때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30여년후에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나오자 슬며시 자취를 감추었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대본은 이탈리아의 세자레 스테르비니(Cesare Sterbini: 1784-1831)가 작성했다.

 

로지나에 조이스 디도나토. 알마비바 백작은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로시니는 스피드 작곡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단 3주만에 완성되었다. 다만, 서곡은 작곡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인지 또는 귀찮아서인지 그가 전에 작곡해 놓은 Aureliano in Palmira(팔미라의 아우렐리아노)의 서곡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1816년 2월 20일 로마의 아르젠티나극장에서의 초연은 대실패였다. 로시니로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재앙이었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야유를 보내며 소란을 피웠다. 게다가 무대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무대장치가 쓰러지는 등의 불상사였다. 관객들의 소동은 오페라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로시니의 라이벌이 보낸 야유꾼(Claque)들 때문이었다.  그 라이발이 누구인지는 아직도 쉬쉬하고 있다. 당사자의 명예 때문에! 아무튼 이들은 로시니의 새로운 오페라가 형편없다고 소리쳤고 이런 소란은 군중심리와 맞물려 난리도 아니었다. 원래 이탈리아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간섭하고 소리치기를 좋아하므로 군중심리에 의한 초연에서의 난장판은 가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공연은 딴판이었다. 신문기사를 보면 ‘사자가 포효하는 것과 같은 성공’이었다고 했다. 이같은 성공은 30년전 비엔나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초연이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30년전만 해도 귀족을 골탕 먹이는 이발사의 얘기는 공감을 얻지 못했었다.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귀족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시니의 경우는 달랐다. 시대가 그만큼 변했던 것이다. 귀족들이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베토벤과 베르디는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높이 평가하고 찬사를 보냈다. 보통 사람들의 따듯한 사랑의 이야기, 지배층에 대한 위트에 넘친 반항 때문이었다. 물론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보여준 우아하고 감미로운 멜로디와 반짝이는 위트, 그리고 여기에 밝고 명랑함이 조화를 이루어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 더 큰 이유였다. 과연!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보고 있노라면 자기도 모르게 유쾌한 기분과 봄날처럼 훈훈한 마음을 갖게 되며 햇빛처럼 밝은 행복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후편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무대. 백작, 케루비노, 피가로, 수잔나


우선 등장인물부터 소개코자 한다. 출연진은 사실상 그다지 많지 않다. 주인공은 세 사람이다. 알마비바 백작(Count Almabiva: T), 아름다운 아가씨 로지나(Rosina: Contralto), 거리의 만능선수 피가로(Figaro: Bar)이다. 그외의 출연진으로는 의사인 바르톨로(Bartolo: B)가 있다. 나이는 많지만 아직 독신이다. 로지나 아가씨의 후견인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바르톨로는 재산이 많고 예쁘고 젊은 로지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베르타(Berta: S)는 바르톨로 집의 나이 많은 가정부이다. 돈 바실리오(Don Basilio: B)는 로지나 아가씨의 음악선생이다. 오페라에서는 알마비바 백작이 로지나에게 접근하기 위해 돈 바실리오 대신에 음악선생 노릇을 한다. 휘오렐로(Fiorello: B)는 알마비바 백작의 하인이다. 별로 하는 일이 없다. 암브로지오(Ambrogio: B)는 바르톨로의 하인이다. 이밖에 마을 사람들, 군인들 등이 합창단원으로 출연한다.

 

좀 이상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조이스 디도나토). 도쿄 공연.

 

