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장미의 기사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정준극 2007. 11. 28. 14:54

장미의 기사

(Der Rosenkavalier)

R. Strauss


18세기 비엔나 귀족사회에서는 결혼식 전날 신랑 집에서 신부에게 폐백의 예물로 은장미를 전달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 은장미를 전달하는 사람이 ‘장미의 기사’이다. 일반적으로 젊은 귀족이 그 임무를 맡는다. 그러므로 '장미의 기사'를 ‘장미전쟁’에 참전했던 갑옷 입은 기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장미의 기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살로메와 엘렉트라 이후에 나온 작품이다. ‘장미의 기사’는 처음에 오페라라기 보다는 음악 코미디라고 불렀다. 작곡가들은 자기의 작품이 새로운 장르를 여는 것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데 이것도 그런 관점에서 음악 코미디라는 장르에 속한다고 주장했던 모양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첫 몇 작품은 마치 19세기의 로맨티시즘으로부터 탈피한 듯한 음악이며 불협화음으로 표현된 것들이었다. 그런 후에 ‘장미의 기사’가 나왔기 때문에 이 또한 로맨티시즘과는 거리가 먼 불협화음의 작품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장미의 기사’를 처음 들으면 19세기 낭만주의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로맨티시즘 음악을 표방한 것은 아니다. ‘장미의 기사’에는 작곡가이며 지휘자였고 관현악 전문가이며 드라마티스트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독특한 음악세계가 창조되어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대본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콤비인 휴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이 맡았다. 유태계인 폰 호프만슈탈은 이미 살로메와 엘렉트라의 대본을 쓴 경력이 있다. 그는 ‘장미의 기사’이후에도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그림자 없는 부인’ ‘이집트의 헬렌’ ‘아라벨라’의 대본도 썼다. ‘장미의 기사’에 대한 스토리는 프랑스의 장-바티스트 루베 드 쿠브라이(Jean-Baptiste Louvet de Couvrai: 1762-1797)의 Les Amours du chevalier de Faublas(훠블라씨의 사랑)이라는 소설에서도 가져왔고 장-바티스트 포퀘랭(Jean-Baptiste Poquelin: 1622-1673)의 Monsieur de Pourceaugnac(푸르소냑씨)라는 코미디에서도 가져왔다. 장-바티스트 포퀘랭은 루이14세 시대에 크게 활동했던 극작가인 몰리에르(Moliere)의 예명이다. 배우이기도 했던 몰리에르는 역사상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드 쿠브라이의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1787년부터 2년동안 파리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여주인공인 로도이스카(Lodoiska)는 왕궁전속 보석세공의 부인으로 실제로 작가 드 쿠부라이와 염문이 있었다고 하며 그 스토리를 연극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몰리에르(장-바티스트 포퀘랭)와 대본가 휴고 폰 호프만슈탈(오른쪽)


‘장미의 기사’는 1911년 1월 26일 드레스덴의 호프오퍼(Hofoper: 당시에는 왕립오페라하우스: Koenigliches Opernhaus)에서 초연되었다. 사람들의 지금까지 들을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에 매료했다. 종전의 모차르트나 베버의 음악에서는 느낄수 없었던 신비함을 던져주는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대 성공이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음악의 흐름에 모두들 한껏 들떠 있었다. 오케스트라는 112명의 대편성. 그중 19명은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토록하여 관현악의 묘미를 십분 살렸다. 물이 흐르듯, 꽃잎이 휘날리듯, 밤하늘의 별이 떨어지듯...그런 음악이 바로 ‘장미의 기사’ 음악이다. 전반적으로 지극히 서정적이다. 테마를 이루는 왈츠의 멜로디는 탐미적인 황홀함과 감미로운 부드러움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며칠후의 베를린 공연은 우여곡절 끝에 겨우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베를린은 독일 제국의 수도였다. 비엔나의 로맨틱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엄격한 규범의 사회였다. 귀족적인 권위와 도덕적인 생활규범이 위세를 떨치던 곳이었다. 그런 사회에서 ‘장미의 기사’는 귀족들의 권위를 손상할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공연 전에 몇몇 장면을 삭제당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1막 대원수부인의 침실 장면...침대 위에서 대원수부인과 옥타비안이 사랑 놀음을 하는 장면은 당연히 삭제되었다. 옥스남작의 일부 대사도 삭제되었다. 치마만 둘렀다하면 불문곡직하고 치사하게 여자를 따라붙는 옥스남작의 행태가 옐로우 카드를 받은 것이다. 마치 파리에서 카르멘이 첫 공연되었을 때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이 외면을 당한 경우와 같다. ‘장미의 기사’의 테마 음악은 왈츠이지만 드라마의 배경시대인 1740년대에는 아직 왈츠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도 흥미 있는 사항이다.  

