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아이다 - 베르디

정준극 2007. 11. 21. 10:28

아이다

(Aida)

G. Verdi

 

아이다를 지휘하는 베르디

 

아이다는 세계 모든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무대 규모가 큰 작품이다. 출연진 수백명에 화려한 의상과 웅장한 무대장치는 가히 그랜드 오페라의 대명사로서 손색이 없다. 그 중에서도 제2막 개선의 장면의 웅대한 스케일은 과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고대 파라오 시절의 이집트 왕궁과 신전을 재현한 무대는 그 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다는 베르디가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하여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카이로 오페라극장의 개관 기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카이로 오페라극장은 마침 수에즈 운하 개통과 연계하여 완성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베르디에게 카이로 오페라극장의 오프닝 작품을 요청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오프닝 때에는 리골레토가 공연되었다.

 

아이다가 초연된 카이로 오페라극장(Khedivial Opera House: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 지금은 모습을 볼수 없고 건물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앞에 있는 기마상은 파샤 이브라힘 기념상.


일찍이 이집트 총독(케다이브: Khedive: 1867-1914년 기간 동안 터키 제국이 임명한 이집트 총독의 명칭) 이스마일 파샤(Ismail Pasha: 1830-1895)는 베르디에게 1869년 준공 예정인 수에즈 운하를 기념하여 새로운 오페라의 제작을 간청한 일이 있다. 이스마일 파샤는 수에즈 운하 준공을 기념하여 카이로에 새로운 오페라 극장을 건설할 계획임도 밝히고 이 새로운 극장의 오프닝에 베르디의 새로운 작품을 올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베르디는 무슨 기념행사를 위해 오페라를 작곡한다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으며 더구나 시간을 맞출수 없다는 이유로 이스마일 파샤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였다. 수에즈 운하는 예정대로 1869년 개통식을 가졌으며 이와 함께 카이로 오페라극장도 같은해 11월 17일 완성되어 개관 기념으로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공연하였다. 그러나 카이로 오페라극장의 개관기념 작품을 베르디에게 부탁했던 이스마일 파샤는 체면도 있고 해서 그 이후로 여러 루트를 통해 베르디에게 계속 접촉하였다.


베르디에게 아이다의 작곡을 의뢰한 이집트 총독(케다이브) 이스마일 파샤


결국 이듬해인 1870년, 이스마일 파이샤의 간청을 물리치지 못한 베르디는 특별히 카이로 오페라극장을 위해 이집트를 소재로한 작품을 쓰기로 승낙했다. 기쁨에 넘친 이스마일 파샤는 전례가 없는 거금을 작곡료로 선지불했다. 15만 프랑이었다. 베르디가 이집트를 소재로 한 오페라를 작곡하게 된 배경에는 이스마일 파샤와 친분이 두터운 프랑스의 이집트학 전문가 오거스트 마리에트(Auguste Marriette: 1821-1881)의 숨은 공이 컸다. 오거스트 마리에트는 이스마일 파샤를 도와 카이로박물관을 창설한 사람이다. 오거스트 마리에트는 베르디의 친구인 대본가 카미유 뒤 로클(Camille du Locle: 1832-1903)에게 이집트와 관련한 소설(정확히는 산문시) 한권을 제공하였다. 아이다에 대한 스토리였다. 뒤 로클은 조셉 메리(Joseph Mery)와 협력하여 베르디의 걸작인 돈 카를로(Don Carlo)의 프랑스어 대본을 썼으며 이어 '운명의 힘'과 '시본 보카네그라'의 대본을 쓴 일이 있다. 오거스트 마리에트로부터 아이다에 대한 소설을 받은 뒤 로클은 이를 바탕으로 오페라 대본을 써 보았다. 그리고 프랑스어로 된 대본을 베르디에게 보냈다. 일설에 의하면 아이다의 대본은 당시 파리에서 오페라 작곡가 겸 대본가로 이름을 떨치던 테미스토클 솔레라(Temistocle Solera: 1815-1878)가 쓴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솔레라는 베르디의 오페라 ‘조반나 다르코’와 ‘롬바르디의 첫 십자군’의 대본을 쓴 일이 있다. 아무튼 베르디는 뒤 로클이 보낸 대본을 보고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야, 이거 괜찮은 스토리인데...’라고 생각한 베르디는 대본을 부분별로 나누어서 이 부분은 레시타티브로 하면 되고 저 부분의 무대 배경은 저렇게 하면 되며 아리아는 이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 좋을것 같다는 식의 초안을 만들었다. 특히 소프라노 아리아는 베르디의 부인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Giuseppina Strepponi)를 염두에 두고 배려하였다. 베르디는 곧 이 계획서를 밀라노의 대본가인 시인 안토니오 기스란초니(Antonio Ghislanzoni: 1824-1893)에게 보냈다. 기스란초니는 베르디를 위해 ‘운명의 힘’의 대본을 쓴 경력이 있다. 베르디는 아이다의 이탈리아어 대본의 완성을 위해 신경을 무척 썼다. 직접 대사를 이곳저곳 뜯어 고치기도 했다. 결국 베르디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본을 주도하였다.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2013. 암네리스와 아이다.


