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마스카니

정준극 2007. 12. 3. 11:49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

P. Mascagni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1945)의 단막 오페라이지만 단막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중의 하나이다. 원작은 시실리 출신의 조반니 베르가(Giovanni Verga)가 쓴 ‘시실리아 단편’이라는 저서에 들어 있는 것이며 이를 조반니 카르지오니-토쩨티(Giovanni Targioni-Tozzetti)와 귀도 메나스키(Guido Menasci)라는 사람이 이탈리아어의 대본을 완성했다. 이탈리아 베리스모(Verismo)의 고전으로 간주되고 있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1890년 5월 17일 로마의 코스탄치(Costanzi)극장에서 초연되었다. 3년후인 1893년부터는 이른바 카브/파그(Cav/Pag)라고 하여 루제로 레온카발로(Luggero Leoncavallo)가 작곡한 팔리아치(Pagliacci)와 더블 빌(Double Bill: 2편 동시 공연)로서 공연되기 시작하였으며 그로부터 이제는 카브/파그 더블 빌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다. 마스카니는 모두 16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그의 첫 번째 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오페라이다. 마스카니의 다른 작품으로서 그나마 자주 공연되는 작품으로는 L'amico Fritz(친구 프릿츠)와 Iris(이리스)가 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초연에서 대성공을 거둔 이후 마스카니가 194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5년 동안 이탈리아에서만 1만4천회가 공연되었다. 이 기록은 어느 누구의 오페라도 이루지 못한 대단한 것이었다.  


원작자인 조반니 베르가

 

1888년 7월 밀라노의 음악출판가인 에도아르도 손초뇨(Edoardo Sonzogno)는 이탈리아의 젊은 작곡가로서 아직 한번도 오페라로 데뷔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공개 작곡경연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최측은 응모대상을 단막 오페라로 한정하였으며 우수 작품으로 선정된 3편의 오페라는 손초뇨의 비용으로 로마에서 공연한다는 것이었다. 마스카니는 이런 경연대회가 있다는 말을 마감 두달전에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전을 작정한 마스카니는 친구인 조반니 타르지오니-토쩨티에게 아무 대본이나 새로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시인이며 이탈리아 왕립해군사관학교 문학교수인 타르지오니-토쩨티는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킨 스토리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선택했다. 타르지오니-토쩨티는 동료인 귀도 메니스키와 함께 대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작곡할 시간이 촉박하여 다만 한 장이라도 대본이 완성되면 곧바로 마스카니에게 보내 작곡을 추진토록했다. 어떤 때는 출장중인 타르지오니-토쩨티가 아리아의 가사 몇줄을 써서 그림 옆서 뒷면에 적어 보낸 일도 있었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곡절 끝에 마스카니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겨우 완성하여 마지막 마감일에 제출할수 있다. 손초네 경연대회에는 모두 73편의 단막 오페라가 응모했다. 심사결과 니콜라 스피넬리(Niccola SpinellI)의 Labilla(라빌라), 빈센조 페로니(Vincenzo Ferroni)의 Rudello(루델로), 그리고 마침내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세편이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투리두와 마마 루치아와 산뚜짜


손쵸뇨는 세편의 우수작을 하루밤에 차례로 공연하여 최우수작을 가려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현재의 로마 오페라하우스인 코스탄치극장에서 세편의 단막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제일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끝나자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마스카니는 이날 밤 40회의 커튼콜을 받았다. 당연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다. 무명의 청년 작곡가 마스카니는 단 하루밤 사이에 놀라운 인기의 작곡가가 되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편의 오페라는 그날 이후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찾을수 없다는 후문이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코스탄치극장에서의 대성공이후 이탈리아 전국으로부터 열화와 같은 초청을 받았다. 사람들은 모이기만하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대한 얘기를 나눌 정도였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초연에서는 소프라노 젬마 빌린치오니(Gemma Bellincioni)가 산투짜를 맡았으며 남편 로베르토 스타뇨(Roberto Stagno)가 투리두를 맡아 또 다른 화제가 되었다.
                                     

군대에서 돌아온 투리두는 산뚜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미 결혼한 롤라를 못잊어 한다.


