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팔리아치 - 레온카발로

정준극 2007. 12. 12. 10:05

팔리아치

(Pagliacci)

R. Leoncavallo


우선, 오페라 ‘팔리아치’의 타이틀을 표기할 때 친절하게도 I Pagliacci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렇게 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Pagliacci(어릿광대들)라고 쓰면 된다. 오페라의 타이틀에서 관사는 번역할 때 굳이 인용할 필요가 없다. '라 토스카'를 그냥 '토스카'라고 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덧붙여 말하면 팔리아치(Pagliacci)는 팔리아쵸(Pagliaccio)의 복수이다. 이 오페라에서는 카니오만이 팔리아쵸라고 부르지만 다른 출연자들도 모두 어릿광대들이기 때문에 오페라의 타이틀을 팔리아치라고 복수로 부르게 된것이다. 팔리아치는 서막과 전2막으로 구성된 루제로 레온카발로(Ruggero Leoncavallo: 1857-1919)의 대표작이다. 유랑극단(commedia dell'arte troupe)의 질투심 많은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처참한 비극에 대한 내용이다. 오페라 팔리아치는 1892년 5월 21일, 레온카발로가 35세 때에 밀라노의 달 베르메극장(Teatro Dal Verme)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네다(Nadda)역은 아델리나 스텔레(Adelina Stehle)였으며 카니오(Canio) 역은 피오렐로 지로(Fiorello Giraud), 토니오 역은 빅토 모렐(Victor Maurel)이었다. 팔리아치는 초연 이듬해인 1893년부터 이른바 ‘카브/파그’(Cav/Pag)라고 하여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더블 빌(Double Bill: 2편 동시 공연)로 공연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관례로 되어 왔다.


레온카발로 


나폴리에서 태어난 레온카발로는 나폴리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처음에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할 생각이었다. 음악원을 졸업한후 이집트에서 피아노 협연자로서의 직업을 가졌으며 그후 파리에서 피아노 개인교사로 일했던 것만 보아도 짐작할수 있다. 그러다가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고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레온카발로는 철저한 바그너 숭배자가 되었다. 레온카발로의 초기 작품이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시 유행은 외면할수 없었던 것 같다. 레온카발로가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은 그의 멋진 콧수염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레온카발로는 점차 이탈리아 베리스모 스타일에 빠져 들게 되었다. 당시 밀라노는 나폴리보다도 오페라 활동이 더 풍부하고 활발했다. 베르디의 활동무대가 밀라노였던 것도 다른 수많은 작곡가들에게 자극을 준 것이었다. 레온카발로도 마침내 밀라노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베리스모 스타일의 오페라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운좋게도 팔리아치가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팔리아쵸(복수형이 팔리아치)라는 단어는 원래 ‘유랑극단의 배우들’을 뜻한다. 유랑극단이 마을에 들어오면 특히 어릿광대가 인기를 끌게 마련이다. 그래서 팔리아쵸라는 단어는 어릿광대를 뜻하는 의미로 변하였다.

 

질투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카니오

 

1890년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초연되었을 때만 해도 레온카발로는 이름 없는 작곡가였다. ‘카발’은 마스카니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드높여 준 것이었다. 마스카니는 모든 무명 작곡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레온카발로는 ‘도대체 카발이 뭐길래 저렇게 난리들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날 밤 슬며시 ‘카발’을 가서 보았다. 과거에는 느낄수 없었던 사실주의 작품이었다. 서민들의 오페라, 가난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오페라였다. 그날밤 레온카발로는 ‘나도 저런 오페라를 작곡해서 이름을 날려야겠다!’라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는 서막과 전 2막으로 구성된 팔리아치를 완성하고 손초네 작곡경연대회에 응모했다. 대본도 직접 썼다. 하지만 베리스모로서 단막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응모했기 때문에 입선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안 레온카발로의 친구가 밀라노의 달 베르메극장에 열심히 소개하여 마침내 1892년 5월, 팔리아치를 달 베르메극장의 무대에 올릴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스토리 때문이었다. 팔리아치의 대본이 표절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레온카발로는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해야 했다. 그는 어릴때 직접 목격한 실화를 바탕으로 오페라 팔리아치를 작곡했다고 주장하여 결국 표절 혐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레온카발로의 주장에 따르면 어릴 때 어느날 자기 집 하인과 함께 유랑극단의 연극을 구경 갔었는데 연극 도중에 실제로 그런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레온카발로는 당시 그 유랑극단의 살인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가 아버지였기 때문에 관련 문서를 가지고 있다고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같은 주장에 대한 확증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오늘날 오페라 전문가들은 팔리아치의 대본이 1887년에 캬튤 믄데(Catulle Mend?s: 1841-1909)가 쓴 La Femme de Tabarin(어릿광대의 여인)이라는 희곡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그 연극이 파리에서 처음 공연되었을 때 레온카발로는 파리에서 지냈었다. 그러므로 그 연극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