카이로에서의 초연은 1871년 1월로 예정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전해의 7월에 프러시아(독일)가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하였고 11월에는 파리를 점령하는 바람에 카이로 초연이 지연되었다. 아이다의 무대 장치 및 의상 등등은 모두 파리에서 제작한 후 뒤 로클과 오거스트 마리에트의 감독아래 배편으로 카이로로 가져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제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베르디로서는 공연 지연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사실, 대본가인 기슬란초니로 말하자면 사람이 약간 게으른 구석이 있어서 베르디에게 대본을 제때에 보내주지 않았다. 리허설 날자는 다가오고...베르다는 거의 매일 성화를 해서 겨우 몇 장의 대본이 완성되면 번개처럼 가져와서 작곡을 계속했다. 결과, 성악 부분은 다 되었지만 오케스트라 파트는 미완성이었다.

 

암네리스(드보라 헬먼). 오스트레일리아 오페라

 

물론, 위대한 베르디 선생 역시 원래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라 다른 오페라의 경우에도 오케스트라 부분을 연습도중에 작곡하는 전력이 자주 있었으므로 공연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아이다의 오케스트라 파트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베르디는 카이로 공연의 지연으로 직접 리허설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한달 동안 집에 편안히 앉아서 부인과 함께 차도 마시면서 오케스트라 부분을 완성할수 있었다. 1871년 12월 24일(크리스마스이브) 카이로 오페라극장에서의 아이다 초연은 글자그대로 대성공이었다. 환호와 갈채가 그치질 않았다. 얼마후 베르디는 터키 제국으로부터 ‘오토만 대 훈장’을 받았다. 베르디는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훈장 수여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역사적인 아이다의 카이로 초연에는 소프라노 안토니에타 아나스타시-포쪼니(Antonietta Anastasi-Pozzoni)가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라다메스 장군 역은 테너 피에트로 모니니(Pietro Mognini), 암네리스 공주 역은 메조소프라노 엘레오노라 그로씨(Eleonora Grossi)가 맡았다. 유명한 콘트라베이스 주자이며 작곡가이기도 한 조반니 보테시니(Giocanni Bottesini)가 영광의 아이다 초연 지휘를 맡았다. 베르디는 원래 그의 부인 페피나가 아이다 역할을 맡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나 여의치 않아 다른 사람이 주역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베르디로서는 카이로 초연이 비록 대성공이었지만 음악적으로 무언가 만족한 모습이 아니었다. 베르디는 밀라노에서의 몇 달 후의 이탈리아 초연을 위해 일부 스코어를 수정하였다.


아이다의 포스터


원래 베르디는 카이로에서의 아이다 공연이 지연되자 완성된 스코어를 가지고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우선 공연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아니, 초연은 카이로와 약속했는데 거러면 되시나요?’라며 눈치를 주는 바람에 라 스칼라 공연은 이듬해 2월로 미루었다. 느긋하면서도 꼼꼼하기로는 자타가 알아주는 베르디인지라 주역들이 연습하는 곳에 가서 코치하기가 일수였으며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크게 확장토록 했다. 실제로 베르디는 아이다의 밀라노 공연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썼다. 의상 디자이너까지 직접 선정한 것만 보아도 알수있다. 또 베르디는 원래의 전주곡대신 별도로 서곡을 작곡하여 붙이려 했으나 나중에는 원래의 전주곡을 쓰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아이다의 밀라노 초연은 오래전부터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티켓 값은 사상 최고였다. 라 스칼라 극장에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대규모의 무대 장치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1872년 2월 8일 역사적인 공연이 이루어졌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려고 몰려왔기 때문에 한 좌석에 두 사람씩 앉는 경우도 많았다. 표를 구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극장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베로나 야외극장에서의 아이다 무대