 

'장미의 기사'가 초연된 드레스덴 궁정오페라극장


시기는 1740년대.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780)여제 치하의 비엔나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누구인가? 무려 40여년 동안(1840-1780) 합스부르크제국을 통치했던 여걸이다. 그의 공식적인 타이틀은 오스트리아 대공녀(Archduchess), 헝가리 및 보헤미아 여왕, 신성로마제국 여제였다. 그의 남편 로렌인의 프란시스(Francis von Lorraine)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으며 막내딸은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왕비인 유명한 마리 앙뚜아네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치적은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 과학과 산업에 있어서도 탁월했다. 어린 모차르트가 비엔나 쇤브루크 궁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끝내고 나오다가 잠시 넘어지자 마리 앙뚜아네트가 달려 나와 일으켜 주었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것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치하에서는 부유한 귀족들의 사치와 방탕이 절정에 이르기도 했다. 합스부르크의 수도인 비엔나의 낮과 밤은 화려한 연회와 오페라 공연, 그리고 절제를 모르는 애정행각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환락의 생활중에서도 일부 유한 귀족들은 탐미적인 새로운 취향을 추구하는데 몰두했다. 남자들은 정부를 두는 것이 공공연한 일이었고 이에 질세라 여자들도 젊은 귀공자들을 애인으로 삼고 애정행각을 일삼았다. 비엔나 귀족들의 이러한 탐미적인 취향은 18세기 초에 비엔나 오페레타의 탄생에 기여한 것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비엔나 기질’ ‘베니스의 밤’, 레하르의 ‘메리 위도우’, 밀뢰커의 ‘거지학생’등은 마리아 테레자 여제의 초기에 만연했던 비엔나 기질을 이어 받은 작품들이라고 할수 있다.


'장미의 기사'의 시대 배경이 된 마리아 테레자 여제


이처럼 ‘장미의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그 시대를 상징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대원수부인(마샬린: Marschallin: Sop)은 합스부르크의 왕족으로서(공주라는 칭호를 받고 있음) 학교를 나오자마자 역시 왕족인 베르덴베르크(Werdenberg) 공작과 결혼하여 공작부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며 남편이 대원수로서 군사령관이 되자 곁들여 대원수부인(마샬린)이 된 여인이다. 드라마가 시작되던 때에는 40을 바라보는 중년여인으로 사치와 허영을 즐기는 인물이다. 나이 많은 남편 베르덴베르크 공작은 마리아 테레자 여제의 신임을 단단히 받고 있는 거물로서 사냥(실은 사냥을 빙자한 걸헌팅과 술파티)에 열중이어서 집을 비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오페라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대개의 지체 높은 귀족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마샬린도 젊은 애인을 두고 남편이 출타중일때 집으로 오라고 해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당시 비엔나 사회에서 일종의 묵인된 관습이었다. 마샬린의 애인은 18세의 옥타비안(Octavian: MS)이다. 원래 이름은 로프라노(Rofrano)백작이며 애칭은 퀸퀸(Quinquin)이다. 젊은 나이에 백작이므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여자처럼 예쁜 모습이었다. 부유한 중년여인인 마샬린의 눈에 띠어 그의 애인으로서 엔조이하고 있는 일종의 강남제비이다. 