영국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수입에 있어서 다른 나라들보다 항상 앞서 있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공전의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영국은 다른 나라에 빼앗길새라 재빨리 이 오페라를 수입하였다. 그리하여 로마 초연 이듬해인 1891년 10월 런던의 섀프트스베리(Shaftesbury)라는 작은 극장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처음 공연되었고 이듬해 5월에는 단막임에도 불구하고 코벤트 가든의 무대에 올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영국보다 먼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도입하여 공연했다. 미국은 이번에는 영국보다 앞섰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고 이를 널리 자랑해 왔다. 영국보다 얼마나 앞섰느냐 하면 한달 앞섰다. 그리하여 1891년 9월 9일 필라델피아의 그랜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 한편, 영국은 필라델피아에서의 공연 날짜가 틀리다고 하면서 영국이 미국보다 먼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공연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누가 먼저 공연했느냐를 두고 법정까지 갔지만 미국이 승소했다. 뉴욕에서의 공연은 같은해 10월 1일이었다. 뉴욕에서는 이날 각각 다른 장소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라이벌 공연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나는 오후에 센트랄 파크의 카지노에서 루돌프 아론슨(Rudolph Aronson)의 지휘로 공연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밤에 르낙스 리시움(Lenox Lyceum)에서 오스카 햄머슈타인(Oscar Hammerstein)의 지휘로 공연된 것이었다. 결과는 무승부! 메트로폴리탄에서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공연은 1891년도 서서히 저무는 12월 30일 밤이었다. 글룩의 Orfeo ed Euridice(오르페오와 유리디체)와 함께 더블 빌(Double Bill)로 공연되었다. 이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메트에서만 최근에 이르기까지 무려 652회나 공연되었다.

 

마마 루치아와 산뚜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일약 세계적 오페라로 발탁한 손초뇨(Sonzogno)는 이후에도 몇해에 걸쳐 오페라 작곡경연대회를 계속 주관했다. 1907년의 경연대회에서는 도메니코 몬레오네(Domenico Monleone)라는 청년작곡가가 베르가(Verga)의 시칠리안 소설에서 스토리를 가져와 마스카니와 마찬가지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는 제목으로 단막 오페라를 응모하였다. 이 오페라는 입상하지 못했으나 그 해에 암스테르담에서 초연되어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이어 순회공연에 들어가 프랑스를 거처 이탈리아의 토리노(튜린)에서 마지막 공연을 가졌다. 이 사실을 알게된 손초뇨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몬레오네의 작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법적조치를 취하였다. 이로서 몬레오네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이탈리아에서 더 이상 공연될수 없었다.

 

부활절 아침 미사. 미스테리 플레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영화로 만든 것이 몇편 있다. 첫째는 1916년의 무성영화로서 1890년의 로마 초연에서 산투짜의 이미지를 창조했던 소프라노 젬마 벨린치오니가 직접 출연했다. 하지만 1953년의 영화는 출연 배우들이 오페라 성악가들의 노래를 흉내내도록 한 것이다. 젊은 안토니 퀸(Anthony Quinn)이 알피오로 출연하여 베이스 티토 고비(Tito Gobbi)의 노래를 부르는척 한 것은 아직도 얘기꺼리가 되고 있는 사항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Fatal Desire(죽음의 욕망)이었다. 1982년 거장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는 플라치도 도밍고(투리두), 엘레나 오브라초바(Elena Obraztsova: 산뚜짜), 레나토 브루손(Renato Bruson: 알피오), 페도라 바리비에리(Fedora Barbieri: 루치아)등 당대의 성악가들이 직접 출연한 작품이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은 너무나 유명하여 여러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경우는 영화 대부(The Godfather) 제3부이다. 역시 시실리의 배경에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투리두(플라시도 도밍고)와 산뚜짜(타티아나 트로야노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라는 말을 직역하면 ‘시골 기사(騎士)’가 된다. 영어로는 Rustic Chivalry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Cavalleria(기사)는 중세의 갑옷을 입은 기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어른을 말한다. 우리 식으로는 신사(紳士)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기사’이건 ‘신사’이건 남자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으려면 기사도정신 또는 신사도정신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기사도정신은 충성, 용맹, 자비, 예의를 모토로 하며 특히 부인과 어린이를 존중하고 약한 자를 돕는 의로운 정신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 그런 훌륭한 기사도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스토리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주인공인 투리두(Turridu: Ten)라는 시골 청년은 신사도정신을 갖고 있기는커녕 이미 남의 부인이 된 옛 애인을 잊지 못해 스스로를 파멸하는 못난 인물이다. 게다가 이 ‘시골신사’는 옛 애인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순진한 마을 처녀를 유혹하여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채 임신을 시키고 오히려 외면한다. 그리고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말도 듣지 않고 날이면 날마나 술로 세월을 보내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는 타이틀에 담겨 있는 의미를 굳이 해석하자면 그저 ‘못난 시골 남자’ 쯤이라고 할수 있다.

