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카르멘 - 비제

정준극 2007. 11. 29. 10:06

카르멘(Carmen)

G. Bizet

 

 

조르주 비제(1838-1875).

 

오페라 카르멘은 1875년 3월 3일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된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대표작이다. 원작은 프로스페 메리메(Prosper Merimee: 1803-1870)의 ‘카르멘’이며 대본은 앙리 메일락(Henri Meilhac: 1831-1897)과 루도비크 알레비(Ludovic Halevy: 1834-1908)가 공동으로 썼다. 메리메는 소설가, 역사학자, 고고학자, 언어학자, 나폴레옹 3세의 궁정신하, 상원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메일락과 알레비는 당시 뛰어난 오페라 대본가로서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중에서 상당수 대본은 이들의 합작으로 완성된 것이다. 예를 들면 La belle Helene(아름다운 엘렌), Barbe-bleue(푸른수염), La Grande-Duchesse de Gerolstein(게롤슈타인 대공부인), La Perichole(페리숄레), Le Reveillon(흐베이용: 흐베이용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의 소재가 되었다)등이다. 메일락은 마스네의 걸작 Manon(마농)의 대본도 썼다. 알레비의 삼촌은 오페라 La Juive(유태여인)을 비롯하여 약 30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유명한  프로멘탈 알레비(Fromental Halevy: 1799-1862)이다.


    

카르멘의 원작자 메리메(왼쪽). 메일락과 함께 대본을 쓴 알레비


카르멘의 스토리는 야성적인 매력을 지닌 집시 여인 카르멘에 대한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 개방적인 카르멘은 사랑에 있어서 풋내기인 돈 호세를 유혹하여 열정적인 사랑을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호세에게 싫증을 느끼고 투우사인 에스카미요에게 마음을 주는 바람에 질투의 화신이 된 돈 호세의 칼에 찔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이다. 이 오페라에는 여러 편의 훌륭한 곡들이 들어 있어서 연주회의 별도 레퍼토리로서도 사랑받고 있다. 특히 서곡이 그러하다. 카르멘의 하바네라, 돈 호세의 꽃노래, 에스카미요의 투우사의 노래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들이다. 오늘날 오페라 카르멘은 세계의 스탠다드 오페라중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중의 하나이다. 오페라 아메리카가 선정한 20대 인기 오페라에서 4위를 차지하였다.

 

카르멘이 일했던 담배공장이라는 곳. 현재는 세빌리아 대학교(Universidad de Sevilla)

                            

1873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Opera Comique)극장의 예술감독인 카미유 뒤 로클(Camille du Locle: 1832-1903)은 비제에게 그해 연말 공연을 목적으로 메리메의 ‘카르멘’을 오페라로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비제가 35세 때였다. 청년 비제는 ‘카르멘’의 소설을 읽고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곧 작곡에 착수하였다. 이를 위해 비제는 센(Seine) 강변의 부기발(Bougival)에 집을 얻어 ‘카르멘’을 완성할 때까지 기거하며 오로지 작곡에만 몰두하였다. 비제는 우선 피아노스코어를 완성하고 주역들이 리허설에 들어가도록 했다. 그러나 주역을 맡을 메조소프라노를 찾기가 힘들어서 이듬해 8월까지도 리허설을 단 한번도 가지지 못했다. 주역인 카르멘을 선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카르멘’의 스토리가 당시 사회적 규범으로 보아 심히 부도덕하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이같은 비판여론은 저속하고 선정적인 대사가 포함된 오페라의 대본이 발간되자 더욱 거세어졌다. 그러므로 뭇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관능적인 제스처, 저급한 대사, 선정적인 춤 등을 자진해서 맡아 하겠다는 성악가를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공연은 준비되어야 했다. 마침내 오페라 코미크의 예술감독인 뒤 로클의 노력으로 그해 12월에 카르멘 역을 맡을 성악가가 결정되었다. 당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던 메조소프라노 갈리-마리(Galli-Marie: 원래 이름: Celestine Marie: 1840-1905)였다. 하지만 리허설을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원래 계획인 그해 연말 공연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카르멘의 이미지를 창조한 메조소프라노 갈리-마리(Galli-Marie)


