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매력적인 음성 Gigliola Frazzoni (줄리올라 프라쪼니)

정준극 2008. 2. 27. 12:17
 

▒ 매력적인 음성 Gigliola Frazzoni (줄리올라 프라쪼니)

 

1927년 볼로냐에서 태어난 줄리올라 프라쪼니는 뛰어난 음성과 각각의 역할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칼라스 이후 레나타 테발디, 브루나 라사(Bruna Rasa) 등과 함께 최고의 명성을 쌓으며 사랑을 받았던 훌륭한 아티스트이다. 1948년 볼로냐에서 미미로 데뷔한 그는 이후 놀라운 재능과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성으로 로마, 베니스, 토리노, 파르마, 베로나, 뮌헨, 슈투트가르트, 뷔스바덴, 취리히, 제네바, 보르도, 카이로, 더블린, 비엔나 등지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는 수많 오페라 출연이외에도 토스카, ‘황금서부의 아가씨’를 레코드로 취입했으며 라 스칼라에서의 ‘갈멜파 수녀의 대화’ 초연에 출연한 기록을 세웠다. ‘황금서부의 아가씨’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그는 한창 전성기에 풍부한 성량, 모나지 않은 음성, 어둡고 중후한 음색, 그리고 성격이 부드럽고 무슨 일에나 열심이어서 사랑스럽고 심지어 여성적으로 육감적인 면도 있어서 만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웃고 떠들며 사랑하고 화를 내며 사랑의 상처를 입어 괴로워하는 미니(Minnie)였다. ‘황금서부의 아가씨’ 2막에서 프라쪼니는 마치 야생과 같이 격렬하였다. ‘Vieni fuori! Vieni fuori!’를 들어보면 알수 있다. 어떤 경우, 그는 일부러 약간 플랫으로 아리아를 불렀다. 하이 B 또는 하이 C 에서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약간 플랫으로 노래를 부를때 듣는 사람들은 함께 불안하게 느끼게 마련이라는 설명이었다.

 


볼로냐에서 노래를 가르쳤던 성악 선생은 프라쪼니는 밀라노로 데려갔다. 음악기획사인 리두이노(Liduino)에서 오디션을 받기 위해서였다. 라 스칼라에서 공연될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의 역할을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이었다. 지휘자인 세라핀(Serafin)은 프라쪼니의 노래를 듣고 난후 ‘저 여자의 목소리가 상당히 흥미 있다. 그냥 내보내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프라쪼니는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에서 작은 역할인 사마리타나(Samaritana)를 맡았다. 이것이 첫 오페라 데뷔였다. 나중에 루디이노는 프라쪼니가 주역으로 진출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훼방 놓았다고 한다. 루디이노가 지원하는 어떤 소프라노를 키우는데 위협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느때에 프라쪼니는 시카고에서 마리오 델 모나코, 티토 고비(Tito Gobbi)와 함께 ‘황금서부의 아가씨’를 공연한 일이 있다. 미모의 엘레아노 슈테버(Eleanor Steber)가 미니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몸이 아픈 바람에 출연할수 없게 되었다. 슈테버는 실은 매우 지쳐있었다고 한다. 아마 술 때문이 아닌가싶었다. 모나코와 고비는 프라쪼니를 추천하였다.


기획사의 루디이노가 푸라쪼니에게 전화를 걸어 출연료를 얼마나 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프라쪼니는 그런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가 좋아하는 역할(미니)를 미국에서 할수 있다는데에 만족하고 그저 여행경비만 대주면 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프라쪼니는 루디이노에게 출연료 문제를 알아서 해 달라고 일임하였다. 1주일후 모나코가 프라쪼니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런 막대한 출연료를 요청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루디이노가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 프라쪼니의 1회 출연료로 무려 3천불을 요구했으니 도대체 그럴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결국 리디이노는 프라쪼니를 미국에 보내지 않고대신 스텔라(Stella)를 보내려는 속셈에서 그런 수작을 부렸던 것이었다. 프라쪼니는 비행기 타는것이 힘들었지만 미국에 가서 공연한다는 생각으로 여행 가방까지 사 놓았었다. 시카고에서의 ‘황금서부의 아가씨’ 공연은 원래 선전한 대로 엘레아노 슈테버가 출연했다. 다만, 슈테버는 무대에서 입만 벌렸고 커튼 뒤에서 다른 어떤 소프라노가 노래를 불렀다. 메트로의 루돌프 빙이 프라쪼니가 출연한다는 소리를 듣고 뉴욕에서 비행기타고 시카고에 왔으나 헛수고였다.