 

부활절 아침. 메트로폴리탄 무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스토리는 삼류소설에나 나옴직한 평범한 것이다. 투리두라는 청년이 군대에 갔다가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군대 가기 전에 사랑했던 롤라(Lola)라는 아가씨는 이미 고무신을 거꾸로 신어서 다른 남자와 결혼한 처지이다. 투리두는 허전한 마음에 순진한 마을 처녀 산뚜짜를 사랑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옛 애인 롤라를 잊지 못하고 있다. 산뚜짜는 투리두의 어머니가 마치 딸처럼 여기는 착한 처녀이다. 산뚜짜는 투리두에게 제발 정신 차리고 자기에게 돌아오라고 간청하지만 투리두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결국 투리두는 롤라의 남편 알피오와 결투 끝에 목숨을 잃는다. 이런 평범하고 일견 유치하기까지한 내용의 오페라가 어떻게 해서 만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던 것일까? 이유는 대체로 두가지로 생각할수 있다. 첫째는 이른바 베리스모(Verismo) 사조를 선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음악이 감미롭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오페라 스타일에 뿌리를 둔 마스카니의 음악은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감성적인 것이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하는 산뚜짜(에바 마리 웨스트브뢰크)의 말을 듣지 않는 투리두(마르첼로 알바레스)

                                

차제에 베리스모에 대하여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1954년에 출판된 Grove(그로우브) 사전에 따르면 베리스모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한 부류로서 내용이 센세이셔널하고 강렬하다’라고 말하고 이어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푸치니, 조르다노의 오페라 작품이 이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베리스모 작품과 종전의 전통적인 작품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주제에 있다. 몬테베르디로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수세기를 거쳐오면서 주로 영웅적이거나 신화적인 내용, 전설적이거나 역사적인 에피소드를 주제로 삼아 왔다. 따라서 등장인물도 여러 신(神)으로부터 영웅이나 왕, 또는 지체 높은 귀족들로 채워지는 것이 일반이었다. 그러나 베리스모에서는 이름 없는 서민이 주인공이며 귀족들로서는 관심조차 없는 그들의 일상적인 얘기가 주제를 이루고 있다. 따지고 보면 종전의 오페라는 형식에 얽매인 바로크와 고전주의,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로맨티시즘(낭만주의), 베르디의 작품에서 볼수 있는 애국주의와 종교주의, 그리고 바그너의 신화적인 국수주의.....그러한 패턴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1차대전으로 황폐해진 땅에서 일반대중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한 덩어리의 빵과 추위를 피할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었다. 이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신이나 왕족들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다. 오페라의 세계에 있어서도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밤낮 비슷한 스토리와 비슷한 음악의 오페라에 대하여 체증을 느꼈다. 로맨티시즘, 바그너리즘과 같은 것에 대하여도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이럴때에 등장한 것이 서민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리얼리즘이었다. 19세기말,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리얼리즘의 선풍을 일으킨 인물이 바로 마스카니였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이다.


전설적인 산뚜짜 역의 줄리레타 시미오나토(Giulietta Simionato). 산뚜짜라는 이름은 작은 성녀(聖女)라는 뜻이다.


마스카니는 밀라노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한후 시골학교의 음악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가난한 빵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마스카니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아끼는 어떤 귀족의 후원을 받아 밀라노음악원에 들어갈수 있었다. 당시 같은 클라스에서 공부했던 사람이 푸치니였다. 푸치니는 마스카니보다 다섯 살 위였다. 마스카니는 푸치니의 영향을 받아 실내악이나 교향곡보다는 오페라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시골학교의 음악선생으로 있으면서 장편의 오페라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 때 로마의 악보출판사인 손초네가 단막 오페라 현상모집을 내걸었고 잘만하며 돈도 벌고 명성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한 마스카니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응모했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아무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이후 이탈리아의 오페라계에서는 베리스모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고 위대한 푸치니는 그 중심에 있게 되었다.