‘카르멘’의 리허설은 12월부터 들어갔다. 리허설 기간중 오페라 코미크극장의 예술부감독인 드 르븐(De Leuven)은 오페라의 스토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계속 주장하고 비제와 대본가에게 수정을 요구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카르멘이 돈 호세의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은 당연히 고쳐야 한다고 요청했다. 오페라 코미크극장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류층으로서 가족들과 함께 유쾌한 시간을 갖기 위해 오거나 또는 아는 사람들끼리 정다운 친교를 위해 오므로 그런 비극적인 장면은 곤란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본가인 메일락과 알레비는 어쩔수 없이 마지막 장면을 수정하겠다고 승낙했다. 그러나 비제가 반대했다. 결국 기분이 상한 드 르븐은 사표를 던지고 나갔다. 이번에는 오케스트라가 스코어를 연주하기 어렵다고 선언하며 리허설을 거부했다. 게다가 출연진들도 비제의 지시를 따르기 어렵겠다고 나섰다. 예를 들면 담배공장 휴식시간에 여공들이 집단으로 뒤엉키며 싸우는 장면 등이다. 점잖은 합창단원으로서 그런 저질의 싸움은 할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러저런 문제들은 비제의 설득으로 잠잠해 졌다. 그러나 가장 큰 반대의견은 ‘카르멘’의 작곡을 요청했던 예술감독인 뒤 로클 자신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비제를 좋아했으나 나중에 대본을 보고나서 ‘이건 아닌데!’라면서 난색을 표명했다. 당시 오페라 코미크극장은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뒤 로클의 원래 생각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오페라를 만들어 히트함으로서 재정난을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 로클은 대본을 본후 아무래도 오페라 ‘카르멘’이 실패할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해 달라고 계속 수정을 요청하였으나 비제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면서 들어주지 않았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리허설이 끝나 오페라 ‘카르멘’은 1875년 3월 3일 무대에 올려졌다. 그날은 마침 비제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그의 프랑스 음악에 기여한 공로로 레종 돈뇌르(Legion d'honneur)훈장을 받는 날이었다.

 

카르멘이 초연된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극장


초연에 대한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1막은 그런대로 지나갔고 2막은 미카엘라의 아리아만이  박수를 받았다. 나머지 막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침묵이었다. 공연이 끝난후 평론가들은 예상했던 대로 내용이 부도덕하다면서 비난을 퍼부었다. 음악도 비난을 받았다. 바그너 스타일처럼 성악가들의 노래보다는 오케스트라에 너무 비중을 두었다는 비난이었다. 물론 찬사를 보낸 평론가들도 있었다. 전혀 새로운 변화라는 찬사였다. 주인공들의 인물 설정이 일반적인 코믹 오페라보다 대단히 뚜렷하다는 찬사도 받았다. 그러나 비난의 소리가 찬사보다 더 컸다. 오페라 ‘카르멘’은 3월의 초연 이후 그 해에 도합 48회의 공연만 가졌을 뿐 오펜바흐의 기록에 비해 상대가 되지 않았다. 비제는 ‘카르멘’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비제는 ‘카르멘’이 초연된지 꼭 세달후에 6월 3일에 세상을 떠났다. 마침 당시에는 바그너, 브람스, 차이코브스키의 작품이 유럽의 음악계를 휩쓸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카르멘’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게 되었던 것도 이유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서 ‘카르멘’은 대단한 인기를 끌어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레퍼토리의 하나가 되었다. 카르멘은 메조소프라노를 위해 작곡되었지만 소프라노들도 명예를 위해 도전하는 역할이 되었다. 레온타인 프라이스는 그 중의 하나였다. 소프라노로서 가장 훌륭한 카르멘의 음성을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물론 흑인이기 때문에 편견을 보인 사람도 많았지만! 또 하나의 카르멘은 프랑스 출신의 레지나 레즈니크(Resina Reznik)이다. 노래와 연기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훌륭했다는 평을 받았다.


