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 스투펜다 Joan Sutherland (조안 서더랜드)
조안 서더랜드는 호주가 낳은 세계적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이다. 현재는 은퇴후 스위스에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고 있는 서더랜드는 역시 호주 출신인 넬리 멜바에 이어 다시한번 세계를 제패한 위대한 아티스트이다. 언젠가 호주의 수상은 ‘호주가 세계의 음악계에서 자랑할수 있는 것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조안 서더랜드의 노래’라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서더랜드를 노래로만 얘기할수 없다. 서더랜드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고귀한 인간미의 사람이다. 언제나 성실하고 겸손했으며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여 어렵고 낙담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사람이다. 서더랜드의 자선적 활동에 대하여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언제나 남이 모르게 시행했기 때문이다. 서더랜드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음악에 대한 공적으로 여성에 대한 기사작위인 데임(Dame) 칭호를 수여받았다. 호주의 한 구석 포인트 파이퍼(Point Piper)라는 마을에서 양복장이의 딸로 태어난 조안 서더랜드가 영국의 귀족 작위를 받은 것은 분명히 그만한 사유가 있었을 것이다.
데뷔 당시 은퇴당시
1923년 11월 7일 태어난 조안 서더랜드는 소녀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 호주의 성악 경연대회에서 몇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조안의 아버지는 양복점을 운영했지만 어머니는 메조소프라노였다. 어머니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조안은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메조소프라노로서 공부를 하였다. 조안의 운명과 경력은 리챠드 보닝(Richard Bonynge)이라는 젊은 피아니스트를 만남으로서 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리챠드 보닝과 서더랜드는 1954년 10월 결혼하였다. 남편 보닝은 조안이 뛰어난 벨칸토 소프라노인것을 알고 그 방향으로 집중적인 연마를 하도록 권유했다. 놀랍게도 조안은 일반적인 콜로라투라 아리아에 표시되어있는 음정보다도 훨씬 높은 음정을 낼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서더랜드가 세계 최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등장하게된 동기였다.
서더랜드의 첫 오페라 데뷔는 1952년, 그가 26세 때에 코벤트 가든에서 있었던 마적(魔笛)에서 ‘밤의 여왕’의 시녀중 첫 번째 부인을 맡은 것이었다. 이어 마리아 칼라스가 타이틀 롤을 맡았던 노르마에서 단역에 불과한 클로틸데(Clotilde)를 맡았다. 사실 이 두 역할은 모두 메조의 역할이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전환하라는 남편 리챠드의 간곡한 권유를 깊이 생각하고 있던 서더랜드는 칼라스에게 자기가 콜로라투라를 맡을수 있겠는지 물었다. 칼라스는 ‘콜로라투라는 무척 힘든데....하지만 못할 것도 없지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후 서더랜드는 코벤트 가든의 음악 총감독에게 콜로라투라를 맡아 보겠다고 도전하였다. 코벤크 가든은 시험 삼아 발퀴레에서 헬름비게(Helmwige), 엘렉트라에서 노예감독관을 맡겨보았다. 남편 리챠드가 보기에는 메조인 서더랜드가 콜로라투라를 맡아 걱정스럽고 두려웠지만 하여튼 큰 역할이 아니어서 무사히 마쳤다. 코벤트 가든은 벨칸토 소프라노로서의 서더랜드의 가능성을 눈여겨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역은 맡기지 않았다. 이어서 맡긴 역은 도니제티의 ‘리버풀의 에밀리아’와 헨델의 알치나(Alcina)의 리드 롤이었다.
1959년 2월 17일은 서더랜드의 오페라 경력에서 가장 획기적인 날이었다. 처음으로 ‘람메무어의 루치아’에서 루치아역을 맡은 것이다. 서더랜드는 대단한 갈채와 함께 확실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데뷔하였다. 이어 서더랜드는 콜로라투라의 대명사인 벨리니의 청교도에서 엘비라, 노르마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어느 누구도 따를수 없는 높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사실 서더랜드는 미모의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모습이다. 아주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의 모습이다. 큰 체격에 윤곽과 선이 뚜렷한 얼굴이다. 그러므로 제니 린드, 넬리 멜바, 비벌리 실스, 특히 이미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데아나 더빈의 용모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왕이면 다홍치마이겠지만 소프라노는 용모가 아니라 소리로서 말하는 것이며 이 말은 바로 서더랜드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보면 된다. 콜로라투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서더랜드는 1963년 이후 노르마에서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Marilyn Horne)과 함께 공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두 사람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콤비였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서더랜드와 마릴린 혼을 ‘드루이드 두오’(Druid Duo)라고 불렀다. 오페라에서 노르마(서더랜드)와 아달지사(마릴린 혼)는 모두 드루이드교의 여사제이다.
