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샴페인과 같은 향기 Mattiwilda Dobbs (마티윌다 돕스)

정준극 2008. 2. 27. 16:34
 

▒ 샴페인과 같은 향기 Mattiwilda Dobbs (마티윌다 돕스)


오늘날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흑인 여성 성악가들의 수는 헤아릴수 없이 많다. 이들을 아프로센트릭 보이스(Afrocentgric Voice)라고 부른다. 이들 중에는 그레이스 범브리, 릴리안 에반티, 데니스 그레이브스, 바바라 헨드릭스, 베티 존스, 이솔라 존스, 도로시 메이노, 제씨 노만, 레온타인 프라이스, 무리엘 스미스, 셜리 베레트, 캐틀린 배틀, 그리고 마티윌다 돕스를 빼놓을수 없다. 그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중의 한 사람이다. 어떤 경우에 많은 흑인 성악가들이 재능은 뛰어나지만 인종차별의 장벽을 넘지 못하여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마티윌다 돕스는 그러한 장벽을 뛰어넘어 세계 유명 오페라극장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샴페인처럼 삽상하게 반짝이는 음성으로 관중들을 감격적으로 전율시킨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애틀랜타 출신의 돕스는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 여섯 살때에 솔로 연주회에 출연하였으며 다음해부터는 피아노를 공부했다. 스펠만(Spelman)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뉴욕으로 가서 로테 레오나드(Lotte Leonard)에게 레슨을 받았다. 그는 마리안 앤더슨 장학금, 탱글우드의 버크셔음악센터 오페라 워크샵 장학금 등을 받아 성악공부에 정진할수 있었으며 존 헤이 휘트니 펠로우쉽으로 장학금을 받아 2년간 프랑스에서 오페라를 공부할수 있었다. 그는 수없이 많은 국제성악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예전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국제성악콩쿠르가 수없이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몇 개든지 상을 받을수 있지만 돕스가 받은 상들은 상당히 권위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 중에도 제네바국제음악경연대회에서 전세계에서 온 수백명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1등을 차지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제네바경연대회로 돕스는 국제적은 주목을 받아 이후 유럽의 유명 오페라극장들로부터 계속적인 초청을 받았다.


라 스칼라 데뷔는 1953년 엘비라(알제리아의 이탈리아 여인)로였다. 수많은 이탈리아 소프라노들을 물리치고 흑인인 돕스가 이탈리아 여인 역할을 맡게 된것은 피부의 색깔을 극복한 쾌사였다. 아무튼 이 유명한 라 스칼라에서 흑인 여성이 주역을 맡은 것은 돕스가 처음이었다. 같은 해에 돕스는 글린드본에서 체르비네타(낙소스의 아리아드네)를 맡아 대성공을 거두었다. 역시 흑인 성악가로서는 처음이었다. 이러한 성공은 뉴욕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해 말, 돕스는 뉴욕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2년후에는 샌프란시스코오페라의 인종차별을 해제토록 하였다. 1954년 돕스는 메트로에서 공연한 최초의 흑인 소프라노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돕스는 메트로와 정식계약을 맺은 최초의 흑인 성악가였다. 이로서 돕스는 메트로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에 참가할수 있었다. 돕스의 메트로 진출은 마리안 앤더슨과 로버트 맥훼린(Robert McFerrin)의 인종차별을 극복한 출연을 가능케 해준 것이었다. 마리안 앤더슨이 가면무도회에서 울리카를 맡아 찬사를 받은 것은 그 다음해인 1955년이었다. 다만, 마리안 앤더슨은 메트로에서 단 한번의 공연만 가졌을 뿐이다. 돕스의 메트로 데뷔는 질다(리골레토)였다. 관중들은 무섭도록 아름다운 콜로라투라의 선율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질다의 절규와 호소는 바로 돕스의 절규와 호소였으며 나아가 전체 흑인 성악가들의 절규이며 호소였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돕스가 흑인이기 때문에 무대에서 차별을 받아야 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뛰어난 재능에 한없는 박수갈채를 보낼뿐이었다. 마티윌다 돕스는 현재 워싱턴DC의 교외에 살고 있으면서 하워드대학교 성악교수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음반을 남겨놓아 팬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체르비네타                                      황금 닭 공연후 커튼 콜에 답례하는 돕스(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