지나간 수십년동안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성악도들이 오페라 성악가로서 성공할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관문으로서 관심을 끌었다. 말하자면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오페라 성악가로서의 등용문과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 및 오페라 부파에 도전하려면 우선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도전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풍부한 감정을 노래로 표현할수 있어야 하며 마치 시냇물이 흐르듯 또는 새가 지저귀는 듯한 빠른 파싸지(Passage)를 소화할수 있어야 하고 여기에 마음을 잡는 연기력이 수반되어야 했다. 바로 로지나와 피가로와 알마비바 백작의 역할들을 말한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는 한명의 여성 주역과 바르톨로까지 포함하여 네명의 남성 주역이 등장한다. 여성 주역이 한명이기 때문에 여성 성악가들로서는 너도나도 이 역할을 맡고 싶어한다. 로지나(Rosina)의 역할을 맡게 되면 자기의 성악적 실력을 과시할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뭇 남자들로부터 선망의 시선을 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로시니는 로지나를 콜로라투라 메조소프라노 또는 콘트랄토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 고음이야 장식적으로 부르면 되지만 중음은 차분하고 안정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로지나의 역할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소프라노들이 한번만이라도 이 역할을 맡게 해 달라고 하는 바람에 일부 아리아를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부르도록 수정하였다. 그래서 초기에는 로지나의 주요 아리아가 나올때면 무대 뒤에 대기하고 있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대신 무대로 나와서 아리아만 부르고 들어가는 진기한 풍경도 볼수 있었다.

 

베르타, 바르톨로, 바질리오, 그리고 피가로


로지나가 무대 위에서 음악교사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성악 레슨을 받는 장면이 있다. 원래 악보에는 단순한 멜로디가 적혀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노라하는 소프라노들은 그런 단순 멜로디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래의 악보를 무시하고 자기의 자신있는 노래를 대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민요를 부르기도 하고 다른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넬리 멜바(Nellie Melba)는 전속 반주자를 별도로 무대에 출연시켜 로시니의 작곡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즐겨하는 아리아를 불렀다. 음악교사인 돈 바질리오(Don Basilio)는 같은 베이스인 바르톨로(Bartolo)보다도 무대에서의 역할을 짧지만 음악적 역할은 어느 누구보다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막에서 돈 바질리오의 아리아 La calunnia(과장된 속삭임)은 그의 역할을 훌륭하게 부각시키는 대표적인 예이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미풍처럼 속식이듯 시작되다가 나중에는 마치 대포를 쏘듯 힘찬 포효로 연결되는 아리아이다. 오케스트라도 피아노에서 포르테로, 프로테에서 크레센도로 이어지다가 나중에는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음향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바로톨로는 베이스 중에서도 강렬한 성격의 베이스가 맡도록 하고 있다. 부포 베이스(Buffo Bass), 즉 익살스런 베이스를 말한다. 1막 2장에서 로지나가 창문 밖으로 편지를 떨어트렸을 때 로지나를 야단치는 바르톨로의 아리아 역시 대단히 익살스럽다.

 

성악 레슨 장면.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조이스 디도나토.


알마비바(Almaviva) 백작의 역할은 테노레 디 그라치아(Tenore di grazia), 즉 우아한 테너를 위한 것이다. 알마비바 백작의 아리아는 대단히 세련되면서도 민첩하며 그러면서도 위트에 넘쳐 있다. 1막이 시작될 때의 두 곡의 솔로는 대표적으로 우아하고 화려한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아리아인 Se il mio nome(만일 그대가 나의 이름을 알고 싶다면)는 로시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타이틀 롤인 피가로(Figaro)는 확실히 중요한 역할이다. 피가로의 노래는 전반적으로 고조(高潮)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피가로가 등장하여서 부르는 아리아 Largo al factotum della citta(나는 이 마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재빠른 파싸지를 구사해야 하는 오페라적 금자탑이다. 알마비바 백작이 매번 등장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여 나오는 것은 보마르셰다운 발상이며 이에 로시니의 음악이 뒷받침되어 제대로의 코믹할 발명품이 되어 있다. 특히 꼬장꼬장하고 신경이 예민한 듯한 음악교사 역할은 백미이다. 2막에 나오는 가짜 음악교사의 아리아 Pace e gioia sia con voi(당신에게 평화와 기쁨이 있기를)는 대단히 신중하면서도 끈기를 가지고 불러야 하는 곡이다. 이 곡은 차라리 위트에 넘친 곡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것이다. 아무튼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전편에 흘러넘치는 음악적 위트가 부족했다면 아마 그토록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스토리를 살펴보자.