  

가장 뛰어나게 카르멘 역할을 맡아했던 레온타인 프라이스(왼쪽)와 레지나 레즈니크(오른쪽)


메리메가 40대 초반에 내놓은 ‘카르멘’은 두 번에 걸친 스페인 탐방에서 얻은 스토리를 소재로 한 것이다. 소설의 제목은 여주인공 ‘카르멘’이지만 실제로 메리메가 초점을 둔 인물은 돈 호세였다. 소설은 카르멘을 살해하고 감옥에서 사형집행일만을 기다리고 있는 돈 호세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메리메는 스페인 사람들이 죽음에 대하여 미학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스페인 사람들이 투우에 열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아무것도 모르는 소를 흥분시켜 놓은후 칼로 찔러 죽이고 나서 열광하는 것일까? 메리메는 이 해답을 돈 호세와 카르멘의 관계에서 찾으려고 했다. 열정적인 사랑의 뒤에 오는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원작인 메리메의 소설이 돈 호세에 초점을 둔 작품이라면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카르멘이라는 집시 여인이 지닌 저항할수 없는 매력이 초점이 되도록 했다. 비제는 원작에 설명되어 있는 인물 설정을 위한 여러 가지 중요한 단서들도 대본에 포함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원작에는 돈 호세가 고향에서 어떤 남자를 칼로 찔러 죽인 살인자였으나 재판도중 법정에서 도망친 인물로 설명되어 있다. 동정할 필요도 없는 그런 인물이지만 오페라에서는 그런 사정이 삭제되어 있으며 오히려 순진한 사랑으로 비운을 맞이해야 하는 동정적인 인물로 표현하였다. 카르멘을 포함한 밀수꾼 패거리들의 여자들이 수비대 병사들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여자로서의 요염한 매력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원작의 장면도 삭제되었다.

 

담배공장의 쉬는 시간에 공장 앞의 광장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카르멘

                               

오페라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마리아 칼라스는 카르멘을 음반으로 취입은 했지만 무대공연은 결코 하지 않았다. 카르멘이 근본적으로 악녀이기 때문에 무대 공연을 거부했던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칼라스는 ‘그렇지 않다. 카르멘은 집시 여인이다. 집시 여인은 자기의 운명이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운명을 절대로 바꿀수 없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카르멘은 자신의 감정에 의해 운명을 바꾼 여인이다. 카르멘은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카르멘의 행동에 공감 하여 동정심을 가질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카르멘은 파렴치한 여인이다. 그래서 그런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칼라스의 코멘트는 카르멘의 성격 설정을 잘 표현한 말이다. 오페라 ‘카르멘’에는 이상과 현실, 선과 악, 밝음과 어두움, 화려함과 비참함, 육욕적인 유혹과 정신적인 순수함...이런 것들이 전편을 통해 끊임없이 교차되고 있다. 그래서 이를 보는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가치관을 재확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카르멘과 담배공장 여공들

                    

비제가 ‘카르멘’을 작곡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나 친구들은 비제에게 혹시 음악 소재를 얻기 위해 스페인을 방문할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비제는 ‘지금 그런 이유로 스페인을 간다면 작곡에 더욱 혼란만 줄것’이라고 대답했다. 비제는 비록 스페인에 가지는 않았지만 오페라 ‘카르멘’에는 스페인 특유의 음악적인 요소를 여러 부분에 반영하였다. 다만, 비록 스페인 풍의 음악을 도입하였지만 프랑스 스타일의 음악적 기본은 잊지 않고 간직하였다. 세귀디야(Seguidilla)와 집시 노래는 플라멘코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4막에서 투우사가 입장하는 장면의 음악은 마누엘 가르시아(Manuel Garcia)의 스페인 가요를 참고로 했다고 한다. 실제로 비제는 ‘카르멘’에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노래들을 인용하였다. 하바네라(Habanera)는 El arreglito(엘 아레글리토)라는 노래의 멜로디를 따온 곡이다. 주니가(Zuniga)가 카르멘을 심문할 때에 카르멘이 부르는 포크 송도 이라디에(Yradier)가 쓴 스페인 민속음악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이다. 원래 하바네라는 비제의 오리지널 스코어에 들어 있지 않았었다. 다른 곡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메조소프라노 갈리-마리가 오리지널 스코어의 곡을 싫어했기 때문에 급히 하바네라로 교체했다. 비제는 하바네라 장면을 위해 거의 10편에 이르는 여러 곡을 썼고 최종적으로 엘 아레글리토가 선정되었던 것이다.

