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존경을 받은 Lisa Della Casa (리자 델라 카사)
스위스 출신의 소프라노 리자 델라 카사는 모차르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할에서 견줄수 없는 탁월함을 선보였다. 특히 아라벨라에서 보여준 그의 음악해석과 연기는 뛰어난 미모와 어울려 최고의 아라벨라 타이틀 롤로 인정받고 있다. 델라 카사는 15세부터 본격적인 성악수업을 받았다. 마르가레테 헤저(Margarete Haeser)는 델라 카사의 평생스승이었다. 델라 카사의 첫 오페라 데뷔는 1941년 스위스에서 나비부인의 초초상으로였다. 그는 1945년 2차 대전이 끝날때까지 스위스에 머물면서 활동을 하다가 1947년 처음으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참가함으로서 그의 재능을 세계로 내보였다. 아라벨라에서 츠덴카(Zdenka) 였다. 곧 이어 또다시 R 슈트라우스의 카프리치오에서 백작부인을 맡아 명성을 쌓는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출연으로 인정을 받은 그는 그해에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전속멤버가 된다. 그러나 1950년까지 스위스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한다. 파미나(마적), 질다(리골레토), 그리고 특이하게도 세레나(포기와 베스)을 맡아 공연했다. 거슈인은 포기와 베스의 출연자들이 모두 흑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유럽에서의 공연에서는 예외였던것 같았다.
영국 무대에의 데뷔는 1951년 글린드본에서 백작부인(피가로의 결혼)을 맡은 것이었다. 그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아름다운 음성과 함께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평론가들은 델라 카사의 음성을 ‘봄과 같고 은빛과 같다’고 말했다. R 슈트라우스가 요구했던 모습도 바로 그런것이었다. 델라 카사는 1958년부터 10년 이상이나 메트로의 고정 출연자였다. 백작부인(피가로의 결혼)이 대표적 역할이었다. 델라 카사는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돈나 엘비라, 돈나 안나, 파미나, 피오리딜리지를 즐겨 맡았으며 R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에서 크로테미스,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에서 타이틀 롤을 맡기도 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R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에서 확고하게 보여주었다. 델라 카사는 장미의 기사에서 조피, 옥타비안, 마샬린이라는 주요 역할을 모두 맡아 그의 다재다능함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델라 카사는 1952년 바이로이트에서 에바(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맡아 달라는 초청을 받아 출연하였다. 그러나 그는 바그너의 작품에서 독일 국수주의의 어두운 면을 느끼고 그 이후로는 바그너의 작품 출연을 모두 거절하였다. 델라 카사는 사려 깊고 원칙을 고수하는 성악가로서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음악의 상업성을 비난하고 명성이나 돈 때문에 공연하는 것을 명예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규정하여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오페라계에서 자주 볼수 있는 질투, 비방, 음모, 정실 따위를 한탄하고 음악의 순수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른바 스타라는 성악가들의 지나친 이기심 때문에 함께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기회가 막히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1974년 은퇴하여 스위스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리자 델라 카사는 이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디바였다.
마샬린(장미의 기사) 백작부인(피가로의 결혼)
돈나 엘비라(돈 조반니) 유리디체(오르페오와 유리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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