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신비한 아름다움 Maria Kuznetsova (마리아 쿠즈네초바)

정준극 2008. 2. 27. 15:39
 

▒ 신비한 아름다움 Maria Kuznetsova (마리아 쿠즈네초바)


놀라운 성악적 기량과 뛰어난 미모의 마리아 쿠즈네초바(1880-1966)는 20세기 초반을 장식한 가장 위대한 러시아의 소프라노였다. 흑해 연안의 오데싸(Odessa)에서 태어난 마리아는 원래 발레에 뜻을 두어 생 페테르부르그에서 발레를 수업하였으나 성악에 남다를 재질이 있음을 알고 당대의 바리톤 요아킴 타르타코프(Joakim Tartakov)으로부터 본격적인 성악 레슨을 받았다. 그는 마린스키극장에서 파우스트의 마르게리트로 데뷔하여 전설적인 소프라노로서 이름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마리아의 레퍼토리는 살로메, 아이다, 노르마, 엘자로부터 가벼운 역할인 줄리에트와 미미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폭이 넓었다. 그는 새로운 오페라의 공연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여 주인공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창조하는 기여를 했다. 예를 들면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보이지 않는 키테즈시의 전설’(The Legend of the Invisible City of Kitezh)의 세계초연에 주역으로 출연하였으며 마스네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미지도 창조하였다. 마리아는 샬리아핀 이후 처음으로 노래만큼이나 무대연출에도 큰 비중을 둔 러시아 성악가였다.


20세기 초에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마리아의 가족들은 혁명의 불길을 피하여 스웨덴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때 혁명분자들의 눈길을 피하느라고 마리아는 남자 옷을 입고 커다란 트렁크 속에 숨어 국경을 넘었다. 스웨덴에서 음악 활동을 계속하던 마리아는 뜻한바 있어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의 첫 오페라 데뷔는 시카고에서 마스네의 클레오파트라였다. 당시 시카고의 오페라 무대는 메리 가든(Mary Garden)이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함께 공존할 여유가 없었다. 그 이후 마리아는 다시 시카고에 초청받지 못하였다. 파리는 마리아에게 있어서 제2의 예술적 고향이 되었다. 파리로 온 마리아는 공연마나 대성공을 거두었다. 마리아는 간혹 러시아음악 연주회도 가졌다. 마리아는 노래도 부르고 러시아 민속춤도 추었다.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파리에서 마리아는 미하일 카라카슈(Mikhail Karakash)등 러시아 음악가들과 함께 오페라단을 만들어 Opéra Russe라고 이름 붙였다. 이 오페라단은 프랑스로 이민온 수많은 러시아 음악가들이 무대에 설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이 오페라단은 파리뿐만 아니라 마드리드, 밀라노, 그리고 저 멀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극장에 까지 가서 공연하였다. 프랑스에서 쿠즈네초프(Kousnetzoff)로 더 잘 알려진 마리아 쿠즈네초바는 러시아를 사랑한 아름답고 재능있는 소프라노였다. 그는 1966년 향연 86세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훼르보니아                                                   엘자

 

  

                                                   클레오파트라

 

   

 비올레타                                    자클린

 

 

 미미                                                                  마르게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