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민의 비올레타 Luisa Tetrazzini (루이자 테트라찌니)
이탈리아의 소프라노 루이자 테트라찌니(Louise Tetrazzini라고 쓰기도 함)는 1871년에 플로렌스에서 태어나 그곳 음악원에서 동생(소프라노 에바 테트라찌니)과 함께 성악을 공부했으며 1890년 플로렌스의 팔리아노(Pagliano)에서 ‘아프리카 여인’의 이네(Inès)로 데뷔하였다. 이어 로마의 아르헨티나극장에서 출연하여 명성을 쌓기 시작한 그는 점차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동 유럽, 남미, 스페인, 멕시코에서 1891년부터 1906년까지 15년 이상을 눈부시게 활동하였다. 1907년, 그는 과거 멜바가 독점하여 다른 사람은 얼씬도 하지 못했던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비올레타를 맡아 놀라운 센세이션을을 불러 일으켰다. 테트라찌니와 멜바는 단 한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오페라는 노래가 말하는 것이지 연기나 다른 요소가 오페라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에서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런던의 비올레타로서 테트라찌니는 진정한 디바로서 찬사를 받았다. 이후 그는 1912년까지 5년 동안 매년 빠짐없이 코벤트 가든을 방문하여 런던의 오페라 팬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런던에서 그는 질다, 루치아, 아미나, 마르게리트 드 발루아(위그노) 등등의 역할을 맡았다. 여러 역할 중에서 루이자 테트라찌니의 대명사는 단연 루치아였다. 그가 광란의 장면을 부르고 나면 장내는 상당기간 동안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섬뜩한 적막함으로 채워졌다가 이윽고 집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메트로폴리탄 극장 측은 테트라찌니를 영입하는데 엉뚱한 실수를 저질렀다. 테트라찌니 초청에 늑장을 부리고 있다가 맨해튼 오페라의 오스카 햄머슈타인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맨해튼 오페라와 출연 계약을 맺은 테트라찌니는 1908년부터 오페라에 출연하기 시작하여 뉴욕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맨해튼 오페라에서 태트라찌니가 출연하는 날은 메트로의 객석이 텅 빌 지경으로 테트라찌니에 대한 인기는 높았다. 맨해튼 오페라에서 그의 레퍼토리는 코벤트 가든에서의 역할 이외에도 라크메, 디노라(Dinorah), 엘비라(청교도) 등이 추가되었다. 테트라찌니를 확보하지 못하여 안절부절 했던 메트로는 몇 년동안의 노력 끝에 결국 1911-12년 시즌에 8회의 공연에 출연하는 계약을 맺을수 있었다. 테트라찌니의 메트로 데뷔는 루치아였다. 메트로는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밖에도 그는 메트로에서 질다, 비올레타, 아미나 등을 공연하였다. 모두 대단한 성공을 거둔 공연이었다. 이로서 메트로는 잠시 동안이지만 맨해튼 오페라와의 경쟁에서 겨우 명성을 되찾을수 있었다. 이번에는 미국의 다른 도시에서 안달이 났다. 그리하여 테트라찌니는 1911-1914년에 보스톤, 시카고 등지에서 간헐적으로 오페라 무대에 등장하여 이 도시들의 테트라찌니 갈급증을 해갈해 주었다. 그러나 보스턴과 시카고 등지에서의 출연 이후에 테트라찌니는 오페라에 거의 출연하지 않고 대신 콘서트와 리사이틀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그의 마지막 연주회는 1934년 런던에서였다.
테트라찌니는 세 번 결혼하였으나 모두 실패였다. 남편이란 사람들은 하나같이 테트라찌니가 번 돈을 유용하기에 정신없었다. 이는 결국 테트라찌니의 명성에도먹칠하는 일이어서 오페라 무대에서의 은퇴를 앞당기게 했으며 그 후에도 무던히도 테트라찌니를 괴롭혔다. 그는 1940년 밀라노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테트라찌니는 단 한점의 흠도 잡을수없는 완벽한 콜로라투라로서 진정으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은 오페라 스타였다. 그는 그의 예술성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연마하여 빛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가장 어렵고 장식음이 많아 현란한 아리아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한편, 테트라찌니의 음성은 한마디로 매혹적이다. 연민을 느끼지 않을수 없게 하는 음성이다. 그러한 연민의 정으로 무대를 압도하였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는 실제로 연약함과는 거리가 먼 든든한 체격이었다. 그러한 체격에서 마치 새의 깃털이 하늘에서 떠다니는 것과 같이 가볍고 밝은 소리가 나와 찬사를 받았다. 그는 위트가 있고 마음씨가 포근한 여인이었다. 가끔 무대에서 코믹한 연기를 할 경우, 사람들은 그의 찬란한 코믹 연기에 진정으로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아이고, 저 뚱뚱한 아줌마가 저것도 웃기는 연기랍시고 하네!’라고 핀잔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야, 대단하다. 만일 내가 저 코믹한 역할을 한다면 난 저렇게까지 은근히 재미있게 할 자신이 도저히 없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필랭(마농)
로지나 루치아
비올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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