조앤 서덜랜드의 대표적 역할인 루치아. 1965
1960년 서더랜드는 이탈리아에서 첫 데뷔를 하였다. 베니스의 라 훼니체(La Fenice)에서 헨델의 알치나(Alcina)에 출연한 것이었다. 라 훼니체극장은 마리아 칼라스를 처음으로 라 디비나(La Divina: 여신)라는 칭호로 불렀던 곳이다. 아무튼 그 이후 프리마 돈나 중에서도 최고의 프리마 돈나에게 디바라는 칭호를 붙이게 되었다. 서더랜드가 라 훼니체에서 공연할 때 사람들은 경이로움과 감탄으로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라 디비나’라는 호칭은 이미 마리아 칼라스에게 붙였기 때문에 서더랜드에게는 ‘라 스투펜다’(La Stupenda: 거인, 대단히 위대한 인물)라는 호칭을 붙였다. 서더랜드의 라 스칼라와 메트로 데뷔는 루치아였다. 이날 라 스칼라는 진정으로 또하나의 거인을 환영하였다. 거인 서더랜드는 겸손했다. 그는 봉사정신에 넘쳐 있으며 따뜻한 인간미로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와 함께 유머 감각도 뛰어났다. 코믹 오페라에 출연하여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의 따뜻한 유머 감각 때문일 것이다. 서더랜드의 코믹 오페라 등록 상표는 연대의 딸에서의 마리, 박쥐에서의 로잘린데, 메리 위도우에서의 안나 글라바리(Anna Glavari)이다. 서더랜드는 197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귀부인(Dame) 작위를 받았다. 작위수여식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서더랜드에게 그같은 작위를 주게 되어 더 영광이라고 말했다.
서더랜드와 남편 라챠드는 오래 잊혀져 있던 오페라의 리바이벌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리챠드는 오래전부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잊혀진 오페라의 리바이벌에 많은 기여를 할수 있었다. 리바이벌 리스트에는 Beatrice Di Tanda, Rodelinda, Escalrmonde, ‘라호르의 왕’(Le Roi De Lahore), 그리고 베르디가 런던에서 제니 린드와 함께 초연했던 I masnadieri(해적)이 포함된다. 서더랜드는 64세 때인 1990년 은퇴하였다. 이로서 거의 40년에 걸친 영광과 탁마의 경력은 마무리 되었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 공연은 1990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Les Huguenots(위그노)였다. 그러나 사실상 마지막 공연은 1990년도 코벤트 가든의 송년 공연인 박쥐 제2막의 파티장면에 초청되어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1990년의 은퇴 공연은 이 위대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게 석별의 정을 나누는 감격의 도가니였다. 서더랜드가 마지막으로 Home Sweet Home을 부르자 장내는 형용할수 없는 감격으로 넘쳐흘렀으며 모두의 눈에는 안개가 서렸다. 이 자리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후가 친히 참석하였다.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Rudolph Giuliani)는 1998년 5월 6일을 뉴욕시의 Dame Joan Sutherland Day로 공표하였다. 메트로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기념해서였다. 조앤 서더랜드와 리챠드 보닝은 아담이라는 아들을 하나 두었다.
다음은 은퇴에 즈음하여 서더랜드가 남긴 말이다. “중요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 특히 오페라 직업에 있어서 계속 여행을 다녀야 하는 여성이면 개인 생활과 전문적 생활과의 조화있는 균형을 이루기가 어렵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여성 오페라 종사자들이 신경쇠약에 걸리며 심지어 결혼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경우, 남편들이 부인을 위해, 또는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해 자기 직업을 포기하고 부인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매니저로서 일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들은 음악, 특히 성악에 대하여 충분한 자격이 없으므로 어려움은 마찬가지가 될수 있다.”
루치아(알프레도 크라우스와 함께)
조앤 서덜랜드는 2010년 10월 11일 일요일 스위스 몽트로 부근의 자택에서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절친한 친구인 메조소프라노 매릴린 혼이 임종을 지켜보았다. 1960년 베니스에서 공연할 때에 이탈리아의 어떤 평론가가 조앤 서덜랜드를 라 스투펜다라고 부른 이래 조앤 서덜랜드는 거의 4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성악가로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조앤 서덜랜드가 1961년에 메트로폴리탄에서 '람메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롤을 맡았을 때에는 저녁에 공연이 시작되지만 아침 7시 반부터 극장 앞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조앤 서덜랜드가 루치아의 '광란의 장면'을 부르고 나자 감격한 사람들은 무려 12분 동안이나 기립박수를 하였다. 조앤 서덜랜드의 음역은 아래 G 로부터 순식간에 하이 C 로 옮아가는 것이었다.
마리(연대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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