 

마샬린과 옥타비안


마샬린에게는 옥스 폰 레르헤나우(Ochs von Lerchenau: Bass)남작이라는 골치 아픈 사촌이 하나 있다. 비엔나에서 떨어진 시골에 살고 있다. 당시에는 친척간 결혼이 유행이어서 지체 높은 집안일수록 얼키고 설킨 사촌이 많았다. 옥스남작도 그런 사촌이었다. 옥스남작은 모습도 욕심스럽고 무식하게 생겼지만 거만하고 잘난체하는 데에는 둘째가라고하면 서러워할 인물이다. 옥스남작은 돈에 눈이 어두워 화니날(Faninal: Bar)이라고 하는 부자 소시지 장사꾼에게 남작의 작위를 알선해 주고 그의 딸 조피(Sophie: Sop)와 결혼함으로서 처갓집 덕을 단단히 보고자 하는 그런 사람이다. 당연히 나이 많고 뚱뚱하며 호감을 주지 않는 인물이다. 결혼식을 앞두고 옥스남작은 어여쁜 약혼녀 조피에게 은장미를 보내야하므로 그 일을 맡을 청년을 소개해 달라고 사촌누이인 마샬린을 찾아 온 것이다. 물론 마샬린을 찾아온 다른 목적도 있다.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니 축의금이나 두둑하게 달라는 시위를 겸한 방문이었다.


옥스남작 역의 전설적인 리하르트 마이르(Ricard Mayr)


마샬린은 얼떨결에 애인인 옥타비안백작을 ‘장미의 기사’로 추천한다. 그런데 은장미를 들고 조피를 만난 옥타비안은 이 아가씨의 청순하고 예쁜 모습에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만다. 옥스남작에게 실망하고 있던 조피 역시 멋쟁이 옥타비안에게 흠뻑 빠진다. 그래서 해피엔딩! 이것이 코믹 오페라 ‘장미의 기사’의 기둥 줄거리이다. 뮌헨 출신이지만 비엔나에서도 오래동안 활동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독일 낭만음악을 마지막으로 완성한 재능 있는 작곡가였다. 재능이 많다는 것은 혼자만의 독특성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와 같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음악 수법을 계승했다는 평을 받았다. 여기에 요한 슈트라우스가 추구했던 비엔나 특유의 기질을 가미했다. 그래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화려하고 장대하며 아름답고 매혹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장미의 기사’는 그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가 담겨 있는 것이며 비엔나의 멋과 유머가 산뜻하게 수놓아져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장미의 기사’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만이 표현할수 있는 탐미적인 관능미가 스며있다. 그러한 관능미는 그의 오페라 ‘살로메’에서도 찾아 볼수 있는 것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현대 표현주의 음악을 수립하는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곡가이다.

 

조피(조피 코흐)에게 은장미를 전달하는 옥타비안(루시 크로우)


제1막은 베르덴베르크 공작부인(마샬린)의 침실. 마샬린은 젊은 미남 옥타비안백작을 끌어들여 한껏 즐기고 있다. 어느새 아침이다. 흑인 시동인 무하마드가 아침상을 차려가지고 온다. 두 사람은 아침 밥상도 제쳐놓고 또 다시 침대에 파고든다. 그 때 누가 갑자기 찾아온다. 마샬린의 사촌 동생인 옥스남작이다. 마샬린은 방에 있으면서도 없다고 할수 없으므로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옥타비안이 밤새 함께 있었던 것을 알게 되면 떠벌이 옥스남작이 사방에 소문을 퍼트릴 것이므로 귀찮아서 옥타비안을 잠시 옷장 안에 숨도록 한다. 그때 옷장 속에 답답하게 숨어 있던 옥타비안이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옷장 안에 있는 하녀 옷을 입고 살며시 모습을 보인다. 영락없는 예쁜 아가씨이다. 옥스남작은 웬 예쁜 하녀가 갑자기 나타나자 당황하면서도 기쁜 기색이 역력하다. 호색한인 옥스남작으로서 마음이 동하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옥스남작은 본래의 방문목적대로 마샬린을 보고 약혼녀 조피에게 은장미를 전달할 장미의 기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마샬린은 은근히 장난 끼가 동하여 로프라노백작(옥타비안)을 장미의 기사로 주선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옥스남작은 사촌누이인 마샬린이 귀족인 로프라노백작을 장미의 기사로 추천하자 기쁘기가 한이 없다. 그러면서도 능글맞은 옥스남작은 예쁜 하녀에게 치근댈 구실만 찾고 있다. 마샬린은 하녀로 변장한 옥타비안을 마리안델(Mariandel)이라고 소개하면서 시치미를 뗀다. 사실상 마리안델이란 이름은 옥타비안이 가끔 여자로 변장할 때 쓰는 이름이다.

