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콜로라투라의 여왕 Edita Gruberova (에디타 그루베로바)

정준극 2008. 2. 26. 17:38
 

▒ 콜로라투라의 여왕 Edita Gruberova (에디타 그루베로바)

 

 

데뷔 시절의 미쓰 그루베로바

 

금세기 최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는 단연 슬로박공화국 출신의 에디타 그루베로바이다. 에디타 그루베로바는 인간으로서 가장 높고 맑은 소리를 가장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낼수 있는 성악가이다. 그는 ‘밤의 여왕’의 대명사이다. 그의 음성은 맑고 깨끗하며 경쾌하고 아무리 고음이라도 힘이 들어가 있다. 한마디로 위대한 고음이라고 할수 있다. 처음에는 순수 콜로라투라에 만족하였으나 지금은 벨칸토 스타일의 콜로라투라에 전념하고 있고 한편 드라미틱 콜로라투라의 경지를 정복하고 있다. 에디타 그루베로바는 오늘날 가장 위대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특히 도니제티, 벨리니와 같은 벨칸토 작품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마농

 

그루베로바는 1946년 12월 23일 오늘날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스라바(Bratislava)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 계통이었고 어머니는 헝가리인이었다. 그루베로바의 모국어는 슬로바크어이다. 그러므로 그는 독일어, 헝가리어, 체코어를 능숙하게 구사할수 있었다. 그루베로바는 브라티스라바음악원에서 음악 공부를 했다. 지도 교수는 소프라노 마리아 메드베츠카(Maria Medvecka)였다. 메드베츠카는 그루베로바를 자기의 후계자로 생각하여 열심히 가르쳤다. 그루베로바는 이어서 브라티스라바 음악연극학교(Vysoka skola muzickych umeni)에 다녔다. 연기력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그루베로바는 학교에 다니면서 유명한 루츠니카(Lucnica) 민속앙상블에서 노래를 불렀고 슬로박국립극장에서도 여러번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때에는 어느 누구도 그루베로바가 세계 최정상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위치를 차지할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저 노래 잘부르는 귀엽고 동그스럼한 얼굴에 웃음을 띤 소녀라고만 생각했다.

 

루치아 


1968년 그루베로바는 브라티스라바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로지나로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다. 그루베로바가 22세 때였다. 그후 그루베로바에게는 몇 번의 무대공연이 제안되었지만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산주의 장막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서유럽 진출이 쉽지 않았다. 1969년 여름, 그루베로바의 음악 선생이었던 메드베츠카는 그루베로바를 비엔나국립오페라의 오디션에 참가토록 하기 위해 공산주의 경찰의 눈을 피해 그루베로바를 비엔나로 데려갔다(비엔나에서 자동차로 한시간도 걸리지 않음). 그루베로바의 노래를 들어본 비엔나 슈타츠오퍼는 그 자리에서 그루베로바와 계약을 맺었다. 그루베로바가 23세 때였다. 이듬해에 그루베로바는 ‘밤의 여왕’으로 화려한 데뷔를 하였다. 비엔나 음악계는 혜성과 같이 나타난 신인 콜로라투라 그루베로바에게 경이로운 박수를 보내며 머지않아 그가 세계 오페라 무대를 석권할 것을 예고하였다. ‘밤의 여왕’으로 성공을 거둔 그루베로바는 음악적 성공을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결심하였다. 이후로부터 그루베로바는 비엔나의 중요한 오페라에는 물론 세계 각지의 유명 오페라 극장으로부터 홍수와 같은 초청을 받기 시작했다. 주로 콜로라투라 역을 맡아 달라는 초청이었다. 그루베로바는 레코드 취입에도 열심을 다했다. 모차르트의 대단히 높은 고음을 요구하는 콜로라투라 콘서트 아리아들은 그루베로바를 위해 작곡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루베로바의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를 들은 사람들은 그 어려운 고음을 마치 악기처럼 섬세하게 부르는 솜씨에 자기도 모르게 전율하였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에디타 그루베로바를 세계 최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세미라미데


그루베로바의 메트로폴리탄 데뷔는 1977년에 이루어졌다. 역시 ‘밤의 여왕’이었다. 같은 해에 그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돈 카를로’의 에볼리역을 맡아 경탄을 받았다. 좀처럼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지휘자 허버트 폰 카라얀이 무대로 뛰어 올라와 그루베로바를 포옹하며 찬사를 보낸것은 바로 이 공연이었다.  그루베로바는 1984년 코벤트 가든과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캬풀레티가와 몬테키가’(벨리니)의 줄리에타역을 맡아 사람들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라 스칼라에서는 돈나 안나(돈 조반니), 마리(연대의 딸)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였고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세미라미데로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1990년 비엔나에서 도니제티의 ‘로베르토 드브로’중 엘리자베스 1세역을 맡아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최정상임을 다시한번 확인해 주었다. 그루베로바의 주요 레퍼토리는 체르비네타(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질다(리골레토), 비올레타, 루치아(람메무어의 루치아), 콘스탄체(후궁에서의 도피), 마농, 오스카(가면무도회) 등등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다.


다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들, 특히 비벌리 실스와 마찬가지로 그루베로바도 연륜을 더해 감에 따라 좀더 무거운 역할에 도전하며 스핀토와 수브레토에 정진하는 한편 벨칸토의 진수를 표현하기에 노력하였다. 그루베로바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튜도왕조의 세명의 여왕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 것이다. 도니체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 여왕), 안나 볼레나(앤 왕비), 그리고 로베르토 드브로(엘리자베스 여왕)이다. 이제 그루베로바는 단순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아니라 드라미틱한 감정을 화려하게 펼치는 벨칸토의 여왕으로서 찬사를 받게 되었다.

 

청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