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황금 머리칼의 소프라노 Mary Lewis (매리 루이스)

정준극 2008. 2. 27. 16:33
 

▒ 황금 머리칼의 소프라노 Mary Lewis (매리 루이스)


‘황금 머리칼의 소프라노’라고 알려진 소프라노 매리 루이스는 화려한 데뷔와는 달리 일찍 무대를 떠나야 했던 불운의 오페라 아티스트였다. 루이스는 1900년 미국 아칸소 출신으로 오페라 데뷔이후 매력적인 리릭 음성과 뛰어난 미모로 각광을 받았으나 겨우 41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나 한없는 아쉬움을 남겨주었다. 그는 재능과 미모만큼이나 생활도 황홀하도록 매혹적이었으며 가끔은 폭풍과 같이 열정적인 것이었다. 루이스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그런 타입의 오페라 소프라노는 아니었다. 18세의 젊은 나이로 과감히 가출한 그는 보데빌 예술단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노래와 춤을 추었으며 얼마후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떤 캬바레에서 노래를 불렀고 나중에는 크리스티 코미디 예술단이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극단에 합류하여 몸매를 자랑하는 섹시 무대배우로서 일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비누 거품이 넘쳐흐르는 욕조에 누워서 다리를 번쩍 들어 각선미의 매력을 뽐내는 것이 인기였고 루이스는 바로 그런 역할에서 대단한 인기를 차지하였다. 그러므로 그런 경력의 루이스가 오페라 아티스트로서 다시 태어난 것은 음악계로서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다. 성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한 그는 파리에 가서 당대의 테너 장 드 레즈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첫 오페라 데뷔는 비엔나의 폭스오퍼(Volksoper)에서 마르게리트(파우스트)를 맡은 것이었다. 뛰어난 미모와 감미로운 음성의 루이스는 단번에 프리마 돈나로서 발돋음 하였다. 이듬해 그는 본 윌리엄스(Vaughn Williams)의 오페라 ‘가축 몰이꾼 휴’(Hugh the Drover)의 세계초연에 주역으로 출연하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는 불과 몇장의 음반을 남겨 놓았을 뿐이지만 모두 놀랄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마치 환상의 노래를 듣는 것과 같은 음반들이다. 그를 황금 머리칼의 소프라노‘라고 부르게 된 것은 금으로 만든 머리띠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페라 무대에서도 그 황금 머리띠를 장식하고 나타났었다.