캬튤 믄데


팔리아치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Recitar!...Vesti la giubba(연극을 위해...의상을 입어라!)이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얼룩덜룩한 어릿광대의 옷을 입어라’라고 할수 있다. 1907년 엔리코 카루소가 취입한 Vesti la giubba는 레코드 역사상 처음으로 1백만장 판매를 기록한 음반이 되었다. 그만큼 팔리아치의 격정적인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는 만인이 사랑을 받았다. 한편, 팔리아치는 음반 역사상 처음으로 전편의 오페라를 취입한 작품으로 음악사의 기록에 남게 되었다. 1931년의 일이었다. 팔리아치는 오페라 영화로서도 처음 만들어진 오페라였다. 테너 페르란도 베르티니(Fernando Bertini)가 카니오 역을 맡았으며 나폴리의 산카를로 오페라단이 출연한 영화였다. 오페라 아메리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팔리아치는 북미에서 가장 빈번하게 공연되는 20대 오페라중의 14번째였다.

 

17세기로부터 비롯한 이탈리아 유랑극단의 모습


시대는 1865-70년 사이. 장소는 이탈리아반도의 남단, 시실리와 마주보고 있는 칼라브리아(Calabria)지방의 몬탈토(Montalto)라는 작은 마을이다. 막이 오르기 전, 격동적인 전주곡이 연주된다. 이 오페라의 비극적인 내용을 암시하는 곡이다. 전주곡이 연주되는 도중에 어릿광대로 분장한 사람이 느닷없이 무대에 내려진 막사이를 비집고 나타난다. 토니오(Tonio: Bar)이다. 극중에서는 타데오(Taddeo)라는 좀 모자라는 사람의 역할을 한다. 기왕 토니오가 나타난 김에 몇사람의 이름을 소개함으로서 혼돈을 방지코자 한다. 카니오, 토니오, 실비오....듣기에 따라서는 서로 비슷비슷하여 헷갈릴 수가 있다. 카니오가 가장 핵심되는 인물이다. 유랑극단의 단장이며 질투심 많은 네다의 남편이다. 그러므로 카니오=주역으로 알고 있으면 된다. 토니오는 유랑극단의 단원일 뿐이다. 마을 청년 실비오는 네다의 애인이다. 아무튼 카니오, 토니오, 실비오의 이름이 서로 혼돈되지 않도록 카-토-실(그렇지 않으면 키토산?)이라고 기억하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시 무대로 돌아가자. 막이 오르기도 전에 막을 비집고 나온 토니오가 관객들에게 한말씀 올린다. 토니오는 Sipuo, Signore! Signori!(실례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라고 말한 후에 ‘혼자서 먼저 등장한 점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프롤로그입니다’라는 대단히 드라마틱한 아리아를 부른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보실 드라마의 내용은 우리 서민들의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무서운 질투의 결말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보시게 됩니다. 슬픔과 분노의 절규를, 그리고 조롱섞인 비웃음을 들으실 겁니다. 자, 들어주세요. 어떤 이야기인지를! 이제 시작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일종의 오프닝 멘트이다. 이런 연후에 막이 오른다. 특이한 구성이다.

