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최고의 콜로라투라 Maria Antonietta Stella (마리아 안토니에타 스텔라)

정준극 2008. 2. 27. 15:28
 

▒ 최고의 콜로라투라 Maria Antonietta Stella (마리아 안토니에타 스텔라)


도니제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Maria Stuarda)는 뛰어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초연이후 오랫동안 공연되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아마 영국과 스코틀랜드간의 정치적 문제를 다룬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서 그랬던것 같았다. 1974년 나폴리는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재조명키로 했다. 이때 타이틀 롤을 맡았던 드라마틱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마리아 안토니에타 스텔라였다. 1929년 이탈리아의 페루지아에서 태어난 마리아 안토니에타 스텔라는 놀랍도록 가벼우면서도 박력이 있고 감미로우면서도 날카로운 음성으로 당시 세계의 오페라 스테이지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냈던 아티스트이다. 고향 페루지아의 리체오(Liceo)음악원과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아를 나온 스텔라의 첫 오페라 데뷔는 1951년 로마오페라에서 레오노라(운명의 힘)로였다. 당시 상대역인 돈 알바로(Don Alvaro)는 마리오 델 모나코(Mario del Monaco)였다. 이후 스텔라는 유럽 전역의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초청을 받아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이로써 그의 명성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 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라 스칼라 데뷔는 1953-54년 시즌에 데스데모나(오텔로)로였다. 상대역인 오텔로는 역시 마리오 델 모나코였다. 그러나 그러한 재능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변덕스러우며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고전을 하기도 했다.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메트로의 프라마 돈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데뷔 역할은 아이다로서 상대역인 라다메스는 카를로 베르곤지였다. 4년후인 1960년 그는 메트로에서의 공연 예정을 취소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신병(身病)때문이라는 구실을 내세웠다. 그러나 1주일후 그는 라 스칼라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메트로는 공연 해약에 따른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결과 앞으로 2년동안 미국에 입국하지 못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1963년, 스텔라는 이번에는 라 스칼라와의 중요한 공연을 취소했다. ‘황금서부의 아가씨’를 맡기로 되어 있었으나 상대역인 테너 프랑코 코렐리와 하모니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스텔라는 라 스칼라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그 이후 스텔라는 로마에서 10여년간을 활동했다. 그리고 1974년에는 나폴리에서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불러 놀라운 재능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페루지아의 별(Stella)’이라고 불리는 마리아 안토니에타 스텔라는 1950년대와 60년대에 라 스칼라, 로마, 메트로를 중심으로 대활약을 했던 잊지못할 인물이다. 1929년 이탈리아의 페루지아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의 리체오(Liceo)음악원과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음악원에서 공부한 재원이었다. 스텔라는 1951년 로마오페라극장에서 레오노라(운명의 힘)으로 데뷔하여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예고하였다. 첫 오페라 데뷔의 상대역은 마리오 델 모나코(돈 알바로역)였다. 그후 그는 슈투트가르트, 비스바덴, 뮌헨 등 독일의 오페라극장과 이탈리아 전국(플로렌스, 나폴리, 로마, 카타니아, 파르마, 토리노, 페루지아)에서 혜성과 같은 존재로서 무대를 압도하였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 데뷔는 1953-54년 시즌에 데스데모나(오텔로)로였다. 상대역인 오텔로는 역시 마리오 델 모나코였고 이아고는 파올로 실베리(Paolo Silveri)였다. 이어 베로나에서 레오노라(운명의 힘),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아이다, 그리고 1956년에는 메트로에서 아이다로 데뷔하여 호평을 받았다. 아이다에서의 상대역은 카를로 베르곤지(라다메스)였다.


메트로에서는 4년동안 활동했다. 그러다가 1960년 시즌의 마감을 앞두고 갑자기 병을 칭탁하고 메트로를 떠났지만 2주도 안되어 라 스칼라 무대에 서는 바람에 메트로를 화나게 만들었던 일도 있었다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다. 1963년 스텔라는 라 스칼라의 ‘황금서부의 아가씨’ 공연을 앞두고 갑자기 출연을 취소하였다. 이유는 상대역인 프랑코 코렐리와 하모니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후로 스텔라는 미안하게도 라 스칼라에 다시 서지 못했다. 로마로 간 스텔라는 1960년대 말부터 1975년까지 오페라 활동을 하다가 무대에서 은퇴하였다. 스텔라는 1974년 벨리니의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나폴리 재공연때 타이틀 롤을 맡아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비록 신뢰가 부족한 면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는 대단한 드라마틱 콜로라투라로서 한때를 풍미한 뛰어난 소프라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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