밀라노에서의 대성공이후 이탈리아 다른 도시의 극장들도 아이다를 공연하게 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밀라노 공연 이후 2년 동안 아이다는 아주 특별한 극장에서만 공연될수 있었다. 베르디가 과연 그 극장이 아이다를 공연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직접 검토하고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파르마극장은 베르디의 인정을 받아 아이다를 공연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온 동리 사람들이 아이다를 다 좋아 한것 만은 아닌것 같았다. 어느날 베르디는 어떤 청년으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다. 파르마에서의 아이다를 보기위해 먼 마을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두 번이나 와서 보았지만 음악에 대하여 실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베르디 선생에게 왕복 기차표 값 및 입장료, 그리고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먹기나 잘 먹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기차역 식당에서 비싼 돈을 주고 사먹었던 식사비를 갚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는 아이다가 앞으로 다른 극장에서 두어번 공연하고 그만두게 될것 같다는 말도 덧 붙였다. 베르디는 전에 없었던 이같은 뜻밖의 이상한 코멘트를 일종의 모욕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공연 관계자에게 당장 그 청년이 요구한 돈을 갚아 주라고 지시했다. 단, 저녁밥은 집에 가서 먹을 수도 있는 문제이므로 갚아 주지 말도록 했다. 그리고 지불한 돈에 대하여 영수증을 보내주도록 요청하되 다시는 베르디의 신작 오페라를 관람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으라고 했다. 이 청년의 예견은 빗나갔다. 아이다는 카이로 초연이후 1백 몇십년을 지나는 동안 세계 각국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오페라의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아이다는 초연이후 단 10년 동안에 세계 각 극장에서 155회 공연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음악 축제인 베로나 야외극장 음악제는 1913년 첫 음악제를 시작할 때에 아이다를 공연했다. 끝으로 한마디 더! 아이다가 수에즈운하의 개통을 기념하여 작곡되었다하면 그 말을 전적으로 믿지 말것!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무대. 암네리스와 라다메스.


아이다는 베르디의 전체 작품중 마지막으로 세 번째이다. 실제로 베르디는 아이다를 마지막으로 하여 오페라 작곡에서 은퇴하려고 생각했었다. 은퇴할 이유는 충분했다. 우선 아이다 때문에 거금의 작곡료를 받았고 그 이전의 작품으로부터도 상당한 돈을 벌어 놓았으므로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르디가 아이다 이후에 쓴 두 작품, 즉 오텔로와 활슈타프는 순전히 지인들이 간청성 강요 및 미세스 베르디의 권유에 의해서 쓴 것이다. 특히 베르디 작품중 여러편의 대본을 쓴 아리고 보이토와 스칼라극장의 제작자가 읍소를 비롯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베르디로 하여금 어쩔수 없이 다시 작곡에 손을 대게 했다. 활슈타프는 베르디가 80 고령에 쓴 것이다. 오늘날 평론가들의 말에 의하면 말년의 3대 걸작인 아이다, 오텔로, 활슈타프가 베르디의 전체 28편의 작품 중에서 그 3편을 제외한 나머지 25편에 버금하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말년의 3대 걸작은 갑자기 새로 탄생한 것이 아니다. 베르디의 초기 3대 작품인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에서 진화발전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초기의 3대 작품은 모두 1851년에서 1853년까지의 단 3년 동안에 만들어졌다. 이같은 진화발전을 위해서 베르디는 바그너의 ‘링 사이클’로부터 일부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얘기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이다. 우리는 아이다에서 바그너적 요소를 쉽게 찾아 볼수 있다. 물론 베르디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는지, 바그너가 베르디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른바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바그너가 먼저 시도하였으므로 그런 의미로 본다면 베르디가 바그너로부터 자극을 받은 것 같다는 해석이다. 베르디는 아이다에서 음절의 균형적인 대칭을 사용하지 않았고 레시타티브와 아리아간의 균형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제1막에서의 라다메스의 Celeste Aida(청아한 아이다)와 아이다의 Ritorna vincitor(이기고 돌아오라)는 바그너 스타일을 인용한 완벽한 예이다. 다만, 3막에서의 O partia mia(오 나의 조국이여)만은 전통적인 라 트라비아타 스타일의 아리아이다. 라 트라비아타나 리골레토와는 달리 아이다에는 대표적인 아리아가 적다. 이것 역시 바로 바그너적 표현이다. 전체 ‘링 사이클’에서도 아리아라고 할수 있는 것은 고작 2곡뿐임을 상기해 보면 알수 있다. 실제로 베르디가 바그너 스타일의 라이트모티프를 자주 사용했다는 것은 오늘날 평론가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예를 들면 ‘링 사이클’ 전주곡의 첫 몇 소절은 아이다의 모티프와 흡사하다. 이어서 이집트 고승의 모티프가 나온다. 이 모티프는 마지막 막에서 승려들이 입장할 때에도 반복된다. 라다메스가 ‘청아한 아이다’를 부르고 난후 암네리스 공주가 들어올 때에도 암네리스의 모티프가 따라 붙는다. 이밖에도 여러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암네리스의 질투의 모티프, Phtha (발음할수 있으면 해 보시라!)신(神)의 모티프 등이다.