 

바로 앞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세 사람


제1막. 8월 15일 성모승천 축일이다. 마을 사람들이 축일의 옷을 차려 입고 몰려나온다. 때를 맞추어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유랑극단이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사람들은 ‘와! 극단이 다시 왔네!’라면서 반가운듯 흥겨운 합창을 부른다. 마차 위에는 예쁘게 생긴 여배우 네다(Nedda: Sop)가 앉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애교를 떤다. 일종의 판촉활동이다. 네다는 유랑극단의 단장인 카니오(Canio: Ten)의 부인이다. 마차 위에서 어릿광대의 옷을 입은 카니오는 큰 북을 둥둥 치면서 오늘 저녁 일곱시에 연극이 시작되니 저녁밥 빨리 잡수시고 많이들 오시라고 소리친다. 역시 어릿광대 옷을 입은 토니오는 네다의 옆에 서서 신이 난듯 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마치 네다가 자기 애인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 모습을 본 카니오는 ‘야 이놈아! 네 놈이 뭔데 감히 단장님의 사모님을 넘봐?’라면서 토니오를 야단친다. 마을 사람 몇 명이 유랑극단 사람들에게 멀리서 이 마을까지 오느라고 수고하였으니 주막에 들어가 한잔씩 하자고 초청한다.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주막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토니오는 내키지 않는듯 떨어진다. 어떤 마을 사람이 카니오에게 ‘아, 저 어릿광대가 예쁜 여배우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서 둘이서만 놀려고 주막에 들어오지 않고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짓궂게 말한다. 카니오는 화를 벌컥 내면서 ‘그런 일이 극중에서라면 몰라도 만일 실제라면 얘기는 대단히 달라질 것’이라고 내뱉는다. 간단히 말해서 네다에게 찝쩍대는 놈이 있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소리이다.

카니오와 네다와 토니오

 

저녁 기도를 위한 성당의 종소리가 울린다. 마을 사람들은 ‘종의 합창’이라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성당으로 향한다. 평소 명랑한 네다는 조금전 카니오의 질투어린 눈빛이 왜 그런지 마음에 걸려 우울하다. 혼자 남은 네다는 상상 속으로나마 별로 잘 생기지 않은 남편 카니오 대신에 젊은 미남 연인이 나타나 자기에게 프로포즈하는 상상을 하면서 신세한탄 스타일의 아리아를 부른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실력을 뽐낼수 있는 훌륭한 아리아이다. Oh, chevolo d'augelli(오 아름다운 노래 새)이다. 행복한 새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며 마음껏 지저귀는데 이놈의 신세는 어찌하여 요 모양 요 꼴인가라는 내용이다. 이럴 때에 토니오가 네다에게 다가와 ‘나로 말하자면 아무리 못생긴 처지이지만 사랑의 열정만은 남들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라며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네다에 대한 짝사랑을 털어 놓는다. 토니오는 나이도 들었지만 남자로서 좀 못생긴 편이다. 게다가 꼽추처럼 약간 구부정하고 절름발이는 아닌것 같은데도 약간 절룩거린다. 네다는 그런 토니오를 한껏 비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니오는 끈질기게 치근거리자 마침내 화가난 네다는 채찍을 들어 토니오를 내려친다. 아마 속으로는 ‘병신 육갑하고 앉았네!’라고 말했을 것이다. 모욕을 당한 토니오는 ‘흥! 어디 두고 보자’라면서 사라진다.

 