 

투리두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산뚜짜를 위로하고 있는 마마 루치아와 마을 여인들

                                 

무대는 시실리의 어떤 평화로운 마을이다. 시기는 어느 때든지 상관없다. 다만, 부활주일(이스터 선데이)의 하루동안 일어났던 일이다. 무대 한편에는 평화와 자비를 상징하는 성당이 우뚝 서있다. 다른 한편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배어 있는 주막집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과 주막집. 묘한 대조이다. 마치 이상과 현실, 진실과 거짓,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것 같다. 성당이 서민들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해 줄수 있다는 것인가? 성당은 다만 숭배의 대상일 뿐이며 서민들의 애환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은 성당을 찾는다. 이 주막의 주인은 마마 루치아(Mamma Lucia: Sop)이다. 군대에 갔다가 얼마전 제대하여 고향에 돌아온 투리두의 어머니이다. 이탈리아어에서 어머니는 마드레(Madre)이지만 여기서는 마마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투리두가 군대에 가기 전에 애인이었던 롤라는 마부이면서 마을 이장인 알피오(Alfio: Bar)와 결혼했다. 부활절의 아침을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로 전주곡이 시작된다. 아직 막은 오르지 않았지만 투리두가 옛 애인인 롤라를 잊지 못하여 부르는 시실리아나(시실리풍의 목가적인 노래)가 들린다. O Lola(오, 롤라)이다. '봄날의 가장 화려한 꽃처럼 아름다운 롤라'라는 내용이다. 그런 후 오케스트라와 성당의 종소리가 부활절을 알리는 음악을 연주할 때에 막이 오른다.

 

성당에서의 부활절 아침 미사


막이 오르자 마을 사람들이 부활절 아침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간다. 무대는 텅 빈 채로 남아 있다. 잠시후 무대 뒤에서 마을 사람들의 흥겨운 합창이 울려 나온다. 소프라노와 앨토, 그 다음에 테너와 베이스 파트가 ‘아~아~’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합창곡이다. Gli aranci olessano sui verdi margini(오렌지 향기는 초원 위에서 바람에 흩날리고)이다. 합창이 끝나자 산뚜짜(Santuzza: 작은 성녀라는 뜻)가 무대에 등장한다. 산뚜짜는 주막으로 가서 마마 루치아에게 투리두가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마마 루치아는 투리두가 어제 밤에 술을 사러 다른 마을에 갔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고 대답해준다. 그러나 산뚜짜는 아침 일찍 마을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롤라의 집 근처에서 투리투를 보았기 때문에 어제 밤에 술을 사러 다른 마을로 갔다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이때 알피오가 나타나 Il cavallo scalpita(달려라 말아)라는 흥겨운 아리아를 부른다. 마부인 알피오는 몇 달전 마을에서 제일 예쁜 롤라와 결혼하여 매일매일이 즐거워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심정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알피오는 투리두가 군대에 가기 전에 롤라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투리두가 제대하고 돌아오자 은근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부활절 아침의 축제. 유타오페라. 현대적 연출

 