 

밀수꾼들과 함께 있는카르멘

                                       

비제는 라이트모티브(Leitmotiv) 시스템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카르멘과 연관된 모티프는 크게 2개가 있다. 첫 번째는 카르멘의 숙명에 대한 모티브이다. 서곡이 끝나자마자 등장한다. 오페라가 시작할 때에 등장하는 카르멘의 모티브는 이미 마지막 장면을 예견해주고 있다. 이 모티브는 돈 호세가 ‘꽃노래’를 부르고 난후 카르멘이 그를 애인으로 결정할 때에도 등장한다. 카르멘이 카드 점을 볼 때에도 등장한다. 또 다른 주제는 카르멘이 돈 호세를 유혹하는 장면에 나온다. 경찰이 카르멘을 주니가(Zuniga)와 돈 호세에게 인계할 때에도 나온다. 카르멘의 모습처럼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테마는 아름답고 비극적이다. 이제 스토리로 들어가 보자.

 

 

지금까지 나온 음반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돈 호세(호세 카레라스)와 카르멘(아그네스 발차)


제1막. 세빌라(세빌리아) 거리의 광장이다. 한쪽에 어둡고 무거운 담배공장이 있고 다른 한쪽엔 수비대의 병영이 자리 잡고 있다. 참고로 말하면 18세기로부터 세빌라에는 스페인 최대의 담배공장이 있었으며 현재 그 담배공장 건물은 세빌라대학교 소속의 건물로 되어 있다. 화려하고 밝은 스페인 의상을 입은 사람들. 남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태양아래 더욱 밝아 보인다. 화려한 거리 사람들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수수한 옷차림의 시골 처녀가 등장한다. 수비대의 돈 호세(Don Jose)를 찾아온 약혼녀 미카엘라(Michaela: Sop)이다. 병사들이 미카엘라에게 호세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초소에 들어와 기다리라고 하지만 수줍은 미카엘라는 다시 오겠다고 하며 어디론가 간다. 이 오페라에서 미카엘라는 순박한 시골 처녀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 물론 제3막에서는 고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극적인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미카엘라가 카르멘과는 대조적으로 진실함과 선함을 대변한다고나 할까?

 

미카엘라가 병사들과 함께 있다.

 

담배공장에서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여공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중에는 카르멘도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카르멘 역을 캐스팅할 때에는 성악적 능력보다는 카르멘의 성격과 모습에 부합하는 인물을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 카르멘은 어떻게 생긴 여인일까? 메리메의 원작에 따르면 검은 윤기가 나는 머리칼에 자스민 꽃 한 송이를 꽂고 있고 사팔뜨기처럼 보이는 큰 눈을 가지고 있으며 육감적인 두툼한 입술 속으로는 하얀 치아가 빛나고 살결은 구리빛, 몸집은 아담한 편, 한번 보면 잊을수 없는 야성미의 여인이라고 되어 있다. 카르멘이 수비대의 젊은 병사들을 유혹이나 하려는듯 관능적인 몸짓으로 하바네라 춤을 추며 L'amour est un oiseau rebelle(사랑은 나무로 만든 아름다운 새와 같은 것)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근무교대를 마친 호세는 카르멘의 춤과 노래에는 관심이 없는 듯 소총을 손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카르멘은 자기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미남 호세에게 쏠린다. 사랑의 솜씨에 있어서도 야성적인 카르멘은 머리에 꽂은 꽃을 뽑아 호세에게 던진다. 그제서야 카르멘을 바라보는 호세. 꽃을 집어 들어 상의의 안주머니에 간직한다. 호세는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다. 고향에 약혼녀 미카엘라가 있기 때문이다. 미카엘라는 호세의 홀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시고 있는 얌전하고 착한 여인이다.

