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비운의 프리마 돈나 Gertrud Bindernagel (게르트루트 빈더나겔)

정준극 2008. 2. 27. 12:14
 

▒ 비운의 프리마 돈나 Gertrud Bindernagel (게르트루트 빈더나겔)


20세기초 베를린을 중심으로 놀라운 인기를 끌었던 게르트루트 빈더나겔(1894-1932)은 힘에 넘쳐있는 찬란한 음색의 드라마틱 소프라노로서 베르디의 ‘운명의 힘’의 베를린 초연에서 레오노라를 맡아 관중들에게 한없는 감동을 안겨준 오페라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사항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1932년, 어느날 공연을 마치고 베를린의 거리를 산책하며 집으로 가는 도중 두 번째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 권총을 쏘아 치명상을 입게 되었고 그로부터 며칠후 세상을 떠났다. 이로서 그는 한창 정상에 있었던 시기에 38세라는 짧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한 그는 두 번째 결혼하였으나 사업가임을 자처한 두 번째 남편은 도무지 성실치 못하여 부득이 이혼하였다. 당시 경제는 나치가 정권을 잡기 직전이어서 극도로 불안정하였고 따라서 두 번째 남편의 경제사정도 파산직전이었다. 두 번째 남편은 빈더나겔이 새로운 연인과 음모하여 자기를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려 한다고 믿어서 복수하기 위해 거리에서 기다렸다가 총을 쏜 것이다. 그러나 빈더나겔은 그런 음모를 꾸미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연인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튼 불행한 일이었다. 더 많은 오페라 공연을 하고 더 많은 음반을 취입하여 후대에 남길수도 있었는데 스러진 것이다.

 


독일의 마그데부르크(Magdeburg)에서 태어난 게르트루트 빈더나겔은 17세때에 이미 지방오페라극장의 단원으로 활약할 정도로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후 베를린국립음악대학을 나온 그는 뛰어난 음색과 성량으로서 독일 곳곳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이 이러한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1921년, 그가 27세때에 데뷔토록 해주었다. 그는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네다, 이졸데, 아이다와 같은 역할을 맡아하여 드라마틱으로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드레스덴의 초청 아티스트로서 무대에 섰으며 주로 메타 자이네마이어(Meta Seinemeyer)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27년 베를린에서의 ‘운명의 힘’ 초연때에도 메타 자이네마이어가 파트너였다. 1930년 그는 비엔나를 방문하여 슈타츠오퍼에서 ‘장미의 기사’의 마샬린을 맡아 찬사를 받았다. 그때 파트너는 유명한 아델레 케른(Adele Kern)이었다.


빈더나겔의 음성은 화려한 음색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공명의 발성을 하여 연주회장을 환희에 넘치게 만들었다. 그의 하이 C 음은 숨막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몇장의 음반을 남겨 놓았다. 이졸데의 ‘Mild und leise’는 프리다 라이더에 못지 않는 놀라운 연주였다. 그가 취입한 아리아 중에서 마르슈너의 ‘한스 하일링’(Hans Heiling)중 안나(Anna)의 아리아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주로 평가받고 있다.  

 

 

 레오노레(휘델리오)                                         오르트루트(로엔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