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위대한 배우 Elisabeth Grümmer (엘리자베트 그뤼머)

정준극 2008. 2. 27. 08:54
 

▒ 위대한 배우 Elisabeth Grümmer (엘리자베트 그뤼머)

 

 

엘리자베트 그뤼머는 20세기 중반 유럽 오페라계를 압도하였던 독일의 소프라노였다. 엘리자베트는 프랑스와의 영토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알사스-로렌지방의 디덴호헨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독일인이었다. 알사스-로렝에서 독일인들이 법에 따라 퇴거당하자 엘리자베트의 가족은 1918년 극장도시 마이닝겐(Meiningen)으로 이주하였다. 엘리자베트는 연극학교에 다녔고 학생시절 괴테의 에그몬트에서 클레르헨(Klärchen)을 맡는등 연극배우로서 자질을 쌓아왔다. 연극에 대한 경력은 그가 바이올리니스트 데트레프 그뤼머와 결혼함으로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한다. 남편 데트레프가 아헨국립극장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일하게 된것은 엘리자베트를 오페라의 무대로 끌어올린 계기였다. 당시 아헨 오케스트라의 음악 총감독은 허버트 폰 카라얀이었다. 카라얀은 우연히 엘리자베트의 노래를 듣고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엘리자베트는 이미 아기 엄마였지만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아가테


1940년 카라얀은 엘리자베트를 파르지팔에 데뷔시켰다. 맡은 역은 단역에 불과한 제1꽃소녀였다. 모두들 신예의 등장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카라얀은 이듬해 옥타비안(장미의 기사)을 맡도록 했다. 대성공이었다. 엘리자베트는 두이스버그(Duisberg)오페라단의 리릭 소프라노 주역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이어 프라하에 진출함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1945년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남편이 자기 집의 지하실에서 공습 폭격을 피해 있던중 직격탄을 맞아 바이올린을 손에 잡은채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다. 남편 데트레프가 깊이 사랑한 엘리자베트는 1986년 독일의 베스트팔리아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 결혼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후 엘리자베트는 베를린 국립오페라(현재의 도이치오퍼)의 정규 멤버가 되어 1972년 까지 25년이 넘게 활동한다. 그는 도이치오퍼의 산 증인이었다. 그는 베를린에 있으면서 라 스칼라, 코벤트 가든, 메트로, 파리 오페라, 콜론 극장, 뮌헨, 비엔나, 함부르크 등 세계 각지의 유명 오페라 극장은 물론 글린드본, 바이로이트,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정기적으로 초대되어 대단한 활약을 하였다.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 에바(Eva)역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1967년 그는 뉴욕시립오페라에서 마샬린(장미의 기사)을 맡아 뜨거운 갈채를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메트로에서 로엔그린의 엘자(Elsa)를 맡아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메트로에서만 엘자역을 연속으로 일곱 번이나 맡아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엘자


엘리자베트는 뛰어난 음성에 놀랄만한 연기력을 지닌 소프라노였다. 그러므로 뛰어난 음성을 필요로 하는 모차르트와 섬세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R 슈트라우스에서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그는 다른 소프라노와는 달리 자기의 역할을 몇가지로만 제한하였다. 파미나(마적), 돈나 안나(돈 조반니), 알마비바 백작부인(피가로의 결혼), 아가테(마탄의 사수), 헨젤(헨젤과 그레텔), 옥타비안(장미의 기사), 마샬린(장미의 기사), 에바(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엘자(로엔그린), 엘리자베트(탄호이저), 프라이아(니벨룽의 반지), 그리고 데스데모나(막베스)였다. 그는 특히 독일어 이외로 된 오페라의 독일어 번역 작품에 출연하여 그의 우수한 언어 재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피터 그라임스의 독일어 초연 등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 그는 드라마틱 소프라노에도 도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목소리에 부담을 주는 것이었다. R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를 맡은 것과 이도메네오를 맡은 것은 무리였다. 그의 고별 공연은 1972년 도이치오퍼에서 마샬린으로였다. 그는 몇장의 뛰어난 음반을 레코딩하여 남겨 놓았다. 그러나 자기 음역 이외의 작품은 레코딩하지 않았다. 그는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리자 델라 카사, 이름가르트 제프리트, 세나 유리나크 등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독일적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다. 

 

장미의 가시에서 마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