 

담배공장 여공과 싸웠기 때문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카르멘이 돈 호세를 유혹하고 있다. 카라 코넬. 캐다다 오페라.


잠시후 미카엘라가 호세를 만나로 다시 나타난다. 뜻밖에 미카엘라를 만난 호세는 일순간 마음이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여기에서 호세와 미카엘라는 Parlez moi de ma mere(어머니 얘기를 해주세요)라는 듀엣을 부른다. 고향의 노래, 추억이 피어나는 노래, 어머니의 가슴처럼 포근한 노래이다. 미카엘라는 호세에게 어머니의 편지를 전한다. 어서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다. 미카엘라는 어머니의 건강이 전과 같지 않다는 얘기를 한다. 호세는 당장 군복을 벗어 던지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고향에서 죄를 짓고 도망 왔기에 당장 고향을 찾아갈 형편이 아니다. 호세는 미카엘라에게 머지않아 어머니를 만나러 고향에 갈것이니 먼저 가서 있으라고 말한다. 미카엘라는 다시 근무에 들어가야 하는 호세와 함께 있을수 없어서 발길을 재촉하여 어디론가 떠난다.

 

감방에서 카르멘과 돈 호세. 현대적 연출.


그러한 때에 담배공장의 여공들 몇 명이 심하게 싸움을 한다. 수비대장 주니가(Zuniga: Bass)의 명령을 받은 호세가 싸움의 장본인인 카르멘을 체포한다. 카르멘이 주니가에에 요염한 제스처로 선처를 바라지만 주니가는 호세에게 카르멘을 영창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한다. 장면은 바뀌어 영창이다. 아직도 포승에 손이 묶인 카르멘이 호세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나를 토막 내고 불 태울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왜 싸움을 했는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알고 있어요. 당신에게는 상관의 명령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이라는 내용이다.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호세에게 카르멘의 유혹은 한층 집요해 진다. 카르멘은 Seguidilla(세귀디야)라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이봐요, 군인 아저씨. 내가 던져준 그 꽃에는 마력이 붙어 있으니 그리 아세요. 이 몸을 놓아 주시구려. 오늘밤 우리 둘이서 만납시다. 세빌라 성밖에 있는 파스티아 주막에서 말예요!’라는 내용이다. 호세는 카르멘의 매혹적이고도 정열적인 접근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든다.

 

담배공장에서 휴식시간에 담배를 피는 여공들. 스코틀랜드 공연에서는 무대에서조차 금연이기 때문에 여공들이 담배를 피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제2막은 성밖의 주막집. 밤이 깊어 가지만 집시들의 춤은 흥겨운 기타소리와 함께 한창이다. 때마침 밀려드는 환호성. 세빌라 최고의 투우사 에스카미요(Escamillo: Bar)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주막에 들어선 에스카미요는 우렁차고 패기에 넘친 Toreador Song(투우사의 노래)를 부른다. 에스카미요의 눈에 카르멘이 들어온다. 부딪치는 눈빛...잠시후 에스카미요는 사람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나고 이어 호세가 주막으로 들어온다. 카르멘을 영창에서 도망치게 했기 때문에 대신 영창에 들어갔다가 간신히 빠져 나와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성밖의 파스티아 주막으로 향했던 것이다. 호세는 알칼라의 용기병(龍騎兵)이라는 씩씩한 노래를 부른다. 전투는 물론 사랑에 있어서도 용진무퇴(勇進無退)의 병사임을 한껏 자랑하는 노래이다. 호세를 기다리던 정열의 여인 카르멘...카스타네츠를 손에 쥐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하바네라이다. 카르멘은 ‘오늘 밤의 이 춤은 당신에게 드리는 거예요. 밤이 지새도록 당신만을 위해서!’라고 속삭인다. 이제 호세의 마음은 카르멘에게 완전히 빠져 있다. 때를 맞추어 멀리서 들려오는 귀영 나팔소리. 수비대로 돌아가려는 호세에게 카르멘이 ‘바보 같은 남자. 이런 남자를 상대하기는 힘들어! 돌아가고 싶거든 어서 가시구려!’라면서 조롱한다. 사랑의 포로가 된 호세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열정의 불이 피어오른다. 호세는 유명한 ‘꽃노래’(Le fleur que tu m'avais jette)를 부르면서 카르멘에 대한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비로소 고백한다. 카르멘은 ‘당신의 사랑이 진정이라면 저 산속, 구속이 없고 자유로운 곳으로 함께 달아나서 같이 삽시다!’라고 받아 넘기면서 더욱 유혹한다.