 

백작과 피가로가 세레나데를 부르는 장면

 

제1막 세빌리아의 거리가 무대이다. 시기는 17세기이다. 경쾌하고 익살스러운 서곡에 이어 막이 오르면 젊고 핸섬하며 부유한 알마비바 백작이 평범한 대학생 린도로(Lindoro)로 변장한후 로지나에게 사랑을 호소하기 위해 악사들을 동원하여 세레나데를 부른다. Ecco ridente in cielo(보라! 하늘에서 밝은 미소가)라는 감미로운 곡이다. 이런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로지나의 창문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장미처럼 아름답고 백합처럼 순결하며 오랑캐꽃처럼 명랑한 로지나는 후견인인 의사 바르톨로의 집에 살고 있다. 늙은 바르톨로는 로지나의 후견인이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로지나의 재산을 차지하려고 로지나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을 은근히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로지나가 외간 남자, 특히 젊고 핸섬한 남자와 만나는 것을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아예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한다. 이때 낙천적인 피가로가 천연스럽게 등장한다. 피가로는 수단 좋고 배짱 좋으며 넉살 좋은 세빌리아 거리의 이발사이다. 다만 고아로 자란 탓에 반항적 기질이 조금 있다고나 할까? 피가로는 ‘나는 이 거리에서 가장 바쁜 사람’(Largo al factotum della citta: 또는 나는 이 거리의 만능선수)이라는 유명한 카바티나(독창곡)를 힘차게 부른다. 피가로는 이발사이기 때문에 어느 거리의 어느 집이든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그런 신분이기 때문에 그는 이 마을의 가장 쓸모 있는 시민으로서 여러 가지 역할을 알바(아르바이트)로 수행한다. 남녀간의 비밀 미팅을 주선하는 일, 연애편지를 택배로 전달하는 일, 눈이 맞은 남녀를 멀리 도망가도록 도와주는 일, 돈 많은 귀족을 슬쩍 골탕먹여 용돈을 버는 일 등등... 피가로는 낮이건 밤이건 쉴 틈이 없다. 이곳에서 피가로, 저곳에서 피가로...그는 바쁘기도 하지만 낙천적인 사나이다.

 

가짜 음악교사 장면. 가짜 음악교사로 분장한 백작과 그 사실을 파악한 바르톨로가 한판 대결을 한다.

 

피가로를 본 알마비바 백작은 수단 좋은 그에게 로지나와의 사랑이 성사될수 있도록 어떻게 좀 해달라고 간청한다. 피가로는 돈만 생기는 일이라면 그것도 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로지나는 창문 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청년 학생이 백작인줄 모르고 은근히 그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입장이다. 로지나는 저 미지의 청년 학생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서 쪽지에 '잠시후면 발르톨로가 외출할 것이니 놀러 오세요'라고 써서 발코니 아래로 떨어트린다. 바르톨로는 집을 나가면서 하인 암브로지오(Ambrogio: 노래나 대사가 없는 유일한 역할)에게 음악교사 돈 바질리오(Don Basilio: Bass)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라고 단단히 이른다. 알마비바 백작은 로지나의 쪽지를 받고 또 다른 세레나데인 Se il mio nome(만일 나의 이름을 알고 싶다면)을 부른다. 알마비바 백작은 세레나데를 통해 자기는 린도로(Lindoro)라는 이름의 대학생으로 로지나에게 부와 명예는 주지 못할지언정 한없는 헌신으로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백작은 로지나에게 그의 실제 이름이나 지위를 얘기해 주지 않는다. 자기의 재산이나 지위를 보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여자라면 곤란하다는 생각에서이다. 세레나데를 들은 로지나는 유명한 아리아 Una voce poco fa(작은 소리: 방금 들렸던 음성)를 부른다. 마음속에서 작은 소리, 즉 ‘아, 나도 저 청년을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내용이다.

 

바르톨로(스티븐 콘디)를 이발해 주고 있는 피가로(조나단 바이어). 보스턴 리릭 오페라.