네다와 카니오


토니오가 떠난후 이번에는 마을 청년 실비오(Silvio: Bar)가 나타난다. 네다가 지난번에 이 마을에 와서 공연했을 때 만난 청년이다. 실비오는 네다를 좋아하고 있고 네다도 그런 실비오가 싫지 않다. 네다를 다시 만난 실비오는 이참에 아예 함께 멀리 도망가자고 유혹한다. 한참이나 주저하던 네다는 지긋지긋한 유랑극단 생활에서 탈피하고 더구나 질투심에 화만 잘내는 남편 카니오로부터, 그리고 주책없이 치근대기만 하는 토니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끝내는 실비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앞날의 사랑을 위해 뜨겁게 포옹한다. 이때 부르는 듀엣이 Decidi e il mio destin(나의 운명은 결정되었다)이다. 네다는 실비오에게 ‘왜 이렇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나요?’라면서 은근히 원망을 하지만 속으로는 기쁜 표정이다. 네다의 남편 카니오가 이 장면을 목격한다. 실비오는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있자 네다에게 저녁 공연이 끝난후 만나자고 말하고 재빨리 사라진다. 어둠속에서 나타난 카니오는 네다에게 방금 같이 있던 놈이 누구냐고 물으면서 마치 죽일 듯이 칼을 빼어들고 위협한다. 카니오는 네다가 기회만 있으면 유랑극단과 자기를 버리고 떠날 것만 같아 걱정이어서 항상 신경이 날카로워 있었는데 결국 오늘 밤에 증거를 잡은 것이다. 바로 그 때 어떤 단원이 들어와 네다에게 당장 연극을 시작해야 하니 빨리 무대로 나가라고 소리친다. 이틈에 네다는 도망치듯 가설무대로 나간다. 혼자 남은 카니오는 자기도 곧 연극에 출연해야 하므로 Vesti la guibba(의상을 입어라)라는 아리아를 부른후 가설무대 안으로 들어간다. 카니오의 아리아는 오페라의 모든 테너 아리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의 하나로서 부인의 변절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어릿광대의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가야 하는 자기의 한심한 신세를 한탄하며 격정적으로 부르는 곡이다.

 

몬테칼로 무대

                   

제2막. 어서 연극을 공연하라고 재촉하는 마을 사람들의 합창에 이어 가설무대의 막이 올라간다. 무대 위에 또 다른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런 경우는 다른 오페라에서도 간혹 볼수 있다. 예를 들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존 코릴리아니의 ‘베르사이유의 유령’이다. 가설무대에 한쪽에는 콜롬비나(Colombina)로 분장한 네다가 앉아 있다. 콜롬비나는 어릿광대를 말한다. 극중의 남편인 팔리아쵸(어릿광대)를 기다리고 있다. 팔리아쵸의 역할은 네다의 실제 남편인 카니오이다. 그러는 중에 무대 뒤에서 할레쿠인(또는 알레키노: Arlecchino: 역시 어릿광대)으로 분장한 또 다른 단원인 뻬페(Beppe: Ten)가 ‘오, 콜롬비나, 그대의 사랑 할레쿠인이 기다리고 있소이다’라는 세레나데를 부른다. 이어 타데오라는 이름의 하인으로 분장한 토니오가 시장에서 닭을 사들고 와서 콜롬비나(네다)에게 닭고기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며 우스운 몸짓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콜롬비나(네다)의 반응은 차갑다. 마치 조금 전에 벌어졌던 무대 뒤에서의 상황이 가설무대 위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과 같다.

 

공연안내. 메트로폴리탄. 현대적 연출


연극은 계속된다. 콜롬비나(네다)가 치근거리는 하인 타데오(토니오)를 쫓아 버린후 어릿광대로 분장한 뻬페가 등장하여 콜롬비나에게 수면제를 주며 남편 팔리아쵸가 들어오면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하고 둘이서 멀리 도망치자고 유혹한다. 그러한 때에 하인 타데오(토니오)가 다시 뛰어 들어와 두 사람에게 지금 남편 팔리아쵸(카니오)가 오고 있다고 알린다. 뻬페는 창문을 통해 재빨리 도망간다. 이어서 콜롬비나(네다)가 극본에 있는 대로 ‘이 밤 이후로 이 몸은 영원히 당신 것이어요!’라는 대사를 소리친다. 콜롬비나(네다)의 이같은 대사를 들은 팔리아쵸(카니오)는 연극과 현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카니오는 네다가 뻬페와 함께 정말 멀리 도망가려는 것으로 착각한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꼭 그럴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극중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질투의 화신이 된 카니오(팔리아쵸)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지고 얼굴 화장을 문질러 지우면서 No. Pagliaccio non son(나는 팔리아쵸가 아니다)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절규한다. 가설무대 앞에 앉아 있던 관중들은 속절없이 ‘와, 팔리아쵸가 연기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네!’라면서 박수를 보낸다.