 

주막에 나타난 에스카미요. 한쪽에 있는 카르멘의 마음은 어느새 에스카미요에게 향하고 있다.


제3막은 밀수꾼들의 소굴인 첩첩산중. 호세는 이미 밀수꾼들과 한패가 되어 있다. 그러나 카르멘의 거역할수 없는 유혹 때문에 집시들의 밀수에 합세하고는 있지만 양심의 거리낌으로 점차 후회의 심정이 된다. 한편 카르멘은 매사에 적극적이 아닌 호세에 대하여 차츰 싫증을 느끼게 된다. 카르멘은 친구인 메르세데스, 프라스키타와 함께 카드 점패를 본다. 이상하게도 번번이 ‘죽음’의 점괘가 나온다. 카르멘은 이상한 예감에 빠지지만 그렇다고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카르멘(키르스텐 샤베스)과 에스카미요


어느덧 동이 트는 새벽. 모두들 밀수하러 나가고 호세 혼자만 남아서 길목을 지키며 망을 보고 있다. 누군가가 산길을 헤치며 올라오고 있다. 미카엘라였다. 미카엘라는 호세가 수비대를 탈영하여 밀수꾼 패거리에 합류했다는 소문을 듣고 호세를 직접 만나 고향으로 가자고 애원하기 위해 그 험한 산길을 밤중에 혼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호세는 올라오는 사람이 키마엘라인줄 모르고 총을 쏘아 쫓아버린다. 때마침 에스카미요가 산속으로 카르멘을 찾아온다. 내일 있을 투우경기에 초청하기 위해서이다. 질투심에 불타는 호세는 칼을 빼어들고 에스카미요와 결투를 벌인다. 에스카미요가 점점 수세에 몰려 죽음 직전에 처하여 있을 때 밀수꾼들과 함께 카르멘이 돌아온다. 카르멘과 집시들이 이들의 결투를 뜯어 말린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에스카미요는 고맙다는 뜻으로 내일의 투우경기에 모두를 초청하며 오히려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투우장으로 카르멘을 만나러 찾아간 돈 호세. 그러나 카르멘은 돈 호세를 본체만체한다.

 

