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오페라 황금시기를 수놓은 Maria Barrientos (마리아 바리엔토스)

정준극 2008. 2. 27. 15:31
 

▒ 오페라 황금시기를 수놓은 Maria Barrientos (마리아 바리엔토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오페라의 황금시기’에 스페인의 소프라노 학파를 대표하는 6인의 스타들이 있었다. 메르세데스 카프시르(Mercedes Capsir), 엘비라 데 히달고(Elvira de Hidlago), 마리아 갈바니(Maria Gallvany), 죠세피나 위게(Josefina Huguet), 그라시엘라 파레트(Graciela pareto), 그리고 가장 인기를 끌었던 마리아 바리엔토스가 이들이다. 바리엔토스는 동화와 같은 전설적인 성악가일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바리엔토스는 1884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고향에서 프란치스코 보네트(Francisco Bonet)에게 성악 레슨을 받은후 14세때에 바르셀로나 리리코극장(Teatro Lirico)에서 ‘몽유병자’(벨리니)의 아미나(Amina)를 맡아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아직 어린 소녀로서 그 어려운 벨칸토 창법을 거의 완벽하게 마스터하여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놀람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의 성악적 재능은 해를 거듭할수록 놀라운 진보를 보였다. 아직 10대의 소녀일 때에 노비다데스극장(Teatro de Novidades)에서 여러 오페라의 주역을 맡은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1903년, 그는 19세 때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의 무대에 섰다. 모두들 젊은 아가씨 바리엔토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바리엔토스는 로지나를 완벽하게 불렀다. 어찌나 사랑스럽게 불렀던지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이듬해에는 라 스칼라에서 디노라(Dinorah)를 불렀다. 역시 대단한 감탄을 받은 공연이었다. 이후 신데렐라 바리엔토스는 1차대전이 끝날 시기까지 유럽의 여러 오페라 무대에서 찬사와 사랑을 받으며 무대를 수놓았다. 1916년 그는 마침내 메트로에 데뷔하였다. 그가 원숙하고 아름다운 경지에 들어선 32세때였다.


메트로 데뷔에서는 콜로라투라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진수라고 하는 루치아를 맡았다. 바리엔토스를 처음 보는 뉴욕의 오페라 팬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로서 바르셀로나의 바리엔토스는 당장에 대중들의 우상이 되었다. 바리엔토스는 계속 4 시즌을 메트로에서 보내며 미모와 재능, 그리고 성실함과 지성으로서 무대를 완전히 압도하였다. 1924년경, 그는 어언 30연 성상에 이르는 무대생활에서 은퇴하였고 그후에는 간간히 리사이틀에 전념하였다. 그는 스페인과 프랑스 예술가곡의 훌륭한 해석자로서 존경을 받았다. 마리아 바리엔토스는 1946년, 향년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바리엔토스는 비교적 많은 레코딩을 남겼다. 그 중에서 마누엘 드 활라(Manuel de Falla)의 '스페인 인기 노래집‘(Siete Canciones Populares Espanoles)는 작곡자 자신의 피아노 반주로 취입된 것이다. 바리엔토스의 음성은 거의 악기와 마찬가지로 투명하였다. 특히 레가토에 있어서는 마치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의 소리와 흡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