 

아이다 무대. 시애틀 오페라.


아이다를 감상하기 전에 시대적 배경을 알아두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Pharaoh)시절, 이집트는 이웃나라인 에티오피아(옛 이름은 아비씨니아)와 빈번한 전쟁을 가졌다. 전쟁은 대체로 이집트의 승리였으나 에티오피아의 항거는 만만치 않았다. 어느 해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이집트는 에티오피아에 대하여 막대한 금액의 전쟁보상금을 요구하였다. 에티오피아가 이 요구를 들어줄수 없다고 하자 이집트는 다시 전쟁을 일으켜 에티오피아에게 회생이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주었다. 수많은 포로가 이집트로 잡혀왔다. 그 중에는 아이다(Aida: Sop)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품위가 돋보이는 미모의 여인이었지만 그의 신분에 대하여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다는 에티오피아왕 아모나스로(Amonasro: Bar)의 공주였다. 아이다는 파라오의 공주인 암네리스(Amneris: MS)의 노예로 지내게 되었다. 한편 전쟁에 패배한 아모나스로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피신하여 군대를 모아 재기를 꾸미고 있었다.

 

베로난 야외극장의 무대


라다메스(Radames: Ten)는 파라오의 근위대장이다. 파라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용감하고 훤칠한 군인이다. 라다메스는 파라오의 궁전에 있으면서 암네리스 공주의 노예인 아이다를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고 결국 아이다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먼저부터 라다메스를 사랑하고 있던 사람은 암네리스 공주였다. 파라오도 은근히 자기의 딸인 암네리스와 전도유망한 청년장군 라다메스가 맺어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혹시 오페라 ‘아이다’가 라다메스를 사이에 둔 두 여인의 단순한 애정문제라고 생각할수 있다. 그러나 오페라 ‘아이다’가 전하는 전체적인 메시지는 억압받는 자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지배받고 있는 나라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부각되어 있다. 베르디가 '아이다'를 작곡할 당시의 이탈리아 역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패전국 에티오피아의 입장은 나라의 통일을 원하는 이탈리아의 입장과 흡사하다고 할수 있다. 여기에서 이 오페라의 진면목을 볼수 있다.


 