 

백작의 부탁을 받은 피가로는 백작이 로지나의 집안으로 들어갈수 있도록 묘안을 짜낸다. 대학생의 차림으로 로지나의 집에 들어간다면 하인 암브로지아가 떡 버티고 있어서 어렵기 때문이다. 마침 새로운 연대가 마을에 온다. 피가로는 백작이 군복을 차려 입고 로지나의 집에 들어간다면 연대의 지휘관으로 생각하여 막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그 계획이 아주 훌륭하다고 믿어서 All'idea di quel metallo(그렇게 멋진 아이디어)라는 진짜로 멋진 듀엣을 부른다. 백작은 Ah, che f'amoreI(이, 이것이 사랑인가)라는 노래로 자기들의 계획을 자축한다. 잠시후 계획대로 장교로 변장한 알마비바 백작은 바르톨로의 집에 숙박을 요청하는 영장을 가지고 들어가려 한다. 바르톨로는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백작은 바르톨로가 자기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술취한 모습으로 바르톨로에게 숙박을 요청한다. 바르톨로는 느닷없이 장교가 나타나 숙박하겠다고 요청하자 당황하지만 이 장교의 정체를 알고 있는 로지나는 속으로 기뻐하며 서로 사랑을 속살일 기회만 엿본다. 이러한 때에 힘찬 합창과 함께 연대의 경비병들이 들이 닥친다. 바르톨로는 이 때다 싶어 경비대장에게 저 장교가 술취해서 횡설수설하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하니 잡아가라고 고발한다. 그러나 백작이 어디 보통 백작인가? 경비대장을 잠시 따로 불러내어 ‘나로 말하면 이러이러한 사람인데...’라고 신분을 밝히고 협조를 당부한다. 경비대장으로서의 지체높은 백작님의 부탁인데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 아니던가? 이로서 사태는 반전! 경비대장은 바르톨로에게 '저분은 진짜 장교님이시다!'면서 윽박지른다. 당황해하는 바르톨로! 우스워 죽겠다는 피가로! 그리고 바르톨로가 면박 당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좋아하는 로지나! 제1막의 첫 장면은 이렇듯 감칠듯한 여운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군인으로 변장한 알마비바 백작이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보스턴 리릭 오페라

                                   

다음 장면은 바르톨로의 집 거실이 무대이다. 피아노 한대가 한쪽에 놓여 있다. 백작은 피가로의 코치를 받아 이번에는 음악교사로 변장하여 로지나의 집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당시 귀한 집 여식들은 문화생활의 일환으로 거의 모두 피아노와 성악 레슨을 받았다. 도니체티의 오페라인 '연대의 딸'에서도 여주인공인 마리가 성악 레슨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연출과 거의 비슷하다. 그건 그렇고 집안에서는 바르톨로가 잔뜩 긴장하여 로지나가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다. 바르톨로는 공증인을 오라고 한다. 공증인을 앞에 두고 로지나와 자기의 결혼서약서에 서명하려는 생각에서이다. 한편, 로지나는 가난하지만 낭만이 있는 린도로라는 그 청년학생이 자기를 만나려고 군인으로 변장하고 들어 왔다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난데 대하여 몹시 서운해 있다. 로지나는 늙은 바르톨로가 자기에게 딴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러한 때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어떤 나이 지긋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는 오늘 오기로 되어 있는 음악교사 돈 바질리오가 갑자기 아파서 대신 온 돈 알폰소(Don Alfonso)라고 소개하며 선뜻 거실 안으로 들어선다. 음악교사가 청년학생인 린도로라는 것을 눈치 챈 로지나는 기쁨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다. 바르톨로는 원래의 음악교사가 아파서 늙게 보이는 사람을 대타자로 보냈다고 하니 뭔가 수상하지만 믿지 않을수 없다.

 

음악레슨 장면. 압권이다.

