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궁정 오페라 아티스트 Félia Litvinne (휄리아 리트밴느)

정준극 2008. 2. 27. 09:39
 

▒ 궁정 오페라 아티스트 Félia Litvinne (휄리아 리트밴느)


제정러시아 시절, 뛰어난 오페라 재능으로 황실의 찬사를 받아 짜르로부터 ‘궁전 오페라 아티스트’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받은 휄리아 리트밴느는 1860년 생 페테르부르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러시아인이었지만 어머니는 프랑스계 카나다인이었다. 리트밴느는 어머니로부터 프랑스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래서 비록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은 프랑스 사람이라고 내세웠다. 파리로 간 그는 그곳에서 오페라를 공부했으며 1883년 파리의 이탈리아극장에서 시몬 보카네그라의 아멜리아를 맡아 오페라에 데뷔하였다. 이후 그는 모스크바, 생 페테르부르그, 브뤼셀, 그리고 미국에서 오페라에 계속 출연하였다. 그를 세계적 디바로 만들어준 역할은 파리 오페라에서 위그노(마이에르베르)의 발레타인을 맡은 것이었다. 그는 1893년 결혼한후 오페라를 떠나려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 계속되지 못하였다. 2년후 리트밴느는 다시 오페라 무대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메트로에서 돈나 안나였다. 돈나 안나로 성공한 그는 메트로에 계속 있으면서 아이다, 셀리카(마이에르베르의 아프리카 여인), 시멘느(마스네의 르 시드), 브륀힐데(지그프리트), 이졸데를 맡아 호평을 받았다.

 

  

                                                     아르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의 예술적 설득력과 무대를 압도하는 능력은 당시 메트에서 활약하던 밀카 테르니나(Milka Ternina) 또는 릴리 레만(Lilli Lehmann)과 비교하여 우수하다고 할수 없으며 릴리안 노리디카(Lillian Nordica)와 같은 찬란함도 부족하였다. 그리하여 리트밴느는 다시 메트로의 초청을 받지 못하였다. 반면 파리로 돌아온 그는 바그너의 여러 역할을 맡아하여 대단한 찬사를 받았다. 코벤트 가든에 데뷔한 것도 이졸데로였다. 그는 후에 코벤트 가든에서 조콘다, 아이다, 돈나 안나를 불렀지만 사람들은 그의 바그너 역할을 더 선호하였다. 러시아도 리트밴느의 링 사이클을 보았다. ‘신들의 황혼’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특히 환영을 받은 것이었다. 이때에 짜르가 리트밴느에 감동하여 비록 프랑스에 살고 있지만 러시아 황실의 궁전 오페라 성악가로서 임명하고 생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 살기를 청하였지만 그는 다시 파리로 돌아갔다. 러시아에서 거둔 또 하나의 대성공은 다르고미츠스키(Dargomizhsky)의 루살카(Rusalka)에서 나타샤를 맡은 것이었다. 그는 1916년 무대에서 은퇴한후 파리에서 노래를 가르치면서 지냈다. 그의 제자중 크게 성공한 성악가로는 제르멩 뤼뱅(Germaine Lubin)과 니나 코셰츠(Nina Koshetz)가 있다. 휄리아 리트밴느는 자서전 ‘Ma Vie et Mon Art-Sourvenirs'(나의 인생, 나의 예술 - 추억)를 남겼다.

 

 

 이졸데                                                    브륀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