암네리스 공주


‘아이다’는 전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대는 고대 이집트의 중심도시였던 멤피스와 테베이다. 전체공연시간은약 2시간 반. 제1막. 에티오피아의 왕이 이끄는 군대가 다시금 이집트 국경을 침범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파라오는 토벌군을 편성하고 사령관에 라다메스를 사령관에 임명코자 한다. 하지만 라다메스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아이다의 조국인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하러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에 나가게 되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며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아이다를 당분간 만날 수 없게 되어 걱정이다. 아무튼 아이다는 노예 신분이 아니던가? 더구나 요즘 눈치를 보니 암네리스가 은근히 아이다를 경계하는 듯하므로 더구나 마음이 무겁다. 서곡에 이어 막이 오르자마자 라다메스의 아리아가 무대를 압도한다. Celeste Aida(천상의 아이다)이다. ‘정결한 아이다’ 또는 ‘청아한 아이다’라고 번역되어 있기도 한 유명한 아리아이다. “살아서 돌아오면 아이다에게 말하리라/ 이 모든 영광은 그대를 위함이라고/ 청아한 아이다. 우아한 그 자태/ 그대는 영원한 나의 생명의 빛/ 부드러운 바람결. 맑은 하늘의 그대 조국으로/ 그대와 함께 가서/ 거룩한 화관을 그대에게 바치리/....” 대충 이런 내용이다.

 

파라오

 

막이 오르자마자 테너(주역)의 아리아가 시작되는 것은 베르디의 다른 작품에서는 물론, 어느 오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설정이다. 일반적으로 베르디의 오페라는 군중들이나 병사들의 합창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주역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음으로서 나중에 이들이 아리아를 부를때 충실하게 부를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아이다’에는 종래의 패턴이 도입되지 않았다. 라다메스의 아리아는 아이다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서정적인 내용이다.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부르기가 쉽지 않다. 만일 처음부터 테너 주역이 기운이 빠진다면 전4막을 지탱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이 오르자마자 테너 주역이 힘든 아리아를 부르도록 한 것은 대단한 시도가 아닐수 없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테너라면 라다메스 역할을 꺼려한다. 다만, 제2막의 개선장면에서는 라다메스의 위세가 하늘 높이 치솟기 때문에 그 맛에 라다메스 역할을 맡는 테너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카루소마저 라다메스 역할을 별로 내키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건 카루소의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근자에 가장 탁월한 라다메스 역할은 주세페 디 스테파노(Giuseppe di Stefano)를 꼽을수 있다. 모든 조건이 라다메스로서 제격이었다고 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치도 도밍고도 라다메스를 맡아 기염을 토한바 있다.

 

메트로폴리탄. 아이다(비올레타 우르마나)와 라다메스(마르첼로 조르다니)


라다메스의 아리아가 끝나자 전령이 들어와서 파라오에게 에티오피아 군대가 국경을 침공해 왔다고 보고한다. 파라오는 라다메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속히 전쟁터로 떠날 것을 명령한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이다는 사랑하는 라다메스의 승리를 기원하는 아이러니컬한 아리아를 부른다. Ritorno vincitor!(이기고 돌아오라!)이다. 사실 아이다의 마음은 비통함으로 가득차 있다. 자기의 조국, 자기의 백성을 정벌하러 가는 사람의 승리를 기원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저주스럽기 때문이었다.


“이기고 돌아오라/ 어찌 내가 이런 말을 할수 있을까/ 아, 아버지를 쓰러트리라는 말을 한 것이야/ 조국과 나를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아버지를/ 그이가 이기고 돌아오면 조국은 피바다가 될 것/ 환호를 받으며 개선하겠지만/ 그 뒤에 끌려올 아버지의 처참함 모습/ 하지만...외로운 나를 위로해주고 사랑해준 라다메스/ 어찌 내 사랑을 죽으라고 바랄수 있으랴/ 아버지와 조국을 배반하는 것도, 그이를 사랑하는 것도/ 나로서는 못할 일. 어찌하란 말인가/ 울고 싶고 신에게 빌고 싶을 뿐/ 그러나 눈물은 죄가 되고 기도는 모독이 되는 것을/ 자비로운 신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불길한 마음. 사랑이 나의 마음을 찢어 놓고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구나...”라는 내용이다.  