                         

가짜 음악교사인 백작과 바르톨로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무척 재미있다. 백작은 바로톨로의 눈을 로지나로부터 떼어 놓기 위해 ‘당신에게 평화와 기쁨이 있기를’이라는 아리아를 반복적으로 부르면 인사만 한다. 바르톨로는 계속 인사만 하는 음악교사에 대하여 신경질이 나지만 그렇다고 좋은 말로 축복의 인사말을 하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 눈치 빠른 피가로가 바르톨로에게 이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억지로 다른 방으로 데려간다. 바르톨로는 '아니, 지금 이발하고 싶지 않은데...'라면서 내키지 않아 하자 피가로는 '무슨 말씀이신가요! 좋을 일을 앞두고 남들 보기에 좋아야 하지요!'라면서 기어코 이발을 강행한다. 그리하여 기회를 만난 백작과 로지나! 서로 포옹하며 사랑의 언약을 주고 받는다. 이어서 진행되는 음악 레슨 장면...두 사람은 행복하기만 하다. 이 때 느닷없이 진짜 음악교사인 돈 바질리오가 나타난다. 당황한 백작은 얼른 로지나를 다른 방으로 숨도록 하고 시치미를 뗀다. 그러나 아뿔사! 가짜 음악교사와 로지나가 사랑하느니 어쩌니 하면서 소곤대는 소리를 우연히 들은 바로톨로는 자기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에 대하여 분이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라서 ‘어떤 놈이냐?’라고 소리치며 한바탕 법석을 떤다. 백작은 발코니를 통해 줄행랑!


바르톨로를 로지나로부터 떼어 놓기 위해 억지로 이발해 주는 피가로


바르톨로는 로지나에게 실은 그 수상한 청년이 피가로와 작당을 하고 로지나를 농락하려 했다고 말해준다. 속았다고 오해한 로지나는 바르톨로에게 실은 오늘 밤에 그 청년대학생과 함께 야반도주하려 했다는 얘기까지 털어 놓는다. 바르톨로는 그 청년과 피가로가 밤중에 계획대로 발코니를 통해 숨어 들어오면 잡아서 도둑으로 몰아 경을 치겠다고 다짐한다. 저녁나절부터 폭풍우가 유난히 심하다. 그러나 밤이 깊어서는 천둥번개도 멈추고 사방이 고요하다. 이윽고 발코니를 통해 백작과 피가로가 로지나의 방으로 들어간다. 배신감과 증오에 가득차 있던 로지나는 아침에 세레나데를 불렀던 그 청년이 실은 알마비바 백작인 것을 알고 오해를 푼다. 백작이 로지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 신분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로지나와 백작은 계획대로 이 집에서 도망가려한다. 그런데 발코니로 나와보니 누가 사다리를 치워버리지 않았던가! 로지나, 백작, 피가로는 꼼짝없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결혼계약서에 서명하는 로지나


그때 기다리던 공증인이 나타난다. 백작은 우선 돈 바질리오를 돈으로 매수하여 일단 자기편으로 만든다. 이어서 공증인을 권총으로 위협하여 그가 가지고 온 결혼서약서에 로지나와 자기가 서명을 한다. 공증인을 증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결혼은 합법적으로 성사된다. 잠시후 바르톨로가 경비병들을 데리고 씩씩 거리면서 등장한다. 하지만 상대는 알고보니 지체 높고 권세 있는 백작이 아니던가? 바르톨로는 어쩔수 없이 물러서야할 입장이다. 더구나 공증인으로부터 로지나와 백작이 이미 결혼서약서에 서명했다는 소리를 듣고 할수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지만 속으로는 앙앙불락이다. 바르톨로는 그동안 로지나의 후견인으로서 수고한데 대하여 백작이 사례를 하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마음이 누구러진다. 그리하여 피가로의 덕분에 백작은 사랑에 승리하게 되고 로지나는 사랑의 기쁨을 얻게 되며 돈 바질리오는 묵직한 돈 자루를 받게 되고 바르톨로는 백작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된다. 그리고 피가로는? 상당한 사례금과 함께 백작의 전속 이발사로 임명된다. 백작과 로지나의 결혼을 축하하는 대합창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사족: 또 한사람의 출연자를 소개하지 않았다. 베르타(Berta: Sop)이다 독토르 바르톨로 집의 하녀이다. 원래 이름은 마르첼리나(Marcellina)이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2부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많은 활약을 하지만 1부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안내 말씀: 로지나는 알마비바 백작과 결혼하여 백작부인이 되었고 고아인줄 알았던 피가로는 어머니가 마르첼리나이며 아버지는 바르톨로라는 것이 제 2편 '피가로의 결혼에서 밝혀 진다. 걸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