 

슬픔과 분노의 절규, 그리고 조롱섞인 비웃음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카니오


한편, 네다(콜롬비나)는 갑자기 카니오(팔리아쵸)의 행동이 이상해지자 두려움에 객석으로 몸을 피하려고 한다. 그러자 카니오(팔리아쵸)는 네다(콜롬비나)를 붙잡고 ‘같이 도망가려는 애인이 어떤 놈이냐?’고 다그치듯 윽박지른다. 네다(콜롬비나)가 정말 겁이 나서 몸을 피하자 카니오(팔리아쵸)는 느닷없이 칼을 빼들고 네다(콜롬비나)를 쫓아가 등을 찌른다. 불쌍한 네다(콜롬비나)는 피를 흘리면 쓰러진다. 네다(콜롬비나)는 죽어가면서 함께 도망가기로 약속한 마을 청년 실비오의 이름을 부른다. 무대 위의 객석에 있던 실비오가 네다를 도와주려고 가설무대에 뛰어 오른다. 실비오를 본 카니오(팔리아쵸)는 그제서야 네다가 실비오와 함께 도망가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비오 역시 정신 나간 카니오(팔리아쵸)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극도의 증오심과 질투심 때문에 끔찍한 일을 저지른 카니오(팔리아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무대 앞으로 다가가서 진짜 관중들에게 La commedia e finita(연극은 끝났습니다)라고 중얼거린다. 카니오가 마치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Ridi, Pagliaccio(웃어라, 팔리아쵸)를 독백하는 가운데 진짜 막이 내린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가슴 아픈 여운으로 남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어릿광대(팔리아쵸)와 같은 것이다. 남들을 위해 웃어야 하면서도 속으로는 울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끔찍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는 몬탈토 마을의 전경


팔리아치 초연의 지휘자는 당시 패기에 넘친 토스카니니였으며 출연진들도 모두 당대의 정상급 성악가였기 때문에 공연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깊은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토스카니니를 비롯한 출연자들은 팔리아치에 대하여 적지 않은 걱정을 했었다. 도니제티와 로시니에 매료했고 베르디에 감격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음악과 생소한 내용의 스토리를 전달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기우였다. 대성공이었다. 나중에 토니오를 맡았던 바리톤 빅토 모렐(Victor Maurel)은 ‘팔리아치에 출연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사실 막이 오르기 전에 바리톤이 막을 비집고 나와서 Sipuo, Signore! Signori!라는 강렬한 아리아를 부르는 시도는 과거에 없었던 일이었다. 소프라노(네다)와 바리톤(실비오)의 듀엣도 생소한 것이었다. 통상 듀엣이라고 하면 소프라노와 테너의 듀엣이 관례였다. 그런데 팔리아치에서는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듀엣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아무튼 네다와 듀엣을 부르는 실비오의 역할이 너무 근사하기 때문에 토니오를 맡은 바리톤이 나중에 옷을 갈아입고 실비오 역할까지 맡아 듀엣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팔리아치 초연에서 토니오 역을 맡았던 빅토 모렐

                       

[한마디] 이 오페라의 가장 위대한 역할은 무어라 해도 카니오이다. 어릿광대 역할의 카니오는 현실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연극에 연계하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레온카발로는 현실과 비현실(연극)의 놀라운 연계를 통해 카니오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카니오의 마지막 아리아 No, Pagliaccio non son(나는 팔리아쵸가 아니다)와 곧이어 연결되는 독백 Ridi, Pagliaccio(웃어라, 팔리아쵸)는 격정적이면서도 섬뜩한 사실적 표현이다. 어떤 평론가는 이 부분에 대하여 ‘비유컨대 무대에서 객석의 관객들에게 대포를 쏘아 관객들을 모두 저 뒤쪽 벽으로 날아가게 만든 것과 같다’고 말했다.

 

카니오역의 마리오 델 모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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