 

 

아이다 역의 레온타인 프라이스


제2막. 라다메스의 이집트 군대는 승리를 거두었다. 암네리스 공주는 개선장군을 맞이하기 위해 아름답게 단장을 하고 있다. 아이다가 암네리스 공주를 시중하고 있다. 그러나 암네리스가 언듯 보니 아이다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 순간적으로 암네리스 공주는 아이다가 라다메스를 사랑하고 있음을 눈치 챈다. 순간 질투심이 치솟는다. 2막의 하이라이트는 저 유명한 개선의 장면이다. 그랜드 오페라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웅장하고 화려한 장면이다.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라다메스의 개선군사들이 온갖 전리품을 들고 파라오의 앞을 지나 행진한다. 신전의 무희들이 아름다운 춤을 추며 꽃잎을 뿌린다. 이어서 전쟁포로들이 쇠사슬에 얽매여 끌려 들어온다. 아이다가 포로들 중에서 아버지 아모나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달려가서 끌어안는다. 아버지 아모나스로는 아이다에게 자기를 모른채 해 달라고 부탁한다. 에티오피아의 왕이라는 것이 발각되면 아이다의 목숨도 위태롭기 때문이다. 라다메스는 사랑하는 아이다가 어떤 노인 포로를 붙잡고 눈물을 떨구는 것을 보고 아이다를 위로해줄 생각으로 파라오에게 전승에 대한 보상으로 포로들을 자유롭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군중들도 왕의 자비를 구한다. 파라오는 모든 포로를 자유롭게 하지만 아이다와 함께 있는 늙은 포로만은 인질로 잡아 두기로 한다. ‘아이다’는 다른 어느 오페라보다도 규모가 크다. 라 스칼라극장에서의 공연에서는 라다메스의 개선장면에 3백여명이 일시에 무대 위에 동원되었다. 그후 베로나 노천극장에서는 5백명이 넘는 엑스트라가 출연했다. 낙타와 코끼리까지 등장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라다메스의 개선의 장면

                                 

제3막. 암네리스 공주는 라다메스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 있다. 공주는 이시스(Isis)신전으로 가서 라다메스의 마음을 자기에게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한편, 아이다는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라다메스를 만나기로 하여 신전 밖에서 아무도 몰래 기다리고 있다. 아이다는 O partia mia(오, 나의 조국)이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조국을 택할 것인가, 사랑하는 라다메스를 택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을 분출하는 아리아이다. 뜻밖에 아이다의 아버지 아모나스로가 아이다를 만나기 위해 삼엄한 경계를 뚫고 찾아 나섰다가 신전 앞에 있는 딸을 만난다. 아버지인 에티오피아 왕 아모나스로는 딸을 만난 기쁨에 앞서서 아이다가 라다메스 장군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놀란다. 아모나스로 왕은 에티오피아의 재기르 위해 아이다에게 라다메스 장군으로부터 이집트 군대가 또 다시 어느 지점을 공격할 것인지 정보를 알아내 달라고 당부한다. 아이다는 한없는 번민에 휩싸인다.

 

아이다와 아모나스로. 메트로폴리탄
                                                                                           

어둠을 뚫고 라다메스가 나타나자 아이다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두 사람이 멀리 도망가자고 애원한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과 조국 에티오피아를 생각하여 마음을 돌려 라다메스로부터 이집트 군대의 비밀작전을 알아낸다. 숨어 있던 아이다의 아버지 아모나스로가 이집트 군대의 비밀작전을 듣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시스 신전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암네리스 공주는 우연히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주고 받는 얘기를 듣는다. 공주는 라다메스가 이집트를 배반하고 적군에게 비밀작전을 누설한 것으로 믿는다. 어찌할 것인가? 라다메스를 고발하여 반역죄로 처형 받도록 할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이다와 함께 멀리 도망가도록 방관해야 할것인가? 공주의 번민은 라다메스의 행동으로 일단락된다. 라다메스는 번민 끝에 아이다와 함께 멀리 도망가려던 생각을 포기하고 신전의 고승 앞에 나아가 적군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한 자기의 죄상에 대하여 심판을 받기로 결심한다.

 

현대적 연출의 아이다. 라다메스의 개선과 아이다의 슬픔
                                

제4막. 이시스 신전 고승의 심판은 준엄했다. 라다메스는 무덤 속에 생매장 당하는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암네리스 공주는 사랑하는 라다메스를 구해 낼 별다른 방법을 찾을 길이 없었다. 이집트의 개선장군으로서 모든 영예와 자존심을 버린 라다메스는 숙연한 심정으로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뜻밖에 아이다가 이미 무덤 속에 와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음을 택하기 위해 무덤 속으로 찾아 들어온 것이다. 라다메스와 아이다는 O terra, addio(오, 이 세상이여 안녕히)를 부르며 이 세상에서의 작별을 고한다. 무덤 밖에서는 암네리스 공주가 무릎을 꿇고 두 사람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중에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개선축하무대


