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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모차르트 소프라노 Arleen Augér (아를린 오제르)

정준극 2008. 2. 26. 17:03
 

▒ 완벽한 모차르트 소프라노 Arleen Augér (아를린 오제르)

 

 

아를린 오거(또는 오제르-라고 발음함)는 193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우드 게이트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뛰어난 음성과 탁월한 테크닉, 그리고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모든 음악 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오거는 오페라 무대에서 완벽한 찬란함으로 찬사를 받고 있으며 가곡과 콘서트에 있어서는 바흐, 모차르트, 헨델, 하이든의 작품 해석에 권위로 인정받고 있다. 오페라에 있어서는 몬테베르디와 글룩으로부터 헨델과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주로 고전에 중점두고 있으며 특히 모차르트에서는 콘서트에서도 대단한 절찬을 받고 있다. 오거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미묘한 음성을 지닌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이다.


오거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아 교회 성가대로 활동하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1963년 롱비치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잠시 초등학교 음악 선생으로 일했으나 성악에 전념하기 위해 시카고로 가서 랄프 에롤(Ralph Errolle)에게 사사했다. 오거의 이름이 처음 알려지게 된것은 로샌질리스 교향악단과 일련의 콘서트를 가지고서부터였다. 이어 1967년에는 비엔나 폴크스오퍼(Volksoper)의 오디션에 합격한다. 이때 심사위원이었던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인 요세프 크립스(Joseph Krips)가 오거의 음성과 깊이 있는 음악해석에 감명을 받아 슈타츠오페와의 계약을 제안한다. 물론 오거는 스테이지 경험이 거의 없고 더구나 독일어 실력이 부족한 입장이었지만 음성 하나로 발탁된 것이다. 오거는 1967년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밤의 여왕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다.

 


오거에게 감명 받은 또 한 사람은 명지휘자 칼 뵘(Karl Böhm)이었다. 오거는 모차르트 작품해석의 거장 칼 뵘이 찾고 있던 모차르트 최적격자였다. 오거는 칼 뵘의 지휘로 ‘후궁에서의 도피’에서 콘스탄체를 맡아 레코딩하였다. 그로부터 오거의 명성은 점차 높아졌고 이에 따라 그는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베르디, 도니제티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의 폭을 넓혀나갔다. 리골레토의 질다와 ‘연대의 딸’에서 마리(Marie)를 맡은 것은 모차르트 이외에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진수를 보여준 것이었다. 1969년 미국으로 돌아온 오거는 뉴욕시립오페라에서 밤의 여왕을 불라 데뷔를 했고 이듬해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역시 밤의 여왕을  맡아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진가를 보여주었다.


오거는 1974년 비엔나 슈타츠오퍼를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이곳에서 그는 리릭 역할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페라보다는 콘서트 소프라노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오거는 이탈리아, 영국, 러시아 등지에서 놀라운 환영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순회공연을 가졌다. 바하와 헨델이 주요 레퍼토리였다. 영국에서는 헨델의 알치나(Alcina)를 공연하여 찬사를 받았다. 아를린 오거는 미국출신이지만 유럽에서 더 많은 영광을 차지하였다. 오거는 앤드류 왕자와 사라 퍼거슨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의 결혼식에서 모차르트의 Exsultate, Jubilate를 축가로 불러 세계의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백주년에서는 비엔나의 성 슈테판 성당에서 진혼곡을 불러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아를린 오거의 음성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으며 차분하고 정확하다. 그리고 깊은 감동을 준다. 오거는 1992년까지 연주 활동을 했다. 1993년, 뇌암이 발견되어 여러번 어려운 수술을 거쳤으나 6월 10일 네덜란드에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지만 오거는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