 

마샬린에 르네 플레밍


마샬린이 침대에서 기침한줄 알자 잠시후 마샬린을 만나기 위해 별별 사람들이 다 찾아온다. 마샬린의 화장을 책임진 사람, 의상을 담당한 사람, 가발을 맡은 사람, 구제를 바라고 온 상류층 여인들, 애완동물 장사꾼들, 법적인 문서를 가지고 온 공증인, 도움을 바라고 온 조카딸과 파트너, 심지어 사기꾼, 그리고 화장하는 동안 심심하지 말라고 노래를 부르는 이탈리아 테너 등등이다. 이탈리아 테너의 아리아 Di rigori armato il seno는 실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아리아를 연상케 하는 곡이다. 옥스남작은 소란 속에서도 어느 틈에 마리안델(옥타비안)과 데이트 약속을 한다. 옥타비안도 이러한 상황변화를 은근히 재미있어 하는 눈치이다. 모두들 퇴장하고 마샬린이 홀로 방에 남는다. 마샬린은 자기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이제는 한낱 지나간 일로 생각되어 마음이 착잡하다. 이 때 부르는 마샬린의 아리아가 Die Zeit, die ist ein sonderbar' Ding(세월, 특별한 세월)이다. 
                                           

비너 슈타츠오퍼 무대


제2막. 졸부 화니날남작의 호화저택이다. 순대(Wurst)장사로 돈을 번 화니날은 남작의 호칭까지 갖게 되어 기분이 보통 아니다. 딸 조피가 명문 베르덴베르크와 연줄이 있는 옥스남작과 결혼하게 되어 한층 기분이 고조되어 있다. 약혼식 날이다. 아름답고 웅장한 음악이 ‘장미의 기사’가 도착했다는 신호를 알린다. 호화로운 마차에서 내린 ‘장미의 기사’ 옥타비안은 순백색 양단에 은실로 수놓은 정장을 입고 가슴에는 훈장, 허리에는 은으로 만든 칼을 찼다. 옥타비안은 한손에 은장미 한송이를 들고 늠름하게 등장한다. 그 화려함과 늠름함을 보고 옥스남작의 신부가 될 조피는 첫눈에 녹아 버린다. 한편, 옥스남작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옥타비안은 저런 예쁜 아가씨가 그런 남자와 결혼하다니 말도 안된다는 생각에 조피에 대하여 동정심을 갖는다. 드디어 조피에게 은장미를 건넨 옥타비안은 조피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그 신선한 아름다움에 마음에 쏠린다. 짙은 화장으로 얼굴의 주름살을 적당히 감춘 마샬린과 발랄하고 아름다운 조피와는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옥타비안이 조피에게 은장미를 건넬 때 부르는 두사람의 듀엣 Mir ist die Ehre widerfahren(나의 영광)이 무척 사랑스럽다.

 

조피 역의 루치아 폽(Lucia Popp)

 

두 사람의 사랑의 눈길을 주고받을 때 옥스남작이 나타난다. 옥스남작은 조피에게 어서 공증인의 결혼 서약서에 서명하자고 재촉한다. 그러나 조피는 옥스남작에게 이런 저런 이유로 공증서에 서명하는 것을 늦추며 그렇게 급하다면 먼저 나가서 서명하라고 말한다. 옥스남작은 별다은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채 공증인과 함께 공증서에 서명하기 위해 잠시 다른 방으로 나간다. 드디어 옥타비안과 조피는 뜨거운 포옹을 하며 사랑을 맹세한다. 두 사람이 부르는 듀엣이 5월의 훈풍처럼 부드럽다. 그런데 얼핏 이 장면을 본 옥스남작이 그래도 남자라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옥타비안에게 싸움을 건다. 칼을 빼어 드는 두 사람! 그러나 뚱보 옥스남작은 젊고 날렵한 옥타비안의 상대가 될수 없었다. 옥스남작이 팔에 가벼운 상처를 입는다. 죽는다고 엄살을 떠는 옥스남작! 그런 옥스남작에게 시종이 편지 한 장을 전한다. 아침에 마샬린의 방에서 만났던 하녀 마리안델로부터 온 편지이다. 실은 옥타비안이 난처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슬쩍 보낸 것이다. 오늘 밤 도나우 강변의 카페에서 만나자는 내용이다. 옥스남작은 예쁜 마리안델로부터 데이트 편지를 받자 당장 기운이 난다.