제4막은 세빌라 투우장 입구이다. 눈부신 햇빛이 쏟아지는 그런 날이다. 투우장은 흥분과 환희로 가득하다. 이날의 주인공 에스카미요가 카르멘과 함께 화려한 마차를 타고 등장한다. 그런 카르멘에게 친구들이 호세가 카르멘을 애타게 찾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카르멘은 호세와의 모든 문제를 끝내기로 작정하고 투우장 밖에서 호세를 기다린다. 질투의 화신이 된 호세가 나타난다. 호세는 카르멘에게 제발 마음을 돌리라고 마지막으로 애원한다. 호세는 한가닥 남아 있는 남자로서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고향의 약혼녀 미카엘라도 버리고, 늙고 병든 어머니의 소원도 저버리고 카르멘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버린 호세가 아니던가? 그러나 마지막 애원도 소용이 없었다. 카르멘은 ‘우리 사이는 이미 끝났다’라면서 호세를 경멸하듯 대한다. 투우장 안에서는 에스카미요에 대한 환호와 갈채소리가 넘쳐 나오고 있다. 카르멘이 몸을 돌려 투우장 안으로 바삐 들어가려고 할때 호세가 순간적으로 칼을 빼어 들어 카르멘을 찌른다. 카르멘은 더 이상 하바네라를 출수 없게 되었다. 카르멘이 흘린 붉은 피가 하얀 햇살 때문에 더욱 붉게 보인다. 쓰러지는 카르멘. 정신나간듯 서있는 호세는 그제야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카르멘의 이름을 부르며 카르멘을 끌어  안는다. 호세는 ‘사랑하는 이 여인을 내가 죽였다’고 울부짖으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만 카르멘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는다. 투우장으로부터 넘쳐 나오는 환호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카르멘(엘리나 가란차)를 죽이는 돈 호세(로베르토 알라냐). 메트로폴리탄

                                    

[카르멘 환상곡] 많은 작곡가들이 비제의 ‘카르멘’ 주제음악을 사용하여 나름대로의 작품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르멘 환상곡’(1883), 프란츠 왁스맨(Franz Waxman)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르멘 환상곡’(1946),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의 ‘솔로 피아노를 위한 카르멘 주제에 의한 변주곡’등이다. 페루치오 부소니(Ferruccio Busoni)는 Fantasia da camera super Carmen이라는 제목의 소나타를 작곡했다(1920). 이밖에도 비제의 ‘카르멘’에 나오는 주제음악을 사용한 수많은 변주곡들이 있다.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는 '카르멘'에 나오는 음악들을 편곡해서 춤곡인 콰드리유로 만들었다.


[영화] 1915년 거장 세실 B 드밀(Cecil B Demille)은 오페라 카르멘을 처음으로 영화로 제작했다. 다만 무성이었다. 미국에서는 오스카 햄머슈타인(Oscar Hammerstein)이 흑인들을 주역으로 내세운 Carmen Jones(카르멘 존스)라는 뮤지컬을 작곡했다. 이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서 히트를 거둔후 1954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유명한 칼립소 가수인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가 돈 호세 역을 맡았다. 1967년에는 오페라 영화인 '카르멘'이 제작되었다. 영화의 음악은 허버트 폰 카라얀이 지휘를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1984년 또 다른 오페라 영화가 제작되었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돈 호세를, 줄리아 미제네스(Julia Migenes)가 카르멘 역할을 맡았으며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는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레시타티브를 모두 반주없는 대사로 바꾸었다.     

 

영화 '카르멘 존스'. 해리 벨라폰테와 오로시 댄드릿지

 

[원작의 돈 호세]

메리메의 원작에 의하면 돈 호세는 23세로 풀 네임은 호세 리자라이며 바스크 사람으로 나바르(나바로) 출신이다. 나바르는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지대에 있는 자치구로 오랜기간 프랑스에 속하여 있기도 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나바르 출신들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메리메의 스페인 미인 예찬]

메리메는 원작에서 스페인 여인을 다음과 같이 예찬하였다. 스페인 미인에게는 세가지 검은 것이 있다. 머리칼, 눈섶, 속눈섭이다. 스페인 미인에게는 세가지 하얀 것이 있다. 치아와 손과 피부이다. 스페인 미인에게는 세가지 붉은 것이 있다. 입술과 손톱과 유두이다.

 

[카르멘에 나오는 아리아-앙상블] - 괄혼 안은 영어제목

- Et tu lui diras(Same to My Jose)

- Seguidilla

- Votre toast(Toreador Song)

- Halte-la!(Son of Alcala)

- La fleur que tu m'avais jetee(Flower Song)

- En vain pour eviter(Card Song)

- Hed is, que rien ne m'enpouvante(Michaela's Aria)

 

담배공장에서의 카르멘(엘리나 가란차). 메트로폴리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