성당 안에서는 부활절 찬미가 흘러나온다. 모든 것이 평화스럽게 보이는 부활절 아침이다. 산뚜짜는 마마 루치아에게 자기가 투리두에게 유혹 당해서 그의 아기를 갖게 되었으므로 결국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슬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투리두가 계속 롤라를 잊지 못하고 있으니 제발 자기에게 돌아 올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때 부르는 산뚜짜의 아리아가 Voi lo sapete. O mamma(마마도 아시다시피)이다. 격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아리아이다. 투리두의 어머니인 마마 루치아는 산뚜짜가 측은해서 못견딜 지경이다. 하지만 못난 아들 때문에 입이 열 개라고 할말이 없다. 잠시후 투리두가 나타난다. 산뚜짜는 투리두에게 어제밤에 어디 갔었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투리두는 그런 산뚜짜가 귀찮다는 듯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마침 롤라가 성당에 가기 위해 나타난다. 투리두는 롤라의 뒤를 쫓아간다. 그러나 롤라는 투리두를 거들떠 보지 않는다. 롤라의 마음이 이미 투리두로부터 떠났는지, 또는 남들의 눈이 있어서 일부러 모른척 한것인지는 알수 없다. 산뚜짜는 투리두에게 제발 롤라를 따라 다니지 말고 자기와 함께 있어 달라고 매달린다. 하지만 투리두에게는 마이동풍이다. 투리두와 산뚜짜는 서로 흥분하여 말다툼을 벌인다. 이 때 부르는 산뚜짜와 투리두의 듀엣이 Ah! lo vedi, che hai tu detto(왜 나를 이렇게 방해하나)이다. 산뚜짜를 떨쳐낸 투리두는 롤라의 얼굴이라도 보기위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이 모습을 본 산뚜짜는 결심한 듯 롤라의 남편 알피오를 만난다. 산뚜짜는 알피오에게 롤라와 투리두가 어제 밤에도 밀회를 하였다고 고해바친다. 그러면 알피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므로 투리두가 마음을 돌려 자기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뚜짜로부터 투리두가 아직도 롤라와 밀회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알피오는 화가 불같이 치밀어 복수를 다짐한다. 시실리 사람에게 있어서 명예는 목숨보다 중요했다.

 

부활절 성체 행렬

                          

이런 소동이 있은후 격앙되었던 분위기를 진정시키려는 듯 간주곡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연주회의 레퍼토리로 자주 등장하는 곡이다. 간주곡이 끝나자 종소리와 함께 미사를 마친 마을 사람들이 성당에서 몰려나온다. 투리두는 마을 사람들에게 오늘은 즐거운 부활절이니 마마 루치아의 주막집에서 술이나 한잔씩 들자고 권한다. 마을 사람들은 Viva il vino spumeggaiante(흘러내리는 포도주 만세)를 부르며 포도주를 마신다. 그러한 때에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민 알피오가 나타난다. 알피오를 본 투리두가 멋도 모르고 술을 권하지만 알피오는 이를 거절하고 투리두에게 결투를 요청한다. 시실리 남자들은 만일 누가 자기 아내를 넘보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수 없으므로 자존심을 위해 결투를 요청한다. 사태를 알아차린 투리두는 결투를 피할수 없다고 생각하여 시실리의 풍습대로 알피오의 귀를 깨물어 결투를 승낙한다.

 

알피오가 투리두에게 시실리 식으로 결투를 신청하고 있는 장면

                            

투리두는 술에 취한척 하면서 마마 루치아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작별을 고한다. 투리두는 마지막으로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산뚜짜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한후 결투를 위해 알피오를 따라간다. 투리두의 아리아가 Addio alla madre(어머니 안녕히)이다. Un bacio, mamma! Un altro bacio!(어머니, 한번만 키스를 해주세요, 한번만 더)라고 시작하는 아리아이다. 마마 루치아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투리두의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알피오를 따라가지 말라고 외친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도 불안과 공포의 모습이 깃든다. 잠시후 저 멀리서 어떤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투리두가 결투에서 죽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를 들은 산뚜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즐거운 부활주일에 벌어진 뜻하지 아니한 비극이었다.

                          

조반니 베르가의 소설 표지 (마지막 장면)


마스카니의 음악은 전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특히 벨리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같은 점은 마스카니의 첫 오페라인 L'amico Fritz(친구 프릿츠)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친구 프릿츠’는 벨칸토의 표현력을 강조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마스카니가 베리스모의 선두주자이긴 하지만 그의 음악마저 사실주의에 입각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알피오가 복수를 다짐하며 부르는 아리아, 그리고 투리두와 산뚜짜가 벌이는 말다툼에서의 듀엣 같은 것은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주의적인 음악표현이라고도 할수 있으나 역시 무리가 따르는 해석이다. 전반적으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음악은 서정적으로 아름답다.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가 그렇고 산뚜짜가 자기의 심정을 마마 루치아에게 털어 놓으면서 부르는 ‘마마도 아시다시피’ 역시 아름다운 멜로디의 아리아이다.

 

투리두를 위해 기도하는 산뚜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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