 

옥타비안의 엘리나 가란차


제3막은 도나우 강변의 어떤 카페이다. 옥스남작이 일찌감치 와서 마리안델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하녀로 변장한 옥타비안이 옥스남작을 만나 그의 애간장을 태우며 요리조리 시간을 끈다. 이때 경찰이 들이닥치며 불심검문을 한다. 당황한 옥스남작은 결혼식을 하루 앞둔 그가 마샬린 집의 하녀와 놀아난다는 사실이 들통이 나면 입장이 상당히 난처하게 되므로 마리안델(옥타비안)을 약혼녀인 조피라고 둘러댄다. 물론 경찰은 옥타비안이 미리 연락하여 오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조피의 아버지 화니날이 카페에 들어선다. 당황한 옥스남작은 화니날에게 실은 자기가 결혼하고 싶어했던 사람은 조피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는 마리안델이라고 둘러댄다. 놀라는 화니날남작!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이어서 조피도 나타나고 마샬린도 등장한다. 마샬린까지 나타나자 이번에는 옥타비안이 놀랄 차례! 마리안델로 변장한 옥타비안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애인으로 삼고 함께 지냈던 마샬린의 모습을 보자 황급히 옆방으로 숨는다. 잠시후 옥타비안은 본래의 백작의상으로 바꾸어 입고 옆방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제는 마샬린과의 관계를 청산이나 하듯 조피와 사랑을 속삭인다. 조피로서도 결혼키로 했던 옥스남작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떤 하녀와 결혼하겠다고 하니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중년 여인의 직감으로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한 마샬린은 씁씁할 기분으로 한때의 애인이었던 옥타비안을 단념키로 한다. 이때 마샬린, 옥타비안, 조피가 부르는 트리오가 Marie Theres'! Hab' mir's gelobt(마리 테레제 공작부인이시여! 나의 존경을 받으사이다)이다. 화니날로서도 자기 딸 조피가 나이 많고 뚱뚱한 옥스남작 대신에 젊고 잘생겼으며 지위도 훨씬 높은 옥타비안백작과 결혼하겠다는데 마다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두들 퇴장한 후 행복에 겨운 젊은 두 남녀가 사랑의 노래 Ist ein Traum. Spuer' nur dich(이것이 꿈이련가! 오직 그대만을 위해)를 부르는 중에 막이 내린다.

 

마샬린과 옥티바인


[한마디] ‘장미의 기사’는 테너가 푸대접을 받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주인공인 옥타비안 역을 메조소프라노가 맡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op+MS의 듀엣이 많이 나온다.

 

[한마디 더] 비엔나의 8구 요제프스슈타트의 박물관 구역 뒤편에 팔레 아우어슈페르크라는 시내궁전이 있다. 아우어슈페르크슈트라쎄 1번지이다. 팔레 아우어슈페르크는 팔레 로젠카발리에라고도 부른다. 이 시내궁전을 히에로니무스 카페체 데 로프라노(Hieronymus Capece de Rofrano)백작이 매입하여 대대적인 수리를 하고 살았다. 나중에 휴고 폰 호프만슈탈은 '장미의 기사'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로프라노 백작으로 붙였다. 풀 네임은 옥타비안 데 로프라노(Octavian de Rofrano)이다. 그런 연유 때문에 이 저택을 팔레 로젠카발리에라고 부른다. 실제로 이 시내궁전에 있는 커다란 홀의 이름은 로젠카발리에잘(Rosenkavaliersaal)이다. 그러다가 1777년에 요한 아담 아우어슈페르크 공자가 이 시내궁전을 매입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팔레 아우어슈페르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늘날 팔레 아우어슈페르크는 각종 이벤트와 음악회, 파티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하다.

 

'장미의 기사 궁전'이라고도 불리는 팔레 아우어슈페르크에서는 모차르트와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회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