프라쪼니가 미국에 가지 못하게 되자 미국에 있었던 레나타 테발디가 메트로에서의 ‘황금서부의 아가씨’에 미니로 출연했고 데카와 음반 취입도 했다. 테발디는 프라쪼니와 친구사이였다. 테발디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는 프라쪼니는 그러나 테발디가 베리스모에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미니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자기 조절을 하여 무대에서 너무나 정적(靜的)이었다는 얘기였다. 테발디는 미니를 맡기에 너무나 감미로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1958년, 프라쪼니는 라 스칼라에서 나비부인을 7회 공연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단한 성공이어서 라 스칼라는 10회나 더 공연토록 했다. 이것은 칼라스가 라 스칼라에서 비올레타를 모두 14회 공연한 것보다 더 많은 기록이었다. 프라쪼니는 나비부인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초초상은 제1막에서 15세의 어린 여인으로 등장한다. 초초상과 비올레타는 모두 두가지 형태의 음성으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 나는 상황에 적합하게 노래 부르고자 노력했다. 나는 초초상을 공연할 때에  다른 역할은 맡지 않았다. 초초상을 맡았을 때 나는 음성을 더 여리게, 더 어리게 부르기 위해 모든 것을 조절하며 준비했다. 그러나 2막에서는 스핀토가 되어야 했다. 내가 가진 모든 음성을 전부 밖으로 던져내야 했다.’

 

안드레아 셰니에


프라쪼니는 오페라 역할이 흉성을 요구할 때에는 그렇게 했다. 예를 들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Voi lo sapete를 부를 때는 마지막 파트에서 흉성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가사중에 pigno가 나오는 파트부터는 스핀토가 아니라 흉성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브루나 라사(Bruna Rasa)가 그 파트에서 흉성을 사용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프라쪼니는 흉성을 사용할 때에 얼굴 모습과 조화를 시키는 일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 파트에서의 음성은 자연적인 음성이 나와야 하며 결코 힘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프라쪼니가 나비부인을 마쳤을 때 브루나 라사가 무대 뒤로 찾아와 대단히 훌륭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일이 있다. 프라쪼니는 브루나 라사가 정신질환으로 더 이상 무대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데 대하여 상당히 안타까워했다. 프라쪼니는 노래를 부르는 데에는 기질(temperament)과 감각(sensibility)가 가장 필요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노래 부를 때에는 행복해야하며 즐거움에 넘쳐 있어야 하고 사랑의 감정이 넘쳐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푸치니의 오페라에서는 하나하나의 구절을 행복함과 겸손함으로 불러야 한다는 말도 덧 붙였다. 그는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서 미카엘라와 류(투란도트)를 부른 다음에야 죠콘다와 훼도라를 부를수 있다고 말했다.


프라쪼니는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아다미 코라데티(Adami Corradetti)는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하는 훌륭한 아티스트라고 찬사를 보냈다. 시미오나토(Simionato)에 대하여는 체네렌톨라에서 소프라노 레제로(leggero)처럼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사로잡았으며 고음을 내는데 능숙한 재질이 있음을 치하하였다. 스티냐니(Stignani)에 대하여는 ’메조면서 노르마에서 하이 C 음을 낸 것은 대단한 재능이라고 말했다. 스티냐니가 아달지사를 맡고 칼라스가 노르마를 맡았을 때 칼라스는 스티냐니에게 ‘왜 하이 C 음을 냈는가? 그건 나만 할수 있는데!’라면서 질투 겸 찬사를 보낸 일이 있다. 가바찌(Gavazzi)에 대하여는 위대한 베리스모 기질을 꽃피운 마지막 소프라노라고 평하였다. 가바찌의 아름다운 음성은 베리스모를 보다 위대하게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올리베로(Olivero)의 비올레타 아리아중 Ah! fors'è lui...Sempre libera는 어느 누구도 따라갈수 없는 탁월한 것이었으며 자기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 것이었다고 말했다. 올리베로의 아드리아나는 시대를 초월하는 탁월한 것으로 오늘날 아드리아나를 맡아 부르는 성악가들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올리베로를 능가할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올리베로가 이것저것 무슨 역할이든지 맡아 한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며 특히 미니를 맡은 것은 관심을 주지 못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프라쪼니는 함께 자주 공연했던 델 모나코와 코렐리에 대하여 “델 모나코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코렐리는 그가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는지 안불렀는지 모를 정도로 몰두한다. 하지만 코렐리는 무대 밖에서 참으로 힘든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가 일쑤이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러나 델 모나코는 조용한 사람이다. 그는 가기의 노래에 대하여 대단히 신중하다. 그는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의 노래를 듣는다. 무대 밖에서 그는 마치 자상한 오빠와 같다. 델 모나코는 행복한 사람이며 남에게 기쁨을 준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는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충분히 한 후 그날 공연된 오페라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풀 보이스(full voice)로 다시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는 오페라를 사랑한다. 델 모나코는 아름다운 음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의 노래는 상당히 계산되어 있는 것 같다. 기질과 감성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반면, 코렐리는 테너의 칼라스이다. 그의 음성은 특별히 아름답다고 할수 없으나 관중들을 사로잡고 열광케 하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 칼라스는 자기 가슴 속에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힘, 다시 말하여 위대한 동정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 비애감을 가지고 있다. 코렐리도 그러한 위대함을 가지고 있다. 코렐리는 자기의 온 몸을 던져 공연한다. 코렐리는 노래보다도 드라마에 더 신실하다. ‘황금서부의 아가씨’를 함께 공연할 때에 코렐리는 나(프라쪼니)에게 ‘미니, 미니’라면서 더 할수 없이 부드럽고 감미롭게 노래를 부른다. 비록 무대 위이지만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지지 않을수 없다. 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구제불능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