서곡은 비련의 여인 아이다를 염두에 둔 것이다. 우아하고 여성적이다. 대응하여 나오는 또 다른 주제는 이시스 신전의 승려들을 의미한다. 서곡이 끝나고 막이 오르면 고승들과 함께 라다메스가 등장해 있다. 라다메스는 홀로 번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암네리스 공주와 아이다와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관중들에게는 그런 내면적인 갈등의 모습이 직접 전달될수 없는 일이다. 그 갈등을 오케스트라가 대신 전달해 주고 있다. 1막에서 라다메스의 역할은 ‘청아한 아이다’로서 그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2막에서도 라다메스의 역할은 개선장군 이외의 두드러진 것이 없다. 3막에서는 아이다와 아모나스로,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갈등이 주류를 이룬다. 3막에서는 암네리스 공주가 신전으로 향할 때의 행렬이 매우 인상적이다. 신에게 의지하려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4막에서도 라다메스는 상당부분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러다가 제일 마지막 장면, 즉 아이다와 함께 무덤 속에서 만날 때 비로소 자기의 심정을 완성한다. 이렇게 볼때 라다메스의 진짜 모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를 애국적인 용맹한 전사(戰士)로 볼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포로가 된 하나의 남성으로 볼것인가는 아직도 숙제이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호수무대
                                             

리릭 소프라노가 맡아야 하는 아이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다는 리릭이면서도 전반적으로 매우 드라마틱한 성량을 표출해야 한다. 노예의 신분으로서, 그리고 사랑에 번민하는 여인으로서의 서정적이고 여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면서도 조국을 생각하고 사랑을 위해 죽음까지도 감내해야하는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때문에 이탈리아의 아기자기한 오페라에 익숙하여 있는 소프라노들로서는 여간 감당하기가 힘든 역할이 아니다. 암네리스 공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파라오의 딸로서 명예와 함께 근엄한 역할을 기대해야겠지만 사랑에는 약한 한낱 여인의 역할도 맡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오페라의 모든 주역들은 리릭과 드라마틱을 겸해야 하는 입장이다. 베르디는 이렇듯 각자의 역할이 전체 중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한배하였으며 또한 오케스트라가 이러한 조화를 적절하게 이끌어 가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이 오페라에서 '아이다'의 아버지인 에티오피아 왕 아모나스로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는 다른 주역들에 비하여 그저 잠시만 출연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역동감에 넘쳐 있으며 가슴을 저미는 아름다움마저 던져준다. 특히 2막에서 에티오피아 포로들의 자유를 위해 자기의 자존심마저 버리면서 파라오에게 간구하는 장면은 훌륭한 전사로서의 모습과 함께 자비로운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감동적인 장면은 오랜 기간 동안 생사를 모르고 지내던 사랑하는 딸 아이다를 우연찮게 만났지만 아는 체를 하면 아이다가 위험해 질것을 걱정하면서 내색을 보이지 않다가 나중에 신전 밖에서 만나 포옹할 때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라다메스 역의 마티 솔(Marty Sohl). 메트로공연.

 

[아이다에 나오는 주요 아리아-앙상블] - 괄호 안은 영어로 번역된 제목

- Celeste Aide(Heavenly Aida) - 청아한 아이다

- Su! Del Nilo(Guard the Nile) - 나일을 지키소서

- E l'amor mio? Rittorna vincitor(There is no other. Return with victory) - 이기고 돌아오라

- Possente Ftha(Most mighty Ftha) - 전지전능하신 프타신이시여

- Floria all' Egitto(Glory to Egypt and Grand March) - 이집트에 영광을

- Ma tu, Re(Ah, Great King) - 아 위대한 왕이시여

- O patria mia(Land of My Youth) - 젊은 시절의 고향

- Padre! A costoro(I was never a slave) - 노예가 된 일이 없었어요

- La tra foreste vergini(Where the age-old forest sleeps) - 태고의 숲이 잠들어 있는 곳

- Di mie discolpe(I could defend myself) - 나 자신을 지킬수 있었다

- O terra addio(Oh Earth, Farewell) - 이 세상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